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양수리
"하얗게 흔들리는 갈대밭을 거닐다 보면 피로가 싹 풀려요"
내겐 따로 휴가를 즐길 만한 시간이 별로 없다. 바쁜 일정으로 이리저리 뛰다보면 밤 늦은 시간이 되기 일쑤고 그만큼 몸도 피곤해 먼거리 여행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일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름대로 휴식을 찾기 위해 나는 남편과 함께 자주 양수리로 드라이브를 한다.
시원한 한강 물줄기를 따라 가다보면 우선 피곤이 확 풀린다. 작은 골목길을 따라가다보면 예쁜 계곡들도 많은데 여름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물이 차다. 피부에 와닿는 시원함이 좋고, 아직 알려지지 않아 인적이 드물어서 좋다.
양수리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강변 옆에 늘어서 있는 갈대밭이다. 바람결에 이리저리 하얗게 흔들리는 갈대밭은 보기만 해도 아름답다. 가끔 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갈대밭을 거닐기도 한다.
이러다 보면 어느새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는 산 속에 숨어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간다. 차 한잔 시켜놓고 남편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 활력이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여행은 꼭 먼 곳으로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곳이라도 가서 즐겁고 마음이 편해져서 돌아온다면 그것도 여행의 참멋이다.
천년고목에서 노랗게 떨어지는 은행잎이 신비스러운 용문사
"남편 팔짱끼고 걷다보면 평소 서운했던 마음이 다 녹아버려요"
우리 부부는 연애시절부터 여행을 자주 다녔다. 여름에는 바다나 그늘진 계곡에 가서 더위를 식히고 겨울에는 눈 덮인 산을 오르면서 땀을 흘린다. 이런 여행 모두 소중한 추억이지만 그래도 가을에 사찰을 찾아가는 여행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사찰은 가을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윽한 소리를 내는 풍경소리, 고즈넉한 산길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경기도 용문산에 있는 용문사다. 가파른 용문산 산세가 웅장하게만 느껴지고, 한기가 느껴질 정도의 차가운 바람이 너무 좋다. 사방이 꽉 막혀 바람조차도 답답하게 느껴지는 도시와는 다른 상쾌한 공기! 우리 부부는 우선 이 공기부터 쭉 빨아들이면서 천천히 산을 오른다.
또 오솔길 옆을 흐르는 계곡물 소리는 언제 들어도 청량하다. 계곡은 큼직큼직한 바윗돌로 이어지는데 울창한 숲으로 가려져 있어 사계절 내내 햇빛이 들지 않는다. 계곡물은 발을 담글 수 없을 만큼 시리다.
쭉쭉 뻗은 침엽수로 우거진 오솔길을 20분 정도 걸어가면 용문사가 나온다. 요즘에는 사찰마다 단청도 새로 칠하고 기와도 다시 얹고 해서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 드문데, 용문사에는 그런 인위적인 냄새가 없어서 좋다.
무엇보다 용문사가 인상적인 것은 절 앞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 때문일 것이다. 신라시대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전설이 있는 고목에서 수많은 은행잎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면서 떨어지는 모습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가끔 은행도 떨어지는데, 우리 부부가 어찌 그런 행운을 놓칠 수 있으랴? 사람들 틈 속에서 정신없이 은행을 줍다보면 어느새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공짜로 자연산 은행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우리 부부는 주로 당일코스로 용문사를 갔는데, 지난해 가을에는 아이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두고 모처럼 1박2일 코스로 다녀왔다. 처음에는 아이를 달랑 떼어놓고 떠나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여행 중 그런 마음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오랜만에 남편과 팔짱을 끼고 걸으니 연애할 때 마음이 살아나는 것 같고 그동안 남편에게 가졌던 서운한 마음도 엷어졌다.
용문사 근처에 있는 콘도에서 푹 쉬고 돌아올 때는 막히더라도 경춘가도를 택했다. 강변따라 드라이브하는 재미가 솔솔하고, 피곤하면 쉬었다 갈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도 많기 때문이다.
결혼 10년만에 둘만의 추억 만든 서해 바닷길 여행
"손잡고 해변을 걷다보면 사랑이 새록새록 솟아나요"
지난해 가을, 개천절을 앞두고 모처럼 연휴를 맞은 우리 부부는 연휴기간 동안만이라도 서울을 벗어나기로 했다.
