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서론
성경은 하나님 나라 언약 성경은 하나님 나라 언약을 우리에게 증거하여, 우리로 그 언약 안에 거하여 언약의 백성으로 살도록 합니다.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구약 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고 그들의 왕이 되셨지만, 이제 하나님은(신약 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여 우리를 자기 백성 삼으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사에서 신학의 토대는 철학 이러한 언약의 토대 위에서 성경이 읽혀지고 신앙고백이 세워져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회 역사와 신앙고백을 살펴보면 그 토대 위에 세워지지를 못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 언약을 따라 신앙을 고백한 것이 아니라 세상 철학의 토대 위에서 세워졌습니다. 나타난 고백의 내용이나 형식은 성경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도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사상적 배경은 철학이었습니다.
철학이 말하고자 하는 것 철학 역사는 합리주의와 신비주의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 혹은 신비적인 체험을 뜻하는 협소의 의미가 아니라, 보이는 세계에서 존재 근거를 찾는 것과 보이지 않는 초월의 세계에서 존재 근거를 찾는 광의의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그런데 실상은 합리주의는 신비주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합리주의도 현실세계의 탐구의 목적은 존재에 대한 것이고 탐구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현실성의 문제보다 논리적으로 결정하기 때문) 모두 존재에 대한 탐구를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근대, 현대에 와서는 초월적 존재 자체를 탐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방법과 과정 자체 곧 인식에 많은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결과로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한 인식의 결과로 나타난 존재는 현상계에서 지각된 존재이든지(초월적 존재 부인) 아니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존재는 아니고 소위 논리적 결과 사유의 산물일 뿐입니다.(이것도 초월적 존 재가 있다는 것 자체는 부인, 그 존재는 관념일 뿐임 곧 허상)
이러한 것을 철학의 분과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철학의 분과는 크게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 그리고 한가지 더 첨가하자면 미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철학사에서 이 세 가지는 같이 가는데 고대철학은 존재론에 강조를 두고 근대 철학은 인식론에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존재론 자체는 무시하는 경향까지 나타납니다.
철학사와 함께 한 기독교 신학 기독교 신학은 이러한 철학사와 그 분과와 함께해 왔습니다. 교부시대 때는 교리를 확립하고 변호하는데 고대 헬라 철학, 곧 플라톤 철학과 신 플라톤 철학과 자연주의 철학에 토대를 두고 발전된 스토아 철학을 사용하였습니다. 중세 때는 주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수단으로 신학을 체계화하였습니다. 종교 개혁 시대에는 인문주의가 고대로 돌아가자고 말한 것처럼 다시 교부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었고 종교 개혁 시대 이후 교리를 강조하는 정통 개신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것을 개신교 정통주의라 일컫는데 장로교의 근간을 이루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이 시기에 작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정립된 신학적 체계가 지금까지 정통 교회의 신학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후에 개신교 정통주의에 반발하여 계몽주의 철학의 영향으로 경건주의와 합리주의가 등장하여 자유주의 신학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어 등장하는 근현대 철학의 영향 아래 실존신학, 해방신학, 과정신학, 포스트모던 신학 등이 등장하였습니다.
신학의 근본 전제인 존재론 그런데 신학이라 하였을 때는 어떤 철학적 체계 위에 있던지 존재론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신학 자체가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자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존재론 했을 때는 근현대 철학의 존재의 문제까지라도 고전적 존재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근현대 철학이 고전적 존재론을 논리적으로나 관념론적으로 인정하든 아니면 부정하든지 고전적 존재론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고전적 존재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의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반을 둔 천주교에 대항하여 플라톤 철학의 토대 위에 세워졌으며, 교부 시대도 마찬가지 영향 아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천주교나 개신교가 똑같이 교부 시대를 공유할 수 있는지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부 시대의 고백은 주로 아들의 존재 방식과 함께 삼위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대한 고백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 토텔레스 철학이 형상이 질료 속에 존재한다 말해도 변하지 않는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종교 개혁자들이 중세 천주교에 문제를 삼은 것은 신론 부분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철학의 영향 아래 차이가 많이 발생하는 구원론과 교회론 그리고 성경 곧 인식론의 부분들이었습니다.
플라톤 철학의 영향 여기서는 모든 부분을 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고 소위 개신교 정통신학에 영향을 미친 플라톤 철학과 그 영향력을 간략하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이데아론입니다. 이데아의 세계는 감각적 세계, 즉 현실 세계와 대립된 세계이며 현실 세계의 모형이자 원형입니다. 이데아 세계는 영원 불변하며 세계의 참다운 본질이지만, 현실 세계는 변화와 소멸되는 세계입니다. (영향력) 1,신론에 대한 이해 이 토대 위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기독교가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 영원 불변하며 절대의 선의 세계인 하늘의 천국과 절대 선이며 영원불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대한 토대는 신플라톤주의에서 영향을 받아 정립하였습니다. 신플라톤주의의 핵심은 이데아 세계의 순수한 본질인 신의 유출입니다. 그 영향으로 성부는 성자를 낳았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 말미암는다고 말하였습니다.
