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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 산의 정기
홍천내면 석화산 밑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송 광두는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아버지가 하시던 농사일을 거들었다.
마구간에는 황소 한 마리가 새벽이 되면 벌써부터 아버지가 나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버지는 새벽마다 일어나셔서 쇠물 가마에 불을 지피시고 쇠죽을 끓여서 소에게 여물을 퍼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일어나시기가 무섭게 어머니도 뒤따라 일어나셔서는 부엌에 나가셔서 밥을 하시느라 분주하시다.
내면의 초중고를 나오고 난 후에 아버지가 하시는 농사일을 돌보고 있던 송 광두는 오늘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자마자 사랑부엌에 가서 쇳물가마솥에 불을 지폈던 것이니 아버지가 새벽마다 일어나셔서 하시는 일을 대신 해드리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6. 25때 함경남도 함경의 변두리에서 형제가 자랐으며 그때 할아버지는 인민위원회의 간부로 계셨으나 언젠가 김일성에 대한 교시를 각 군에 인쇄를 해서 보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루 늦게 한 것을 트집 잡아서 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배급도 주지를 않았다.
식구들이 때를 끓일 수 없도록 살기가 어렵게 되자 할 수없이 통천군의 한 시골에 있는 친척집으로 가서 겨우 연명을 하게 되었을 때 6.25 사변이 일어났던 것이다.
전쟁이 나자 열일곱 살이 된 아버지는 국군이 북진을 할 때에 입대를 하여 바로 압록강까지 진격을 하였으나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후퇴를 하는 중에 다시 서울을 빼앗겼을 때에 아버지는 부상을 입어 후송이 되었던 것이다.
후송 후에 1년 이상이나 치료를 받을 때에 전쟁이 끝나고 제대를 하게 되자 아버지는 군대의 동기로 친하게 자나던 친구의 고향인 홍천군 내면으로 와서 잠시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내면 소재지에 한 상가를 얻어서 잡화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운이 좋아서 그런지 장사가 잘 되어 돈을 벌게 되자 친구가 소개하는 색시에게 장가를 들어 아들을 낳은 것이 광두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렇게 돈을 많이 벌게 되자 당시에 서울에서 이쪽의 농산물을 대량으로 구입해서 서울로 싣고 가서 팔던 장사꾼들과 친하게 되고 그들과 함께 1년에 한번 가을 한철에는 바닷가로 여행을 가서 한 이틀 가량 놀다 오곤 하였다.
서울 장사꾼들은 수완도 좋고 돈도 잘 쓰면서 밤이 되면 술집으로 가서 술을 진탕 먹는가 하면 색시 집을 전전하다가 투전놀이도 하였는데 이때에 아버지도 그들의 비위를 맞춰서 몇 번인가 투전을 하여 번번이 돈을 따는 재미를 붙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좀 잡수시는 중에 서울에서 다시 장사하는 친구들이 몰려 왔는데 그 중에는 낯모르는 사람들도 몇 명 끼어 있었다.
그들의 말로는 다들 서울에서 내려온 장사꾼들이며 그들은 노는 삼아 지방으로 왔다면서 저녁을 먹은 후에는 늘 대로 투전판을 벌려 아버지도 그 패에 휩쓸려서 한참 투전을 하는 판인데 난데없이 순경들이 들이 닥쳐 판돈을 압수당하고 투전판을 벌리던 사람들은 모조리 붙들려서 파출소로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파출소에서 심문을 하는 과정에서 이번에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전국을 누비며 돌아다니는 전문 투전꾼으로 이들은 사기를 치면서 남의 돈을 뺏는 악질로 지명수배를 받던 사람들이었다.
이리 되자 투전을 한 모든 사람들이 이들과 함께 기소가 되고 아버지는 1년간의 징역형을 받아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사이에 아버지가 하시던 장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살아오셨던 분인데다가 지방에서 어려운 일이 있게 되면 앞장서서 해결사의 역할을 하실 정도였는데 뜻밖에 일을 당하고 나오신 뒤에는 세상이 창피해서 다닐 수가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더니 장사를 접으시고 농사만 지으시게 된 것이다.