남편은 주말만 되면 가까운 공원이나 산에 가는 것을 즐겼고 하다못해 동네 약수터에 가서 배드민턴이라도 치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가만히 집에 붙어 있지를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남편이 모처럼의 연휴, 그것도 가을을 그냥 순순히 보낼 리가 없었다. 남편은 여행을 가자고 제의했고 이번에는 둘만 오붓하게 가자며 은근히 나를 부추겼다.
생각해보니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단둘이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늘 아이들하고 같이 갔고 장소도 아이들 수준에 맞춰 선택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만의 시간이 너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못 이기는 척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이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서해안 태안반도와 안면도로 향했다. 그곳은 1박 2일 코스로 힘들지 않게 다녀올 수 있고, 다른 해변보다 사람이 붐비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집에서 떠난 지 6시간 만에 만리포 해수욕장에 도착! 바다를 본 우리 부부의 입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연한 하늘색 바다, 잔잔한 파도 그리고 밀가루 같은 고운 모래가 끊임없이 펼쳐진 백사장. 얼마나 오랜만에 와 보는 바다인지, 흥분이 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만리포에 있는 아담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그 다음날 안면도로 향하면서 서해안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해변과 작은 포구들을 들렀다.
그곳에 있는 해변은 하나같이 이름이 예쁘다. 어은돌, 태안반도의 맨 끄트머리에 있는 아치내, 이름만 들으면 꽃이 많을 것 같지만 오히려 울창한 나무가 숲을 이루는 꽃지, 안면도에서 가장 아래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바람아래 해수욕장…
이들 해변가는 우선 조용하고 한적해서 좋았다. 둘이 오붓하게 해변가를 걸어보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가? 유흥음식점 하나 없는 조용한 해변가에서 바다를 보니 그 정취가 남달랐다.
태안반도와 안면도를 잇는, 해안따라 줄줄이 늘어선 작은 해변들. 둘만의 추억을 쌓고 싶은 부부들에게 진심으로 권하고 싶은 곳이다.
한밤중에도 무작정 떠나는 동해바다
"여행은 피로할 때 마시는 진한 커피 같아요"
우리 부부에게 있어 여행은 피로할 때 마시는 진한 커피 같은 존재다. 우리 부부 사이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 때나 몸이 너무 피곤할 때, 그도 저도 아니고 단지 싱싱한 횟감이 너무 그리울 때 우리가 무작정 향하는 곳은 동해안이다.
사전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밤에 떠날 때도 있고, 새벽녘 동틀 무렵 졸린 눈을 비비고 떠난 적도 많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옆동네에 시어머니가 계셔서 아이를 맘대로 맡길 수 있다는 점과 남편이 자영업을 한다는 점이다. 만약 남편이 칼같이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었더라면 아마도 우리들의 ‘무작정 동해행’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우리 부부가 시도 때도 없이 동해안을 찾는 이유는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는 것이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바다를 옆에 끼고 쭉 달려가면 환상처럼 다가오는 동해안 절경.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바다 냄새. 우리는 이곳을 드라이브할 때 전혀 서두르지 않는다. 가다가 한적한 어촌이 나오면 차를 세우기 일쑤다.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기도 하고 싱싱한 회를 먹으면서 쉬었다가 또다시 달리고…
여러차례 동해안을 갔지만 지난 해 가을에 갔던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밤중에 동해안에 도착해 해안도로를 달렸는데 환한 낮에 드라이브하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달빛에 일렁이는 검푸른 파도, 수평선에서 간간이 새어나오는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은 낮에 느낄 수 없는 신선한 정취를 안겨주었다.
그날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남편과 이야기를 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아니,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우리 부부는 일출을 보고 있었다. 그때의 일출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가끔 속초에 가면 대포항에 들른다. 그곳에서 생선회를 먹고 어시장의 잡어 파는 곳을 구경하기도 한다. 어민들이 팔려고 내놓은 잡어들 속에는 간혹 상어새끼가 끼여 있어 보는 눈을 즐겁게 해준다.
우리 부부는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한다. 그리고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물놀이를 하는 것보다는 그저 바라보는 것,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하는 것을 더 즐긴다. 바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함과 휴식을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