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쓴 산문
내 마음의 하모니카
[ 글 · 사진 배홍배 ]
시인 배홍배는 2003년 “열린시학”에 산문 “소래 폐역”을 싣고 문학계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그 당시 서울대학교의 오세영 교수에게 축하와 격려의 전화를 받으면서 “누군가는 혹평을 하게 될지라도 위축되지 말라”는 걱정스런 마음과 당부의 말씀을 들었고, 또 중앙대학교의 이승하 교수에게서는 친필로 쓴 축하와 격려의 편지를 받기도, 그리고 경희대의 문효치 교수에게서도 호평의 전화를 받을 정도로, 그리고 한양대학교의 이승훈 교수는 이 글을 시로 보아야 하는지 산문으로 보아야 하는지 호기심 같은 새로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는 후문을 듣기도, 여하튼 전반적으로 호평을 정도로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전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혹평도 만만치 않았는데 저명한 이모 시인은 어떻게 이런 쓰레기 같은 글을 썼냐고 악평을 쏟아냈고, 부천 문단에서도 무슨 글을 이렇게 어렵게 썼냐고 악평을 했다. 그동안 대인기피증은 아니지만 사람들과 폭넓은 교류와 활동을 하지 않는 워낙 조용한 성격 탓에 알려지지 않은 이 일화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익숙한 기존의 관습과 형식에서 벗어나는 새로움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으로 인정하지 않아 인정받지 못하거나 누군가는 시기와 질투심으로 왜곡되거나 시끄럽다. 여하튼 진통이나 상처가 수반되는 변화나 발전은 퇴보하지 않는 확장되는 일이기에 얼마나 다행일까 싶다. 역사와 문화와 예술과 음악 또한 이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시인 배홍배는 원래 심상으로 등단을 했지만, 취소 후 다시 “월간 현대시”에 “달과 매화”, “미나리”로 등단했다. 젊지 않은 그의 나이 49세였다. 그는 원래 영어 교사로 재직하면서 클래식과 오디오에 심취해 있었고 수입의 많은 부분을 그 부분에 쏟아 넣는 이유로 늘 녹록치 않은 경제적인 형편상 번역 일과 사진작가로도 활동하다가 프랑스 문학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동안 국내의 문학에서는 프랑스 문학에서만 볼 수 있는 문체가 없었기에 그 문학의 향기에 매료되어 거의 십 년 동안을 프랑스 문학을 탐미하면서 뒤늦게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는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고 등단 후의 반응이 위에 언급한 것처럼 많이 시끄러웠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 그리고 그의 작품을 보다 쉽게 접근 또는 이해하기 위해 부득이하게도 서론이 길어지게 되었다.
그동안의 시인 중 다재다능한 사람도 없지 않았겠지만, 특히 그는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리고 그 재능들을 모두 인정받는 매우 특별함이 있다. 현재 72세의 나이까지 시인으로, 번역가로, 사진작가로, 오디오 평론가로 활동해 왔지만,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세 살 때 삼촌에게 한글을 배워서 군에 계신 아버지께 편지를 보낸 일에서부터, 어린 시절 동네에서는 “제 2의 남인수”라는 호칭을 들으며 가수를 꿈꾸었고 한편으로는 만화가를 꿈꾸기도 했다고 한다. 절대음감의 소유자로 그 시절부터 시작된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 그리고 판소리의 실력까지도 갖춘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밝힌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무리한 판소리 연습으로 인해 성대결절이 되었고 이로 인해 가수의 길을 먼저 포기하게 되었고 기나긴 삶의 시간을 채우고서야 그의 존재감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시인이 쓴 산문 “내 마음의 하모니카“ 이 책의 소개에 앞서 이미 서두가 길어졌지만, 한 작가의 성장배경과 환경의 이해는 매우 중요하기에 좀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는 흔치 않은 오디오 평론가로 당연히 클래식 매니아가 그 출발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당연히 클래식에 대한 조예가 매우 깊은 것은 물론, 클래식 전문가로 봐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국내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일 수도 있겠다 싶다. 클래식에 대한 무한 사랑으로 현재 보유하고 있는 LP판만 해도 5천 장 정도이고 집 안의 거실과 그만의 방에는 그가 직접 조립한 오디오가 있다. 기계에도 밝은 탓에 새로운 소리를 느끼고 창조하는 마음으로 재조립된 오디오는 그 가치가 억대에 달한다. 어쩌면 LP 카페와 다름없다. 아니 그 이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클래식이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아름다운 공간인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출간한 9권의 책 중 ”Classic 명곡 205“를 봐도 그렇다. 현재 진행 중인 열 번째이면서 마지막이 될 책은 알려지지 않은 클래식 위주로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클래식 매니아들에게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책, 시인이 쓴 산문 “내 마음의 하모니카”는 크게 사랑, 추억, 문학, 음악, 일상의 5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소재가 다양한 만큼 기쁨과 슬픔, 고향에 대한 향수, 그리움, 사랑, 웃음, 이별 등 다양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때론 달콤하게 때론 쓴 맛으로 스며드는 그리운 맛으로, 때론 눈물 같은 짭짤함으로 젖어 드는 이별의 맛으로, 때론 잊혀져 가는 허무의 아련한 맹탕 맛으로 그만의 세계가 다양한 맛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음악이 청각적 황홀함이라면, 미술은 시각적 황홀함이고, 문학은 상상력의 황홀함일 것이다. 그러나 배홍배 시인의 언어에서는 시각적 짜릿함과 황홀함이 동시에 느껴지고 있다. 그의 언어는 유유히 흐르는 물이 어느 순간 깊은 노을빛이거나 쪽빛이 되거나 순간적으로 꽃을 피워내는 따뜻한 바람이 되기도 한다. 하얀 눈송이로 날리다가도 이내 녹아떨어지는 눈물 같기도 하다. 찬란한 봄빛이었다가 한 계절을 건너뛴 쓸쓸한 가을바람과 낙엽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연약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닌 강함과 단단함이 유연하게 공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이 책은 글과 사진의 이중주로 시인이면서 사진작가로의 배홍배의 또 다른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는데,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삽화 기능을 초월하여 그 자체로 회화적인 작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글과 함께 조화로운 시각적 아름다움이 언어의 기능을 한층 더 풍성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글의 힘에 못지않은 사진의 기능은 그 자체로도 또 다른 시가 되고 산문이 되고 있음이다. 심도가 깊고 예사롭지 않은 피사체의 순간적인 포착 및 절묘한 구도, 그리고 짙은 파스텔톤이 때론 몽환적으로 때론 강렬한 명도대비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더 처절하고 아름답다. 그의 고단한 노력이 있음이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깊은 울림과 여운이 있다.
시인이 쓴 산문 “내 마음의 하모니카”는 여전히 시인이 쓴 아름다운 시 자체이다.
몸살감기를 앓고 난 뒤의 미열처럼 뜨겁던 지난 여름의 열기가 여전히 미열로 남아 꿈틀거리지만, 그러나 들숨과 날숨이 선선해진 바람으로 인해 한결 가볍고 자유로워진 정말 살만한 계절이다. 책 한 권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선선한 바람을 타고 오는 계절의 창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놓치지 않는 지혜로운 우리이길 나는 소망한다.
#이책안에내가 있다. 부끄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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