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하게 함을 받아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 나병에 걸린 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마카복음 1장 41절에 “내가 원하노니 깨끗하게 함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병에 걸린 자가 그를 향하여 왔으며 무릎 꿇었고 그에게 말하였기를 “만일 당신이 원하시면 당신은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막 1:40).
“나병에 걸린”은 “레프로스”며, 영어에서도 “leprous”입니다. “문둥병”은 한자어로 “나병(癩病)”이며 나균(癩菌)에 의하여 감염됩니다. 눈썹이 빠지고 손발이나 얼굴의 형태가 변하며 시력이 나빠지게 됩니다. 나균을 발견한 한센(Hansen)의 이름에서 한센병이라고도 합니다.
40~45절은 예수께서 나병에 걸린 자를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나병”과 같은 병은 아니므로 잘못된 번역인 것입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은 더러우며 제사장은 더럽다고 말합니다(레 13:44). 나병에 걸린 사람의 의복들은 찢음을 받았으며 그의 머리가 풀어 놓이고 그가 콧수염에 감싸고서 ‘더럽다, 더럽다’라고 부를 것입니다(레 13:45).
나병에 걸린 자로 확인된 자는 누구나 불쌍한 존재로 전락했습니다.1) “나병에 걸린 자”는 육체적으로 괴로웠고 사회적으로도 외톨이였습니다.
나병에 걸린 자는 ‘어째서 나만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2) 나병 환자는 ‘어째서 나만 건강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째서 나만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절에 “나병에 걸린 자가 와서”라고 하였습니다.
나환자가 깨끗하게 된 것은 그가 예수님께 다가온 것으로 시작됩니다. 마태는 산상 설교를 기록한 후에 바로 이 이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예수님께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여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능력과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기꺼운 믿음으로 그의 능력의 말씀들을 받아야 합니다.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에 그의 말씀은 저 멀리까지 날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불쌍한 나환자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나환자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4) 그는 더러운 상태에서 깨끗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 온 것입니다.
나환자들은 자기와 같은 병에 걸린 환자들과 함께 있어야 하였습니다. 나환자들은 다른 나환자들과 함께 그 단체를 만들고 살아야 하였습니다. 그들이 그 단체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겠습니까!5) 이 나환자에게 더러운 상태에서 깨끗해지고 싶은 소원이 있은 것입니다.
영적인 나환자(癩患者)들과 있기를 좋아하는 영적인 나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러운 소설을 읽거나 더러운 영화를 보기를 좋아합니다!6)
불륜 소설 읽고 드라마도 불륜 드라마 보고 극장에 가서 영화 볼 때도 불륜, 결혼하지 않았는데 남의 아내랑 섹스하는 영화를 보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 영적인 나환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습니까? 이 나환자처럼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싶지 않아, 고침을 받고 싶어, 깨끗해지기를 원해’, 이러한 소원이 있어야만 하는데, 영적인 나환자들은 더러운 일에서 떠나기 싫고 오히려 즐기는 것입니다.
더러운 드라마 즐기고 더러운 영화 즐기고 더러운 소설 읽기를 즐기고 이런 자리에 머물고 떠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고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고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고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합니까? ‘이제 이런 일을 즐기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더러운 것이므로 내가 이 더러운 행위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내가 이것을 그만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 요청하여야 합니다.
많은 영적인 나환자는 예수님께 깨끗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러운 일을 계속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떠나기 싫은 것입니다. 그게 좋아서! 그것이 바로 영적인 나환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을 피합니다.7)
나는 더럽다 더럽다 하면서 더러운 사람들끼리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 건강한 모습에 깊은 감화를 받고서 ‘저도 영적으로 깨끗해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소원하며 기도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싫은 것입니다. ‘나 이것 좋아, 이것 즐겨’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고침을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환자는 그 더러운 상태에서 깨끗하게 고침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향하여 온 것입니다.
이 나환자는 예수님께서 깨끗하게 치료하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8) 그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향하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9) 이런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향하여 오는 자들은 깨끗하여질 것입니다.
그는 믿음을 가졌는데 예수님의 기적을 전하여 들었기 때문입니다.10)
그가 이 병이 있는 한 그는 더러운 상태로 남아있게 되는 것입니다.11) 그러나 그는 더러운 상태에서 깨끗하게 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는 분이신 것을 전하여 듣고 ‘예수님이 나의 나병도 능히 고칠 수 있겠다’라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그 믿음은 들음에서나(from hearing), 그 들음은 크리스트의 말씀(word)을 통하여서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크리스트의 말씀을 전도하여 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들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트의 말씀을 열심히 전도하여야 듣고 믿는 자들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듣지 못하여 믿을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크리스트의 말씀을 전도할 때에 사람들에게 믿음이 생기게 되고, 사람들이 들음으로써 생긴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향하여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불쌍히 여기시며 그에게 그 손을 내미셔서 만지셨습니다.
마카복음 1장 41절에 “내가 원하니 깨끗하게 함을 받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둥병은 더러운 병이며 전염병이므로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더러운 병을 말씀만으로도 고치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환자에게 동정심을 느끼셨습니다(feel compassion). 그의 손을 그에게 내미신 그가 만지시고 그를 치료하셨습니다(막 1:41).
예수님께서는 나환자의 간청을 되풀이하심으로써 치유하셨습니다.12)
예수님께서 원하시니, 하나님께서 나환자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신(神)적 수동태에서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십니다.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분노하셨을 것입니다.13) 그를 깨끗하게 하기 원하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나병이 그에서부터 가버렸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막 1:42).
그에게 엄격하게 경고하여 명령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나 떠나가며 너 자신을 그 제사장에게 보여주고 너의 깨끗이 함에 관하여서 모세가 명령한 바들을 그들에 증거로써 바쳐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으며 “모세가 명령한 바들을 증거로써 바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막 1:44).
그가 사회적으로 깨끗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제사장에게 보여주고 제사장이 깨끗하게 되었음을 증언한 후에 그가 깨끗한 것이 인정됩니다.
그러나 나간 그가 많은 것을 포고하고 그 일을 퍼뜨리기 시작하였기에 그가 도시로 들어갈 수 있지 아니하셨으나 밖에 황량한 장소들에 계셨고 그들이 그를 향하여서 사방(everywhere)에서 오고 있었습니다(막 1:45).
나병에서부터 고침을 받은 사람의 행동은 불복종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의 치유가 숨겨진 채로 있을 수 없었음을 의미합니다.14)
1) William L. Lane, 『NICNT 마가복음』, NICNT 성경주석, 신윤수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3), 101.
2) C. H.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4』, 서문강 옮김 (서울: 도서출판 로고스, 1999), 343.
3)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4』, 344.
4)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4』, 345.
5)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4』, 381.
6)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4』, 381.
7)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4』, 382.
8)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4』, 385.
9)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4』, 388.
10)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4』, 391.
11) Joel Marcus, 『앵커바이블 마가복음 Ⅰ』, Anchor Bible 성경주석, 류호영·장성민 옮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6), 332.
12) Robert Guelich, 『마가복음 1-8:26』, WBC 성경주석, 김철 옮김 (서울: 솔로몬, 2001), 163.
13) R. T. France, 『NIGTC 마가복음』, 이종만·임요한·정모세 역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208.
14) Guelich, 『마가복음 1-8:26』, WBC 성경주석, 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