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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적도부근은 인간 문명이 탄생한 곳 중 하나지만, 극지방은 19세기가 돼서야 정복되기 시작한 미지의 세계였다. 아직까지도 일반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남극과 북극. 이들에 대한 지배적인 풍경은 차가운 얼음이다.
한겨울 남극은 해안이 영하 25-16℃. 내륙은 영하 70-40℃에 이른다. 만약 이런 곳에서 3중 특수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면 폐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을 정도다. 여름이 돼도 해안은 0℃ 정도이고, 내륙은 영하 40-25℃로 여전히 춥다.
북극은 남극보다 덜 춥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류가 관측한 남극 최저 기온이 영하 89.6℃이며, 북극 최저기온은 영하 70℃다. | |
과거 남극과 북극을 정복하는 극지 탐험가에게 닥친 난관도 얼음이 이유가 된 경우가 많았다. 극지로 들어가는 길 도중에 빙산을 만나거나 얼음에 갇혀 배가 부서져 목숨을 잃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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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 얼음은 매우 유용하다. 아주 오래 전에 내린 눈이 굳어 생긴 얼음에는 공기방울, 먼지, 금속성분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수십만년 전에 묻혔기 때문에 과거 환경의 비밀을 담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석유처럼 지하 깊숙한 곳의 얼음을 시추해서 다양한 정보를 얻는다. 얼음 속의 공기를 채취해과거 지구의 대기 환경을 알아냈다.
가령 지금으로부터 약 1만8천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지금의 1/3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얼음 속 먼지를 통해 과거 지구의 공기가 얼마나 깨끗했는지, 또 화산 폭발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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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북극 그린란드 얼음 속 납의 양이 로마시대와 18-20세기에 크게 많아진 사실이 발견됐다. 이는 로마사람들이 이용하기 시작한 납이 18세기 산업혁명과 20세기 자동차 문명 시기에 대규모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얼음이 간직한 비밀은 지구에 한정돼 있지 않다. 놀랍게도 우주의 비밀까지 담고 있다. 최근 미국 과학자들은 남극점 부근 몇 군데 얼음을 1km 정도 파내려 갔다. 이유는 얼음 속에서 우주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작은 입자인 뮤중간자와 중성미자를 찾기 위해서다. 또한 3만 5천 년 전에 우주에서 초신성이 폭발한 증거를 극지 얼음으로부터 찾아낸 일도 있다.
그러나 극지 얼음세계가 줄어들고 있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에 대해 지구 온난화가 이유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고, 단순히 기온이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성급하게 단정짓지 말자는 이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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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지방은 면적이 1360만 평방 km 인 커다란 대륙으로서 중국과 인도의 면적을 합친 것과 같은 크기입니다. 육지의 대부분은 평균두께 2160 m의 영구빙으로 덮여 있어서 만일 기상이변 등으로 이 얼음이 모두 녹는다면 지구해수면이 약 60 m 상승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남극지방은 지형적으로 북극지방과는 정반대로 바다로 둘러싸인 대륙으로서 바람이 아주 거세고 계절별로 기온차가 심하여 내륙고원지대는 겨울철에 영하 70℃ 까지 기온이 내려갑니다. | 또한 남극지방은 사하라사막보다도 연강수량이 매우 적은 곳이어서 낮은 기온과 함께 물질의 자연적인 순환이 매우 느리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환경이 한 번 파괴된다면 원상회복에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남극에는 해안을 따라 이끼류가 서식하며 동물로는 펭귄, 갈매기, 남극제비 등이 살고 있으며 남극해에는 크릴, 물개, 고래 등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춥고 건조한 내륙고원지대는 생물이 살 수 없으며 나무나 풀도 자라지 못하는 환경입니다. 하지만 수백만 년 전의 지질시대에는 남극대륙도 온난한 기후였으며 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 화석이나 지층조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남극지방 역시 대륙내부 및 주변 해역에 풍부한 생물자원과 광물자원이 부존되어 있지만, 남극이 가진 지리적인 중요성과 자연환경보존을 위해 1961년 발효된 남극조약을 통해 모든 영토권을 동결시키고 개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극이 보존하고 있는 특이한 자연환경은 지구의 생성 및 변화를 연구하는 천연의 과학실험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도 1988년 남위 62도에 위치한 킹조지섬에 남극과학기지인 세종기지를 건설하였고 매년 연구단을 파견하여 남극환경에 대한 조사와 관측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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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지방은 북위 66도 33' 이북의 북극권(Arctic Circle)을 의미하며 지리적으로 시베리아, 북유럽 그리고 캐나다와 알래스카의 대륙으로 둘러싸인 면적 1406만 평방 km 의 북극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랭건조한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인해 겨울에는 영하 50℃ 까지 기온이 내려가지만 기후학자들은 북극지방을 1년중 가장 따뜻한 달의 평균기온이 영상 10℃ 이하이고 연평균기온이 0℃ 이하인 지역으로 구분합니다. 이렇게 구분한 북극지방의 경계는 수목의 북쪽 한계선 (tree line)과 일치하며 또한 영구동토 (permafrost)의 남쪽 한계선과 대략적으로 일치합니다. 한편 해양학자들은 겨울철 유빙의 최남단 한계선을 북극권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북극지방은 수목한계선 북쪽으로 키 작은 관목이나 이끼류 등이 서식하는 툰드라 지역이고 그 북쪽은 식물이 살지 못하는 환경입니다. |
북극지방의 대표적 동물은 북극곰, 물개이지만 그 외에도 순록, 큰뿔사슴 등이 이동하며 살고 있으며 사냥과 고기잡이를 주업으로 하는 이누이트(Inuit)족을 비롯한 원주민들도 해안을 따라 거주하고 있습니다.
