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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의인들아 하나님을 기뻐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피겠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명절, 우리나라에도 명절이 있잖습니까?
이스라엘 자손들도 명절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초막절(草幕節)이며 “풀 초(草)” 자와 “천막(天幕)”이라고 할 때의 “막 막(幕)” 자가 쓰입니다.
제 아내가 가끔 저에게 ‘우리 텐트 사서 텐트 치고 놀자’라고 말하는데 “텐트”가 영어고 한국어로는 “천막”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풀이나 나뭇가지로 만든 천막을 “초막”이라고 하며, 매년 7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기뻐하였습니다(레 23:40).
그의 마음이 기꺼이 하는 사람으로부터 헌물을 취할 것이니(출 25:2), 헌물은 그 마음이 시켜서 기꺼이 바치는 사람으로부터 취하는 것입니다. 헌물이나 헌금은 자발적으로 즐겨 바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받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헌물을 기꺼이 바치는 때 그것이 하나님의 헌물입니다.
교회 일이나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기꺼이 행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과 헌신은 이렇게 기꺼운 마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그 민족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기둥들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목상들을 태우고 그들의 신(god)들의 우상들을 베어내고 그들의 이름을 그 장소로부터 멸망시켜야만 하였습니다(신 12:3).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하나님 야훼께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신 12:4).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놓으실 특별한 곳을 선택하실 것인데(신 12:5), 그들은 그가 선택하실 그 장소에 찾아가고(seek) 거기 가야(go) 합니다.
그들은 거기 그들의 번제들과 희생 제물들과 십일조들과 손의 헌물과 서약과 자원 제물들과 가축의 처음 태어난 것들을 가져옵니다(신 12:6).
그들은 그들의 손의 보냄에 기뻐하여야(rejoice) 하였습니다(신 12:7). 그들과 레위 사람이 하나님 앞에 기뻐하여야 합니다(신 12:12). 그는 자기 손의 모든 보냄에 기뻐하여야 하였습니다(신 12:18).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칠칠절에 그 자녀와 함께 기뻐하였고(신 16:11), 그들은 또한 초막절에도 7일 동안을 기뻐하였습니다(신 16:14). 초막절에는 체류자와 고아와 과부와 다 함께 기뻐하였습니다(신 16:14).
이스라엘 사람은 초막절에 기뻐하는 때에 혼자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그와 자녀와 노비와 레위 사람과 손님과 고아와 과부가 기뻐하였습니다. 명절은 혼자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함께 기뻐하는 축제입니다.
특별히 명절이 되면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이 우리의 주위에 있습니다. 추수하여 저장할 것이 없으며 함께 기뻐할 가족이 없는 고아도 기뻐하며 남편이 없어 추수할 것이 없는 과부도 함께 기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초막절은 가족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를 돌아보는 날이 되어야만 합니다. 성경에 “기뻐하다”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우리는 기뻐하여야 합니다.
1. 하나님께 기꺼이 바쳤기 때문에 기뻐하여야만 합니다.
역대상 29장 9절에 “백성들이 기뻐하였는데 기꺼이 바쳤기 때문이고, 또한 다윗 왕도 큰 기쁨으로 기뻐한지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완벽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꺼이 바치는 때에 크게 기뻐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기꺼이 할 능력이 있어서 기뻐하였습니다(대상 29:14).
히즈키야와 모든 그 백성은 하나님께서 확립하신 것에 대해 기뻐하니, 이유는 갑자기 야훼의 집의 섬김이 확립된 까닭입니다(대하 29:35-36).
역대하 29장은 “히즈키야와 모든 그 백성이 기뻐하다”로 끝이 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집을 수리하는 일이 끝마쳐진 때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일에 열심 내고 기꺼운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바치는 때, 그것이 성공적으로 끝마쳐지는 때 누리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의 왕 히즈키야는 수송아지 일천과 양 칠천을 그 회중에 올렸으며 군주들(princes)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일만을 그 회중에 올렸습니다.
