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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스님의 금강경 핵심 강좌
1강 3부 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 2011.10.24
第三 大乘正宗分
제삼 대승정종분
2부에서 연결
그래서 실무중생 득멸도자(實無衆生得滅度者), 우리는 제도해야 된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뭐,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 , 별별 제도에 대한 말을 하고 있지마는 본래 부처라고 하는 이 사실을 그저 아는 것, 이 사실이지, 그 외에 더도 덜도 아니란 것입니다.
또,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나왔는데, 금강경은 모든 경전이 그렇듯이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 ‘병에 의해서 약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보면 중생에게서 많고 많은 병 중에 무슨 병이 가장 무서운 병인가? 이제 그걸 이제 금강경의 안목으로 보면은 ‘상병(相病)’이 가장 무서운 병이다. 그렇게 보는 겁니다. 암도 아니고, 무슨 폐병도 아니고, ‘상병’이 가장 무서운 병이다. 금강경에선 중생을 그렇게 진단을 했어요. 그렇게 진단이 나온 겁니다.
내가 금강경의 안목을 가지고 보니까 중생에게는 이 상병이 차~암 무서운 병이야.
그래서 이 병 하나 내가 제도해야 되겠다. 여기 ‘상(相)’이란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무상, ‘무상(無相)으로 으뜸을 삼는다’,
‘무상(無相)으로 위종(爲宗)한다’고 하는 그 말이 또 가장 금강경을 해석을 잘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것을 뒤에는 법상(法相), 비법상(非法相)이 나옵니다만
금강경에서 사상(四相), 하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이걸 이제 이야길 합니다.
아상(我相), 흔히 우리가 아상, 아상, 그런 얘기를 하죠. 아상 정도는 다 느낍니다. ‘아, 저 사람, 아상이 많아. 아상이 많아.’그걸 이제 현대용어로 ‘자아의식’, 그렇게 해요. ‘자아의식’,‘자아의식’이라.
자아에 대한 그런 관념이 아주 그 좀 진한 사람들이 있죠. 큰 차이는 없습니다마는 좀 더 두드러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다음 인상(人相)은 뭐냐?
사람·인(人), 모양·상(相)자야. 인상(人相), 이 인상은‘나와 남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차별의식’입니다. 나하고 남하고 다르다, 현대 용어로 하면 ‘차별의식’이다 그래요.
자아의식에서 또 한 걸음 다 나아가니까 딴 사람이 있거든. 나 말고 딴 사람이 또 있더라고. 그건 차별의식이야. 나하고 남하고의 차별의식,
그러니까 자아의식,
중생상(衆生相) , 이것은 부처님과 중생, 이건 상대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중생’이라고 하는 말속에는 여기서는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열등의식’.
여기서는 열등의식, ‘아, 중생이 그러면 그렇지.’우리 잘 쓰는 소리죠.
‘아, 중생이 그러면 그렇지 뭐 얼마나 기대해서’, 이게 열등의식이에요. 그 참 많이 가진 사람이나,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이나, 아무리 벼슬이 높은 사람이나, 이 열등의식 이거 참 무서운 거예요.
이 대단한 상입니다. 이 열등의식도. 그게 뭐 어떻게 보면은 하심하는 것 같고, 겸손한 것 같지마는 그건 열등의식이에요. 어떻게 보면.
수자상(壽者相), 이건 시간, 생명 아닙니까, 목숨, 이건 ‘한계의식’입니다. ‘한계의식’.
생명입니다, 나이가 몇 살이다, 이거 나이가 몇 살이다,라고 하는 그런 의식이 수자상(壽者相)이란 말 속에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것은 한계의식이야.
예를 들어서 10대면 10대라고 하는데 대한 한계의식을 가지고 있고, 20대면 20대라고 하는 한계의식을 가지고 있고, 30대면 30대라고 하는 한계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나이 많은 사람은 나이 많은 대로 한계의식을 가지고 있고.
