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이슬을 기다리다 잠들어버린 하준을 가만히 바라보는 표정이 최근 들어 본적 없는 편안함으로 여유로워 보이는 우진.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 현관문너머에서 큰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하다.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그곳에 있는 이슬을 걱정하고 있다.
‘이 아줌마,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거야?’
* * * * *
[하늘아래 너와 나 단 둘뿐]
‘똑. 똑.’
큰소리가 오고가는 것이 언제쯤이었나 싶을 만큼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어둠이 걷혀가는 새벽 3시. 모든 정적을 흐트러트리듯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부스스한 모습의 우진이 현관문을 향해 살금살금 발을 디뎌나간다. 혹여나 자신의 발소리로 곤히 잠든 하준이 깰까 싶은 마음에서다. 천천히 문을 열었고, 그 앞에 헝클어진 머리와 약간의 핏빛이 묻어난 입가,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한쪽 뺨. 고개를 푹 숙인채로 자신의 할 말만 뱉어내는 이슬.
“죄송해요, 너무 늦었네요. 아들 데리러 왔어요.”
“일단. 들어오세요.”
“네?!”
조금은 단호하게 뱉어진 우진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보이게 되었고, 우진은 그 결에 엉망이 된 이슬의 모습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차가웠던 우진의 표정은 어느새 걱정스러운 얼굴로 변해가고 있었다. 미간이 찌푸려지면서 짙은 눈썹이 일렁이고 있었다. 더 이상 이슬에게 묻지 않았지만 우진의 눈빛이 이슬의 답을 요구하듯 보인다.
“얘기 좀 할래요? 어디가 편하겠어요?”
“.......”
“하나 딱 있긴 한데... 일단 아줌마 아들 깊이 잠 못 들어요?”
“아뇨. 한번 자면 아침에 일어나는 편이에요.”
“그럼 삼십분? 아니 한 시간 정도 혼자 둬도 괜찮을까요?”
“뭐, 네...”
“일단, 따라와요.”
현관문 밖에 이슬을 세워둔 채로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겉옷을 하나 걸쳐 입더니, 이슬의 손을 잡아채서 엘레베이터에 몸을 담는다. 그리고 지하2층 버튼을 누른다. 무슨 상황인지 알길 없는 이슬은 놀라 커진 눈으로 우진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다. 잠시 후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겉옷 주머니에서 자동차 키를 꺼내어 도어락 해제버튼을 누르자, 위치를 알리듯 주황색 불빛이 깜빡이며 ‘삑’ 소리를 낸다.
“타요.”
“아니, 왜...?”
“딱히 조용히 얘기할 곳이 이만한 데가 없는 거 같아서요.”
나란히 앞좌석에 몸을 담은 이슬과 우진. 순간 우진은 괜한 오버를 자신이 하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에 한동안 침묵을 고수한다. 하지만 이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이슬이 앉은 방향으로 몸을 틀어 눈을 맞추며 묻는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사실! 있는 그대로만 말합시다. 오늘일 설명이 필요한 거 같네요.”
“아...”
“난 당신이 아줌마인건 뭐 아들이랑 처음부터 맞닥뜨렸으니까 모를 수가 없다 쳐도. 오늘일 이건 뭡니까? 그리고 잠시만 아들 맡아달라더니, 찾아온 지금 모습은 또 제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되는 거죠?”
“그쪽이 이해하고, 말고 할 이유가 있나요? 내가 왜 그걸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죠?”
“와... 이 아줌마 안 되겠네. 무턱대고 아들 맡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내 볼일 끝났으니 맡긴 아들만 고스란히 내놔라?”
“.......”
“아줌마가 그냥 아무렇지 않게 아들 찾으러 왔으면 나도 물론 툴툴거리긴 해도 돌려보내줬겠죠. 근데 지금 이 꼴로 아들을 마주하면 아들이 놀랄 일은 생각 안합니까?”
“아...!”
