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黃氏)의 역사
황씨(黃氏)의 도시조(都始祖) 황락(黃洛)은
중국 절강(浙江) 사람으로 후한의 유신(儒臣)이다.
28년(신라 유리왕 5)에 한(漢)나라 장군으로
교지국(交趾國, 베트남)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중
풍랑을 만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 월송정에 해당하는
안아진(安我鎭)에 표류하여 그곳에 정착, 세거한 것이 시초라 할 수 있다.
장수황씨(長水黃氏) 시조 황경(黃瓊)은 도시조 황락의 후손으로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부마(駙馬)로 벼슬은 시중(侍中)을 지냈다.
그는 장수군(長水君)에 봉해져 장수황씨의 시원이 되었던
황을고(黃乙古)의 아들이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알 수가 없어
후손들은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지낸 황석부(黃石富)를 일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그 후 10세손 황공유(黃公有)는
고려 명종 때에 전중감(殿中監)으로 무신 이의방(李義方)의 난을 피해
고향인 장수로 내려가 터를 잡아 세거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15세손 황감평(黃鑑平)이 후학을 위한 덕망있는 학자 였다는 것 외에는
18세손 황석부(黃石富)까지는 고증할 자료가 없다.
중시조 황석부는 황희(黃喜)의 증조부로 사후에 호조참의로 추증되었다.
그 후 후손들은 황석부를 기세조로 하고
장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자료출처...장수황씨 [長水黃氏] (성씨와 본관, 2011.1.14,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처: 좋은사람들과 함께하기 원문보기 글쓴이: 평강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