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 연극, 롤플레잉
작성 : 뜨락 박경수
지난주엔 이틀간 사이코드라마 워크샵을 다녀왔습니다.
연극에 몸 담은지 벌써 십수년이 지났지만 사이코드라마란 게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잘 몰랐었거든요.
언제고 꼭 한 번은 만나 보리라 맘은 먹고 있었지만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었죠. 그러다가 결국은 만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제가 겪어본 사이코드라마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잠깐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이코드라마란 - 마음의 병의 치유를 위한 드라마(역할연기) 랍니다.>
1. 나의 사이코드라마 참가 목표
이번 사이코드라마에 참가하면서 세운 목표가 몇 개 있었습니다.
가. 사이코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꼭 참가해서 내 맘 속 상처 중 하나를 건드려 본다.ㅋ
나. 사이코드라마, 연극치료, 교육연극의 구조를 비교 관찰한다.
다. 사이코드라마의 무엇이 치유를 가능하도록 하는가?
뭐 대충 위의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 사이코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꼭 참가해서 내 맘 속 상처 중 하나를 건드려 본다.ㅋㅋ
이건 결국 실패했습니다.
한 세션이 보통 3시간 정도 진행이 되는데요. 이틀간 총 4번의 사이코드라마 세션과 한 번의 소시오드라마(집단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변화를 이루어내는 드라마활동인데요. ‘롤 플레이’는 엄밀히 말해서 사이코드라마가 아닌 소시오드라마에서 온 것입니다.) 세션이 있었는데, 사이코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되기 위해 세션마다 자진 출두하였으나 다른 자진 출두하신 분들의 열의가 어쩜 그리도 대단하신지 ... 쩝... 결국 다 양보하고 말았습니다. 근데 그분들의 세션을 지켜보고 있자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어찌나 상처들이 많으신지.
참 이번 사이코드라마는 치유적 세션이 아니라 사이코드라마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위한 워크숍이었기에 나름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으셨는데... 암튼 누구나 맘 속에 상처는 다들 안고 살아가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수 있었죠.
나. 롤 플레이, 사이코드라마, 연극치료, 교육연극의 구조를 비교 관찰한다.
지난번 역할연기 자료실에 지난번에 올린 글에서 교육연극과 기업의 '롤 플레잉'의 기본 구조에 대해 약간 언급했었는데요. 이 모두가 기본적인 구조는 동일하더군요. ‘도입-주활동-정리’라는!
- 사이코드라마의 기본 구조
도입 - 참가자들 간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자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단계
주활동 - 치유를 위한 드라마 활동(역할연기)
정리 - 주인공은 자신이 역할을 수행하고 난 뒤의 느낌 등을 말하구요. 주변인물로 참가했던 이들이나 관람자는 주인공의 역할연기나 드라마 내용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이들의 진실한 얘기만이 가능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아픔을 나누자는 의미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과정을 ‘나누기’라고 하더군요.
사이코드라마, 연극치료의 세션에서는 일반적으로 참가자들에 대한 평가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교육연극에서는 방법론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평가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업교육에서의 롤 플레이에서는 평가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접근방법은 다릅니다. 참가자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해야하는 거죠.^^
다. 사이코드라마의 무엇이 치유를 가능하도록 하는가?
A.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게 하고 그것을 들여다보게 한다.
B. 주변인물간의 관계맺음과 역할바꾸기를 통해 자신의 욕구, 주변인물들의 욕구, 그리고 그 억압 또는 상처의 근원이 될 만한 사건이나 인물 등을 들여다본다.
C. 과거의 기억에서 차마 대항하지 못했던 대상, 차마 거부하지 못했던 상황, 사건 등에 대항하거나 거부하는 역할연기를 통해 그 상처로부터 헤어날 수 있다.
D. 자신을 억압하던 실체를 발견하게 되면 그 대상에게 억눌린 감정을 모두 퍼붓게 한다.
E. 그 억압의 실체를 상징적으로 다른 참가자들이 스크럼, 벽, 올가미 등의 형태로 구조화하면 주인공은 그것을 벗어나는 것으로 상징적 탈출을 경험한다.
F. 마지막 나누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상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과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이 그들에게 수용되고 있음을 체험한다.
뭐, 이것이 전체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아주 단편적으로 언급해 보았습니다.
2. 사이코드라마에 참여하면서 느낀 세 가지
◇ 변화를 원한다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라!
올해 전반기엔 연극치료와 관련된 강의에 참가하면서 내 속에 웅크리고 있던,
상처받은 어린시절의 나를 발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받고 떨고 있는 조그만 어린 나를 안아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어떤 한 면이 달라졌답니다.
어쩌면 그러한 기억이 나를 사이코드라마로 흘러가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맘에 상처 몇 개쯤은 다들 안고 살아가잖아요.
그러고 그 상처들을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하구요.
우리들 맘 속엔 우리가 아는 상처들도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처들도 있죠.
근데 내 맘 속에 난 상처를 내가 알고 있다면, 나 스스로 치유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대체로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 왔구요.
상처입은 나의 맘을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능히 치유가 가능하겠지요,
근데 우리는 그 방법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저 역시도 그렇구요.
이렇게, 알고 있는 상처들도 스스로 치유하기 힘든데 내가 알지 못하는,
그러나 내 맘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상처들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치유를, 변화를 원한다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라!>
이것이 이번 사이코드라마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기회를 만들어 사이코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꼭 활약(?)을 해볼 생각입니다.
◇ 안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것은 다르다.
이번 사이코드라마 워크숍에서 느낀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요.
<안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것은 정말 정말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진행되는 사이코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문제, 자신의 상처받은 부분이 무엇인지를 그들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로 치유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러나 드라마 과정에서 그것을 행동으로 드러내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또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상처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행동은 나를 변화시킨다. 다시 말해 행동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끈다.>
이것이 제가 느낀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비단 사이코드라마라는 치유활동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요.
행동화를 중요시 하는 요즘의 숱한 교육방법론들을 보면 새삼스럽게 다시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들이 많네요.
◇ 촉진자(facilitator)의 역할, 그 중요성
사실 저도 연극을 교육의 매체로 하여 다양한 층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촉진자입니다만 그 방향성과 방법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죠. 그러나 때로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면 가끔은 기분에 따라, 몸 상태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태도나 강의의 내용 등에 소홀해지는 등 안이함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곧 이러면 안되지 하고 반성하고 자극받고 합니다만.
근데 이번 사이코드라마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요.
이건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거잖아요. 그것도 평범한 마음이 아니라 아프고 상처받고 여린 마음을 다루는 게 사이코드라마인데, 그런 사이코드라마에서의 촉진자는 주인공의 마음을 잘 살피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자세와 그럴만한 능력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하다는 거죠. 정말 자칫 안이해지거나 능력이 부족하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상처받게 만들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 사이코드라마에서의 촉진자의 역할을 보면서 인식하면서 다시한번 저의 모습을 반성하고 또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뇌에 글과 도표로 점철된 어떤 공식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나와 다른, 또 다른 어떤 이의 마음을 헤아리게 만드는 지혜를, 따스함을 심는 사람들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