송 광두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안쓰런 나머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도와 드리기로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배원이 편지 한 장를 전해 주어서 발신자를 보았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기웃거려 보아도 잘 생각이 나지를 않아서 편지를 뜯어서 읽어 보게 되자 그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이었으니 그가 5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에 창촌 초등학교에는 분교가 셋이나 있었는데 원자분교 경천분교 소한분교로 분교의 어린이들이 본교에 올 수 있는 기회는 운동회나 학예회가 있을 때에는 여기에 참석을 하였지만 그 외에는 별로 본교에 올 기회가 없었다.
분교 어린이들이 본교에 올 때에는 본교 어린이들과 짝을 정해 주어서 친하게 되면 서로 집까지 데려가기도 하였는데 그때에 송 광두와 짝이 된 아이가 이 편지의 주인공인 남 용구였다. 송 광두는 언젠가 남 용구를 집까지 데려와서 시장구경도 하고 여름방학 때에는 걔네 집에 가서 며칠간 있으면서 계곡물에서 고기를 잡고 산에 올라가서 나물을 뜯기도 하였는데
그때 남 용구는 내면의 소한분교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살았으며 이사를 오게 된 것은 용구의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수양을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였다.
용구의 아버지는 원래 서울태생이고 군인 장교로 계시다가 제대를 하고 방직회사로 들어가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 회사가 중간에 부도가 나는 바람에 문을 닫게 되자 하루아침에 직장을 고만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용구 아버지가 직장을 고만두고 얼마 안 있다가 너무도 뜻밖에 일을 당한 것이니 그것은 남의 보증을 서 준 것이 잘 못되어 졸지에 빚쟁이로 몰려 쫓기는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직장에 다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구 아버지가 근무하던 때의 회사의 규모는 종업원이 100여명이 되는 방직공장으로 배일같이 3교대로 기계가 돌아가기 때문에 회사의 수익은 매달 오르는 편이었다.
그때 회사의 재무계장인 강 동석 주임이 하루는 용구 아버지를 불러서 하는 말이 집을 사려고 하는데 돈이 좀 모자라서 대출을 받으려고 하니 보증을 서 달라는 것이었다.
용구 아버지는 보증을 서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고 했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거절을 하려고 하였으나 또 한편 생각을 하니 상사이기도 하지만 회사의 운영에 대해서 키를 잡고 있는 분의 말이라 거절할 처지가 되지 못해서 꺼림칙하였지만 보증서에 도장을 꾹 눌러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보증을 서 준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갑자기 강주임이 다른 회사로 픽업되어 간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때 강주임은 워낙 실력파로 회사가 적자로 허덕거릴 때에 들어와서 단 3년 만에 회사의 재정을 흑자로 돌리게 한 장본인으로 이런 소문이 나자 회사마다 강주임을 빼갈려던 참이었다.
강주임이 간다고 하자 용구 아버지는 그제야 보증을 서준 생각이 나서 보증 건은 어떻게 되느냐고 하자 그는 3개월 만에 다 해결이 되었으니 아무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하여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강주임은 용구 아버지에게 채용한 돈으로 집을 살려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는 도박에 빠지는 바람에 집을 산다고 빌린 돈은 모두가 빚을 갚기 위해 벌린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강주임이야 말로 착실하고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분이 어떻게 빚을 지게 된 것인가.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니 그것은 그이가 너무도 잘 나가자 그에게 도박을 권한 사람은 중학교 때에 친한 친구 오 생주였다. 오 생주는 아버지가 무역업을 하는 갑부의아들로서 그 아버지의 후광을 입어 밥만 먹으면 빈들빈들 놀다가 때때로 도박을 하거나 아니면 일본과 동남아로 해외여행을 떠나 골프를 즐기었다.
그러다가 연말이 되면 의례히 친구들을 초청을 해서 저녁을 먹이고는 2차로 맥주홀로 데리고 가서는 밤이 새도록 춤추고 노래하며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 하였다.
