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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표어: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미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Pastor. Rev. Ph.D. 조종국 목사
pastorjoh@naver.com
믿음의 능력
20150118 조종국 목사 설교
히 11:23-26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연 초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하기 원하고 그래서 변화된 것을 꿈꿉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위해 새로운 자신을 계획하고 새로운 목표를 정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실제적인 것에서 결단을 하고 목표를 정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번에 담배 값이 2000원씩 오른 상황에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금연이 제일 먼저 일겁니다. 그리고 더불어 절주나 금주 등도 그 목표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학생들은 좀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체계적으로 공부하기를 계획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계획을 실천하기에는 너무나도 의지가 약하고 비록 자신의 문제임에도 비협조적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옛말에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어 연초의 계획을 포기할 때 잘 사용하기도 합니다. 결국 마음은 원이로되 실천할 힘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자신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세상에서 얻어질 것으로 나를 돋보이게 하거나 위대해 보이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돈, 명예, 권세 등 가지길 원하고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 세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변화를 이끌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세상은 영원히 내가 거할 곳이 아니라 잠시 있다가 가는 곳으로 우리가 세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얻어질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사는 방법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2015년이 믿음을 경험하고 믿음으로 변화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성도님들이 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삶이 변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던 삶이 예수님이 주인인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삶의 모습도, 행동도, 생각도, 말도, 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성숙치 못해서 180도 변화되지는 안 되었어도 조금씩이라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내가 내 주인이었으나 이제는 예수님이 주인이 되셨기에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주인이니 가치관도 변했습니다. 그러니 자동으로 생각과 행동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교회를 다니는데도 이런 변화가 없다면, 그래서 믿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점검을 해봐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히브리서 11장은 하나님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의 삶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음이란 진정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인물들인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모세를 등장시킴으로 믿음으로 살 자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크게 쓰신 인물 모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히브리인으로 태어나 나일 강에 버려졌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막힌 섭리로 살게 하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민족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감당케 하심을 봅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봄으로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1. 모세의 믿음은 부모에게서 유전된 믿음
부모의 믿음은 자식의 믿음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부모가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자식들도 대부분 그 믿음을 본받습니다. 그러므로 부모 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어떠냐에 따라 여러분 자식들의 앞날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부모는 아므람과 요게벳입니다. 그들은 이미 ‘미리암’이라는 딸과 ‘아론’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셋째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해야 할 것인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 왕 바로 왕이 이스라엘 사람이 자식을 낳을 때 딸이면 살려두지만 아들이면 하수에 던지라는 명령을 공포한 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부모는 모세를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들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키우기를 작정합니다. 그리고 23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아름다운 아이’라는 단어를 어떤 번역에서는 ‘특이한 아이 또는 적합한 아이’로 번역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부모가 믿음으로 보기에 보통 아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특이하고 적합한 아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모는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석 달 동안을 숨겨 길렀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믿음이었습니다. 아이를 숨겨 기른다는 것이 적발되면 온가족이 몰살당할 위험이 있음에도 그렇게 길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얼마 전 한 유명 배구선수 출신의 한 교수님이 아들 팀 트레이드 때문에 구단과 마찰이 있어 싸움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그는 왜 혈기를 부립니까? 결국 자신이 낳은 아들이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자녀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된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낳았다하더라도 내가 키우고 있다 하더라도 절대 내 마음대로 내가 키울 수 있는 내 자녀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를 누구의 자녀로 키웁니까? 아무리 10대 독자, 무남독녀라 해도 다 내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자기 소유로 알고 그렇게 양육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양육하지 않고 혈기로 키웁니다. 욕심으로 키웁니다. 그래서 내 아이가 어디 가서 매 맞고 오면 대신 나가서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를 잘 키우기 원한다면 신앙의 모습으로 키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며 본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모의 신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가 자식입니다. 자식들은 여러분의 신앙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러니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엄마 아빠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은 자식들이 잘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여러분 자녀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대로 따라 살아도 되겠습니까? 부모의 신앙은 자녀들의 앞길에 축복의 도구가 될 수도 있으나 반대로 막대한 악영향을 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서 내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여러분의 자녀를 키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모세는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거부하는 믿음의 소유자
본문 24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모세는 뒤늦게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공주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결단합니다. 아무리 자기를 길러준 사랑과 성의가 고마울지라도, 그리고 그 공주의 아들이라는 왕족 신분이 아무리 귀하고 소중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포기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이유는 애굽의 부귀와 명예가 자기에게는 합당한 것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단호하게 포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로교회의 모든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부귀 명예에 목숨을 걸고 삽니다. 이 부귀영화, 그리고 명예권세만 있으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붙들려고 열심히 달려갑니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잠간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을 모릅니다. 그런데도 전심전력하며 움켜잡으려 하다가 병들고 실패하고 나서는 후회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부귀 하나님이 주시는 명예는 누려도 됩니다. 그런데 합당치 않는 부귀영화 명예 권세는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그것이 모세 믿음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세속적인 것으로 오염시키려 합니다. 예수님이 금식기도 할 때 마귀가 유혹한 것이 뭡니까? 식욕, 명예욕, 권력욕입니다. 이것은 부귀영화 명예 권세를 통해 누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깨끗케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이 귀히 쓰십니다. 딤후 2:21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엎디어서 나를 더럽히려는 유혹에 넘어지지 말고 자기 심령을 깨끗하게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 모세는 바른 선택을 하는 믿음의 소유자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범사에 선택을 하며 삽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하루에도 수 백 번 선택을 하며 삽니다. 밥을 뭘 먹을까 부터 시작해서 차를 뭐를 타고 직장에 갈까? 그리고 점심도 뭘 먹을까? 일을 어떻게 할까? 누구를 만날까? 수업이 많은 선택을 하고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보기에 올바른 선택으로 보여 졌는데, 그것이 잘못된 선택일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잘못된 선택처럼 봤는데 그것이 결국 바른 선택일 때가 많습니다.
