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의 좋은 만남 신앙생활 (2)
코로나의 전염이 굉장히 빠르게 무증상자들을 통하여 감염이 됩니다.
벌써 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를 사용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거리두기와 마스크 사용은 정말 힘들고 불편한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 가까이 어울려 살고 이웃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거리두기와 마스크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은 침묵과 고독의 훈련입니다.
우리는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살았으며 하나님보다 세상 사람들과 너무 어울려 살았습니다.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영혼입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가 잘되고 건강한 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일과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만 열중하였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였습니다.“ 가장 불행한 이웃은 영혼이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영혼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나? 나의 기도의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나? 내 영혼이 무엇을 위한 염려와 걱정을 하고 있나?
우리는 조용히 영혼을 향한 침묵이 필요합니다.
침묵은 말씀 묵상입니다. 침묵은 입만 다무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깊은 경청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보면 “말씀 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삼상3:9)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은 선지자들의 기도였습니다. 기도의 주제는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를 통하여 주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순종이 나옵니다. 듣지 않고는 순종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너무 말이 많아서 하나님께서 말씀할 시간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영혼의 메마름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조용히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말을 하기 보다는 침묵을 통한 묵상입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가르침과 음성이 있을 것입니다.
거리두기는 고독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거리두기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하면서 하나님과의 독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독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위하여 고독 훈련이 필요합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릅니다. 외로움은 대상을 밖에서 찾는 것입니다. 이런 대상이 없으면 외롭게 대상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고독은 대상을 내 안에서 찾습니다. 우리가 고독을 사랑하는 것은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과 홀로 함께 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이끄십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며 자기 백성을 정화시키기며 훈련시켜 계약을 맺는 장소입니다, 이것이 고독입니다 그레고리오는 “광야를 닮은 영혼이야 말로 성도의 아름다움이라” 했습니다.
“너는 기도 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는 이 말씀을 토마스 키팅은 “골방”은 고독의 자리이며 “문을 닫고”는 감정과 생각을 멈추고“은밀한 중에 계신”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홀로 있기 위하여 침묵과 고독의 자리가 영적인 거리두기와 마스크 사용입니다.
좋은 만남 교회 성도 여러분! 코로나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하지만 우리는 신앙의 새로운 주님의 세계를 향하여 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침묵 훈련과 고독 훈련을 통하여 주님과 친밀함이 있는 시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담임목사 김상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