그의 친구 중에도 가장 가까운 친구가 강주임으로 그야 말로 친구가 권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사이가 되는 중에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투전판에 들어앉아보니 재미도 나고 미모의 여성까지 알게 되자 그는 거기에 푹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저녁마다 술판이 벌어지고 그러는 사이에 재미로 하는 도박이 나중에는 판돈이 점점 커져 한몫을 단단히 잡기만 하면 큰 부자가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그는 남의 돈을 있는 대로 끌어들여 일확천금을 획책하려 하였으나 그것이 도박꾼들의 술수에 넘어간 것을 몰라 나중에는 완전히 망하는 길로 들어서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다른 회사에 픽업되었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자 그의 빚은 고스란히 빚보증을 선 사람들이 물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용구 아버지는 그 바람에 그 남아 있던 재산을 다 날리고도 모자라 쫓기는 몸으로 할 수없이 내면으로 피신을 왔던 것이니 처음에 건강 때문에 수양을 왔다는 말은 그냥 지어낸 말이었다.
한동안 내면에서 생활하던 용구 아버지는 비록 시골에 와서 있었지만 서울에서 직장에 근무할 때에 동료들과 수시로 연락을 하였으며 그러다가 시골로 내려온 지 1 년 만에 그러니까 용구가 6학년을 졸업하던 해에 용구 아버지는 옛날에 군대에서 모시던 당시의 대령출신인 연대장님과 연락이 닿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용구 아버지는 남대문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에 취직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 연대장님은 신세계의 인사팀장으로 근무를 하였기에 용구 아버지가 쉽게 들어갈 수가 있었는데 용구 아버지는 한편으로는 여기에 근무를 하면서도 별도의 직업을 가졌으니 그것은 야간에 시장을 감시하는 방범대원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에는 무슨 일이건 간에 부하에게 시키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손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열심히 돈이 되는 일이라면 아무 것이나 다 한 것이다.
그러다가 1년을 더 근무하고 나서는 남대문의 허름한 상점 하나를 임대하여 액세서리 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액세서리는 여자들의 기호품으로 외국으로 수출을 하는 품목으로 처음에는 인기가 별로 없었지만 외국의 관광객들이 증가함에 따라서 액세서리는 날개를 돋친 듯이 잘도 팔려 돈을 벌게 되고 얼만 안가서 빚까지 다 갚게 되고 상점을 한두 개씩 늘겨 나가게 되자 종업원을 더 두게 되었을 때에 용구는 송 광두가 생각이 나서 연락을 하였던 것이다.
편지의 골자는 송 광두에게 서울에 좋은 직장의 자리가 있으니 속히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광두는 그러지 않아도 시골에서 아버지를 도와서 농사를 짓고 소를 기르지만 그의 포부는 언젠가는 서울의 넓은 물에 들어가서 마음껏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은 욕망으로 부풀어 있었지만 마음뿐 그로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분교출신의 용구가 자기를 기억하고 서울에 올라오라고 하니 광두는 얼씨구나 하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나머지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광두의 아버지는 최근에 와서 새벽에 일어나려면 옛날 같지 않게 행동이 굼떠지고 밥맛마저 없게 되자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서 죽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을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를 떠올려 보아도 며칠간 몸살이 난듯이 몸이 무겁다고 하시더니 진지를 잘 잡수시지 않다가 한 달 만에 돌아가신 생각을 하니 덜컥 겁이 나는 것이었으니 다른 것이 아니고 아들 하나를 장가도 드리지 못하고 죽을까봐서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며칠 동안 하신 아버지는 조반을 잡수신 다음에 광두의 엄마를 불러서는 조용히 말을 한 것이니 서둘러서 아들을 장가를 보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아들이 아직 나이도 어린데 무언 장가 이야기가 나온대요.”
광두 어머니는 남편의 갑작스런 말에 어이가 없어서 대꾸를 한 것이다.
“ 당신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 내 나이가 얼마요. 내일 모래면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아니요. 다시 말하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들 하나 있는 것을 장가도 들이지 못하고 죽을 수는 없으니 당신이 서둘러서 어디서 색시를 구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 참으로 딱도 하십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렇게 어떤 색시가 우리 집을 보고 호락호락 시집을 오겠어요.”
“ 왜 우리 아들이 어째서요. 집에서 일 잘하지 부모에게 효도하고 제 앞가림을 다 하는데 어느 누가 우리 아들만 하대요.”