신기한 것이, 남자들은 나이가 젊으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좀 이렇게 낮게 생각해요. 어른으로 생각하고 그런데, 여자들은 반대야. 나이 든 사람은 나이 젊은 사람에게 꼼짝 못해. ‘늙은 게, 늙은 게’하면 꼼짝 못해. ‘나이 많은 늙은 게 ’하면.우리하고, 남자하고 반대야. 남자 ‘저 젊은 놈이..’이렇게 하면 젊은 사람이 꼼짝 못해. 우리 보통 상식선에서 보면. 그 참 이상하죠.
아무튼 그 나름대로 자기의 나이에 따라서 한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상을 없앤다, 라고 하는 이 말, 무상이니까.
보살이 만일 이런 상이 있다면 그건 보살이 아니다, 불자가 아니다, 발심한 사람이 아니다. 이거 보살이란 말 속에는 수행자, 불교 공부하는 사람, 불교를 믿는 사람,
발심한 사람, 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 이런 의미가 보살이란 말 속에 다 포함되어 있어요.
그리고 참 인생을 빛나게 근사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 이런 의미도 보살이란 말 속에 들어있습니다. 아주 그 인생을 빛나게, 괜찮게 살아보고자 하는, 그 사람이 보살 아닙니까? 뭐 어떻게 사는 게 괜찮게, 빛나게 사느냐?
뭐 거기엔 여러 가지 길이 있겠습니다마는, 아무튼 보살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려면 이 상이 없어야 된다, 그래요. 좀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상이 없어야 된다, 그래요.
여기서 이제 경중(輕重)이 있어요.
제일 밑에 수자상, 한계의식, 요게 이제 제일 가볍습니다, 사실은. 제일 가벼워요.
그 다음에 열등의식은 그 다음이야. 열등의식은.
그 다음에 차별의식은 보다 더 깊어.
그 다음에 아상, 이게 제일 마지막으로 끊어질 건데, 더 무거운 상이예요.
이거 한계의식, 이건 뭐 나는 불교 만나서 아상(我相)도 못 없애겠고, 인상(人相)도 못 없애겠고, 열등의식[중생상(衆生相)]도, 요것도 못 없애겠고, 수자상(壽者相), 이것 하나만은 없앨 수 있지 않겠는가?
나이에 대한 그런 어떤 관념, 그걸 없애는 것, 이건 성공하고 가야 되지 않겠나 싶어요. 나이에 대한 관념.
또 특히 절 집안에는 그 승랍(僧臘) 좀 높고 낮은 것, 옛날 보면 큰 방에서 좌차(座次), 좌차가지고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는데. 다른 때야 그냥 마 날아다니고, 많이 봤어요, 우리는. 그게 뭐예요? 그게 나이에 대한, 승랍(僧臘), 나이에 대한 의식이야.
그런데 사실 불교 사상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나이가 어디 인정이 됩니까? 나이가 인정 안 되잖아요. 우리는 수많은 생을 거듭거듭 살아가는데 나이 지금 내보다 많은 사람은 죽어서 나중에 금방 또 내 보다 더 밑에 어린 사람으로 올 거고, 나는 또 나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고,
내가 죽어서 오면 그 사람은 늙은 사람이 되어 있고, 난 또 젊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 아닙니까? 이게 불교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한 생을 딱딱 잘라가지고 나이가 많다, 적다, 중노릇을 일찍했다, 늦게 했다, 자르는 것은, 거기에 사로잡히는 것은, 최소한도 사로잡히는 것은 우리가 뭐 윤리 도덕상 예의상 그런 것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거기에 집착해서 그것을 딱 잘라서 고집하고, 서로 괴로워하고, 서로 상처주고 하는 것은 이건 보통 불교 상식에서도 어긋납니다.
그리고 나이 들었다고 해서 배울 것 포기하고, 자기 어떤 인생의 꿈을 접고 더 이상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 이것도 큰 문제예요. 절대 그거 없어야 돼요. 정말 우리 스님들도 마찬가지고,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교육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거 하나는 정말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또 남에게 교육도 시켜야 되요.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내일을 위해서, 아니면 내생을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발전시키고, 노력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열정이 제일 중요해요, 그래서.
사람이 사는데, 내가 살아보니까 건강도 중요하지만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게 열정이야!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기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돼요.