순간 우진의 말에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 쥐면서 고갤 떨구는 이슬. 가만히 이슬이 자신의 사정을 말하기 위해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려보는 우진.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이슬이 결심한 듯 깊은 숨을 ‘훅’ 몰아 뱉고, 조용히 말문을 연다.
“2016년 3월 25일. 남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오늘이 딱 6개월이 흐른 날이네요. 시댁식구들은 그 모든 일들이 제가 계획하고, 저지른 일이라면서 몰아세우고 있어요. 그러면서 오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데려가겠다며 갑자기 집을 찾아왔네요. 그래서 어린 하준이를 그 자리에 둘 수 없어서 그쪽한테 부탁했던 거예요.”
“네?! 뭐, 뭐요?”
“다시해요? 이해 못했어요?”
“아니, 잠깐만요! 그러니까 불의의 사고를 당해 남편과는 사별을 했고,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댁식구들이 그렇게 몰지각하게 나온다? 지금 이 모습도 그래서 이렇게 된 거고?”
“저기. 근데 듣다보니 말이 짧아지네요?”
“나 참. 이 와중에 그게 중요합니까?”
어이없어 하며 인상을 구기는 우진의 반응에 이슬은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한사람은 있구나 싶은 마음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우진은 그런 이슬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단 듯 구겨진 인상을 풀지 않는다.
“이제 됐죠? 그만 가죠.”
“잠깐만 있어봐요 그럼.”
우진은 내리려는 이슬을 다시한번 잡아 앉히고, 주유를 할 때마다 줬던 휴대용 휴지를 뽑아내어 한 움큼 쥐고는 이슬의 입가에 비치는 핏자국을 닦아주려 손을 뻗는다. 반사적으로 이슬은 몸을 뒤로 젖히며 우진의 호의를 피하는 제스처를 보인다.
“아들 만나야 되잖아요. 하준이 놀라지 않게 이건 닦고 가야죠.”
“어? 우리아들 이름도 알았어요?”
“아줌마. 아줌마가 아까 데리고 오면서도 말했고, 우리 통성명도 했고, 아줌마보단 하준이랑 더 친할걸요 아마?!”
“대~단하시네요. 아주.”
“뭐지? 이 빈정대는 느낌은?! 아줌마 나 지금 무시해?”
“아뇨. 그런적 없는데요?!”
“내가 이래봬도! 아니다. 말을 말자. 됐어요. 이제 갑시다!”
단단히 심통이 난 듯 먼저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가는 우진. 그런 우진을 보는 이슬은 그냥 덩치만 큰 아이를 보듯 눈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한다.
* * * * *
한밤중인 공비서의 휴대폰에 익숙한 이름 세 글자가 뜨며 전화벨이 울린다. 혹시나 위급한 일이 생기기라도 했나 싶은 마음에 황급히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다.
“떨우진~ 떨우진~ 없어~ 으아아아앙~”
“여보세요? 대표님? 여보세요?”
“떨우진~ 떨우진~ 빨리 찾아줘~”
알 수 없는 아이 울음소리와 함께 들린 이름. 일단 우진의 집에 와서 상황을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한 공비서가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아파트 입구에 대충 차를 주차하고 건물 안으로 뛰어올라간다. 엘레베이터가 지하2층에서 멈춰있었고, 뛰어 가는 게 빠르겠다 싶은 공비서가 층계를 하나하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현관문 앞에서 도어락 번호를 ‘꾹꾹’ 눌러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우진을 찾는다. 하지만 전날 레스토랑에서 마주쳤던 작은 꼬마가 우진의 방에서 칭얼거리며 걸어 나온다.
“떨우진~ 어? 누구세여?”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너 누구니?”
“나는! 민하준이에요.”
“민하준? 여기 집주인은 어디가고?”
“몰라여. 자다가 일어나니깐 없어졌어요.”
‘띡띡띡띡띡띡띡. 띠리링.’
동시에 현관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하준과 공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