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로 잘 알려진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성과 사회의 과잉활동. 과잉자극에 맞설 수 없는 현대사회의 일면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 우리는 위기의 사회에 살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의하면 우리의 사회는 헤드라인 위기, 잊혀진 위기 그리고 소리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헤드라인 위기(headline crisis)”는 신문 지상에 크게 보도되어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위기다. “잊혀진 위기(forgotten crisis)”는 심각한 위기인데도 불구하고 곧 사람들이 잊어버리는 위기로 기후변화와 자원고갈 등이 그러하다. 반면에 “소리 없는 위기(silent crisis)”란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소홀히 다루어지는 위기다. 이 위기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고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기에 반향도 없는 위기다.
우리는 지금 소리 없는 위기사회 속에 살고 있다. 코로나 이후 일회용 소비 용품에 대한 제재 등으로 환경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경지와 골프장에 제한 없이 뿌려지는 유해물질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를 아는 사람은 없다. 이들 물질의 생산통계는 있으나 소비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쌀을 평생 연구해 온 필자는 조상 대대로 물려온 땅과 유해물질 그리고 농작물의 치명적인 순환관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연을 지키고자 최근 논의되고 있는 식물의사 제도는 엄밀히 보아 우리의 작물 환경과 생태계를 치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지만 이 제도의 도입조차 머뭇거리며 정부나 국회도 관심 밖에 있어 무척이나 안타깝다. 계속 깊어지는 병을 치료할 의사를 우선적으로 배출하고 더 나아가 생태계 보호를 위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망가진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준다면 그로 인해 부담할 후손들의 비용부담은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 국가의 자각과 의지를 필요로 한다.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이는 빠를수록 좋다. 더 늦기 전에 새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