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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홍해 앞에서 가져야할 우리의 자세
히 3:7-19
7.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12.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19.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먼저 은혜에 대해 잠시 나누고 설교를 시작하려 합니다
일반적으로 은혜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은혜가 하나님의 선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뭔가 내가 한 것이 있어서 주시는 “상”의 개념이 큽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것이 전혀 없어도 주시는 것이 은혜라는 것을 알지만 그 이상의 것이 있지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내게 부어 주시는 은혜는 나를 위해서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하며
**** 성경적 은혜의 정의는 :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원하셔서 부어 주시는 살아 있는 임재( 능력, 지혜, 돕는 모든 것)이다
따라해 보시겠습니다
“은혜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시기 위한 도우심 입니다
- 은혜가 부어지면 큰 인내를 가지게되어 견디지 못하던 일들을 기쁨으로 견딜 수 있고 특별한 믿음이나 지혜, 지식, 안목 등 어떤 능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던 일들을 이룹니다
*** 때때로!!!! 어떤 큰 지혜나 용기 등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게 되는데 그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하고 자만할때가 있지만 특별한 일들이 자신을 통해 일어났을 때 그 당시엔 모를수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을 알게 됩니다
더쉽게 설명하자면!!!
이전에 굉장히 집중하여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이제는 잘 안되는 것을 보며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텐데... 내가 게을러졌나?? 라며 노력해 보지만 다시 그 수준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며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라고 할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때 당시 하나님이 뜻하신 일을 이루어 지기 위해 잠시 능력을 부어 주셔서 이루시고 이제는 되풀이 하실 필요가 없기에 더 이상 같은 은혜를 주시지 않는 것 뿐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나타내시려 주시는겁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그 은혜은 머지않아 쏟아지게 됩니다 각종 은사들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에 속합니다 큰 지혜, 깊은 안목, 기적의 은사들을 받은 분들, 권세 있는 설교도 은사인 것 아십니까? 설교를 포함하여 아주 대단한 은사를 받으신 분들이 10년 30년 은사를 사용하시다 넘어지시는 이유가 그것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 생각을 하며 주님만 의지하지 않기에 오랜 시간에 걸쳐 주님과 멀어지면서 결국 넘어지게 되는것입니다
내가 한 것 같지만 지금 하라면 다시 하지 못하는 것....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증거였고 지금은 또다른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는 은혜의 정의 였고 두번째는 은혜의 크기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지극히 크신 그 은혜의 풍성함을 알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통로가 되시는 예수님 그분 외에는 다른 것은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왜 다른 것은 알지 알기로 작정했겠습니까? 그 은혜가 너무나 크기에 다른것은 알 필요가 없을 정도라는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다녀온 삼층천을 설명하면 조금 더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히브리어의 하늘은 3가지 뜻이 있다고 합니다 일층천은 눈에 보이는 하늘, 이 땅의 세계를 말합니다 이 땅에서 사람의 능력도 포함되는데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부어주신 큰 능력이 있습니다 항공모함이나 거대한 빌딩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사람도 대단하다는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의 세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이층천의 세계, 곧 영의 세계입니다 천사와 악한 영들의 세계입니다 다니엘이 기도할 때 곧바로 응답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올 때 악한 세력이 그 천사를 가로 막은 일이 벌어진 영역이 바로 이 이층천 영의 세계입니다 대단해 보이는 사람의 능력이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다면 한 영의 능력은 마치 특공대 군인이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천사 혼자서 아말렉의 18만 군사를 하룻밤에 다 쳐 죽인 것을 보아도 그 능력은 사람과 비교 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인 삼층천은 일층천을 갓난 아이의 세계처럼 보는 이층천과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격차가 있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일층천과 이층천은 피조물의 세계이지만 삼층천은 전능하신 창조주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귀도 이층천에 있는 피조물입니다 마귀는 전능하지 않습니다 창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계획하시고 창조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속한 은혜의 크기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은혜가 무엇이지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시기 위해 부어 주시는 도우심....이며 하나님께 있는 은혜는 우리가 완전히 믿고,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믿지 못하게 하여 사람의 방법을 쓰게 만듭니다 일의 영역에서는 당연히 사단의 방법이 우선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의 영역에서 어떤 것이 믿음의 삶인지 전혀 알지도 못합니다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닏 이것은 결코 쉽게 캐내지 못하는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살기를 원하기를 결단하고 애쓰고 힘쓰며 구하고 찾고 배우며 배운 것을 실천하며 또 가르치는 삶을 산다면 시간은 걸리고 여러 훈련도 있겠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능력과 방법으로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그러한 부르심이 있다는것입니다