수송아지 천 마리와 양 칠천 마리를 돈으로 환산할 때 얼마나 될까요? 히즈키야 왕은 이렇게 수많은 돈을 들여서 하나님께 절기를 지켰습니다.
많은 사람이 추수감사절 헌금으로는 한 달 월급을 바친다고도 합니다. 꼭 이렇게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나, 그만큼 성의껏 감사하여야 합니다. 지난 1년 동안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추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험 들지 않고 기뻐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며 크게 기뻐하였습니다(대하 30:25).
2. 하나님께 피난하는 모든 사람은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5편 11~12절에 “당신께 피난하는 모든 자가 기뻐하게 만드시고 당신은 그들에 가리시고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이 기뻐 뛰놀리니. 이유는 야훼여 당신은 의로운 사람에게 복을 주실 것이고 방패처럼 호의로 당신이 그를 에워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안에 피난하는 사람마다 복됩니다(시 2:12). 하나님 안에 피난하는 모든 자는 영원히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시 5:11). 그러므로 기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 피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게 하여 주실 것을 기도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시인을 보호하여 주시는 때에 시인은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며 우리가 신뢰하고 피난하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며 몸을 위해서는 다른 대상에 피난할 수 있죠! 하지만 우리의 영혼의 문제에는 돈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찬송가 70장)
땅이 막 흔들리고 갈라지고 집이 무너지는 것을 “지진”이라고 합니다. 바다에서 물결이 일어나 막 몰려오는 것을 가리켜 “해일”이라고 합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해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하나님께 피난할 수 있습니다.
피난처가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는 그 피난처 안에 피난할 수 있으며, 그 안에 피난할 때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절대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안에 피난하는 모든 자가 기뻐하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 응답 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안에 기뻐 뛰놀 것인데(삼상 2:1), 한나가 하나님 앞에서 울면서 아들을 낳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녀가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후에는 기뻐하면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울면서 기도해야 하며, ‘우리 아들,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라고 울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 딸들,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라고 울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그 기도에 응답받을 때, 우리는 웃으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때,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울면서 기도하는 자는 뒤에 기뻐하면서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가족들을 두고 울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엄마, 아빠, 언니, 누나가 지옥에 갈지라도 괜찮습니까? 안 되잖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지옥 안 가고 천국 가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나중에 전할게요. 다음에 내가 예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나서 그때 예수님 전할게요’. 그것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이 평균 70년, 80년 사니까 우리 부모님도 70년 살겠지’. 그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지, 부모님 내년에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평균이 그런 것이지 오늘날도 40살도 죽고, 50살도 죽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뒤로 미루면 안 되고 지금 전해야 합니다.
‘우리 아들 다음에 기회 있을 때 교회에 데려올 것이야’라고 말하지만, 언제 데려와야 합니까? 지금 예수님을 전해 다음 주에 데려와야 합니다. 울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나중으로 미루면 어떻게 됩니까? 나중이 또 나중이 되고 말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왜 실패하는 줄 압니까?
‘오늘까지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할게요’라고 말하면 실패합니다. 내일 어떻습니까? ‘오늘까지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할게요’가 되고, 수요일에도 ‘오늘까지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할게요’라고 말합니다.
내일이 되면 내일이 또 오늘이 되고 평생 다이어트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부터”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때에도 나중에 전하겠다면 나중이 또 나중이 됩니다. ‘엄마 예수님 믿어야 해요. 아빠 예수님 믿어야 해요.’라고 해야 합니다. 한 달 뒤에는 예수님을 전할 기회가 없을 수 있으니 지금 전해야 합니다.