북극지방은 지구상에 남은 최후의 자원부존 지역으로서 북극해의 수심 200 m 이하 대륙붕에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고 추정되며 70년대 후반부터는 이들 지역에서 석유탐사와 생산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극해는 여름철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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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에서 자원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기온과 얼음의 바다를 극복할 수 있는 쇄빙선과 같은 특별한 장비와 극지공학기술이 필요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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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은 만녕빙으로 덮여있는 거대한 남극대륙과 그 주변을 고리처럼 감싸고 흐르는 남빙양(Southern Ocean)을 포함한다. 남빙양의 자연 경계는 남위 50°부근까지 뻗어 있으며, 크게 남극수렴선 이남의 남극권과 수렴선 이북의 아남극권으로 나뉘어진다.
남극수렴선이란 온도와 염분 같은 물리특성이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바닷물 덩어리들이 서로 만나는 경계로서 대략 남위 50° 에서 60° 사이를 불규칙하게 오르내린다. 수렴선 이남의 바닷물의 연중 수온은 -1.8∼4.0℃로 수렴선 이북의 남빙양 바닷물 (4∼10℃)보다 훨씬 차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의 남극권은 남극대륙과 남극수렴선 이남의 남빙양, 그리고 이곳에 있는 섬들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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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99년 5월에 국제수로기구(IHO: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에서 정한 새로운 정의에 의하면 남빙양은 남극조약 경계인 남위 60°이남의 바다를 의미한다. 남극대륙의 넓이는 일년 내내 얼음으로 덮인 바다인 빙붕(氷棚)을 포함해 1,360만 km2가 넘고 이는 지구 육지면적의 9.2% 정도가 된다. 유럽대륙이나 호주대륙보다 넓고 아프리카대륙의 반이 넘으며 남아메리카대륙의 2/3가 넘는다.
인류의 대부분이 모여 사는 문명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가보기가 어렵고 자연환경이 가혹해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렇지 남극대륙은 이처럼 결코 작은 곳이 아니다. 우리가 남극의 크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구의 가장 남쪽에 있고 보통 지도에서도 작게 그려져 작게 보일 뿐이다. 본초자오선을 중심으로 동쪽이 동남극이며 서쪽이 서남극이다. 동남극이 서남극보다 더 넓고 기온이 더 낮고 얼음도 더 두껍고 더 오래된 지층과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태평양에서 대서양쪽으로 총 연장 2,200km에 달하는 남극횡단산맥이 지나간다. 남극횡단산맥의 동쪽을 ‘큰 남극' 서쪽을 ‘작은 남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극대륙의 평균높이는 2,300m 정도로 2위인 아시아대륙의 800m보다 훨씬 높다. 남극에서는 지구에서 측정된 최저기온인 -89.6℃가 측정되었다. 바로 남극대륙 안쪽 고원지대에 있는 러시아 보스토크(Vostok) 기지에서 1983년 7월 21일 측정된 것이다. 이 기지는 해발 3,488m에 있어 백두산보다 더 높고 평균온도가 -55.4℃로 물이 아예 없다. 수분이란 모두 얼음이나 눈일 뿐이다. 기온이 -60℃ 아래로 떨어지면 사람이 만든 모든 섬유가 견디지 못하고 부스러진다. 단지 자연섬유, 예컨대 솜이라거나 양털, 낙타 털, 늑대가죽, 곰 가죽 같은 것만이 견딘다. 고무와 플라스틱과 유리가 견디지 못하며 알루미늄 캔도 작은 충격에 쉽게 부스러진다. 이렇게 낮은 온도가 바로 남극을 지상에서 가장 가혹한 곳으로 만드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남극의 연평균온도는 -23℃로, 사람이 사는 곳의 평균온도가 15℃인 것에 견주어 보면 남극이 얼마나 추운 곳인가를 알 수 있다. 남극, 그 가운데서도 해안지방은 바람이 유난히 강한 곳이다. 남극에서도 바람이 가장 강한 곳인 동남극 컴먼웰스 만의 연평균 풍속은 초속 22.2m에 달한다. 일년 내내 이 정도의 바람이 분다는 것은 정말이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실제 그 곳에서 2년을 살았던 남극탐험의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인 오스트레일리아 지질학자인 더글러스 모슨(Sir Douglas Mawson, 1882-1958)경이 이끄는 남극탐험대는 바람이 제대로 불면 걸어다니지 못하고 기어다녔다. 풍속이 초속 25m 정도 되면 사람이 바람을 안고 걷기가 힘들어지며 35m 정도가 되면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마침내 초속 40m가 넘으면 몸이 날린다. 몸이 날린다고 해서 낙엽처럼 허공으로 날리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잃으며 쓰러져 굴러간다.