어떤 젊은 전도사님이 신학을 졸업하시고 전라남도의 어느 깜깜한 시골에서 단독 목회를 시작하셨는데 젊으신 분이셔서 나름 활력이 있으셨습니다 교회 바로옆에 사택이 있었는데 교회와 사택을 대나무들이 죽 둘러싸고 있어서 완전히 고립된 것처럼 보여 마음이 않좋았는데 시골이라 성도들이 다들 할머니 들이고 할 일도 별로 없어 어느날, 날을 잡아 그 대나무들을 다 없애 버리려고 자르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지나가시던 동네 분들이 웃으시면서 전도사님 그거 어려울걸요....하면서 지나가시더랍니다 그 활력있으신 전도사님이라 마음먹고 베어 내기 시작했고 결국은 그 많은 대나무들을 다 베어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베어낸 자리에 남은 것이 있지요 뿌리도 뽑아야 해서 다시 힘을 내어 캐내기 시작했는데 세네뿌리 캐고서 지쳐 포기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절망하고 있었는데 교회 위쪽에서 공사를 하는데 포크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어서 사정을 얘기하고 아주 싸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날 와서 한번에 다 뒤집어 엎어 버렸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가운데 깊이 뿌리내린 것 중 하나가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게 하는것입니다 반드시 내 기여도가 있어야 일이 이루어 진다고 믿는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애쓰고 힘써서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애쓰고 힘쓸수 있었다는것입니다 은혜의 개념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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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말씀의 주인공인 이스라엘 백성들
이들앞에 홍해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 이들은 절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죽게 되었다고 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때 뿐아니라 물이 없을때에도 고기를 먹고 싶을 때에도 이때 이들의 인원은 200만명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집단중보기도의 원조였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200만명이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며 즐거움으로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라고 할수 있지만 분명히 히브리서 3장에 보면 오히려 이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을 격노케”했다고 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3:16 개역개정 --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현대인의 성경 --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을 노엽게 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모세를 따라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탐욕으로 구했고 시험했다고도 하십니다
시편 78편
16. 또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17.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8. 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2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셨으며 야곱에게 불 같이 노하셨고 또한 이스라엘에게 진노가 불타 올랐으니
시편 106편
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이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이 분노하시며 또한 편으로는 실망하신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반응하셨을까요?
시 78: 22.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때문이로다
시 103:7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 그가 자기 뜻을 모세에게 알리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의 놀라운 일을 보여 주셨다.
제가 왜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믿을 만하다고!!! 믿으시라고 말씀드리고 본론으로 들어갔는가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내 은혜는 크고 믿을만하다 곧, 나는 능력이 있고 의지할만 하기에 나를 믿고 내가 하는 것을 보아라 내가 다 할것이다.... 너희는 내가 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나를 찬양하여라....
나만 믿어!!!!!! 이렇게 자신하시며 말씀하셨지만 백성들은 그 은혜의 크기가 어떠한지 전혀 관심도 없었고 알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저에게도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직 어리기에 필요한것들은 뻔합니다 둘째보다 첫째가 조금더 구체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뭐 사달라고 하고 학교 끝나고 와서 뭐 사달라고 하고 저녁에 와서 또 뭐 사달라고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안녕히 주무셨어요? 이런 인사고 뭐고 다짜고짜 뭐 사달라고 조르고 떼쓰고 학교 끝나고 와서 또 뭐 사달라고하고 조르고 떼쓰고 그래서 사주면 저녁에 또와서 뭐 사달라고 조르고 떼쓰고.....이걸 계속 반복하면 화가 날까요 안날까요?