“ 당신도 참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네요. 지금 우리 동네에는 처녀들이 별반 없어요.”“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던데 내가 보기에는 면사무소의 뒷집에 사는 윤 씨네 둘째 딸이 잘 자란다던데 걔를 한번 알아보면 안 되겠소. “
“삶은 호박에 이도 들어가지 않을 소리는 하지도 말아요. 걔는 벌써 안동에 사는 양반 자제와 약혼을 하였다고 해요. 언제 우리에게 그런 규수가 차지가 되겠어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나도 한번 색시를 알아보긴 하겠지만 백사장에서 금덩이 찾는 격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 당신이 나에게 시집을 올 때를 생각해 봐요. 그때 우리가 무슨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당신이 더 잘 알거요 . 따지고 보면 우격다짐으로 만났다고 하는 것이 맞을 거요.”
“ 왜 그런 말을 하지요.”
“ 이제 말이지만 그때 나는 강 건너에 사는 양씨 댁의 딸과 백년해로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고 부모님도 그렇게 한다고 하였는데 혼인날 가마에 앉아 있는 여인이 양씨의 딸이 아니고 환장하게도 산 너머에 사는 박 씨의 딸 당신이었으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나는 한동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생각을 하는 중에 나중에야 당신의 아버지가 주인아비와 우리 아버지를 어느 날 술집으로 모시고 가서 양씨의 딸이 약간 발을 저는 것을 구실로 그 쪽과의 혼인을 반대하게 되니 주인애비인들 두 분의 의사를 듣게 되었으니 결국 주인애비의 농간에 의해서 우리가 맺어진 것이요. “
“ 세상에 당신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구요. 그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도 사실은 그때에 뒷마을에 서울도령을 사귀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시집을 급히 가야 된다면서 사주를 받았다지 뭐에요.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꼼짝도 하지 못하던 나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서울 도령에게로 가서 하소연을 하자 부모님이 그렇게 정하셨다면 낸들 어떻게 하느냐면서 눈물만 뚝뚝 흘리니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에이 모자란 사람아.’ 하고는 가마를 탔던 거예요.”
“ 허허. 그런 일이 있었구먼. 지나 놓고 보니 이 이 모두가 다 팔자라고 할 수밖에 더 있겠소.”
“ 아들 장가보낸다고 하다가 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네. 이제는 할 수 없어요. 원자마을에 내가 보아온 색시가 하나 있는데 그 애를 며느리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
“ 역시 당신이 색시를 봐 놓았군 그래. 어쩐지 이따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 ‘히히 ’하기도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다가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기에 아무래도 이 여자가 갑자기 무슨 병이 걸린 것은 아닌가 하고 속으로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다 그런 일 때문에 그랬구려. 어쨌거나 올 가을에 아들 장가를 들이도록 해봅시다.”
편지를 받은 날 저녁에 광두는 부모님께 서울로 올라가겠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서 부모님께 서울로 올라가서 취직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자 엄마는 펄쩍 뛰시면서 올 가을에 장가부터 간 뒤에 서울로 가라는 것이다.
“ 엄마 저 아직 장가 갈 생각을 꿈에도 한 바가 없는데요.”
“ 인석아.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너를 얼른 장가를 보내신다고 지금 색시를 물색 중이시다. 원자마을에 참한 색시가 있어서 엄마가 미리부터 주인애비와 말을 맞추고 있으니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기다려.”
“ 엄마. 저는 내일 당장 서울로 올라가게 되어 있어요. 엄마도 아시지 않아요. 소한분교 다니던 용구 말이에요.”
“ 가가 서울로 이사 간지 벌써 몇 년이 되었는데 그런 소리를 하냐.”
“ 엄마 이 편지가 걔한테서 온 편지에요. 아버지가 액세서리 회사를 크게 하시는데 얼른 올라와서 용구와 같이 가게 일을 보라는 거예요. 그러니 장가 말씀은 다음에 하시고 우선 저는 내일 서울로 올라가니 그리 아세요.”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듣고는 광두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리자 입맛만 쩍쩍 다시더니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으신다.
다음날 새벽 광두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서울로 간다고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자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여비를 하라고 돈을 꺼내 주시면서 말씀을 하신다.
“ 서울 가거들랑 단 1년만 있다가 내려 와서 장가를 가도록 하여라."
어머니도 눈을 끔찍하시면서 그렇게 하라는 신호를 보내신다.