뭐 예를 들어서 이 ‘난’자(字)도 처음 본 것 같으면 하~ 옥편을 찾아서 적어놓고, 단어도 처음 본 단어 같으면 또 찾아서 적어서, 그 금방 잊어버리더라도 그렇게 알고자 하는 그런 노력, 그리고 또 시대가 얼마나 많이 발전했습니까?
그 요즘 참 따라가려니까 너무 힘들지마는 그래도 따라가려고 하는 거야.
그 뭐, 아이폰 같은 것도 사용하는 방법 다 배우고, 컴퓨터도 배우고, 세상의 발전하는 그런 그 발전상을 우리가 활용도 하고 말이야.
세상이 그렇게 많이 발전시켜놨는데, 과학도. 그리고 또 활용도 해야지.
이런 것들이 말하자면 수자상을 없애는 첫 걸음입니다. 수자상을 없애는.
한계의식을, 제발 우리 한계의식 하나만이라도 정복해야 돼요.
그다음에 열등의식도 이것도 이제 ‘하~ 내가 중생인데, 나는 재주가 없는데, 나는 못 배웠는데, 나는 타고나기를 어떻게 타고 났는데...’
부처님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모두가 불성(佛性)을 가진 불성인간이야.
이걸 나는 천재다, 수재다 이렇게 표현 안 하고, 불교에서는 ‘불재’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부처의 재능, 부처의 재주. 부처의 재주을 다 가진 사람인데 노력만 하면 되게 되어 있어요. 그 열등의식이 있을 필요가 없다구요.
단, 열정이 부족하고 노력을 안 기울여서 그렇지, 못할 것이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그게 이제 열등의식이에요. 그런 문제를.
그래서 여기는 사실은 우리 본래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는데, 없는데 또 여기 ‘상은 본래 없다’ 라고 하는 말이 뒤에 또 나와요.
사상(四相) 그거 본래 없는 거야. 본래 없는 것인데 거기에 환영처럼 우리 의식 속에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환영(幻影)과 같이, 그림자 같이 왔다 갔다 할 뿐이야, 이 사상 자체가. 그래서 없앨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없앨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게 이 사상(四相)이야.
이 세상에 제일 큰 공로가 뭐겠습니까?
중생을 부처로 만든 것, 몽매한 중생을 깨달아서 부처로 만든 것 이보다 더 큰 공로는 없어!
세상에서 뭐 천만 금을 갖다 주더라도 거기에, 그 공로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데 그렇게 큰 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그것도 한 사람에게가 아니고, 무량·무수·무변 중생들을 다 해결해서 그런 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알고 보면 ‘전혀 내 공로는 거기에 개입될 여지가 없더라’ 하는 것입니다. 전~혀 개입될 여지가 없어,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재능인데, 본래 갖추고 있는 그 보석인데 그것은 ‘너는 보석이다, 너는 다이아몬드다!’ 라고 내가 말해줬을 뿐인데, 말 해준다고 다 믿나? 다 아나? 다 깨닫나?
깨달은 사람도 있고, 못 깨달은 사람도 있는 그런 부처님의 설법을 뭘 그걸 가지고 상낼 까닭이 있느냐 이거야. 상낼 까닭이 없어요.
그래서 상도 본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없다는 사실을 알면은 상 내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이것이 이제 ‘본래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그래서 ‘대승정종(大乘正宗)’이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第四 妙行無住分
제사 묘행무주분
第四 妙行無住分
제사 묘행무주분
復次須菩提야 菩薩이 於法에 應無所住하야 行於布施니
부차수보리 보살 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所謂不住色布施 不主聲香味觸法布施니라
소위부주색보시 부주성향미촉법보시
須菩提야 菩薩이 應如是布施하야 不住於相이니라
수보리 보살 응여시보시 부주어상
何以故오 若菩薩이 不住相布施하면 其富德을 不可思量이니라
하이고 약보살 부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東方虛空을 可思量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須菩提야 南西北方과 四維上下虛空을 可思量不아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 가사량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須菩提야 菩薩의 無住相布施하는 福德도 亦復如是하야 不可思量이니라
수보리 보살 무주상보시 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須菩提야 菩薩이 但應如所敎住니라
수보리 보살 단응여소교주
第四 妙行無住分
제4 묘행무주분
묘행무주(妙行無住)라,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나는 금강경의 삼십이 분 중에 제목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묘행무주, 이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요걸 이제 해석하면요, 아름다울· 묘(妙)자 아닙니까? 아름다운 행위,
‘그 사람 멋지네, 멋져. 아 그 사람 멋져. ’뭐가 멋지냐?