이거는 부모를 믿는게 아닙니다 그저 수단 삼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10번의 기적을 통해 애굽에서 한사람도 다치지 않고 많은 재물들까지 덤으로 얻어 나오게 하셨는데 백성들이 그걸 싹 다 잊어버리고 앞에 보이는 환란에 시선을 빼앗겨 불안해 하고 불평 불만하고 계속 부르짖어 구하여 달라고만 하였기에 결국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고 홍해기적붙 시작하여 10번 정도의 기적을 통해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여 이들의 촛대는 다음 세대로 옮겨지고 광야에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결말의 원인은 백성이 하나님은 어떠하신지 그분의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의견을 뭍지도 않았고 말씀하신 것을 묵살해 버린것입니다 크신 은혜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출애굽기 33:13
-개역개정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새번역 그러시다면, 제가 주님을 섬기며, 계속하여 주님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부디 저에게 주님의 계획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께서 이 백성을 주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과 길을 먼저 구했습니다 그랬기에 좋은환경이든 나쁜환경 상관없이 주님을 따라가려 하였습니다
출 33장
3절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15절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함께 가시지 않으시겠다는 말의 뜻은 너희가 원하는곳에 보내주겠지만 “임재”는 없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완전히 실망하셨고 포기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둘째고 문제가 있으니 계속 해결 해달라고만 하니 결국 격노하시고 촛대를 옮기신것입니다
이건 세상 말로 “그래.... 가나안 줄테니 그거 먹고 떨어져라....”이런 뜻입니다
이것이 기복주의입니다
기복주의는 하나님 뜻과 계획은 관심조차 없고 임재가 있건 없건도 상관없습니다 임재도 응답의 수단으로만 여깁니다 그저 기도하는 것이 응답되면 좋아하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찌되었건 전혀 상관없기에 하나님과 다른길을 가게 됩니다
혹시 전혀 길이 보이지 않는 홍해 앞에 서있는 것 같은 분이 있으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했던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원하분은 없으신지요????
길이 열리는것만을 구하면
이것은 기복주의입니다
기복주의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은 알 필요가 없고 알고 싶지도 않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하여 집중해서 구하거나 금식하며 떼쓰기에 원하는 것은 얻게 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홍해 앞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먼저 주님과의 친밀함속에 그분을 신뢰하고 그 은혜가 너무나 풍성하다는 것과 주의 길을 가기 위해 예비하신 그 은혜를 믿고 주님을 찬양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구하지 않았기에 백성들에게 광야의 생활은 생명이 좌우되는 위기였는데 사실 성경은 이것을 훈련이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9:4
개역개정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현대인의성경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행한 일을 보았고 또 독수리가 날개로 자기 새끼를 보호하듯이 내가 너희를 보호하여 나에게 인도한 것을 다 보았다.
신 32장
11.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현대인의성경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흔들어 새끼가 떨어지면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아올리듯 하셨네.
독수리가 아기독수리를 훈련시키는 장면입니다 무시무시 하지요 절벽에서 떨어뜨려 날개짓을 하게 하다 날지못하면 받아 올리는 훈련을 반복합니다.... 떨어질때는 정말 죽을 것 같지요 하지만 어미가 받아 주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이런 훈련을 반복합니다 죽을 것 같지만 안전합니다 하지만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 훈련이지요 먹을것과 마실 것을 자유롭게 얻지 못하고 노예였던 시절에도 가질 수 있었던 것을 가지지 못하는 아주 극한 환경이지요
군대 갔다 오신분들은 아시겠지만 혹한기 훈련이나 유격훈련때 아주 힘들지요 하지만 힘든것을 다 알기에 불평은 대충합니다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군대 밥 맛없지만 훈련때는 더 맛이 없고 그마저도 못먹기도 합니다 그래도 견딥니다 왜그러지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허구헌날 맨날 훈련한다고 밖에서 자고 맛없는 밥만 먹고 매점도 못가게 하면 다 탈영할 것입니다 훈련은 한때이기에 견딜수 있는 것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필요한 것만 얻어내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더알고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구했다면 그들의 상황이 마치 독수리를 훈련시키는 것 같다는것을 알았을 것이기에 고통스럽지만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확하게 어떤 방법으로 일하실지는 몰랐겠지만(모세도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셔서 걸어가게 하실지는 몰랐다)
홍해 앞에서 절망과 위기속에 살려달라 부르짖어 구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고 주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마치 바울과 실라가 감옥안에서 주님을 찬양한것과 같이 찬양했을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속에 있습니까? 그분께 물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며 그분의 은혜가 무한하다는 것, 지금이 어렵지만 그래도 안전한 훈련의 때란 것을 믿으시고 이루실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때까지 집중해서 주님의 마음을 구하십시오 십자가의 공로만을 의지해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우리의 공로를 들고 나가면 안됩니다 40일 금식기도도 안됩니다 100일 금식 기도도 안됩니다
십자가의 공로를 내것으로 삼아 은혜의 거룩한 보좌 앞으로 나아가 끝까지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를 알게 되어도 정확하게 어떻게 이루실지 모를때가 많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알았지만 정확하게 어떻게 하실지 몰랐기에 출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라고 말했지만
바로 다음절 주님께 부르짖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5절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하지만 모세의 이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 하는 부르짖음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 주님께 구하는것인데 그때 주님의 선명한 지시를 얻게 됩니다