시편 14편 7절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지온으로부터 주어지기 원하니, 야훼께서 그의 백성의 사로잡힘을 복원하시는(restore) 때에, 야곱이 즐거워할 것이며 이스라엘이 기뻐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시편은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사람이 자기의 감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어떤 감정을 기록했냐면, 한자어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고 합니다. 기쁨과 노염과 슬픔과 즐거움을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시편은 사람의 기쁨(glad), 슬픔(sad), 분노(mad)의 감정을 표현하며, 예배 공동체의 기도와 찬송가입니다.1)
우리를 포로 상태로 사로잡아 두려고 하는 영적인 원수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가 태어날 때 노예 상태로, 포로 상태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생활한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 노예의 아들딸로 태어나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습니다. 그들은 파라오의 노예가 되어 도시 건축하는 일에 강제동원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자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하셨으므로 그들은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이 파라오로 대변되는 악마의 노예로 태어난 것입니다. 노예와 포로의 특징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악마가 사람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야 너 그것 해야지’라고 속삭일 때, 사람은 악마의 말을 듣고 노예로서 악마에게 복종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내 마음대로 하며 내 삶을 살고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악마가 시키는 대로 악마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나는 때부터 노예로, 악마의 포로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런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고 구원받아야 하는데,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건져내어 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노예와 포로로 태어나 자신이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합니까?
한국어로 “살려 주세요!” 그러잖아요. 영어로 “Help me” 그러잖아요. 중국어로는 “살려 주세요!”를 “쥬밍아!”라고 합니까?
구원해 달라고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치면 구원자가 구원해 줍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우리의 영혼의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암흑의 왕국에서 빛의 왕국으로, 하나님의 왕국으로, 천국으로 우리를 끌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사로잡힘”, “사로잡힘”을 “포로”라고 하는데, 나라들이 싸우다가 이긴 나라가 진 나라의 사람들을 사로잡아서 갑니다. 그렇게 사로잡혀서 끌려간 사람들을 “포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포로를 해방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 곧 “구원”이며, 구원받은 사람들은 백성은 기뻐하며 기뻐서 뛰놀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때에 우리가 기뻐할 수 있습니다. “회복”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원래 건강한 상태가 정상적 상태인데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이 회복된다는 것은 그가 다시 건강하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로로 끌려간 자가 다시 자기 고향 나라에 돌아오게 되는 것, 그것이 “회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때에 우리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사로잡힘의 상태에서부터 회복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원수들의 지배권에서부터 구원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의 원수들은 악마와 그 악마를 따르는 자들인 귀신들인데, 우리의 원수들은 끊임없이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 땅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원자 모세를 그 땅에 보내신 때 그를 통하여 파라오에게 말씀하셨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황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라’라고 하신 때에, 파라오가 자기에게 속하여 있는 그 노예들을 보내기를 싫어한 것입니다.
이처럼 악마가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을, 자기 왕국에 속한 사람들을, 죽으면 다 지옥으로 끌고 갈 사람 중 한 사람도 빼앗기기 싫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전함으로써 그들을 거기로부터 끌어내어야만 하는데 악마는 보내기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전하려 하면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하고, ‘왜 예수 믿으라고 하냐? 다시는 말하지 마. 말하면 너 얼굴 안 볼 거야’. 그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악마가 그 사람을 빼앗기기 싫어 그렇게 하는 것이며,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데, 우리의 힘으로만 전하면 불가능합니다. 우리보다 악마가 힘이 더 세기 때문에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성령님 저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주시고 저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악마의 권세를 물리쳐 주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전하여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악마보다 강하시잖습니까? 성령님께서 물리쳐 주시는 때, 성령님께서 죽은 영혼을 다시 태어나게 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엄마, 아빠, 아들, 누나, 언니에게 예수님을 어떻게 전하여야 합니까? ‘성령님, 그 마음을 바꾸어 주세요’라고 구하며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악마의 왕국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기쁨을 그 사람도 맛보고 우리도 맛보고 함께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1년 뒤에 엄마, 아빠에게 예수님을 전할게요’라고 하지 마시고 기회 있는 대로 빨리 예수님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를 옭아맨 결박을 푸시고 우리의 운명을 회복시켜 주소서! 하나님 우리를 묶고 있는 원수의 사슬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우리는 구원을 받고 구원의 기쁨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구원이 주어지는 때 하나님의 백성은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입니다.2)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될 때마다 하나님의 백성은 기뻐할 것입니다.3)
시편 16편 9~11절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기쁨’에 대한 것입니다.4)
시인의 마음은 하나님의 구원 안에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시 13:5). 사람이 하나님을 그의 맞은편에 계속 둘 때 뒤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므로 그의 마음이 기뻐할 것이며 그의 영광이 즐거워할 것입니다(시 16:8-9).
