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하숙생이 되어 버린 가족들
“엄마! 정말 하나하나 똑바로 보고 최선 다해 시험을 쳤다니까요?”
“최선을 다했다는 게, 엄마랑 할 때는 모두 알던 문제를 이렇게 틀렸다는 말이니?”
시험지를 들고 엄마와 딸이 씩씩대고 있다. 딸은 억울한 듯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를 쳐다보지만, 엄마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 듯 더욱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중학생 딸과 엄마는 마치 연중행사처럼 이렇게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고 나면 어김없이 한판 대결을 벌였다. 눈물을 뚝뚝 흘리고 서 있는 딸에게 엄마는 간곡히 말했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거잖아. 이러는 엄마도 정말 힘들어. 어서 들어가서 공부해!”
고함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딸의 모습만 보면 엄마의 완승처럼 보였다. 엄마의 간절한 사랑이 통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딸은 시험공포증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 집의 몇 년 전의 풍경이었다. 우리 역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형적인 한국 가정의 모습이었다. 시험기간이 되면 집안의 분위기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 날카로워졌다. 아이의 시험점수는 곧 그 아이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타이므로 실수를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겼다. 이런 상황이 되면서 가장 먼저 부부관계가 깨어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성적만으로 들들 볶고 그래?”
“도대체 아빠가 되어 가지고 세상물정을 그렇게 몰라서 어떡해요? 한국에서 공부 못하면 아이 인생이 어떤지는 당신도 잘 알잖아요?”
예전에는 되도록 아이들 앞에서는 언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자식 문제가 걸리자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방식만 고집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자명했다. 부모가 자기들 때문에 싸움까지 하면, 아이들은 그런 부모에게 미안해서라도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부모만의 오해였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은 점차 의견을 달리 하는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항상 누가 더 자신의 편이 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고 행동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불안 해 했다. 기회만 있으면 밖으로 나가버리고 최대한 부모와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부부는 내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한 투쟁을 4년 동안 이어갔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분명 ‘지극한 자식사랑’이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그 사랑이 피하고 싶은 부담이었고 자신의 존재감까지도 흔들리게 하는 고통이었을까?
대학 때 친구가 머물던 하숙집을 간적이 있었다. 주인댁의 방을 지나 이층 계단을 올라가면 친구의 하숙방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 집에서는 항상 조심스러웠다. 한번은 같이 있다가 저녁 식사시간이 되어서 밥을 얻어먹게 되었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는 괜찮다고 하시는데도 괜히 눈치가 보여 식사시간이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그 뒤로는 되도록 식사시간은 피하려고 애를 썼다.
내 집처럼 편안하게 드러눕고 마음껏 먹고 아무 때나 친구를 데려 오지는 못하는 그런 곳이 하숙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친구가 마음에 걸려 친구가 자취생활로 바꾸었을 때 집에 있던 고추장, 된장을 몰래 갖다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신기하게 우리 집이 그런 하숙집처럼 변해 갔다. 부부관계가 깨어지고 아이들을 계속 성적이라는 잣대만으로 평가하기 시작하자 부모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들어오면 다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바쁘고, 어쩌다가 말을 하는 것은 돈이 필요할 때뿐이었다. 남편도 어느 순간부터는 과묵한 원래 성격이 더해져서 과묵의 극치를 달리기 시작했다. 참 신기하게 서로 말은 안 해도 밥 먹고, 잠자고, 필요한 돈은 가져가고...... 눈은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말은 되도록 필요한 부분만 내뱉는 상황들...... 이런 상황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마도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별거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서적 별거 상태를 겪으면서도 밖으로는 멀쩡하게 아무 일 없는 듯 지내는 가족들....... 하숙생 같은 가족이 모인 우리 집의 풍경이었다.
언젠가 TV 방송에서 엄마와 2년 동안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밥상을 차려 놓고도 엄마가 “밥 먹어라.”하면 먹지를 않고, 어디를 나갈 때도 엄마 대신 누나가 “어디 가니?”하고 물어야 답을 한다고 했다. 아들이 이제 군대를 가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는 아들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싶다.
원인이 엄마에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들은 뜻밖의 말을 했다.
“사실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나쁜 친구들이 윽박지르고 힘들게 해서 고통스럽게 학교를 다녔어요.”
‘친구들의 괴롭힘 때문에 엄마와 말을 안 하게 되었다고? 오히려 더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갖고 TV를 보던 중, 아들이 놀라운 고백을 하는 걸 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를 마치고 집에 쉬고 있을 때, 엄마가 빈둥댄다고 윽박지르고 혼내시는데 엄마의 모습에서 괴롭히던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어요.”
이유를 몰라 2년을 애만 태우던 엄마는 결국은 울면서 아들에게 좀 더 세심하게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한 것을 사과했고, 아들 역시 말 안한 것을 미안 해 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때 진행자가 물었다.
“왜 그런 얘기를 가족에게 하지 않았나요?”
울먹이던 20대 아들의 대답은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가족 누구에게도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내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정서적 별거상태’, 이런 이야기가 대한민국에 겨우 한, 두 명뿐인 특별한 경우일까? 요즘 상담을 해 보면 몇 년 전 하숙집 같았던 우리 집의 풍경과 너무도 닮은 가정이 많다는 것을 절감한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컴퓨터 게임에만 빠진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데리고 오신 어머니의 비명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떻게 중학교 1학년 때 왕따를 당한 일을 이제야 얘기를 할까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이가 이유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 방에서 게임만 하고 애니메이션만 보고 있다며 걱정을 하셨다. 적극적이고 공부도 곧잘 하는 동생에 대한 열등감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아이는 더 깊은 아픔을 간직하고 2년을 아파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을 엄마인 저한테 말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요? 정말 이해가 안 되고 속이 상해요.”
“아니 어떻게”를 반복하며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탄식을 했지만, 아들이 엄마에게 말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 난 동생에 비해, 자신은 부모에게 별로 도움이 못되는 존재라고 생각했을까? 평소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모가 보여 준 부정적인 반응 때문에, 아들은 이 문제 또한 부모의 따사롭지 못한 반응을 예상했던 것은 아닐까?
“이 녀석아 넌 도대체 잘 하는 게 뭐니? 동생 봐라. 잔소리가 필요 없잖아.”
평소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남들이 다 하는 실수나 어려움에도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또 이전에 들어왔던 부모의 비난의 목소리 때문에 자신의 아픔을 그대로 나타내기를 두려워한다.
“엄마인 나한테까지 그런 일을 당하고도 말을 못하다니, 부모 자식 간인데 말입니다.......”
이런 상황을 어느 부모도 원하지 않지만 요즘은 빈번이 볼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런 집에 누구는 들어오고 싶은 줄 아세요?”
가출을 했던 딸이 원망 섞인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했던 말이다.
‘이런 집!’
아마도 그 집은 하숙생이 아닌 하숙생들이 모여 끙끙 앓으며 마음을 닫아 버린 공간일 것이다. 성적 때문에, 기질 상의 문제로, 때로는 부모의 비교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하숙 집 같은 ‘이런 집’에서 우리의 아이와 부모가 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