또 낮은 온도에서 바람이 세어지면 사람이 느끼는 체감 추위가 훨씬 심해지므로 바람도 기온에 못지 않게 무섭다. 게다가 해안지방에서는 블리저드(blizzard)라는 강한 눈보라가 불어 남극을 그야말로 가혹한 세상으로 바꾸어 버린다. 눈보라가 심하면 수 m 앞이 보이지 않게 되며 보통 이 바람은 며칠 간 계속된다. 이 때는 있던 자리에 그냥 있으면서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남극에서 생존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부근을 잘 안다고, 또 목표가 가깝다고 결코 마음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바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는 우리가 어떤 목표로 가더라도 실제는 한 점을 중심으로 빙빙 도는 이른바 환상방황(環狀彷徨)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극대륙도 대륙이므로 다른 대륙에 있는 모든 지질현상이 다 있다.
예컨대 활화산이 있고 온천이 있고 지진이 일어나고 공룡화석이 나온다. 또 석유를 비롯한 지하자원과 금속자원이 있다. 그러나 남극대륙은 다른 대륙과는 달리 평균 2,160m의 두꺼운 얼음으로 98%가 덮여 있다. 해안과 높은 바위산 꼭대기를 빼고는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다고 보면 된다. 얼음이 가장 두꺼운 곳의 두께는 거의 4,800m에 이른다. 남극대륙을 덮고 있는 두꺼운 얼음을 빙상(氷床)이라고 하는데, 얼음이 고체라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아도 천천히 움직인다.
예컨대 남극점 둘레에서는 연 10m 정도 대서양쪽으로 흘러간다. 흘러 내려가는 속도가 내륙에서는 연 2∼3m이나 해안 쪽으로 갈수록 빨라져 빙붕에서는 연 1∼1.5km나 된다. 얼음이 해안 쪽으로 흘러내리면서 낮은 곳을 채워 결국 빙붕에서는 평탄해진다. 이런 빙붕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깨지면 남극에서만 볼 수 있는, 위가 평탄한 이른 바 탁상형 빙산이 된다. 빙산이 작으면 수백 m 규모이지만 크면 100km에 이르고 면적이 1만 km2가 넘어 거대한 얼음 섬을 연상케 한다.
얼음은 흘러내리면서 아래 지형에 따라 갈라진다. 그 틈이 이른바 크레바스이며 작으면 몇 십 cm에 불과하지만 크면 20∼30m 이상 되고 깊이도 수 십 m가 되어 크레바스가 남극을 탐험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된다. 더구나 크레바스가 눈으로 살짝 덮여 보이지 않으면 그야말로 무서운 함정이 된다. 북극과 달리 남극에는 나무가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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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육지의 대부분은 년중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으며, 대륙 또는 주변 도서의 해안가의 2%정도만이 여름에 땅이 노출된다. 강하고 건조한 바람, 수분과 영양분의 불규칙한 변동, 잦은 폭설과 서리, 토양의 결빙과 해빙 등의 극한지 환경은 생물이 살아가기에는 매우 부적합한 환경이다.
따라서 일부 곤충류를 제외한 육상동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여름에 지표면이 노출되는 해안가에 형성되는 식물상은 비교적 다양하고 풍부하다. 지구상의 모든 대륙들 가운데 남극대륙의 식생만이 거의 대부분 은화식물상 (Cryptogamic flora, 꽃이 없으며 포자로 번식하는 식물들)으로 구성된다. 현재 남극의 육상식물은 지의류(lichens) 350종, 선류(mosses) 85종, 균류(macrofungi) 21종, 태류(hepatics) 25종, 피자식물(angiosperm) 2종과 아울러 많은 조류(algae, 조류)들을 포함한다. 이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은 남극반도 주변 지역에 출현하는 2종의 피자식물이다. 이들은 꽃을 피워 종자로 번식을 하기 때문에 헌화식물의 범주에 속하는데, 남극대륙이 빙하기를 거치는 동안 생존했었다고는 판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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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번성하는 단세포 조류(algae)들도 남극의 독특한 식물상을 이룬다. 눈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설조류(snow algae)와 더불어, 융설수가 흐르는 개울에서는 담수조류들이 관찰된다. 또한 토양이나 죽은 생물체의 몸을 분해하는 다양한 균류와 박테리아가 유기물을 분해해 다시 생태계로 되돌려 준다.