서울로 올라가자 용구의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자 반갑게 맞아주셨다.
“ 그래그래 광두가 이렇게 크도록 몰랐구나, 오늘부터 용구에게 회사의 운영내용을 자세히 설명을 듣고 앞으로 물건관리와 판매되는 집계를 네가 맡아서 하였으면 좋겠다.”
광두는 사장님의 말씀을 받들어 열심히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으며 회사 물품의 구매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였다.
회사의 종업원은 열 명 정도로 거의가 여자인데다가 모두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출내기로 그들이 모이는 곳에는 웃음이 바가지로 터지고 있어 그럴 때마다 여학교 교문을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시골에서 아침밥을 먹고 나면 소를 끌어다 언덕바지 풀밭에다 매고는 콩밭에 북을 주고 참외밭에 꽃을 따주다 보면 한나절이 되어 집에 가서 보리밥 한술을 냉국에 말아서 먹고는 다시 밭으로 가서 일을 마주 하고 집으로 돌아 갈 때에는 꼴을 한 짐 베어서 지고 집으로 가곤 하였는데 서울로 온 후에는 그때보다도 더 바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광두의 생활이 하루아침에 딴판으로 변하자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어려웠지만 차츰 날짜가 감에 따라서 일에 재미가 붙기 시작을 하였다.
용구는 회사의 총괄부장의 역할을 하였는데 학교 다닐 때에는 그토록 순진하던 성격은 어디 가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었다.
용구는 퇴근 이후에는 자주 광두와 같이 저녁을 먹기도 하고 때로는 나이트클럽에 가서 밤늦도록 맥주를 마실 때도 있었다.
용구는 여자들과 춤까지 추웠지만 광두는 그것을 엄두도 내지를 못하였는데 어느 날 부터 호기심이 생기고 춤을 배우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 야 광두야 오늘은 제법 스텝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구나. 촌놈이 도회지에 오게 되면 이렇게 변한다니까 하하.”
“ 다 네가 코치를 해서 그렇지 나는 아직은 왕초보야.”
“ 사실은 그때가 좋을 때다. 춤을 배우고 나면 이게 많이 들어간단 말이야.”
용구는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이면서 앞으로 주의를 해야 될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광두는 용구의 말이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몰랐으나 맥주 집을 다니다 보면 돈이 많이 들어갈 것이라는 상상은 하였다.
한편 아버지는 시골에서 밤낮으로 일을 하시느라 허리가 다 꼬부라지고 어머니 또한 하루 종일 밭일을 하시느라 아버지 못지않게 어머니도 허리가 꼬부라져 계신데 아들이란 자는 부모님의 고생을 생각지 않고 맥주 집에서 돈을 낭비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 것 같아서 중간에 조용히 맥주 집을 빠져나오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날도 맥주 한잔을 하고는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회사에서 얼굴이 제일 예쁘고 인사성이 바른 민 송자를 만났던 것이다.
“ 민 양을 길거리에서 만나네.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그러자 깜짝 놀란 민 송자는 어머니의 약을 사러 가는 중이라고 하였다.
광두는 그러지 않아도 평상시에 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난 것이니 그를 그냥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어디 가서 차나 한잔 하자고 한 것이다.
송자는 모처럼 판매부장을 만나게 되어 반갑긴 하지만 어머니의 약 때문에 망설이자 광두는잠시면 된다면서 그의 손목을 낚아 챈 것이다.
“ 엄마야.”
송자는 갑자기 그의 손목을 잡히자 깜짝 놀랐던 모양이다.
맥주를 한잔 마신 후이긴 하지만 광두 역시 멀찌감치 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처녀의 손목을 잡고 보니 기분이 묘해지는 것이었다,
“ 아! 미안 갑자기 손을 잡아서 놀랬어요.”
광두가 송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하자 송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만 있었다.
맥주 집에서 나와 다방에서 차를 마시는 중에 송자에게 어머니가 얼마나 편찮으시냐고 묻자 그 소릴 들은 송자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 왜 그래요. 내가 말을 잘못하였나요.”
그러자 송자는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더니 어머니가 오래전부터 앓으시는 중이며 얼마 못사실 것 같아서 갑자기 눈물이 나온다면서 죄송하다고 하는 것이다.
