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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말씀을 간략하게 다시 한 번 더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에 신년 첫 주간을 맞이해서 믿음의 구성 요소에 대해서 전했는데 그건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말씀을 사람들이 한 번 듣고 이해할까요?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어려운 얘기가 아닌데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진짜 어렵습니다. 쉽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행할 수 있는 것이고, 어렵다고 하는 것은 쉽게 행할 수 없고 어렵게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우리가 어렵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쉬운 것은 자연스럽게 내가 힘쓰지 않아도 내 몸에 배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 그걸 쉽다고 표현할 수 있고,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몸에, 우리의 생각에, 또 우리의 가치관에, 우리의 판단에 부합하지 않으니까 그대로 따르려고 하면 많은 힘과 에너지와 노력이 들어가야만 하는 그런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믿음의 구성 요소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가 내가 믿고자 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죠.
나는 믿겠단 말이에요. 나는 믿습니다. 근데 그 믿음이 어떤 사람들은 좀 정상적인 사람들이 볼 때, “그래 그렇게 할 수도 있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믿음을 보면 “이거는 뭐 그게 될까?” 뭐 이럴 정도로 떡 벌어지는 그런 믿음을 그들은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믿음이 이루어질까? 우리가 볼 때 상식적인 믿음이 이루어질까? 아니면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이루어질까? 어떤 믿음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생각 속에서는 아마 상식적인 믿음의 테두리 안에서 있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고, 상식을 벗어난 그런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기적이라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표적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왜 기적이 됩니까? 상식의 밖을 벗어난 것이니까 기적인 것입니다. 상식을 벗어난 것이 표적인 것입니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좀 전에는 상식적인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기 쉬웠는데 듣고 보니까 상식 밖의 일들도 내가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거구나 이런 얘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라는 그 말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이라고 하는 그 말을 우리로서는 능히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 그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사람들은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고 나아갑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모이는 인원이 만명을 초과함에 따라 서대문에서는 더 이상 성도들을 수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때 대안으로 떠 오른 곳이 여의도였습니다.
근데 조용기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기도하면 그렇게 비전을 보여주시고 해서 여의도로 옮기기로 결정을 하시고 일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합니다. 하지만 어려움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주신 믿음을 그 믿음을 받지 않은 다른 사람이 보면서 그것을 용납하기가 어려운 면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일단 이 믿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뭐라고 험담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말씀을 가르치다 보면 제가 춘천에서 목회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 당시 김정애 집사라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화장품 가게를 하시던 분이었는데 내가 어느 날 심방을 갔는데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목사님 나는 믿음을 갖고 버티고 있는데 왜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얘기가 한 게 자꾸 내 귓전에 남습니다. 그때 내가 그분들한테 빌려줬던 책들 중에 하나가 요즘 내가 다시 읽고 있는 살아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하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그때도 그걸 읽긴 읽었는데 지금처럼 저 책이 “이렇게 중요한 책이구나!”라고 하는 것을 나는 몰랐습니다.
그냥 읽는 데 바빴으니까, 또 많은 걸 읽어야 설교거리가 더 많아지고 하니까 그냥 대충 훑으면서 이렇게 해서 한 권 읽고 대충 정리하고 그 다음에 또 넘어가고 이렇게 하는 때였는데 그 김정애 집사님이라고 하는 분은 그 책을 읽으면서 그 믿음의 깊이를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보고 그러는 거예요. “목사님 나는 믿음으로 지금 살려고 하는데 왜 자꾸 믿음 없는 말을 하십니까?”
저는 그 당시 이 집사님이 가지고 있던 믿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된다는 말을 우리가 들으면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받은 비전이 있다고 한다면 남들의 시야를, 남들의 견해, 남들의 판단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변인으로서 우리가 다른 사람이 그런 믿음을 가지고 간다고 할 때 내가 용납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믿음을 반대해서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을 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서 모세가 출애굽을 시켰어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켰는데 그리고서 해필 간 곳이 바로 비하히롯에서 장막을 치게 하였습니다. 거기는 막 다른 곳, 바다 앞으로 백성들을 이끌었습니다.
그 길은 누가 이끌었을까요? 모세가 가는 그 길은 하나님이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죠?