묘행(妙行), 아름다운 행위, 아름다운 행위는 무주다 이거야.
집착이 없다, 머물· 주(住)자 집착할· 착(着)자를 붙여서 쓰면 더 드러납니다.
주착(住着)이 없다. 머물면 집착해요. 우리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머물면 거기에 집착하게 된다고.
그래서 주착(住着)이란 말이 많이 있어요. 불교에는.
아름다운 행위는 머물지 않는다.
자기가 어떤 일을 했던지 간에, 자기가 어떤 일을 했던지 간에 내가 어떤 일을 했다고 해서 거기에 조금이라도 미련을 갖는다든지, 뭐 생색을 낸다든지, 무슨 자기표현을 하려고 한다든지, 그러면 그건 이제 주(住)야.
아름답지가 못해. 뭔가 어디 끈적끈적하고 여름날 땀을 잔뜩 흘리고 신에 이렇게 먼지 속을 한 시간씩 이렇게 걸어 다니면서, 그 시내의 매연도 들이키고 땀까지 났고 이래가지고 그냥 얼른 목욕하고 싶은 그런 상태.
우리는 대개 그렇게 살아요. 그런 상태로 사는 거야.
뭘 하나 좋은 일했다. 아니, 어떤 일을 했던 간에 그런 상태로 사는 거야.
멋이 없죠. 그건.
집착 없이 깨~끗하게, 아~무 그냥 어떤 생색도 안 내고 그렇게 하면 참 그 사람은 멋있어 보이죠.
예를 들어서, 어느 신도가 아주 대시주야. 그런데 와서 따로 주지실 찾지도 안 해.
어떤 사람들은 오기만 하면 주지실에 떡 앉아가지고, 주지스님께 차 얻어먹으려 하고, 밥도 거기까지 갖다 줬으면 하는 그런 신도도 많아요. 그 참, 여름날 땀 잔뜩 흘리는데 매연 뒤집어쓰는 거와 같지, 그건.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 이 사람은 언제 왔다 갔는지, 언제 보이긴 보이는데 법회때 보니까 보이는데 언제 왔다 갔는지 몰라. 항상 보통 대중들하고, 일반 신도들 하고, 똑 같이 생활하고, 똑 같이 식사하고, 똑 같이 있다가 어느새 사라졌는지 몰라. 그런데 어마어마한 시주를 했어, 그전에. 야~! 정말 존경스럽죠. 얼마나 멋져 보입니까?
그걸 묘행무주라고 합니다. 참 좋은 낱말입니다. 묘행무주(妙行無住)!
第四 妙行無住分
제사 묘행무주분
復次須菩提야 菩薩이 於法에 應無所住하야 行於布施니
부차수보리 보살 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베푸는 문제가 나오잖아요.
보시라고 하는 것은 우리 불자의 일상생활입니다. 다반사예요, 그냥.
숨 쉬고 그냥 밥 먹고 하는 그런 일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 금강경이 통용될 무렵에 보시라고 하는 것은 너무 우리 불자들에게 일반화 되어 있어요. 뭐 육바라밀 중에 하나다, 뭐 그런 정도가 아니고, 당연히 베푸는 삶이야. 불자는 무조건 베푸는 삶이라.
승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아무 예고도 없이 보시가 탁 나와 버리잖아요.
너무 평이한 일상사니까.
