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村의 詩 0012> 金永郞 ‘북’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자저지다 휘모라보아
이렇케 숨결이 꼭 마저사만 이룬 일이란
人生에 흔치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萬甲이도 숨을 고처쉴밖에
長短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演唱을 살리는 伴奏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닥타-요
떠밧는 名鼓인듸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있어
人生이 가을가치 익어가오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지
「북」 『永朗詩選』 1956년 正音社 복각본에서
金永朗은 南道의 詩人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모란꽃은 지금도 바닷가 康津에서 피어나고 있으니까...南道/ 南國/ 따뜻한 곳/ 바닷가 ... 이런 이미지는 아마 누구에게나 파라다이스나 理想鄕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뭐랄까?! 母性本能을 자극하는 부드러움?!... 그래서 ‘보고 잡다’는 말도 ‘내 마음을 아실이...’, ‘내 가슴 속에 가늘한 내음/ 애끈히 떠도는 내음’...이런 식으로 아련하게 그려지는 것은 아닐까?!
詩와 詩人과 詩人의 故鄕을 한 묶음으로 呼吸할 수 있다는 것은 讀者에게 幸運이다. ‘겨울 동치미’가 활자로 시각을 자극하고 논리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 ‘침을 꼴깍 삼키게 하는’ 그런!...
永朗 金允植은 1903년 강진읍에서 태어나 서울의 徽文義塾을 거쳐 東京 靑山學院 영문과를 중퇴했는데, 나에게 술을 가르쳐 준 吳之湖 畵伯은 1905년 同福에서 태어나 高羲東이 미술 선생이던 徽文義塾을 거쳐 東京美術學校를 나왔다.
그 吳之湖 畵伯은 남도의 자랑을 ‘육자배기...싱건지(전라도 본토 발음인데 동치미로 생각된다. 나도 사모님의 솜씨를 몇 번 맛보았는데 ’물, 소금, 무...‘ 이렇게 세 가지 단순 재료인데 지금도 그 淡白爽快함의 餘韻을 지금 느낀다... 吳之湖 先生만큼은 아니지만...), 김치, 한복’으로 박자를 맞추어 술안주를 삼곤 하셨다. 술잔이 거듭될수록 이들 남도의 보배는 대한민국 국보를 거쳐 세계문화유산으로 격상되었고 그 애정의 고조는 거의 눈물을 쏟을 지경이었는데 韓服은 「妻의 像」과 수필로, ...육자배기와 김치 싱건지는 그의 화폭에 絢爛한 붓놀림과 色感에 번져있음을 實感하게 했다.
육자배기는 사람의 목소리 하나로 심장에 생명의 박동을 잉태하는 영혼의 노래요, 판소리는 그 인생사를 북하나로 풀어내는 恨의 精華다. 서양에 바이블이 있다면 한국에는 무당의 읊조림이 있었고 서양에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의 합창 - opera가 있다면 한국에는 한 사람의 고수와 한 사람의 솔로 唱 monopera가 있다. 이 소리꾼은 吳之湖의 讚美인 韓服에 부채 한 자루면 아카데미 의상상이 된다. 북채를 휘두르는 鼓手는 스칼라座의 오케스트르와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대신한다. 아리랑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지 오래이니 家産을 기울여 南道 弘報에 나선 吳之湖 先生의 愛酒豪酒가 술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판소리를 사랑한 또 한 사람 ‘綠珠, 너를 사랑한다!’던 미남 소설가 金裕貞... 그도 판소리 매니어였고...그의 구수한 文體에도 그 가락이 배어있음은 눈여겨 볼만 하다.
知音 : 누가 藝術을 만드는가?! 愛酒家가 釀造場을 만들 듯이 詩를 사랑하는 사람이 詩人을 만들고 환쟁이를 만들고 소리쟁이와 갓바치와 陶工을 만든다. 중국의 전국시대(BC 475~221)에 列禦寇(열어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글에 거문고를 잘 탄 백아(伯牙)를 알아준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는데 들어준 사람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 연주하지 않았다는 지기지우(知己之友)의 고사가 전해온다. 김영랑의 「북」에는 이런 교감이 끈끈히 배어있다. 국창 宋萬甲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어떤가?! 강진에는 어린이날 전후 4일 영랑문학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우리 거기서 이러면 어떨까?
자네 한 잔 하게 술은 내 따름세...
영랑생가 생가 :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구(지번) 주소 : 강진읍 남성리 211-1 (지번)
전화061-430-3377
나는 2011년4월7일 이곳을 방문했고 거기서 영랑시선 복각본을 두 권 구입했다.