이러한 육상식물 군집과 개체군들은 오존구멍 형성에 따른 자외선의 증가나 대기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과 같은 전지구적 규모의 환경변화를 비롯해, 인간활동에 의한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모니터링 연구재료로서 매우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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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기지에서도 이를 위한 기선 조사(baseline survey)를 수행하고 있으며, 지의류의 체내에 축적된 중금속이나 화석연료의 잔재들을 분석하는 등 장단기에 걸쳐 다양한 연구가 시행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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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 빙해역에서 발견되는 얼음은 그 생성된 출처에 따라 육상의 빙하로부터 만들어진 얼음과 바닷물이 얼어서 형성된 얼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빙하(glacier)는 육상에서 수백 수천 년 동안 쌓인 눈이 자체의 무게로 압력을 받아 단단한 얼음으로 바뀝니다. 표면에서 10 m 깊이에서 얼음의 비중은 약 0.6 정도지만 200 m 깊이에서는 0.91 이 되어 순수한 얼음에 가깝습니다.
오랫동안 눈이 쌓여 자체의 무게만으로도 유체와 같은 점성유동이 발생할 정도의 큰 규모를 가진 빙하는 중력에 따라 지형이 낮은 곳으로 서서히 이동합니다. 빙하가 해안가에 도달하면 빙하의 끝 부분에서 얼음이 바다로 떨어져 나가는데 이것을 빙산(iceberg)이라고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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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산은 육상의 빙하로부터 바다로 떨어져 나온 얼음덩어리로서 근원은 담수빙입니다. 빙산이 주로 만들어지는 곳은 북반구에서는 그린랜드의 서쪽 해안, 남반구에서는 남극대륙의 빙원(氷原, ice cap)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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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산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별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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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塊狀) 빙산 (blocky iceberg)
이것은 육상의 빙하로부터 분리되어 직접 바다로 떨어져 나온 빙산입니다. 보통 직경과 두께의 비가 1:1 내지 1:2 정도의 대충 직육면체의 벽돌형태로 크기는 50-500 m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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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상(板狀) 빙산 (tabular iceberg)
남극대륙에서는 빙하가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이동할 때 종종 육지와 연결된 광대한 면적의 빙판을 형성합니다. 이것은 붕빙 (棚氷, ice shelf) 이라 불리는데 여기에서 분리된 빙산은 거대하고 평평한 형태를 가집니다. 보통 길이와 두께의 비가 1:10 이상인데 길이 160 km 에 두께 500 m 의 빙산도 출현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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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산은 완전히 녹기까지 수년간 살아남을 수 있는데 표류하는 동안 따뜻한 해수와 기온에 의해 얼음이 녹은 형상에 따라 두 가지로 더 구분합니다.
돔형 빙산 (dome iceberg) : 물 속에 잠긴 부분은 심하게 녹기 때문에 빙산이 불안정한 상태가 되며, 뒤집어지면 완만하게 녹은 둥근 표면이 드러난다.
드라이도크형 빙산 (drydock iceberg) : 수면 위 부분이 햇볕과 바람에 의해 심하게 침식되면 피라미드 형태나 아주 불규칙한 첨탑 형태의 빙산이 된다.
한편 녹는 과정의 최종단계에 이르면 빙산 혹은 빙산의 파편들은 그 크기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불립니다.
Bergy Bit : 직경이 약 10 m 정도로 대략 집채만한 크기. 해수면상에는 1-5 m 정도 돌출되어 보인다.
Growler : 수 m 의 크기로 대략 피아노만한 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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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산의 비중이 0.85-0.91 정도이므로 우리가 해수면상에서 보는 것은 빙산의 일부분일 뿐이며 빙산의 대부분은 수면 아래에 숨어 있습니다.
빙하의 상층부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은 비중이 작고 내부에는 눈의 결정이나 공기방울이 많이 들어있어서 멀리서 보면 흰색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빙하의 내부 아래쪽에서 만들어진 얼음은 높은 압력으로 단단하게 다져지기 때문에 공기방울도 작게 압축되어 투명하게 보입니다. 멀리서 보면 이런 빙산은 아주 아름다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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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에 남극 대륙 첫 발견
어린이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남극은 대륙 가운데 가장 늦게 1819년에 발견되었어요. 발견된 다음 다른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남극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물개와 고래를 잡으려는 용기 있는 뱃사람들이 남극을 찾아 왔지요. 또 그 무렵 다른 나라보다 앞섰던 러시아ㆍ영국ㆍ미국ㆍ프랑스는 정부가 지원해 남극으로 큰 규모의 탐험대를 보냈어요. 그들은 어려운 여건에서 연구를 거듭하여 두꺼운 보고서도 내고, 또 좋은 생물과 지질학 표본도 얻었어요. 남극의 비밀을 하나하나 벗기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런 시대, 곧 1895년부터 1922년까지를 남극 탐험 역사에서 ‘영웅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왜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요?