근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모세가 가긴 갔는데 거기가 바로 막다른 곳 바닷가였단 말입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들이 막 쫓아오는데 “백성들은 우리를 죽일 곳이 없어서 이런 곳으로 인도했냐?”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을 하였습니다(출 14:11).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 어떻게 하였습니까?
(출 14:21, 개정)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지팡이를 내밀고 바다 가운데로 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바다가 갈라지기까지 그곳으로 이끌은 이유를 이해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께 인도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에 그 길로 가야만 한다는 거를 알고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자기도 이해가 안 되는 길이지만 갔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제 모세의 뒤를 이어서 지도자가 되어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러 들어갑니다.
어느 정도 점령하고 들어가려고 하다 보니까 요단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는 그 때는 항상 물이 언덕에까지 넘치는 시기였다고 합니다(수 3:15). 정상적으로는 건널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법궤를 맨 제사장들로 하여금 먼저 요단강으로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행하는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내적인 확신이 있었습니다.
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요단강을 통해서 가게 했을까요?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수 3:13).
우리가 첫 번째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의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받은 비전이 있다고 한다면 절대 그것을 굽히지 말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어떤 믿음의 행보를 가고 있다면, 그 사람의 믿음을 내가 판단할 수 없다 할지라도, 내가 그의 믿음을 용납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를 비판하지 말아라 그리고 그를 정죄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주제를 다루면서 보충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두 번째로 믿음은 믿음이 있으면 뭘 한다고 그랬죠? 말을 한다고 그랬습니다(고후 4:13).
믿음이 있으면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가 믿는 바를 말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이게 지난주 아니 우리는 계속 그 전 주 그 이전부터 계속 설교를 들어왔는데 지난 한 주간 동안 살면서 여러분이 진정 원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고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을 믿음으로 말한 것이 몇 번이나 됩니까? 몇 번이나 여러분이 믿음으로 원하는 것을 말을 해 보셨습니까?
저도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하는 저를 위해서 “2026년 나의 기도 제목”을 써가지고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 기도제목에는 “나의 영성과 사역을 위하여, 나의 건강을 위하여, 재정의 회복을 위하여, 사업의 성장을 위하여, 교회 사역을 위하여, 가족의 영혼과 건강을 위하여” 믿음으로 내가 다 적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적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에 몇 번씩 읽으려고 했는데 하루 한 번 읽기가 쉽지가 않더라고요.
무조건 눈 뜨면 한 번 읽고 자기 전에 한 번 읽고 점심 때 한 번 읽고 최소 세 번 이상은 읽어야지 그랬는데 이게 잘 안 돼요. 그런데 만약 이런 걸 안 적었다 안 적었으면 더 어렵겠죠?
그래서 여러분이 제가 만든 양식을 복사해서 드릴 테니까 여러분이 믿음의 소원을, 이루고 싶은 그런 믿음의 내용을 여러분이 스스로 기록해 두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여러분이 되고 싶은 여러분이 이루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적고 날마다 그와 같이 그것을 바라보고 그 다음에 믿음으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을 할 때 주의하는 것은 꼭 명심해야 될 것은 “하나님 이렇게 해주세요. 하나님 이렇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는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소원을 가지고 소원을 기도로 삼아서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는 소원이 아닌 이미 이룬 것으로 보고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기도의 종류를 쭉 나눠놓고 하는 말씀이 우리가 스포츠에도 보면 스포츠 종류마다 경기의 룰이 다른 것처럼 기도의 종류에 따라서 기도의 룰도 다르다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기도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얻고 싶은 것을 구할 때 드리는 게 믿음의 기도인데 그 믿음의 기도는 믿음을 가지고 드려야 된다.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해야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막 11:24).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너희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하면 그대로 되어질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기도를 할 때는 되어질 것으로 먼저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소원하는 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되어질 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예요? 이미 이루었다라고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게 참 말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이다.”
한번 따라 해볼까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
케네스 해긴 목사님도 부흥회를 많이 다니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 중에,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칠 때가 성도들이 제일 힘들어하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일상적으로 살아오던 그런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에 참 힘들어 하더라.” 그렇게 글을 남길 정도로 이게 참 어려운 진리입니다.