1.성자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성자에 대한 인성과 신성 논쟁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 토대는 이데아들로부터 유출에 의하여 물체로 된 사물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사람도 유출되어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성자는 이데아의 온전함과 물질 곧 인성의 온전함을 취한 중보자 곧 매개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부시대에 정립된 성자론입니다.
1.성경과 계시에 대한 이해 그렇다면 이데아에 대한 인식, 곧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영혼을 통하여 하다고 말합니다. 플라톤 철학은 본래 영혼은 이데아 계에 살았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와는 달리 영혼이 선재한 것으로 말하지는 않고 창조된 것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고 타락하였다고 말함으로 플라톤주의와 다릅니다. 하지만 성경의 영감론은 플라톤주의를 생각나게 합니다. 신앙고백서는 소위 자연계시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데 온전치 못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플라톤주의나 신플라톤주의가 영혼의 이데아의 회상이나 황홀경의 관조를 통하여 이데아 세계를 안다고 말한 것처럼, 특별계시로서 성경을 말하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인식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1.구원에 대한 이해 구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라톤주의는 사물과 사람은 완전함을 추구하는데 그 완전함은 이데아와 유사하게 되고자 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물론 이성에 의하여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신플라톤주의는 중간 존재의 매개를 통한 이데아 세계 곧 신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신앙고백서는 이 토대 위에서 구원은 완전한 존재를 닮는 것으로 존재론적인 완전함을 토대로 두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부패한 본성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현 세계에서는 완전함에 이르지 못하고 지금 오직 중보자를 통하여만 보증으로 구원을 얻었고, 죽을 때와 그리고 예수 재림할 때 흠도 티도 없는 그리고 더 이상 변화와 소멸에 매이지 않는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으로 말합니다.
1.율법과 선에 대한 이해 믿음으로 사는 윤리적인 삶과 율법에 대한 문제는, 플라톤철학의 존재론적 토대 아래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플라톤 철학에서 말한 것처럼 온전한 존재자이며 절대 선입니다. 그는 절대 선으로서 윤리적인 삶의 법칙을 정하셨는데 그것이 곧 율법입니다. 신자들은 이데아 세계의 영인 성령을 통하여 새롭게 창조된 새로운 본성 곧 하나님의 절대 법을 사랑하여 절대 선에 이르고자 하는 선한 본성(철학에서는 이성)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부패한 본성 곧 철학에서 말하는 욕구가 남아 있습니다. 신자의 마음 안에는 선한 본성과 죄의 본성이 서로 대립하여 싸웁니다. 신자는 그러한 끊임없는 투쟁을 통하여 하나님 곧 이데아를 닮아갑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안 되고 천국에 가서야 온전히 하나님 곧 이데아를 닮게 될 것입니다.
1.교회론에 대한 이해 교회론도 이데아론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곧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로 나눕니다. 유형 교회는 변화하는 교회로서 본질적인 교회는 아니며, 무형교회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주님의 몸 된 교회로 설명합니다.
1.종말론에 대한 이해 종말론도 위에서 조금씩 언급된 것처럼 개인의 존재 변화, 곧 어떻게 변화하고 소멸하고 온전하지 못하는 지금의 세계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천국에 이르며 온전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 정립의 참된 방법 교회사에서 신학이 이처럼 철학적 체계 위에 정립된 것은 한가지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의 용어로 우리의 복음을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아덴에서 설교하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방인의 용어로 설명하더라도 언약적 토대를 잊어서는 안 되는데 그것을 간과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학은 희랍적 사고가 아니라 히브리적 사고, 모세적 사고의 틀 안에서 정립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 때 처음 언약을 체결하였고 그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으로 성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미는 모세 언어적 의미로 그리고 체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의 체계 안에서 신학과 우리의 신앙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 교재의 특징 본 교재는 이러한 모세 언어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의 체계, 이 두 시금석 위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비판함으로써 (바르게) 새롭게 신앙을 정립하고자 하는 신자들을 위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비판적으로 만들었어도 비판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판을 중심에 두다보면 우리의 신앙 고백보다도 비판 그 자체에 시선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앙고백서의 전 항목을 다 기술한 것은 아니며 필요에 따라 첨가한 것도 있고 통합한 것도 있습니다.
교재의 구조 교재의 구조는 각 항목에 대한 쉬운 이해를 위하여 전체적인 개요, 각 항목 내 소제목의 내용을 연구하기 위하여 생각을 돕기 위한 질문, 그에 대한 해설 그리고 어떤 항목은 그 항목에 대하여 더 연구하기 위한 과제를 주었습니다. 끝으로 각 항목에 대한 이해 하에서 그러한(이해를 바탕으로 한) 신앙 정립이 어떻게 자신의 삶에서 드러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두었습니다. 교재가 좀 어려울 수 있겠지만 많은 생각과 연구를 겸한다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어떤 항목은 긴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 항목마다 소제목들이 잘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잘 조절해서 공부하면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희망사항 본 교재를 통하여 새롭게 신앙을 정립하고자 하는 이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하는 자들이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가 그의 백성 된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굳게 서는 계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