사실 1895년 전에는 아무도 남극 대륙의 해안선 안으로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했어요. 곧 바다에서도 겨울을 보내지 못했고 겨우 해안선이나 섬을 조사하는데 만족해야만 했지요.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배를 더 튼튼하게 만들었고, 바람의 힘도 이용했지만 증기 기관의 배가 나오면서, 남극 대륙에 한층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답니다.
드디어 1895년 노르웨이 고래잡이 배의 선장인 헨릭 불은 빅토리아 랜드의 케이프 아다레에 상륙했어요. 이것은 남극 반도가 아닌 곳으로 남극 대륙에 상륙한 첫 번째 쾌거였어요. |
실험용 남극대구를 잡기 위해 고무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선 대원들이 펭귄 마을을 지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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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시대'에서 '기계의 시대'로
그 때만해도 오늘날처럼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지요. 그러므로 남극 탐험은 글자 그대로 남극의 가혹한 자연과 생명을 건 싸움이었어요. 예를 들면, 배도 나무로 만들었고, 바다의 지도인 해도도 변변한 것이 한 장도 없었고, 무전기도 없었고, 항해에 쓰이는 장비도 요새 것보다는 훨씬 못했지요. 그래도 그들은 오직 남극을 탐험해, 모르는 것을 알아 내겠다는 숭고한 의지와 위대한 사명감, 그리고 식지 않는 용기로 얼음이 덮인 험한 바다를 헤치고 나간 것입니다. 곧 그들은 남극 대륙과 남극점에 도전하면서 전설 같은 용기와 인내를 발휘했지요. 한 마디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조건 속에서 위대한 용기를 가진 영웅들이, 남극을 탐험했던 시대이기 때문에 남극 탐험 역사에서 ‘영웅의 시대'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지요. 그 다음에는 비행기ㆍ쇄빙선ㆍ설상차ㆍ무전기ㆍ헬리콥터 같은 기계를 이용해 남극을 탐험해 ‘'기계의 시대라고 합니다.
남극이 발견된 이후 1990년대까지 실시된 크고 작은 탐험이 300 번을 넘습니다. 그 탐험 하나하나가 모두 위대한 이야기지요. 그러나 남극점을 먼저 정복하려던 세 사람의 남극 탐험의 영웅들, 곧 아문젠과 스코트ㆍ섀클튼의 이야기는 벌써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제 남극의 가혹한 자연 환경에 도전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노력과 승리를 함께 한 영웅들을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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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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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반도 끝에 상륙해 배를 기다리는 동안 1903년 동지를 맞아 자축하고 있는 탐험대 대원들 | |
1901년 탐험대 태운 '안타크틱'호 출항…스노우 힐 섬에 집 짓고 첫 월동 시작 세계지리학총회는 1895년 남극을 탐험할 것을 결의했어요. 그 때만 해도 남극을 뺀 다른 대륙은 상당히 알려졌지요. 하지만 남극은 거의 알려진 게 없었어요. 그런 결정이 나오자, 스웨덴ㆍ프랑스ㆍ영국ㆍ스코트랜드ㆍ도이칠란트 같은 나라들이 남극 탐험을 조직했어요. 남극 탐험에 참가한 나라 가운데 스웨덴 남극 탐험대는 1901년 서른 두 살의 지질학자인 오토 노르덴스쾰드 (1869~1928) 박사를 대장으로 조직되었어요.
이 탐험대를 태우고 갈 배는 물개 사냥에 쓰던 나무배 ‘안타크틱'호였어요. 그 때는 오늘날처럼 쇠로 만든 배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이 나무배였지요. 선장은 고래잡이로 남극을 경험해 본 칼 안톤 라르센이며 열여섯 명의 선원으로 되어 있었어요. 안타크틱호는 1901년 12월 2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 다음해 1월 11일 남쉐틀랜드 군도에 도착했어요. ‘우리는 지금 인류가 와 본 적이 없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날씨는 마술에 걸린 듯 변화가 심했으며, 우리를 마치 때려 부수려고 남쪽으로 유인하는 것만 같았다. 만사를 제쳐 두고, 우리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세계에 도전하는 개척자만이 느낄 수 있는 열의로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탐험을 나선 노르덴스쾰드 박사는 그 때의 심정을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 일기를 보면, 남극 바다가 거칠어도 그의 마음은 사람들이 모르는 세계를 탐험하겠다는 의지와 정열로 꽉 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것은 위대한 탐험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마음가짐이지요.