듣는 것은 쉬운데 그것을 실천해내기는 그만큼 어려운 얘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그러므로 쉬운 말씀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해긴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여러 여러분만 어려운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면서 얻어내기는 그게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잘 안 된다고 결코 절망하지 말고 여러분이 용기를 내어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그 하나님을 여러분이 믿고 그대로 따르시기 바랍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셨다”는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보면 아브라함은 늦은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으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벌써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게 지나간 역사가 된 거예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사지만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이미 현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미 그 이야기는 과거사라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기 위해서 우리들이 원하는 바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져야 되는 믿음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제 우리 교회 들어올 때마다 하나님 우리 교회 30명 출석을 이루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없는 자리를 이렇게 바라보면서 말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 교회 없는 30명 출석 교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꿈이 뭔지 알아요 교회가 더 잘되고 성장하여서 천 명이 출석하는 교회를 제 살아 있는 동안에 만들고 제가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하나님 30명 출석에 부응하여 30명 출석을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장차 천 명의 출석 교인을 이루는 그런 능력 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쯤 되면 저의 이름이 조금 알려져서 조금 알려져서 하나님 능력으로 사역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원하는 교회마다 달려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제가 이룰 수가 있게 될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이게 뭐예요? 아직 제가 출석 교인 몇 명도 없는데 제가 몇 명이라고 그랬어요.
지금 하나님 천 명의 출석 교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믿어질까요? 안 믿어질까요? 잘 안 믿어지죠. 근데 왜 그럴까요?
내가 원하는 거니까 내가 원하는 거를 지금 말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 천 명의 출석 교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내가 천 명 출석 교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을 할까요?
내가 원하니까 그렇게 말을 해야 그게 믿음이 되는 거고, 그 믿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을 따라 믿음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예를 들면 하나님 나에게 재정의 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통장에 1억의 순 이익이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이너스 통장 다 갚고 그냥 1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1억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자꾸 표현할까요?
없으니까 그게 없으니까 1억을 갖고 싶어서 1억이 되기 위해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그런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좀 힘이 들 시기였고 자주 나라에서 대출받고 있는 시절이었는데, “하나님! 마이너스 통장이 변하여 흑자 통장이 되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이너스 통장이 변하여 흑자 통장이 되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이런 고백을 제가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이루어지려면 언제나 될까 그러고 있었는데 작년에 제가 사업을 하면서 그거를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그래서 그걸 돌파했습니다.
제 통장이 마이너스 통장인데 그때 한 2천인가 3천인가 그냥 막 꽂혔습니다.
그냥 내가 전에는 입버릇처럼 말만 했던 건데 내가 되고 싶은 것이라고 말만 했던 것인데 갑자기 사업이 잘 되면서 통장이 그렇게 변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을 했더니, 그 원하는 걸 말을 했더니 이루어지는 날이 오더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여진다 할지라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한번 따라 하십시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자.”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꼭 부탁하고 싶어요.
우리 사모님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모님이 저를 바라보면서 “우리 최 목사님 참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고 능력으로 충만하고 참으로 하나님 닮은 귀한 믿음의 사도 같은 그런 종이 되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그렇게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아직 그렇지 않잖아요.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잘 안 보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자꾸 그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 꿈에는 최 목사가 사도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하고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고 참으로 하나님만 사랑하는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어질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그 말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모님의 믿음을 따라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변화될까요? 사람이 잔소리만 들으면 변화될까요? 안 좋은 얘기만 들으면 변화가 될까요? 안 그래요? 질책한다고 사람이 변화됩니까? 아니라니까 누가 누가 그 사람을 바로잡습니까?
칭찬하는 사람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람이 변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북풍(바람)과 해(햇빛)가 누가 더 힘이 센지 내기를 합니다.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먼저 벗기는 쪽이 이기기로 정합니다.
먼저 바람이 강한 기세로 입김을 불어 나그네의 옷을 날려버리려 합니다. 하지만 바람이 세게 불수록 나그네는 옷이 날아가지 않게 더 꽉 껴입습니다. 결국 바람은 실패합니다.
이번에는 해가 구름 사이로 나와 따뜻한 햇볕을 내리쬐기 시작합니다. 나그네는 점점 더워지자 스스로 단추를 풀더니, 결국 근처 시냇가에 이르러 외투를 벗어 던집니다. 결국 햇빛의 승리로 끝이 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 사람이 변화될 것을 자꾸 믿음으로 그게 안 보여도 그 끝이 안 보여도 어디까지 떨어질지 나락이 안 보여도 끝이 안 보여도 믿음을 가지고 말을 하고 믿음을 심으면 그 믿음 따라 내가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변화시킬 거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대로 될 것을 믿고 우리는 자꾸 믿음으로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을 해서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을 바꾸고, 여러분의 환경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서 일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자꾸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원수 마귀는 믿음의 말을 못하게 해요.