15절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백성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그러므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먼저 주님의 마음과 길을 알게된 후 그것을 위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알기위해 애쓰고 힘쓰는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를 붙잡고 실제로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며 발버둥 칠 때 부흥이 올것입니다 응답이 올것입니다 길이 활짝 열릴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지요 ..... 어려울때는 당연히 생명을 다해 하나님만을 붙잡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나 가정, 사업, 일터에서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죽을 때 까지 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을 보면 이 부흥은 대체적으로 끝까지 가지 않습니다 아사왕의 경우 적들이 쳐들어와 나라가 망하고 죽음의 위기에 쳐해 있을 때였지요 (당시 전쟁에 지면 남자들은 처참하게 죽거나 노예로 끌려갑니다 여자들은 어른이나 아이 할것없이 끌려 가는데 어떤 일을 당하는지는 말안해도 짐작하실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사왕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생명을 다해 주님만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해결해 주셔서 평안하게 살게됩니다 .... 그러나 평안속에 끝을 맺었습니까? 20년후 비슷한 일을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는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닌 다른 나라를 의지하게 되는데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져 결국 비극적인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사왕만 이랬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린 다윗도 그의 생애에 수없이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3번의 기름부름을 통해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불렸지만 그의 인생의 마지막때 가장 나태했던 때에 간음과 거짓과 권력 남용과 살인등 많은 죄를 한번에 짓게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이기에 죄 지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죄를 짓게 되는 상황을 보게면 대부분 좀 살만하게 된 때, 믿음이 온전해 지는 것 같아 보이는 그 때에 많이들 넘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과 깊은 관계 속에 있을 때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이 좋습니다 주밖에 없습니다 하면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지는지요? 늘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을 구합니다 열렬히 주님을 높힙니다
사랑의 표현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인것은 열심히 있다는것입니다
주님을 찾는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정이 안된다면 주일에 한번이라도 깊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또는 특별한 사정에 의해 2-3주에 한번 예배에 참석한다면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몇주 예배를 쉬었는데 교회 나와 앉자마자 임재가 있을까요? 일과 관계들 속에서 살았기에 주님의 임재를 구하여 체험하기까지 내 육체를 잠잠하게 하고 마음과 뜻을 정돈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여러분이 매주 또는 매일 주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면.... 그 상황이 축복입니다...라고 쉽게는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알기에 쉽게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더 크신 주님의 은혜가 부어지길 축복합니다
은혜가 부어졌을때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가 있습니다
먼저 은혜가 부어졌을 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인데 잠시 주신것입니다 하지만 내게 주신것이기에 감사하며 잘 누릴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은혜가 임하지 않았을찌라도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의 자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온 삶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은혜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부어주시는 능력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계속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행 11:23에서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것을 보고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면했습니다 다시말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지속적으로 머물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속적으로 예배때마다 평상시 때마다 간절히 주님 알기를 구하고 하나님의 목적과 길을 알기를 구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러지 않으면 열매가 많이 들려있으나 뿌리가 뽑힌 나무와 같아집니다 당장은 열매가 있으나 열매들은 점점 말라 갈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걷힐것입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의 마음과 길을 알려 하지 않고 문제만 해결 되기를 바라는 기복주의 신앙으로 인해 결국 예비하신 응답도 못받고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여 촛대가 옮겨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우리 신앙은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과 길을 알게하고 예비하신 은혜를 얻을 수 있게 합니다 그 은혜로 인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게되며 하나님의 뜻을 알게되어 주의 때에 그분의 능력과 방법으로 그것을 이룰수 있게 됩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매번 오직 십자가의 공로를 내것으로 삼아 그 은혜의 보좌앞에 간절함으로 나아갈 때 더 깊어집니다 매번 주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이 끝까지 넘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간절함과 갈급함이 없어졌습니까? 다시 주님께 돌아가십시오 통곡하시며 십자가를 다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기다리시던 주님을 다시만나시고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강같이 다시 부어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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