이들은 과거에 알던 것과는 달리, 섬들이라고 생각되던 지역들이 연결되어 남극 반도가 되었고, 남극 반도 서해안의 해협들이 연결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 때만 해도, 남극에서도 가장 북쪽인 남극 반도의 지리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어요.
●영하 30℃의 상상하기 힘든 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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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노르덴스쾰드 박사가 이끈 스웨덴 남극 탐험대가 겨울을 두 번 넘긴 은신처 | |
노르덴스쾰드 박사는 남극 반도 끝 동쪽에 있는 스노우 힐 섬에 화석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그 섬에서 그 해 겨울을 보내기로 결정했어요. 지질 학자다운 결정이었지요. 2월 초순에는 목재와 부엌 기구ㆍ연구 장비ㆍ썰매를 포함해, 안타크틱호로 가져 온 물자와 개를 내려 놓았으며, 배는 포클랜드로 돌아갔습니다. 겨울을 보낼 월동대 여섯 사람은 지구 자기를 측정할 작은 집을 먼저 짓고, 좁지만 그 속에서 얼마 동안 살았어요. 그 뒤에 크기가 6.4 x 4.1 m 되는 집을 나무로 짓고 겨울에 대비했지요. 그들은 3월까지 날씨가 좋을 때, 개 썰매와 보트로 물자를 날랐고, 탐험에 쓸 식량과 연료를 보관할 창고를 몇 개 지었어요. 겨울은 가혹해서, 눈보라가 열흘을 계속해서 분 적이 있었으며, 그 동안 기온은 계속해서 영하 30 ℃였어요. 말이 섭씨 영하 30 ℃지 바람까지 세었으니, 그 때의 추위는 우리는 상상하기 힘들 겁니다. 눈보라가 몰아칠 때에는 그들이 꼼짝하지 못했어도, 해가 나면, 밖에 나와서 따뜻한 햇볕을 쬐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이것 저것을 관찰했어요. 그들은 아무도 남극에서 겨울을 보낸 적이 없었어요. 그래도 서로 의지하며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하루하루 살아갔습니다. 그분들이 있기에 우린 지금 극지의 새로움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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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남극에 관심을 보인 것은 지금부터 25년도 더 된 1978~79년이었다. 당시 수산청은 어획경비의 반을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남빙양에서 어획하던 수산회사에게 크릴을 잡도록 했던 것이 남극에 대한 연구의 효시이다. 크릴(krill)은 흔히 남극새우로 알려져 있지만, 아가미가 밖에서 보이고 일생 물에 떠서 살고 모양과 생태가 새우와는 다른, 일종의 동물성 플랑크톤이다.
길이가 5-6cm인 크릴은 남빙양에 워낙 많아, 고래와 물개와 펭귄의 먹이가 되면서 남빙양의 생태계를 유지한다. 크릴은 남빙양에 수억 톤이 사는 것으로 알려지자, 시험삼아 잡아 이용가능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수산청이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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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는 舊소련, 일본, 舊서독, 프랑스, 폴란드, 미국, 칠레, 대만이, 모두 해마다 수십만 톤의 크릴을 어획하거나 생태를 조사했으며 남빙양의 일반해양을 조사했다.
당시 남북수산과 대호원양과 동방원양 같은 수산회사가 어획한 수천 톤의 크릴의 일부는 사료와 연구에 쓰였으며, 보존이 잘 된 것은 낚시 미끼로 일본에 수출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어획경비를 지원하는 형식이 융자형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크릴의 용도가 크게 많아지지 않았고 크릴 자체의 문제점도 있어, 적어도 우리나라의 크릴어획은 활기를 띄지 못했다.
윤석순(尹碩淳)씨가 총재로 있던 한국해양소년단연맹과 주식회사 문화방송은 청소년들에게 호연지기를 길러주 려는 목적으로 1985년 11~12월에 걸쳐 한국남극관측탐험을 주관했다. 이 탐험대는 높이 4,897m의 남극최고봉인 빈슨산괴(Vinson Massif)를 등정하는 팀과 킹조지섬을 탐험하는 두 팀으로 구성되었다.
윤석순씨는 탐험대를 조직하면서, 외무부의 요구로 과학자를 탐험대에 참가시켰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원 부설이었던 해양연구소의 허형택(許亨澤) 소장은 당시 연구원이었던, 현재 강릉대학교 교수인 기상학자 최효(崔孝)박사와 지질학자인 나를 지명했다.