송자의 말을 들어보니 송자의 어머니는 암 판정을 받으시고 투병중이신데 지금은 미음을 잡수실 정도로 극도로 솨약하셔서 통증을 호소하실 때마다 진통제를 사다가 드린다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송자는 효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고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이 나면서 송자와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는데 그리고 나서 열흘 후에 송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광두는 그 소리를 듣게 되자 진작 한번 문병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였다.
직원들이 송자네 어머니가 게신 장례식장으로 갈 때에 광두는 용구와 함께 차를 탔는데 용구가 느닷없이 하는 말에 깜짝 놀란 것이다.
“ 광두야 사실은 말이야. 내가 벌써부터 송자와 결혼을 하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병환중이라 말을 삼가고 있던 중에 갑자기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어떻게 처신을 하면 좋겠냐.”
광두야말로 회사로 들어오면서부터 자신도 어느 결에 그에게 마음으로나마 다가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용구가 그런 마음을 가졌었다니 머리를 한번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 말 좀 해보라니까, 왜 대답이 없냐.”
광두야 말로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용구가 광두의 팔을 툭 치는 것이다.
“ 야! 자냐.”
그제야 광주는 아무 말이나 대답을 해야 했다.
“ 걱정할게 뭐 있냐. 장사 모실 때에 ‘장모님 죄송합니다.’ 한마디 하고 송자에게도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면 좋지 않냐.”
“ 야 광두야. 너 다시 보아야 하겠다. 그래 내가 속으로 장모님이라 할 것이 아니라 송자에게 바로 그 말을 해야 하겠다. 단 네가 먼저 그 말에 대한 다리를 놓아주었으면 좋겠다.”
용구의 말을 들은 광두는 어차피 송자라는 여인은 이미 용구가 점을 찍은 사람이니 자기는그 옆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용구와 사랑싸움을 해봐 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한쪽에서 꿈틀거린다.
그런데 송자의 어머니 장사를 모신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고향에서 어머니가 전화를 하신 것이다.
“ 광두냐.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진작 네가 장가라도 들었으면 이 어미의 마음이 이렇게는 문어지지는 않을 텐데 이제는 다 허사가 된 것이여. 아버지가 오늘 내일 하시니 어서 내려오너라.”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광주는 서울로 올라올 때에 아버지의 하신 말씀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아버지 제발 돌아가시지는 마세요.” 하며 가다보니 한없이 아버지가 불쌍하시다는 생각에 눈물이 비 오듯 하는 것이었다.
광두가 고향에 닿기까지는 여섯 시간이나 차를 타야 하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지루한지 몰랐다. 그는 이번에 가게 되면 부모님이 정해주시는 색시에게 장가를 들겠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그렇게 마음이 돌아선 것은 어쩌면 송자 때문이기도 하였으니 회사에 첫 출근을 하면서부터 송자가 마음에 들어 서서히 시간을 내서 그에게 구애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용구가 벌써부터 눈독을 드리고 있었다는 데에 마음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서울로 올라갈 때만 해도 광두는 무슨 수를 쓰던지 간에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을 호강시켜야 드려야겠다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막상 서울에 와서 며칠을 지나다 보니 세상은 그리 만만치를 않았던 것이다.
각종 학원들이 즐비한 강남으로 한번 갔다가 많은 젊은이들이 방황하는 것을 보고는 젊은이들이 저렇게 방황을 한다면 나라의 미래가 암울한데 하는 마음을 갖기도 하면서 친구바람에 화사에 다닐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진 것도 잠시 하늘같기만 하시던 아버지가 생사를 오가신다는 것이니 그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은 슬픔이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가 입원하셨다는 병실로 막 들어가는 순간 병실 한쪽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고 어머니가 서계신 앞에는 흰 천으로 막 아버지의 얼굴을 덮는 순간이었다.
“ 아버지 아버지… ”
광두는 병실로 달려가서 아버지를 얼싸안고 통곡을 하였지만 아버지는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 진작 왔으면 아버지의 살아계신 모습을 보았을 텐데…”
아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신 인척 아주머니도 “진작 왔어야지.” 하시는 것이었으니 광두의 슬픔은 하늘에 닿고 있었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