하나님께서는 멀리 하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내 앞에 계신 분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앞에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와 가까이 계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때에, 우리의 마음이 기뻐할 것입니다.
3. 의인들은 하나님을 기뻐하여야 합니다.
시편 32편 8~11절에 “내가 너의 갈 길에 가르치겠고 조언할 것이라. 너희는 이해하기에 없어지는 말과 같이 노새와 같이 되지 아니할 것이니 재갈과 굴레에 그것의 장식이 재갈을 물리기에 가까이 오지 아니하노라. 악인에게 아픔들이 많고 야훼 안에 신뢰하는 자를 자비가 에워싸겠노라. 너희 의인들아 야훼를 기뻐하고(glad) 즐거워하라, 너희는 기뻐서 외쳐라, 마음의 똑바른 모든 사람아.”라고 말하였습니다.
의로운 자들은 야훼 안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여야 하며, 마음의 똑바른 자들은 기뻐서 외쳐야 합니다(시 32:11).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는 선물을 알게 된 결정의 그 한순간만 아니라 우리가 변화된 피조물로 다시 시작하는 일상에서 기뻐하여야 합니다.5) 우리는 매일 새로운 창조물로서 하나님 앞에 기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기뻐하여야 합니다.6)
우리가 ‘그 은혜에 믿음을 통하여 구원함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잘나서 우리가 선행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돈 주고 도와주는 것, 그런 것으로 우리가 구원받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용서를 생각하고 기뻐하여야 합니다.
시인은 의로운 자들에게 용서받았으므로 “기뻐하라”라고 말합니다.7)
우리가 하나님의 법원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꽝 꽝 꽝 판결하시기를 ‘너는 죄가 없어 너는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야.’라고 판결을 내리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죗값이 다 치러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재명이 죄가 커도 법원에서 죄 없다 하면 감옥에 안 가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죄가 커도 법원에서 죄 없다 하면 지옥에 안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죗값을 치르셔서 우리가 용서받고 의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생각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믿음의 공동체에 “하나님을 기뻐하라”라고 명령합니다.
의로운 길을 걸어가는 의로운 자들은 하나님을 기뻐하여야 합니다.8)
시인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하나님을 “기뻐하라”라고 말합니다.9) 우리는 “기뻐하라”라는 권면대로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살아야만 합니다. 용서받은 의인들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야 합니다.
시편 58편 10절에 “의인은 기뻐할 것이니 그가 앙갚음을 바라봄이라, 그가 그의 발을 그 악인의 피 안에 씻을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시는 타락하여서 정의로 돌아갈 곳 없는 사람의 실상을 반영하는데 사회의 가장 작은 자들조차도 압제자들의 파멸과 죽음을 기대합니다.10) 압제하는 악인이 보복을 당하여 피를 흘리고 죽기를 바라는 소원입니다.
이것은 억압적이고 부당한 체제 속에 사는 자들의 부르짖음입니다.11)
의인은 악인의 철저한 멸망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12) 악인이 철저히 멸망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악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깃을 보며 의인들은 기뻐합니다.13)
우리는 의인의 기쁨을 저열한 사람 본성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인의 기쁨은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짐에 대한 기쁨과 만족입니다.14)
하나님께서 자신의 공의를 드러내시기 때문에, 의인은 기뻐합니다.15)
하나님께서 보복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때 의인은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보복하시는 때가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이 얼마나 악인입니까? 국민 몸에다가 독약을 주입하였습니다. 문재인이 백신 맞는 영상이 인터넷에 나오는데,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문재인에게 백신을 놓는 간호사가 백신을 뽑은 후 가림막 뒤로 갔는데 간호사가 뒤에서 다시 나오는데 주사기 뚜껑이 닫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사기 뚜껑을 다시 닫는 것은 접종 안내서(manual)에 위반됩니다.16) 문재인이 백신을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그 사실(fact)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재인이 온 국민의 백신 접종에 확실히 적극적이었던 것이며, 우리의 부모님과 이모들과 친척들이 독약을 맞은 사실이 슬픈 일입니다.
