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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석(試金石)”이라는 한자어는 “쇠를 시험하는 돌”이라는 뜻으로서 귀금속의 순도를 판정하는 데 쓰는 검은색 현무암이나 규질의 돌입니다. 금 조각을 문지른 빛깔과 표본의 금 빛깔을 비교하여 순도를 시험하는데 가치, 능력 따위를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성령에서 다시 태어난 것을 검사하는 기준이 되는 시금석들이 있습니다.
1. “니코데모”라는 사람은 유대인들의 통치자였습니다.
요한복음 3장 1절에 “바리새인들 중 사람이 있으니 이름이 니코데모며 그 유대인들의 통치자(ruler)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니코데모는 유대인들의 통치자니 나이가 60살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높은 지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 정도 나이가 있어야 합니다.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향하여 밤의 시간에 왔고 그가 그에게 말하기를, “랍비여 선생님이신 당신이 하나님에서부터 오신 것을 우리가 알았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있지 않으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들을 아무도 행할 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요 3:2).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표적”이라는 말은 자연적으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을 말합니다. 물을 떠서 항아리에 넣어 둔다고 그 물이 포도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3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어도 물은 물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이 포도주로 변한다면, 그것은 표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표적 외에 여러 가지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표적들의 소문을 듣고 니코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코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에서부터 오신 것을 안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표적들을 행하실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고 그에게 말씀하셨기를, “내가 너에게 말하노라 어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3).
“다시(again)”라는 말(아노덴)은 “위(above)로부터”를 뜻하기도 하며 한글 개역에는 “거듭”이라고 번역되었는데 다시 되풀이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다시 생겨나되(be begotten) 위에로부터 다시 생겨나야 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왕국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을 보기 위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장 4절에 “늙은이인 사람이 어떻게 낳을 받을 수 있습니까, 어머니의 배 안으로 두 번째로 들어가고 낳음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니코데모는 오늘날로 말할 때에 종교적 환경에서 자란 사람입니다.1)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 태어나서 사는 많은 자녀들이 있는데, 그들은 크리스트교 가정에서 태어나고 부모님과 함께 교회 다닌 까닭에,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 아빠는 장로님이시고 우리 엄마는 권사님이신 까닭에, 나도 당연히 다시 태어났겠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교회에 높은 직분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그것은 부모님이고, 사람은 자기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믿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교회에 왔다갔다는 하는 사람이면서, 자기가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모양만을 꾸몄는데, 바리새인들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구약성경을 교육받고 외웁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율법도 부족해서 거기에다 몇 백 개의 조항을 더 덧붙여 가지고 그것들을 지키며 삽니다. 그들은 그런 삶을 강조하지만 내면에 다시 태어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회 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바리새인들은 페인트를 칠한 무덤처럼 겉모양만 잘 꾸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내면이 변화되어야 되는데 그들은 겉의 모양만을 꾸민 것입니다.
2. 사람은 물과 성령에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5-8절에 “만일 물과 영(Spirit)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의 왕국(kingdom) 안으로 들어갈 수 없노라. 육체에서 태어난 것은 육체이며 그 영(the Spirit)에서는 영(spirit)이라. ‘반드시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하노라’고 말한 것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그 바람(The wind)이 원하는 곳에 그것이 불고, 너는 그 소리를 들으나, 그것이 어디서 오고 그것이 어디로 떠나가는지를 너는 알지 못하였노라, 이와 같은 방식에 그 영(the Spirit)에서 태어난 모든 자가 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 36장 25-27절에 “내가 너희의 위에 깨끗한 물을 뿌릴 것이고, 너희가 너희의 모든 불결들과 너희의 모든 우상들로부터 깨끗할 것이고. 내가 새로운 마음을 주었고 새로운 영(spirit)을 너희의 내부에 주겠으며 내가 돌의 마음을 너희의 육체로부터 제거하겠고 육체의 마음을 주었고. 나의 영(Spirit)을 너희의 내부에 주고 나의 법령들 안에 갈 것을 만들고 너희가 나의 정의(judgment)들을 지키고 행할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위에 뿌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물은 자연의 물이 아닌데, 자연의 물은 육체를 깨끗하게 할지라도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 못합니다. 본문은 물의 깨끗하게 씻는 기능으로 영적인 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靈)을 “성령(聖靈)”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靈)이 “성별(聖別)된 영(靈)”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신성하게 구별되신 영(靈)”이십니다.
세상에는 성령님 외에 다른 영(靈)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창조하시기 전에 천사들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천사들은 몸이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되었는데, 천사들 중에 1/3이 타락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나님께 반역하다가 타락한 것입니다. 그들이 악(惡)한 영(靈)들, 즉 악령(惡靈)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들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이런 악령들과 달리 신성하게 구별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靈)”은 다른 모든 영(靈)들과 신성하게 구별되신 “성령(聖靈)이십니다.