應無所住하야 行於布施니
응무소주 행어보시
무소주(無所住),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해야 하느니
所謂不住色布施 不主聲香味觸法布施니라
소위부주색보시 부주성향미촉법보시
須菩提야 菩薩이 應如是布施하야 不住於相이니라
수보리 보살 응여시보시 부주어상
何以故오 若菩薩이 不住相布施하면 其富德을 不可思量이니라
하이고 약보살 부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所謂不住色 布施 不主聲香味觸法 布施니라
소위부주색보시 부주성향미촉법보시
所謂不住色布施(소위부주색보시)며
색에 머물지도 말고
不住聲香味觸法布施(부주성향미촉법보시)니라
또 성향미촉법에도 머물지 말고 보시를 하라.
須菩提야 菩薩이 應如是布施하야 不住於相이니라
수보리 보살 응여시보시 부주어상
수보리야!
이와 같이 보시해서 상에 머물지 말지니
何以故오 若菩薩이 不住相布施하면 其富德을 不可思量이니라
하이고 약보살 부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형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느니라.
왜냐? 만약 보살이 不住相布施(부주상보시)하면 其福德(기복덕)을 不可思量(불가사량)이라 그랬어요.
상에 머물지 아니하고서 보시를 할 것 같으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다.
그렇죠. 아까 예를 들었던 그 신도가 언제 왔다 갔는지, 법회때는 잠깐 보이는 듯 했는데, 그 뭐 좋은 자리에 앉는 것도 아니고 저 구석에, 좋은 자리 다 양보하고,
그리고 절에 무슨 어려움이 있을 때는 그냥 돈 한 보따리씩 갖다 놓고 가버리고.(일동 웃음)
내가 갖다 놨다 소리도 안 해. 주지스님은 다 알아. 다 안다고.
그 멋있잖아요? 묘행무주 아닙니까? 묘행무주!
아름다운 행위는 머물지 않는다!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한 칭송이 두고 두고, 주지가 몇 번 바뀌어도 그 사람 칭송하는 거야.
뭐 그냥 복덕을, 우리 아주 그냥 가볍게 우리가 해석을 하면은,
其福德(기복덕)은 不可思量(불가사량)다!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은 끝도 없을 거 아닙니까?
뭐 깊은 뜻은 여러분들이 다 알고 계시니까.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東方虛空을 可思量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須菩提야 南西北方과 四維上下虛空을 可思量不아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 가사량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須菩提야 菩薩의 無住相布施하는 福德도 亦復如是하야 不可思量이니라
수보리 보살 무주상보시 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須菩提야 菩薩이 但應如所敎住니라
수보리 보살 단응여소교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東方虛空을 可思量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쪽 허공을 모두 상상할 수 있는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불야니이다, 세존이시여!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提야 南西北方과 四維上下虛空을 可思量不아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 가사량부
수보리야! 남쪽·서쪽·북쪽과 네 간방과 위쪽과 아래쪽의 허공을 모두 상상할 수 있는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불야니이다, 세존이시여!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읽는 것도 그래 읽어야 돼요. ‘불야니이다! 세존이시여!’요렇게 딱 잘라 읽어야 됩니다.
須菩提야 菩薩의 無住相布施하는 福德도 亦復如是하야 不可思量이니라
수보리 보살 무주상보시 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수보리야! 보살이 형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복덕(福德)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상상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無住相布施(무주상보시)하는 福德(복덕)도,
無住相布施(무주상보시), 상에 머물지 않고 생색내지 않고 하는 복덕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不可思量(불가사량)이니라!
須菩提(수보리)야 !
菩薩(보살)이 但應如所敎住(단응여소교주)니라
수보리야 !
보살이 다만 응당히 그 가르친 바 대로, 가르친 바 대로 머물지니라!
금강경이 처음에 머무는 것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두 번째 항복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대답은 항복받는 것부터 대답이 나오고, 머무는 게 두 번째 나왔어요.
항복받는 것은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서 말하자면 이야기했습니다.
그게 항복받는 내용이거든요, 결국은. 자기 자신을 항복받는 거.
그 다음에 뜻은 일맥상통하지만 머문다는 이야기가 두 번째로 이렇게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이 중요한 것이,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전부 ‘베푸는 삶’이다, ‘보시의 삶’이다.
그거 알아야 돼요, 우리는. ‘우리 불자의 삶은 무조건 베푸는 삶’이다.
특별한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 마음 내서 하는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
그저 베푸는 삶, 베푸는 삶이라고 하는 것.
