올해는 《슬픈 나막신》 동화가 세상에 나온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슬픈 나막신》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제목은 《꽃님과 아기양들》(1975)이었습니다.
제목은 달라도 같은 동화입니다.
1944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때 일본 도쿄 혼마찌 골목에 아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조선 사람에게 나쁜 욕설도 하고 괜히 트집을 잡아 싸우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싸우고 화를 내는 대신 노래를 불렀습니다.
조선사람 가엾다
어째서나 말하면
어젯밤의 지진에
집이 모두 납작꽁
모두 모두 납작꽁
일본사람 가엾다
어째서나 말하면
어젯밤의 지진에
집이 모두 납작꽁
모두 모두 납작꽁
폭탄이 터지고 지진이 일어나면 조선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가엾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놀리는 노래 같지만 두려움과 공포 가득한 속내를 감출 수 없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전쟁과 굶주림의 공포를 이렇게 노래로 덜어내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전쟁의 세상에서 아이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일본 아이 조선 아이들은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힘을 합해서 배고픈 세상과 싸워야 했습니다.
‘오늘 저녁밥은 뭘까?’ 생각하며 아이들은 나막신 한 짝에 운명을 점쳤습니다.
슬프고 서러운 일입니다.
고작 나막신 한 짝에 울고 웃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여기서부터 동화 《슬픈 나막신》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전쟁의 세상은 어른들이 끝내야 합니다.
아이들은 전쟁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80년 전 일본 도쿄 혼마찌 골목에서 준이 용이 분이 하나꼬는 정성껏 손 모아 전쟁이 끝나기를 빌었습니다.
오늘 우크라이나 아이들도 중동의 아이들도 어서 전쟁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밥을 먹을지 죽을 먹을지 떡을 먹을지 아니면 분이처럼 굶을지
오늘도 아이들은 나막신을 공중 높이 차 던지고 있습니다.
80년 전에도,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폭력과 굶주림과 학대로 많은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슬픈 나막신》은 이러한 모든 고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고통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올해는 《슬픈 나막신》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혼자서도 읽고 여럿이도 읽고 아이들에게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올해 똘배어린이문학회와 당진그림책꽃밭에서 여는 '그리운 권정생 선생님 18주기 추모제'에서는
《슬픈 나막신》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