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집사의 행복한 묵상04 - 하나님의 음성 듣기, 이웃사랑(창 18장, 19장)
서울에 살게 된지 만 5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 미아 산동네에 살게 된지 횟수로 3년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부산에서 장모님이 올라 오십니다. 어른이 집에 있으니 생활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불편해 질 거라고 말하는 이들이 주위에 많더군요. 그런데 왠걸요. 어른 때문에 개인적으로 소중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다들 바쁜, 아니 바뻐야만 될 것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서의 이웃은 (이성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냥 내가 사는 곳의 옆이나 앞, 뒤 쯤의 (아파트면 위 아래)또 다른 사람, 그리고 피차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는 구역이 다른 이들로 여겨지고 있지요.
저희도 2년을 고스라니 그렇게 살았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면서 이웃사랑은 선한 것이다라고 머리 속에 생각만을 가득 채워가면서 말이지요. 근데 어머니가 오신지 2개월쯤 지나자 우리가 2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해내시더군요.
"할머니 오셨어요?" 길을 가는데 세탁소 아주머니께서, 그리고 또, "율(제 딸)이 할머니 부산 가셨지요?" 동네 쑤퍼 아주머니, 또 "권사님 계시죠?" 누군지 저는 모르는 어느 분이 저에게 묻습니다. 어머니가 부산을 가신 걸 동네 사람들이 거의 압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제가 집에 없을 땐 동네 분들이 우리집에 오셔서 커피(시골 할머니 스타일, 상상해보셔요..ㅋㅋ)를 마시고 간 흔적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옆집 아주머니가 우리보다 불과 3살 밖에 많지 않다는 사실도 얼마전에 알게 되었죠.
우린 잘 압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요. 아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정녕 우린 그러지 못합니다. 이웃 사랑이요? 차라리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계좌이체로 후원하는 것이 편합니다. 이웃과 말을 건네는 것도 불편하다고 귀찮아 하지요. 그러면서 우리가족, 우리식구하지요. 이 풍토는 교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리고 이내 들고 나는 것이 표가 잘 안나는 대형 교회를 선호하고 급기야 하나님의 은혜는 교회 건물의 사이즈로 임하는 것인양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창18:17) 저는 이 구절에 흥분됩니다. 상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이께서, 당신의 일을 숨기지 않고 말해 주신다니요!! 물론 성경에는 그 대상이 아브라함에 국한 되어 있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분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좀처럼 흥분이 가시지 않습니다. 근데 그렇게 하시는 데는 조건이 붙습니다. 다름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뜻과 올바른 길로 준행하게 하실때 하나님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보이신다는 겁니다. (창18:18) 한마디로 당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보이는 대상도 하나님께서 택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바로 그러한 모습을 아브라함에게 발견하십니다. 다름아닌 오늘 말하고자하는 '사랑' 그것도 내가 아닌 '이웃의 사랑' 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당신이 앞으로 행할 일을 아브라함에게 고합니다. 그 내용은 바로 소돔과 고모라의 죄 확인이었습니다.(창18:20,21) 저는 묵상 중에 '왜 이런 하나님의 뜻을 보이셨을까.' 생각을 하다가 길지 않는 시간에 그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웃사랑'을 보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전해지는 죄악의 부르짖음을 확인하러 간다고만 아브라함에게 고하십니다. 그런데 그 후 아브라함의 행동을 보세요. 소돔과 고모라의 의인을 통한 죄사함을 하나님께 중보합니다.(창18:22-32) 그의 중보는 끈질깁니다. 나중에는 하나니의 노여움도 불사하고 그들(소돔과 고모라의 백성)의 은혜 베품을 간구합니다.(창18:32) 비록 10명의 의인도 없는(아마도 의인은 한명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만 이웃사랑의 올바른 모습을 보인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조카 롯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창19:29)
우린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사랑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준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린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숨기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분의 뜻을 들을 수 있습니다.
흥분되지 않습니까? 기쁘지 않습니까? 우린 늘 하나님의 뜻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향하는 믿음과 그분이 원하시는 뜻을 행하고자 기도하고 마침내 행하게 될 때 우린 천국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무더운 여름, 길거리로 지나가는 이웃께 인사를 건냅니다. 이제 이 인사는 형식이 아닙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진정으로 상대의 안녕을 하나님께 기원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안녕하세요? 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