모세도 선택을 했습니다. 공주의 아들로 편하게 왕궁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한 선택을 했습니다. 25-26절에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여기 “더 좋아하고”,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처럼 선택을 해야 할 기점에서 더 좋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의 기준이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기에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왕궁에서 낙을 누리며 사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으로 선택을 했습니다.
애굽에서 누리는 낙은 죄악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을 태양신으로 섬기는 우상 숭배를 하는 죄에서 나온 낙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바로 왕을 태양신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섬기는 왕족과 귀족은 우상 숭배를 통한 섬김을 받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믿음으로 이것을 단호히 거절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거절할 것을 잘 거절해야 큰 믿음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악을 거절해야 합니다. 분명 죄악인데 잠시 잠간 눈을 감고 악을 행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참 믿음은 거절을 잘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 살기가 좀 불편해집니다. 예전에는 별 문제 없던 작은 죄악이 커 보입니다. 옛날에는 아무 양심의 가책이 없이 살았는데 예수 믿으니 그 악이 커보여서 불편합니다. 술 먹는 것, 담배 피우는 것, 이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바로 서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옛날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내속에 들어오고부터는 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편하게 사는 것을 힘들게 합니다. 이것이 마귀의 계략인 줄 모르면 넘어갑니다. 아니면 적당히 손을 잡고 타협을 합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죄악의 손으로 타협하자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많이들 넘어갑니다. 그래서 교회 나오면 “장로님”, “집사님” 소리는 듣는데 하나님 앞에 얼굴을 바로 들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단호하게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미련 없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적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적가치관으로는 절대로 거절이 안 됩니다. “적당히 한잔하는데 뭐가 문제냐?” “남들 다하는데 왜 그게 문제냐?” 하면 나중에는 사탄의 포로로 잡힙니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임을 거절하기까지 갈등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세상의 죄악을 끊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더 좋은 선택인지를 알았습니다. 모세는 세상의 영화보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을 더 사랑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능욕 받는 자기 백성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애굽에 대한 배신이요 역적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원수 됨보다 세상 원수 됨을 택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 되지 말고 세상과 원수가 되어 세상의 유혹에서 만들어지는 죄악을 철저히 끊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무궁한 생명의 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4. 모세는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소유자
26절 끝에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하나님은 상주시는 분입니다. 그 상주시는 분을 바라 보셔야 합니다. 히 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 상은 보상해 주시는 상입니다. 세상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사랑하면 그런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죽도록 충성하면 상을 주십니다. 이 상은 현세에서도 주시고 하늘나라에서도 주시는 상입니다. 그렇기에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핍박을 받습니다. 그래서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상을 주신다고 했던 것입니다. 마 5:11-12에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예수로교회의 모든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께 상 받기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게 능력 있는 성도가 되는 비법입니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은 간증에서 대학 4학년 때 루게릭이라는 불치병 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절망 속에서 날마다 성경 읽고 기도하며 바른 신앙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는 2년 후 하나님께로부터 그 질병을 말끔히 치료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 큰 그룹의 회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생명의 의미를 알아 사회와 이웃을 위해 기부한 돈이 수천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26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을 받았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 이야기를 하면서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겪은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아직 그리스도 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죄악의 땅에 살던 우리를 구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 되게 했습니다. 그러니 모세의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인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희생할 줄 아는 신앙이야 말로 참으로 귀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헌신, 우리의 봉사. 우리의 예배는 다 예수님을 위하여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를 통해 보여주신 믿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오늘 우리도 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로 힘들어하고 낙망할 것이 아니라 믿음의 능력을 경험함으로 주님의 주시는 은혜를 다시금 받는 2015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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