영랑은 안타깝게 1950년 9월 전란의 흉탄으로 젊은 생을 마감했고, 이 와중에 이헌구-김광섭 두 사람이 명동 헌책방에서 1935년 초간본 두 권을 구한 것 같다. 그리고 내란이 휴전에 들어간 1951년에는 1949년에 간행된 지형이 남아있어 그것을 再刊하게 되었고 그 책을 다시 영인한 것을 나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끊어진 ‘연(鳶)’줄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좀평나무 높은가지끝에 얽힌 다아 해진
흰 실낱을 남은 몰라도
보름전에 산을넘어 멀리 가 버린 내연의
한 알 남긴 설움의 첫씨.
태여난뒤 처음높이 띄운보람 맛본보람
안 끈어졌드면 그럴수 없지.
찬바람 쐬며 콧물 흘리며 그 겨울내
그실낱 치어다보러 다녔으리.
내 인생이란 그때버텀 시든상 싶어
철든 어른을 뽐내다가도 그 실낫같은 病의 실마리
마음 어느한구석에 도사리고있어 얼씬거리면
아이고! 모르지.
불다 자는 바람 타다 버린 불똥
아! 인생도 겨레도 다아 멀어지더구나.
연 2 - 『永朗詩選』 1956년 正音社 복각본에서
永朗은 넉 줄로 된 詩들을 많이 남겼는데 신시조의 기분도 있고 四言絶句의 敍景詩 같기도 하고 또 중세의 유화를 보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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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ㅅ골을 노리터로 커난시악시
가슴속은 구슬같이 맑으련만은
바라뵈는 먼곳이 그리움인지
동우인채 산길에 섯기도 하네
다시 판소리로 돌아가서 영랑은 ‘로미오와 쥴리엣’과 ‘아이다’와 남도이야기가 어우러진 멋진 대사가 될 아니리-레시타티프-아리아도 남기고 있는데... 제목은 「春香」이다...제멋대로 가락을 따라가며 그 애절한 이야기를 잠시 맛보기로 하자...
春香
큰 칼 쓰고 獄에 든 春香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成學士 朴彭年이
불지짐에도 泰然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南江의 외론 魂은 불리어 나왔느니
論介! 어린 春香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春香 그만 獄死한단 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卞學徒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듸마듸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깊은 겨울 밤 비바람은 우루루루
피칠해 논 獄窓살을 들이치는데
獄죽엄한 寃鬼들이 구석구석에 휙휙 울어
淸節春香도 魂을 잃고 몸을 버려 버렸다.
밤새도록 까무러치고
해돋을 녘 깨어나다
오! 一片丹心
믿고 바라고 눈 아프게 보고 싶던 도련님이
죽기 전에 와 주셨다 春香은 살았구나.
쑥대머리 귀신 얼굴 된 春香이 보고
李도령은 잔인스레 웃었다. 저 때문의 貞節이 자랑스러워
「우리 집이 팍 망해서 상거지가 되었지야」
틀림없는 도련님 春香은 원망도 안했니라.
오! 一片丹心
모진 춘향이 그 밤 새벽에 또 까무러쳐서는
영 다시 깨어나진 못했었다. 두견은 울었건만
도련님 다시 뵈어 한은 풀었으나 살아날 가망은 아주 끊기고
왼몸 푸른 맥도 홱 풀려 버렸을 법
출도 끝에 어사는 춘향의 몸을 거두며 울다.
"내 변가보다 잔인 무지하여 춘향을 죽였구나."
오! 一片丹心.
「춘향」 - 『永朗詩選』 1956년 正音社 복각본에서
영랑은 1919년 휘문의숙 재학 당시 康津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고, 동경대지진으로 중도 귀국하기 전 혁명가였던 박열과 한 방에서 하숙한 일도 있었다. 평생 친구인 『時文學』 동인 朴龍喆은 이 시절의 級友였다고 한다.
懦弱해보기만 한 ‘내 마음을 아실이’나 ‘모란이 피기까지의 365일’의 기다림에는 이런 熱望도 숨어있고 ‘毒을 차고’에서는 마그마의 湧出같은 南道氣質의 내면도 엿볼 수 있다. ‘曲卽全’이란 말도 있고 ‘추녀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섬돌을 뚫는다.’는 말도 있다...
이야기가 길어져도 한참 길어졌네...이러다가 봄-여름가고
‘오-매 단풍 들것네-’ <*>
『永朗詩選』 1956년 正音社 복각본 표지
『永朗詩選』 1956년 正音社 복각본에서 -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