이 인연으로 이후 우리나라의 남극연구는 (한국)해양연구소가 주관하게끔 되었다. 정부기관이 아닌 사설기관이 조직한 한국남극관측탐험은, 우리나라가 남극최고봉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등정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극의 땅을 밟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대단히 크다.
우리나라는 1986년 11월 세계에서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했다. 당시 UN 회원국이 아니었던 우리나라는 미국의 중재로 남극조약에 어렵게 가입했다. 남극조약에 따르면 UN 회원국은 자동으로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비회원국은 기존 남극조약협의당사국(南極條約協議當事國 ATCP)의 만장일치의 승인을 받아야했다.
당시 협의당사국에는 중공, 동독, 폴란드 같은 이른바 적성국가들이 있었다. 만약 이들 가운데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우리는 남극조약에 가입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미국이 중재해 우리나라가 가입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남극조약에 가입한 것은, 당시 외무부가 국제사회를 멀리 내다 본, 훌륭한 조치라고 굳게 믿는다.
외무부가 1987년 초 연두업무보고를 하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남극기지를 짓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주 칠레 한국대사관의 주진엽(朱進燁) 참사관, 해양연구소 연구원, 현대엔지니어링 기술자들은 1987년 4~5월에 걸쳐 킹 조지 섬에서 남극기지 후보지를 답사하게 되었다.
그 때가 이미 남극의 겨울이 시작될 때라 다른 곳을 조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후보지 답사반은 칠레기지의 마을에 머물며, 칠레기지의 헬리콥터와 러시아 기지의 설상차를 타고, 기지가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그러한 곳의 전체지형, 지면의 기울기와 상태, 취수가능성, 해안의 상태를 조사했고 기록했다.
답사반이 돌아온 다음, 현대그룹의 건설기술자들은 답사결과를 바탕으로 기지를 급하게 설계했으며 건설자재와 건설장비를 준비했다. 한편 서울에서는 남극과학연구위원회(SCAR)에 해당되는 국내조직인 한국남극연구위원회(KONCAR)가 창립되었다.
남극에서는 여름에만 일을 할 수 있어 일할 시간이 짧은지라, 건물을 짓기보다는 조립하는 것이 주요한 업무로, 건설기술자들은 연습으로 건물을 조립해보았다고 한다. 마침내 1987년 10월 15일 기지건설선 이었던 'HHI 1200호'는 울산항을 떠나, 남극으로 향했다. 건설선은 칠레 발파라이소 항구에서 기술자들을 태웠고, 12월 15일은 현장에 도착했으며 다음날에는 기공식을 했다. 기지건설작업은 남반구의 여름을 이용해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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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988년 2월 17일 세종기지를 준공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8번째로 상주남극기지를 건설한 나라가 되었다. 해양연구소는 대한민국 남극과학연구단 하계연구대와 월동연구대를 조직했으며, 강원도 용평에서 스키와 동계등반 같은 월동훈련을 했다.
하계연구대는 800톤급 칠레 배를 빌려 기지주변의 일반해양조사를 비롯해 대기상태를 조사했으며 지질학자들은 육상지질을 조사했다. 13명으로 구성된 1차 월동대는 1989년 2월 8일까지 기지에 머물면서 대기, 일반지질, 일반해양을 비롯하여 기지주변의 자연환경을 관찰하고 그 변화를 기록했다. 한편 1988년 11월에는 제1회 국제남극과학 심포지엄을 서울에서 열어, 우리의 연구결과를 외국사람들에게 발표하고 교환할 기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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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세종기지를 짓고 주변지역을 연구한 결과는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 1898년 10월 18일에는 23번째로 남극조약협의당사국의 자격을 획득했다. 이 결과 우리는 명실공히 남극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발언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남극은 태평양 심해저 망간단괴와는 달리, 인류공동의 유산이 아니다.
기존의 협의당사국들이 연구결과를 심의해, ‘남극 실질연구'를 하는 나라만을 만장일치로 남극조약협의 당사국의 자격을 부여한다. 이 자격을 가진 나라들만이 남극의 장래를 논의할 수 있고 남극에 관련된 규정을 만들거나 없앨 수 있다. 현재 45개 나라가 남극조약에 가입했으나 협의당사국은 27개 나라 뿐이다. 한편 신문사에서도 남극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바로 한국일보사의 도움을 받은 등산가 허영호씨가 1993~94년 남극점까지 걸어갔으며 2003~04년에는 박영석씨가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남극점까지 걸어갔다. 한국해양연구원은 북극연구에도 관심을 가져 1999년부터 중국과 러시아와 공동연구를 했다. 북극에관한 관심은 계속되어 2002년 4월 25일에는 국제북극과학위원회(IASC)에도 가입했으며 4월 29일에는 북극 스발바드 군도에 다산기지를 개설했다.