세상에서는 정의가 실행되지 않고 악한 자들이 잘 먹고 잘살아갑니다. 악한 자들이 오래 살고 편안히 죽는데, 하나님의 정의가 없는 것입니까?
마지막 심판 때 우리는 악인들이 보복당하는 모습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가 실행되는 것을 바라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 끝으로 부탁을 드리는데 앞으로는 절대 백신을 맞지 마십시오! 작년에도 말씀드렸는데 “아멘” 한 후에 주중에 3차 4차 맞으셨잖습니까?
나라에서는 또 겨울이 다가오니까 독감 백신 맞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백신 맞으면 mRNA 백신 5차 6차 맞는 것이 되니, 맞으면 안 됩니다.
코로나 사망자 99% 사망원인이 바이러스와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17) 언론은 사망자 숫자를 부풀리지만, 실제로는 1/100도 안 되는 것입니다. 독감 사망과 요양병원에 자연사로 죽은 사람도 그 수에 포함되었습니다.
그 당시 코로나가 마치 전능하신 하나님처럼 전능한 것처럼 여겨졌고, 스치기만 해도 코로나 환자로 바꾸는 능력을 갖춘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이런 전능자 코로나가 언제 힘이 없었냐면 식당에서 먹을 때였습니다. 식당에서 밥 먹은 후 계산할 때 마스크를 안 쓰면 코로나에 걸리게 되고, 밥을 먹고 있는 동안은 힘이 없어져 사람들에게 전파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지하철에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하여 전파되지 못하고, 교회에서는 힘이 강해져서 수많은 사람에게 전파되었습니다.
백신 안 맞으면 위험하다고 겁주는데 거기에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원래 악마의 무기는 거짓말이고 악마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백신을 맞으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에 걸려도 감기를 못 이깁니다. 원래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일주일이 안 되어 낫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감기에 걸리면 잘 안 낳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이번 감기가 매우 독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감기가 독해진 것이 아니라 자기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럽니다. 감기는 원래 감기인데 자기 면역력이 떨어져서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늙었어. 2년 전과 몸 상태가 달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백신을 맞아 면역력이 떨어지고 늙은 것으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단지 자기가 늙어서 몸이 약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독약은 한 번에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병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백신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원인을 늙은 것으로 돌립니다. 백신이 자신의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백신을 만든 악인들은 돈 벌고 잘 먹고 잘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니 우리는 의인의 길을 걸으며 살아갑시다!
1) 김정우, 『히브리 시학』 (서울: 기혼, 2013), 6.
2) Peter C. Craigie, 『시편 1-50』, WBC 성경주석 19, 손석태 역 (서울: 솔로몬, 2008), 197.
3) Nancy L. deClaissé-Walford, Rolf A. Jacobson and Beth LaNeel Tanner,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강대이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216.
4) 김정우, 『시편 주석 Ⅰ』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05), 402.
5) Tanner 외 2명, 『NICOT 시편』, 381.
6) Tanner 외 2명, 『NICOT 시편』, 381.
7)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시편Ⅰ』 (서울: Exposimentary, 2018), 466.
8) Craigie, 『시편 1-50』, WBC 성경주석, 361.
9) 김정우, 『시편 주석 Ⅰ』, 695.
10) Tanner 외 2명, 『NICOT 시편』, 600.
11) Tanner 외 2명, 『NICOT 시편』, 601.
12) 김정우, 『시편 주석 Ⅱ』, 255.
13) 김정우, 『시편 주석 Ⅱ』, 254.
14) 김정우, 『시편 주석 Ⅱ』, 254.
15) 김정우, 『시편 주석 Ⅱ』, 254.
16) https://m.mbn.co.kr/news/4459575
17) http://www.dailyinsight.co.kr/mobile/article.html?no=23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