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다시 읽는 삼국지>를 읽고
남상호(강원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내가 팔봉 이상석 선생을 만난 것은 2014년 춘천문화원 한시반에서 강의할 때였다. 팔봉 선생이 서울에 살다가 팔봉산 부근으로 낙향하면서 춘천문화원 한시반으로 한시를 배우러 온 것이다. 수업에 처음 참석하면서 낙향 소감을 5언으로 30여 구를 지어왔다. 스토리텔링도 탁월한 데다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읽었던 삼국지를 아직도 줄줄 외우고 있었다. 2016년 2월 춘천문화원 한시반 회원들과 중국 항주, 소흥, 제기에 한시기행을 가게 되었다. 그때 지은 한시를 보니, 한시에서 풍기는 기상이 마치 장팔사모를 든 장비 같았다. 그래서 삼국지를 한시로 새롭게 구성해보라고 권하게 되었다. 2017년 가을부터 작업을 시작하더니, 1년 만에 초고를 끝내고, 그 후 6년 동안을 다듬었다. 1년 동안 초벌 작업의 시문을 지을 때는 매번 나에게 보내와 읽어보는 영광을 얻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정말 놀랐다.
나는 어릴 때 만화 『삼국지연의』를 일부 읽어본 것이 전부라서, 삼국지를 잘 모른다. 하지만 팔봉 선생이 지은 『한시로 다시 읽는 삼국지』를 읽어보니,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군들의 기개를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영화라도 TV로 보는 것과 음향 시설도 갖춘 대형 극장에서 보는 것이 다른 것처럼, 산문과 운문의 차이도 그렇다. 한시에는 글자 수는 물론 평측이나 압운 등의 운율이 들어 있어 소리 예술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팔봉 선생의 높은 예술적 감각이 미감을 고압으로 압축해 놓았기 때문에 감상 후 뒷맛이 정말 황홀하다.
『한시로 다시 읽는 삼국지』의 체제는 중국에서 발행된 『삼국지연의』 원전에 맞추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어느 대목인가 확인할 수 있다. 내용도 중국에서 출판한 『삼국지연의』 원전을 읽어가며, 원전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도록 시어(詩語) 관리도 철저히 하였다. 그 때문에 중국인이 읽어도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도 군데군데 한시가 들어 있어 산문의 지루함을 씻어준다. 마찬가지로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삼국지연의』 원전에서 느끼지 못한 박진감과 명쾌감을 『한시로 다시 읽는 삼국지』에서 쉽게 얻게 될 것이다.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애독하는 『삼국지연의』를 한시로 새롭게 표현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7언으로 1만 구 이상의 장시長詩로 지었다는 것은 중국 문학사에도 없는 위대한 업적으로서 한시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아울러 중국에서조차 한시 문화가 기진맥진하여 숨넘어가는 순간에 그런 대작을 내놓은 것은, 한시 문화의 부흥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2023.2.
남상호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