그러니까 여기 아무 예고도 없이 그냥 보시가 턱 나오는 거예요.
이 금강경이 설해질 당시의 상황이, 불교적 상황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게 알아야 돼요. 그게 이제 우리는 뭐 특별한 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이게 아직도 우리가 금강경이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되어 있으면서, 그리고 여기에 뭐 보살행, 보살행이 결여돼 있다, 금강경이 보살행이 결여돼 있다, 이런 말을 더러 해요, 보면은.
물론 보살행이 무슨 뭐 그런 용어가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닌데, 이미 보살행은 우리의 의무야. 일상사야!
그러니까 보시가 그냥 예고도 없이 툭 튀어 나오는 거예요.
보살행하고, 보시하고, 보살행 중에서 베푸는 것, 이건 그냥 일상사야. 우리 호흡하듯이 하는 일로 되어 있어요, 우리 불자들에게는.
그거 우리가 꼭 기억해야 돼요. 정말 이 금강경을 통해서 꼭 기억해야 할 게 ‘아! 베푸는 일, 보시하는 일’, 이것은
그냥 일상사지 특별한 일이 절대 아니란 사실.
그래서 금강경이 여기에 보살행이란 말이 없어도 보살행은 당연한 것으로,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이런 베푸는 이야기가 이렇게 나왔다는 거, 그걸 좀 더 깊이 우리가 인식해야 되고, 죄도 없는 신도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특정인을 들먹여서 하는 건 아니니까, 예컨대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거죠.
오자마자 주지실 떠억 차지하고 있으면서 신도들이 축원기(祝願記) 찾으러 오면 지가 뭐냥 그런 사람 하도 많이 봐서 하는 말인데, 정말 이것은 신도들에게 해당되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들 문제야, 우리들 문제. 여기 있는 우리들 문제.
그래서 이제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정말 금강경이 새롭게 감동적으로 이렇게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菩薩(보살)이 但應如所敎住(단응여소교주)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지니라.
끄트머리에 그랬잖아요.
우리 불자들은 다만 응당히 가르친 것과 ,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라, 살라, 이말이여. 내가 가르친 대로 살아라!
어떻게? 무주로 살라!
사는 것 없이 살라!
주함이 없이 살라!
그것은 아름다운 행위다!, 멋지다 말이야, 묘행이다, 이말이야.
결론이 그것이 묘행이다. 하, 그 사람 참 멋쟁이야, 아, 멋쟁이.
우리 잘 쓰는 말이지. 멋쟁이가 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어.
금강경 묘행무주에 있어. 무슨 잘 입고 뽐내고 무슨 그게 아니죠.
불교의 멋쟁이 차원은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여기 얼마나 근사하게 표현해 놨습니까?
이런 것들도 우리가 일상에서 잘 쓰는 그 용어들, 이런 것들을 옛~날 이거 2600년전 고전, 부처님 가르치면서 얼마든지 건져낼 수가 있어요.
우리가 좀 다른 시각으로 보면은 이 고전속에서 얼마든지 현대적인 가치를 건져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참, 뜻이 무궁무진한 거예요.
우리 지혜가 부족해서 보다 더 참신하고 깊은 의미를 더 개발해 내지 못하는 게 이게 한스러울 뿐이지 사실은 이 가르침 속에 뭐 아주 옛날 부처님 말씀, 고리타분한 것,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아주 초현대적인 그런 가르침이 이 속에 얼마든지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새롭게 우리가 인식하고, 그야말로 나무 팔러 왔는데 누구처럼 다이아몬드를 한 짐 짊어지고 돌아가는 그런 그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강의 여기까지입니다.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四 妙行無住分 (제사 묘행무주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四 妙行無住分
제사 묘행무주분
제4. 아름다운 행위는 머물지 않는다
復次須菩提야 菩薩이 於法에 應無所住하야 行於布施니
부차수보리 보살 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또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어떤 것에도 머물지 말고 보시(布施)를 해야하나니,
所謂不住色布施 不主聲香味觸法布施니라
소위부주색보시 부주성향미촉법보시
이를테면 사물에 머물지 말고 보시할 것이며,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그 외의 온갖 것에 머물지 말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須菩提야 菩薩이 應如是布施하야 不住於相이니라
수보리 보살 응여시보시 부주어상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보시하여 형상에 머물지 말라.
