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忠言한다.
명리학이란 자연의 이치를 궁구(窮究)하여 삶의 이치를 일깨우고자 하는 학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람들은 우주 생성변화의 원리와 인간 세속의 욕망 변화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는 점이 많은 것 같아 이를 嚴斷한다.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우주 생성변화와 세속의 욕망변화와는 어떠한 경우를 두고라도 아무런 연관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앞서 말해둔다.
자연의 순리는 人心이 결부되어 왜곡되어 질 수 없는 天理라는 것을 명심하라.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주학은 자연의 운동성과 기운의 변화를 의인화하여 인생의 한 구간을 글자로 표현해
내는 운명 예측의 학문일 뿐이다.
학문이라는 점에서 생겨날 수 있는 견해 차이와 오류 또한 예외 할 수도 없다.
사주의 상담자는 피상담자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가야 하며
지금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정확히 알려 줘야 할 의무가 있다.
이학문의 본질은 자연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자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포괄적인 면에서 命의 특징과 運의 행로를 파악하여 앞날을 유추하는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의 내방자는 명리 학문과는 그다지 근거할 수 없는 래정법, 신통술, 점술, 비법이다. 하여
마치 족집게 도사가 있는 듯이 이들을 만나기를 원한다.
참으로 허구가 아닐 수 없다.
신점이니 비방술이니 하여 방문한 연유를 끄집어내는 도사라 한들, 아마도 명리학의
정통성을 잘못 알고 있거나 얄팍한 상술에 허욕을 부린다고밖에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온 것을 알아 마쳤다고 한들 과연 본인이 바라는바, 무엇을 얻겠단 말인가.
어떠한 학문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인들 道를 이루어 완전한 깨달음과 신통을 얻은 사람을 보았던가.
이 모두가 인간의 욕구에서 오는 망념과 갈망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노력하면 신통하여 세상만사를 꿰뚫어 볼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도, 착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똑같은 사주를 타고난 사람이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가
매우 중요할 뿐이다.
그것을 前生의 業에 의한 숙명적인 인연이라 보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대답이라 봐 진다.
같은 사주라고 하더라도 출발점이 다른 관계로 살아가는 과정이나 인생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는 곧, 태어난 환경(배경), 팔자, 의지력에 따라서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고 본다.
무조건 사주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모든 것을 사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곧 세속의 욕망 변화에 치우친 사람들의 허구에서 나오는 증거가 아닐까 나름
생각을 더 해 본다.
예로 옷을 사려 백화점에 간다면 먼저 계절과 유행과 내 몸에 알맞은 사이즈와 디자인을 택할 것이고
그다음은 기호에 따라 색상, 가격 등을 대비하여 내 스타일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구매에 앞서서 던지는 점원들의 현란한 상술법에 현혹되는 것이나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내게 맞지도 않는 옷을 사 왔다면 과연 얼마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두고두고 오랜 기간을 얼마나 행복한 마음으로 실속있게 즐겨 입을 수 있겠는가.
완벽주의나 정해진 운명론에 빠지지 말고 유연한 자세와 생각으로 사주학의 원리를
폭넓게 파악해 주기 바란다.
운명이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바꾸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사주학 측면에서는 運命을 運과 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타고난 사주인 命은 바꿀 수 없다지만, 運은 대운이나 세운으로 보아서 많은 변수가
있기에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다.
運이란 시간의 흐름이기 때문에 이로 하여금 길흉화복이 발생 되는 것이기도 하다.
命으로는 그 사람의 적성이나 진로를 알 수가 있고
運으로는 그 사람의 처한 상황을 살필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다면 사주를 공부할 이유가 없지 않나.
운명을 미리 알아도 바꿀 수 없고 결정지어져 있다면 미래의 일들을 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다.
運이란 태양, 달, 지구, 별들이 돌고 있는 한, 땅덩어리 속의 한 점 티끌 같은 인간도
이 우주 변화(시간과 공간)의 열차를 타고 가지 않을 수는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삶 속에서 불특정 다수의 상담자들에게 첨언한다.
運의 흐름에 따라 運을 보고 運을 선택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사주를 공부하는 가장 큰 의미라 생각하라.
요즘 세상이 아무리 자기 유형대로 살고, 속이고 속는 세상이라지만 어차피 남 속에서
남과 같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임을 인식하고, 이 명리학문의 분별만은 정통성을
비켜 남용하지 말아야 함을 스스로 自覺하여 주기 바란다. --운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