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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채 명인의 설정구는 화려하고 흥이 넘친다. 장단도 호사스럽고 보는 이로 하여금 덩실덩실 어깨춤이 나도록 함도 독특하며 무엇보다 그는 예인으로서의 품격이 멋들어지다. 전남 장성 태생으로 원각사 주석을 지낸 창악계의 거봉 국창 김창환이 그의 조부이시고, 그의 부친 김만길씨는 유명한 우도농악의 상쇠이셨다.
7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끝소고를 치기 시작했다가 10여세 때 임준용 선생을 만나 가야금, 피리, 북을 배웠고, 그의 설장구는 장인 김홍식씨와 김만석 선생으로부터 배웠다. 11세 이후에는 이대일(상쇠)씨와 모친을 따라 어정(굿)판을 쫓아다니면서 발림, 넌실(춤)을 배웠으며, 이후 박후성 창극단, 김연수 창극단에서 활동하게 된다.
신나게 두드리고, 보는 이를 신나게 만드는 그의 설장구는 개인놀이도 뛰어나지만 굿판 속에서 쇠와 주고받는 즉흥연주가 더욱 맛이 있고 멋있다. 김오채 명인은 장구뿐만 아니라 아쟁을 비롯한 국악 전반에 정통한 전통 재인이셨다. "원래 장구 가락은 장판방에 콩 떨어지듯 개운한 맛이 있어야 합니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넌실이 절로 나오도록 자신부터 신명에 빠져 버려야 합니다." 선생님은 1994년 5월 11일 세상을 떠나셨다.. |
[출처] 우도농악 보존회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