근심되게 하고 두렵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나의 무가치함을 자꾸 생각나게 해서, “니가 뭐 그렇게 하느냐, 네가 그 자질이 되냐?”하는 생각을 집어넣어서 우리로 하여금 포기하여 말을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믿음으로 자꾸 말을 하면 말대로 된다고 야고보서에서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약 3:3-4)
주의 사도 야고보가 “사람의 그 혀는 능력이 있어서 온몸을 어거한다, 제어한다”고 말했습니다.
배에는 방향타가 있어요.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그 방향타를 가지고 그 큰 배를 조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혀가 우리의 살아가는 온 몸을 제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죠? 이처럼 우리의 말에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난 그렇게 되고 말 거야. 그런 포부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믿음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자주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잘 되는 사람이다. 나는 세상 사람이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나는 존귀한 사람이다. 나는 모든 것을 능력으로 이루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잘 되는 사람이다. 뭐 이렇게 자주 말을 하면 그 믿음의 말이 결국엔 누구를 변화시킬까요?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또 그 믿음의 말을 듣는 누구를 변화시킬까요?
그 환경을 변화시키고, 믿음의 말을 듣는 원수 마귀를 무력화시키고, 믿음의 말을 듣는 천사들을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셔서 그 일들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원리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이렇게 믿음으로 말을 할 때 꼭 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따라 합시다.
“영상화” 영상 영상화란 어떤 것일까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미 이루어진 것 즉 실상이 믿음인 것입니다. 실상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이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조건 중의 하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어야만 합니다.
또한 그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이 이루어지는 그 일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마음에서 이미 그 일들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일들이 있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것이 이루어진 줄로 믿어야 됩니다.
그렇죠? 이루어진 줄로 믿을 때 그 믿음이 그 믿음이 동기가 되고, 그 믿음이 하나의 자원이 되어져서,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하여 병을 고치고, 축복을 하고,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베푸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다는 말은 우리가 얻고 싶은 그 일들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꿈꾸고, 소망하고,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것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셨어요? 내가 만약 꿈꾸고 소망하고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것으로 믿는 믿음이 아니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내가 기도하는 제목, 내가 꿈꾸고 소망하고 이루고자 원하는 그 내용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는 것이 바로 바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까요?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봐야만 합니다.
따라하겠습니다.
믿음이 믿음 되기 위해서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봐야 된다.
그래서 내가 얻고자 원하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근데 그냥 간략하게 여기에 대한 추가 설명은 안 하고 하나의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읽고 있는 프레드릭 프라이스 목사님의 간증인데 이분이 교회를 건축할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교회를 건축하는 데는 재정적으로도 엄청 부족했고 땅만 사놓고 건물이 올라가지도 않은 그때였어요.
그때 이분은 그 책에서 그 과거를 회상하며 자기가 했던 일들을 기록을 해놨습니다.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동안, 사람들이 싸움에 지쳐 있는 동안, 사람들이 포기하는 동안, 나는 3년 동안 계속 그것을 말했습니다. 매일 말했습니다. 나는 한 번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눈이 떠지자마자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는 믿음의 집 예배당이 지어진 줄로 믿습니다. 나는 모든 건축비가 우리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나는 건축이 이루어진 줄 이루어진 줄로 믿습니다. 나는 예배당을 얻은 줄로 믿습니다. 그런 다음 그런 다음 매번 나는 크랜쇼 크리스천 센터 부지로 걸어가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현장을 내려다보면서 예배당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믿음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영 안에서 본 것입니다. 마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축이 되어지지 못할 것이다.
주변의 목사님들은 마땅히 나를 격려해 주셔야 할 때에 마땅히 내 뒤에서 프레드 목사 힘내게 프레드 목사 계속 밀고 나가게 하고 밀어주셔야 할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건축을 해내지 못할 거야. 저 믿음의 집 예배당을 짓지 못할 거라고.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전해줄 요소가 있습니다. 예배당은 건축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입당했습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우리가 이 땅을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건축비도 완전히 청산되었습니다.