북극은 남극과 달리 주인이 있어, 다산기지는 노르웨이 영토에 지은 건물로,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면서 운영된다. 또 세종기지처럼 연중 사람이 지키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경우에만 지킨다. 남극과 북극에 기지를 운영하면서, 위에서 말한, 한국남극연구위원회는 2002년 6월 한국극지연구위원회(KONPOR)로 그 이름을 바꾸어, 남극연구와 북극연구를 조정하기에 이르렀다.
국제남극과학 심포지움은 계속되어, 2003년 11월에는 제 10회 심포지움이 인천에서 개최되었다. 한편 현재 남극 세종기지에서는 윤호일 박사를 대장으로 한 17차 월동대 15명이 기지둘레의 환경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극지연구에 더욱 관심을 가져, 2004년에는 6천 톤 급 쇄빙선을 설계하기 시작했으며 4월 16일에는 극지연구소가 한국해양연구원에 부설로 만들어져, 독자 예산을 세우고 인사권을 갖게 되었다.
예정대로 2008년 쇄빙선이 건조되면, 우리나라의 극지연구는 한 단계 더 높아지리라 기대된다. 그때에는 98%가 평균 두께 2,160m의 얼음으로 덮인, 한반도의 60배가 넘은 거대한 남극대륙을 연구해, 그야말로, ‘남극다운 연구'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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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의 정상(해발 5895m)을 아름답게 덮은 만년빙은 10년 안에 완전히 녹아 더이상 볼 수 없게 된다. 해수면이 계속 올라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에 사는 1만1천명의 국민은 다른 나라로 이주해야 할 처지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실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개봉된 <투모로우>라는 영화에서는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북대서양의 해류 대순환이 정지하면서 몇 주 만에 지구에 빙하기가 급습하는 커다란 재앙이 찾아온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빙하기가 온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북대서양 해류의 대순환이 정지하면 단 몇 주 만에 지구는 얼음으로 덮이게 될까 해마다 겹겹이 쌓이는 눈으로 형성되는 만년빙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이를 지니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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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빙하를 시추해 다양한 화학 성분을 분석하고, 작은 기포에 갇힌 이산화탄소와 메탄 가스의 농도를 측정하면 거꾸로 수십만 년 전까지의 기후변화와 대기환경을 되돌아볼 수 있다. 그래서 빙하를 ‘냉동 타임캡슐'이라 일컫는다. <투모로우>에서 기상학자 잭 홀 교수는 남극 빙하를 연구해 기후변화의 예측 모델을 개발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초보단계에 있지만, 실제로 미국·일본 그리고 유럽국가들은 미래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과학적 실마리를 냉동 타임캡슐에서 찾기 위해 남극대륙과 북극의 그린란드를 덮은 두꺼운 빙하를 뚫고 있다.
기후의 역사 오롯이‥빙하는 ‘냉동타임캠슐' 1992년 그린란드에서는 북대서양 지역의 기후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3023m까지 빙하를 시추했다. 이 빙하는 과거 25만년의 기후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기후기록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 수백년 또는 수천년 주기의 갑작스런 기후변화가 북대서양 일대에서 여러 번 발생했으며, 이런 기후변화는 해류 대순환의 변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화 <투모로우>는 나름대로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는 해류 대순환과 같은 내부 요인 말고도 태양복사를 조절하는 외부 요인에 의해 지난 수백만년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은 약 1만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라는 간빙기에 해당한다. 인류 문명은 따뜻한 홀로세 기후와 함께 발달했다. 문제는 자연적 기후순환을 볼 때 언젠가는 다시 빙하기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그 시기가 언제일까 지구의 기후시스템은 매우 복잡해 지금의 과학기술로는 아직 그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1998년에는 남극의 러시아 보스톡기지에서 3623m 깊이까지 빙하를 뚫었다. 그리고 지난 42만년 동안 10만년 주기로 네차례나 반복된 빙하기와 간빙기의 기후순환 기록을 찾아냈다 . 이 기록을 보면 이전의 간빙기들보다 지금의 홀로세 간빙기는 비정상적으로 오래 지속되고 있다. 왜 이번에는 빙하기가 늦게 오는 걸까 또다른 지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말이다.
그 비밀을 밝힐 수 있는 실마리를 훨씬 이전의 기후기록에서 찾기 위해 지난해에는 유럽의 다국적 연구팀이 남극에서 다시 3천m가 넘는 빙하를 시추해 과거 74만년의 기후기록을 복원했다. 그리고 40여만 년 전에 오늘과 비슷한 기후조건을 지닌 간빙기가 2만8천년 동안 지속됐다는 사실을 새로 발견했다 . 지금의 따뜻한 기후가 예상보다는 훨씬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지구온난화가 없을 경우에 그렇다. 과학자들은 결국 지구가 다시 빙하기로 접어드는 시기는 자연이 아닌 바로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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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에서의 연구 활동
극지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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