何以故오 若菩薩이 不住相布施하면 其富德을 不可思量이니라
하이고 약보살 부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형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느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東方虛空을 可思量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쪽 허공을 모두 상상할 수 있는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提야 南西北方과 四維上下虛空을 可思量不아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 가사량부
“수보리야! 남쪽·서쪽·북쪽과 네 간방과 위쪽과 아래쪽의 허공을 모두 상상할 수 있는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提야 菩薩의 無住相布施하는 福德도 亦復如是하야 不可思量이니라
수보리 보살 무주상보시 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수보리야! 보살이 형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복덕(福德)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상상할 수 없느니라.
須菩提야 菩薩이 但應如所敎住니라
수보리 보살 단응여소교주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지니라.”
1강 3부(2011.10.24) 마침
첫댓글 [妙行無住] [應無所住하야 行於布施라]
[상에 머물지 아니하고서 보시를 할 것 같으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다.]..명성화 님! 수고하셨습니다..
공부 잘 하고 갑니다.._()()()_
一眞華 보살님!
일일이 녹음과 대조해주시고 수정에 도움을 늘 주시는
보살님 감사합니다.
오늘 사부대중 7000여명이 함께 한 다비식, 버얼써 본래로 돌아가신 성수대종사 임종게
'볼 때는 내 것이고 안 볼 때는 남의 것이다'
아
무에 그리 나는 볼 게 많았던고
참 내것이 많았나 봅니다.
_()()()_
無相爲宗- 금강경의 안목으로 보면은 ‘상병(相病)’이 가장 무서운 병이다. 한계의식, 열등의식, 차별의식, 자아의식을 항복받자!!
妙行無住- 아름다운 행위는 머물지 않는다. 우리 불자의 삶은 무조건 베푸는 삶이다. 보시라고 하는 것은 우리 불자의 일상생활 다반사다. 그냥 숨 쉬고 그냥 밥 먹고 하는 그런 일이다.. 감사합니다. _()()()_
妙行無住...若菩薩이 不住相布施하면 其富德을 不可思量이니라...수고 많으셨습니다. _()()()_
아름다운 행위는 머물지 않는다..... 妙行無住......우리 삶은 무조건 베푸는 삶...... 명성화님 !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菩薩(보살)이 但應如所敎住(단응여소교주)니라...보살은 반드시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지니라....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아파트 뜰에 아름드리 한껏 핑크빛 꿈을 품은 벚나무, 매화나무들, 그리고 새들의 노래소리가 봄을 이야기하네요.
일일이 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하오며,
존경하옵는 모든 분들께 안부인사 드립니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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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_()_
대연화 님 원융 님 행복한 님
몸소 다녀가신 자취에 합장하오며 무량복덕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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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고 고맙습니다 _()()()_
정진행 님 여전히 불국토를 장엄하시고 시공을 넘어서 누구에게나 에너지를 주시는 마음에 감사의 합장을 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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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물안개다리 님 아이디가 신비하시듯, 아마 그런 아름다우신 분이신 듯 합니다.
소원성취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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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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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무비 큰스님 법체 평안.강녕 하시옵길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여울목님 법우성님 빈망태님 오공님 일광명조님 정진행님 지효님
귀하신 걸음 합장합니다.
모든분들께서 건강하신 여름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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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無住 無相.....................妙行
금강반야바라밀, 금강반야바라밀, 금강반야바라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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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금강반야바라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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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의 말씀에 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물이 모든 농사를 짓는데 가장 소중한 것이지만 (물은 모든 농사를 다 지어 주고(布施) 물은 결코 그 어떠한 보답이나 댔가를 바라지 않고 더 낮은곳으로 흘러가는(無住) 그런 멋진 물(菩薩: 菩提 薩陀) 즉 妙行:善行을 하고도 無住: 그 무엇도 바라지않고 떠나버림 눈꼽만한 상도 내지않음 정말 멋있는 菩薩입니다 ()()()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