헌당했습니다. 나는 끝까지 지속했고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짓기 위해서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도 프레드릭 프라이스 목사님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크랜쇼 크리스천 센터 이것이 믿음의 집 교회의 이름인데 크렌쇼 크리스천 센터 부지로 걸어가서 그 텅 빈 현장을 내려다보면서 예배당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믿음으로 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배당이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뼈대도 올라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그럼 없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요?
믿음으로 봤다는 것입니다. 영안으로 봤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는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믿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마음의 눈으로, 생각으로, 영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이것에 대해서 내가 참 많이 할 말이 많은데 요즘 양자 물리학이라든지 성공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라든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느냐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핵심적으로 가르치는 말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내가 꿈꾸고 이루고 싶고, 되고 싶은 그것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상상으로 그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당신이 변화될 것을 바라봐라. 당신이 어떤 꿈을 이룰 것을 바라보라.” 그것을 바라보면 양자 물리학적으로 생각은 힘이 있다. 파동이 생기고 그것이 힘을 이루어 결국은 내가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결국에는 가르치는 핵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오래전부터 이 믿음의 진리를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이 원하는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크렌쇼 크리스쳔 센터를 지으신 프레드릭 프라이스 목사님은 그 믿음의 눈으로 바라봤다고 했는데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영으로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들이 믿고자 원하는 그 어떤 일들이 이루어진 것을 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영으로 하나님께서 일들을 이루실 것을 바라봐야 됩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건강하고 여러분이 몸이 건강하고 육체가 치유받고, 교회가 부흥하고 재정적으로 또 안정되어지고 축복받는 모습, 여러분이 꿈꾸고 소망하는 일들이 이루어진 그 모습을 여러분들이 마음의 눈으로 영의 눈으로 바라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되어진 것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밤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창 15:5, 개정)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리켜 저 밤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라.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아직 아직 자기한테 자식 하나 없을 때였습니다.
그 15장이 어떤 내용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 근심하면서 걱정하고 있었고, 걱정에서 더 지나서 되어질 일들을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창 15:2, 개정)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내게 자식을 주지 아니하시니 나의 후사는 이 이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절망하고 있을 때, 그때 두려워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고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라고 위로하시면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불러내어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늘의 별이 이렇게 많은 것처럼 네 후손이 이와 같이 많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에게는 그의 직계 후손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었다 그랬습니다. 이 말은 뭐예요?
자기 후손이 저 밤 하늘의 별들처럼 많은 것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마음의 눈으로 저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저 별은 내 후손, 이별도 내 후손, 저기 있는 저 별도 내 후손, 이렇게 자기 후손으로 그가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창 15:6, 개정)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되어질 것을 믿고 그대로 되어진 것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믿고자 하는 원하는 그 믿음, 여러분의 영으로 바라보는, 여러분의 믿음으로 바라보는 그 믿음을 여러분의 의로 여기시고, 그 믿음을 따라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따라 역사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믿음을 따라 여러분이 바라보고 꿈꾸고 생각하는 그 소원하는 그 믿음을 따라 여러분의 마음의 생각으로 끊임없이 바라보는 그 생각을 따라 그 믿음을 따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좋은 것으로 안겨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게 바로 믿음의 원리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잊지 마십시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제가 처음 시작할 때 무슨 말씀을 드렸죠? 믿음대로 사는 게 쉽지 않다. 아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행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듣는 것은 쉽습니다. 뭐 믿음의 세 가지 요소 하나, 둘, 셋, 그렇구나 하고 아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행동에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여러분 이번 주부터 “내가 행동에 옮기리라. 내가 매일 믿음으로 바라보고 꿈꾸며 소망하며 내 자신을 내가 개척해 나아가리라. 내가 또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가리라. 믿음으로 승리하리라. 내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손을 부여잡고 기쁨 충만한 삶을, 참으로 복된 인생을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내가 한번 살아가 보리라.”
여러분 마음에 굳게 결단하고 여러분의 꿈과 비전을 이루는 그런 길로 걸어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복된 생명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믿음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아버지 하나님 이 믿음의 말씀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며 실천해 나아가며 그 믿음의 결국을 얻는 믿음의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로 보응받고 응답받는, 축복받는 복 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믿음의 역사를 내가 간증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 믿음의 자리로 이끌어 내는 복 있는 은택을 입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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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할렐루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