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후반 우리나라는 대기업 연쇄 도산으로 시작된 불황과 함께 전에 없던 외환위기(currency crisis)를 맞았다. 외환위기란 국민경제가 대외 통상 과정에서 외국과 재화를 거래하는 데 필요한 외환이 부족해서 거래가 중단되는 사태다. 국제 거래에서 주로 쓰는 외환은 미 달러이므로, 결국 달러가 부족할 때 발생하는 국가 차원의 경제위기다.
달러가 없으면 기업이 외국 거래처와 수출입 거래를 할 수 없다. 자동차 운행과 공장 운영에 필요한 원유도 살 수 없다. 제조업체가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유도 살 수 없다. 제조업체가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해외 물자 수입도 불가능하다. 결국 수많은 기업과 공장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결국 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 수입품을 포함한 생활 물자가 부족해지므로 물가는 폭등한다. 외국에서 달러를 빌리거나 자국 돈으로 달럴르 바꿀 수 있으면 좋겠지만, 외환위기가 임박하면 그 길도 막힌다. 대외 신용이 추락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다 외환위기가 왔을까?
외환위기 전 몇 년간 우리나라는 수출을 통한 달러벌이가 시원찮다. 현대 국가는 무역을 해서 번 외화를 국민경제 차원에서 '경상수지'라는 명목으로 집계한다. 1990년대 들어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1993년 한 해만 빼고 1990년대부터 1997년까지 7년 연속 적자를 냈다.
달러는 무역을 하는데 적자가 계속 나니 부족한 살림을 외채(外債)로 꾸려야 했고, 그러다 보니 외채가 쌓여갔다. 보기 그림에서 보듯, 마이너스로 표시된 순대외채권(대외 채권에서 대외 채무를 뺸 금액) 액수가 해마다 커졌다.
나중에는 외환보유고(외환보유액)마저 부족해졌다. 외환보유고란 자국에서 본사나 본점을 둔 굵직한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외국 거래처에 진 빚을 갚지 못할 때 정부가 대신 갚아주려고 평소 보유하는 외환이다. 일개 기업이 진 빚을 정부가 대신 나서서 갚아주는 이유는 국가신용도가 추락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은 특정국의 주요 기업이 신용을 잃을 경우 해당국 정부가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국가신용을 불신하고 대외 거래를 끊어버린다.
1997년 당시 우리나라는 연말에 만기가 돌아오는 대외 단기부채를 갚는 데 필요한 외환(외환보유고)이 턱없이 부족했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줄도산하는 마당이었으니 달러를 벌거나 빌려서 부족분을 매울길도 없었다. 눈치 빠른 국제 투기 자본은 외환시장에서 원화 폭락에 거액을 거는 환투기에 나서 원화를 대거 팔아치웠고, 원 시세는 단시간에 폭락했다.
원화 폭락은 가뜩이나 달러가 부족했던 한국 경제에 외환위기를 부를 공산이 컸다. 국내에 들어와 있던 외국자본은 곧 외환위기가 닥치리라 보고 국내에 들어와 있던 외국자본은 곧 외환위기가 닥치리라 보고 국내 자산을 달러로 바꿔 떠나기 시작했다. 국제 투기 자본이 외환 투기 공세를 펴고 외국인 자본이 떠나면서 원화 폭락세는 하루가 다르게 거세졌다. 마침내 원화로는 아예 달러를 살 수도, 빌릴 수도 없게 됐다.
다급해진 우리 정부는 우방국 미국과 일본에 달러 긴급 융자를 청했으나 간단히 거절당했다. 이미 진 빚도 갚지 못하고 대기업과 은행 줄도산으로 경제가 파탄 난 나라에 달러를 빌려줄 수 없다는 답이었다. 남은 카드는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 긴급 융자뿐, 1997년 말 한국 정부는 IMF에 달러 긴급 융자를 요청해야 했다.
IMF는 세계 각국이 함께 돈을 내 운영하는 국제금융기구다. 회원국이 경제난에 빠지면 급전을 빌려주지만, 융자해준 뒤에는 해당국 경제 정책을 통제하고 융자 원금에다 이자를 얹어 회수한다. 우리 정부에 돈을 빌려준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 IMF 사무국을 설치하고, 우리 정부를 상대로 경제정책을 지시하고 통제했다. 언론은 '한국 경제 주권이 IMF 수중에 넘어갔다'하고 대서특필했다.
당시 IMF 권고는 융자를 받은 나라 처지에서 볼 때 말이 권고지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이내 산업 전반에서 구조조정이 전개됐다. 다수 민간 기업과 금융기관이 자산을 대거 처분해 빚과 인력, 설비를 대폭 줄였다. 그렇잖아도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줄도산하던 차에 구조조정이 진행되자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했고, 불황은 한층 깊어졌다. 1999년에는 당시 재계 서열로 삼성그룹에 이어 2위였던 대우그룹이 구조조정 끝에 해체되어 국민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외환위기 한 해 전인 1996년 우리나라는 OECD(Organizat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다. OECD는 전통적으로 '선진국 클럽'으로 통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우리도 이젠 선진국'이라며 뿌듯해한 국민이 많았다. 그런데 별안간 나라 경제가 도탄(塗炭)에 빠지자, 국민은 정부와 여당이 경제 운영에 무능하다며 격분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 등장 이래 여, 야가 한 번도 바뀐 적없던 한국 정치 세력 지형이 일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