이 성령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오셔서 사람의 영(靈)을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 마음이 변화된 자들만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마음이 변화되지 않고 그 속에는 온갖 탐욕과 더러운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마음은 그대로고 단지 겉모양만 꾸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는 선한 행위들을 하고 자선 행위들을 하고 살았으니 나는 당연히 천국에 들어가겠지’라고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의 영(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육체에서 태어난 것은 육체며 그 영(the Spirit)에서는 영(spirit)인데 개가 개를 낳고 고양이가 고양이를 낳는 것과 같습니다(요 3:6).
“육체”라는 말은 몸뿐 아니라, 마음, 감정 이런 것들이 다 포함됩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날 때에 자연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이 다 육체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에 영(靈)은 죽은 상태로 태어나는데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만드실 때에 흙으로 몸을 만드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까 사람이 살아 있는 영(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정원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영(靈)은 죽게 되었고, 그 사람의 자손들인 사람은 태어날 때에 죽은 영(靈)으로 태어납니다.
“육체”는 타락 후 죄악적인 본성의 충동을 받는 개인을 가리킵니다. “육체”는 부패한 본성에 따라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런 “육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합니다.2)
더러운 물이 나오는 펌프를 칠해도, 깨끗한 물이 나올 수 없습니다.3) 더러운 물이 나온다고 페인트를 사 가지고 와서 분홍색으로, 노란색으로 펌프를 아무리 예쁘게 칠하여도 깨끗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겉모양만 예쁘게 꾸민다고 더러운 물이 변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모든 선행과 자선 행위가 이러한 것입니다. 속은 그대로 있고, 겉만 예쁘게 꾸미는 것입니다. 그것이 외식(外飾)이고 위선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의 육체적인 노력은 육체적인 결과 밖에는 산출하지 못합니다.4) 이런 육체적인 노력을 가지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일은 육체에 속하지 않았고 성령님께 속하였습니다.5) 사람이 자기 마음을 바꿀 수 없고 사람의 마음이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났을 때와 다시 태어나지 못하였을 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못한 사람도 그 속에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죄를 범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찌릅니다. 그리고 아주 큰 잘못을 했을 때에 후회합니다. 이것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양심은 있지만 새로운 마음은 없습니다.
새로운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깁니까? 사람의 마음속에 두 존재가 있는 것입니다. 예전의 마음과 새로운 마음이 있습니다. 이때 새로운 마음이 태어났다고 예전의 마음이 없어지냐? 그렇지 않습니다. 있습니다. 예전의 마음도 있고 새로운 마음도 있습니다. 두 마음이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이쪽이 이기고 어떨 때는 저쪽이 이깁니다. 옛 본성과 새 본성이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입니다.
금방 다시 태어난 자에게는 옛 본성이 강하기 때문에 질 때가 많지만, 다시 태어난 영(靈)이 성장함으로써 점차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으로 날마다 성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육체적인 본성을 죽이고 영(spirit)만을 키위야 합니다.6) 우리는 부모에게서 받고 태어난 옛 본성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에, 우리는 점차로 육체적인 본성을 이길 것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은 육체일 뿐입니다.7)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것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고 성령(the Spirit)에서 태어난 자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이히 여기지 말고, 다시 태어난 자라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요 3:7).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저절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발생(generation), 생명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오직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써만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8)
다시 태어났다는 첫째 증거들의 하나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새로운 출생이 경험되어 왔습니다. 새로운 생명은 영원한 것이며 다시 태어남을 통하여 주어졌습니다.9)
다시 태어남의 또 다른 증거는 회개입니다. 죄로 인하여 슬퍼함은 새로운 본성의 확실한 표징들의 하나입니다. 다시 태어난 크리스천은 전에 자신이 사랑했던 죄들을 미워합니다. 죄에 대한 그 사람의 혐오는 은혜에서 그 성장과 함께 더 커집니다. 그가 아주 성화되었을 때에, 죄는 너무 증오스러운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람이 천국에 가까워질수록 죄를 범한 사실이 부끄러워질 것입니다.10)
영적으로 어린아이일 때는 죄를 범해도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영적으로 자랄수록 죄를 미워하고 죄를 부끄러이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1) D. Martyn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정상윤 옮감 (서울: 도서출판 복 있는 사람, 2016), 35.
2) James Boice, 『요한복음 강해 Ⅰ』, 서문강 옮김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0), 319-321.
3) Boice, 『요한복음 강해 Ⅰ』, 322.
4) Boice, 『요한복음 강해 Ⅰ』, 323.
5)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50.
6) Boice, 『요한복음 강해 Ⅰ』, 326.
7) Andreas J.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BECNT 성경주석, 신지철·전광규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179.
8)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54-56.
9) C. H. Spurgeon, 『스펄전설교전집 요한복음Ⅰ』, 이광식 옮김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20), 171.
10) Spurgeon, 『스펄전설교전집 요한복음Ⅰ』,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