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윌리엄과 해리를 정말 사랑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지요"
"나는 가끔 아이들을 힘껏 껴안고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곤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언제나 '엄마' 라고 대답해 주었다."
"아이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게 행복해요.
아이들은 내 인생의 활력소에요."
"나는 크면 경찰이 될 거야. 그래서 엄마를 잘 보호해 줄 거야." 윌리엄 왕자
"안돼, 형. 형은 왕이 될 거잖아!" 해리 왕자
윌리엄이 기숙사로 떠나던 날 나는 휴지 상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나는 아이들이 머리가 차가운 사람보다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이애나-
다이애나 황태자비는 꽤나 야심가 였던 것같다. 결혼 초, 소녀와 같은 청초한 외모를 가진
다이애나는 1961년 스펜서 백작 부부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생가는 추밀고문관을 비롯 해군장관을
배출한 영국 유수의 명문귀족이다.
하지만, 이런 배경과는 달리 다이애나의 소녀시절은 불행하다. 6살 때 어머니가 애인과 함께 가출해버렸다.
당연히 그녀의 부모는 이혼을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다이애나는 거식증에 걸려 괴로움을 겪었다.
1978년, 다이애나의 둘째언니인 제인이 여왕 소유의 토지 관리인의 아들 페로즈와 결혼 하고
다이에나는 유치원 보모를 하며 요리학교나 댄스스쿨등을 다니는 등 우아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음해, 17살의 다이애나는 샌드링엄 성에서 여왕과 동거하고 있는 언니 부부를 방문하고는
왕가의 우아함에 폭 빠졌던듯 싶다. "왕궁에서 살 수 있으면 멋지겠네요."
그래선지, 그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언니 부부의 아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여 찰스 황태자가
언니를 발모럴 성으로 초대한 것이다. 다이애나는 찰스 황태자를 쫓아 다녔다. 그리고 운도 따랐던지
다이애나는 카우즈 워크-요트경기-표를 얻었다. 그리고 확실한 바는 없으나, 찰스 황태자의 주변에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모습이 자주 띄게 되었다.사실상 그런 여자는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찌됐던 황태자와 '교제'를 시작한 다이애나는 세간의 부러움을 샀다. 마치 클레오파트라처럼 남자를
밀고당기는 기술이 탁월했던 듯 싶다
찰스 황태자는 점점 다이애나에게 끌렸던지, 글로스터셔에 외딴 집을 구입해 다이애나의 비밀 데이트
장소로 삼았다고도 한다. 1980년 9월, 어떤 신문이 두 사람의 로맨스를 폭로했다.
그리고 다이애나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로 얼마지나지 않아, '선데이 미러'라는 신문이 1면에
황태자와 다이애나의 데이트장면을 보도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 다이애나와 황태자의 로맨스를 기대하게되었다.
거의 주의의 강요에 떠밀린 찰스 황태자는 다이애나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결혼 상대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여성을 고르고 싶다는 작은 그의 소망도 그것에 한몫을 한듯 싶다.
1981년, 7월 29일 두 사람의 결혼식 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이애나는 행복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행복과 웃음은 오래치 않았다.
그 시초는 찰스와 전 애인 카밀라의 관계였다. 다이애나는 불행히도 찰스가 카밀라에게 주려고 샀던
팔찌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는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이애나도 참 불쌍하다 이무렵 부터 였을 것이다. 그녀의 거식증이 재발한 것은. 애초부터 그들의
궁합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던 듯 싶다
다이애나의 이상형은 포용력있는 남자였으나, 찰스 황태자는 소심하고 신경질적인 남자였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그때부터 심한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했다. 가정의 불화가 더 심화 되었음은 물론이다.
1983년, 그들의 불화는 계속되었다. 이것도 불화의 원인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은 아내에게만 집중되고
자신은 무시된다는 것이 찰스의 자존심에 상처가 되었던 모양이다. 남편과의 불화 때문이었는지,
그것에 질려버렸던지, 꽤나 가정적인 편이었고,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지던 다이애나
공식 사진등을 찍을 때도 남편과 사이가 안좋을 때 항상 웃는 낯이었으며, 싫어하는 강아지도 안을 정도였다는
그 때부터 맞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승마 교사였던 휘트 대령, 은행가인 필립당, 길비사의 상속인
제임스 길비, 럭비 선수 윌 컬링....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남성 편력을 자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힘입어 두사람의 결혼 생활을 폭로한 책이 출판되자
이 편집자는 무슨 생각인지 엘리자베스 여왕는 다이애나가 영국 왕실의 권위를 손상했다고 하며 분노했다.
그 두사람은 결국엔 별거했고, 서로의 스캔들 폭로싸움은 계속되었다.
이혼을 하려 소송을 걸때 다이애나는 왕실 측에 조건을 내밀었다. 그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1. 두 왕자의 친권을 인정할 것.
2. 현재와 같은 왕족의 지위를 유지할 것.
3. 복지사업을 위해 매 해 천억원의 사업비를 줄 것.
4. 희망하는 궁전과 스태프를 지원할 것.
다이애나는 자신의 궁정과 왕국의 여왕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싶었던 듯 싶다.
그리고 1996, 정식으로 이혼이 발표되엇고, 다이애나는 끝까지 황실의 일원-로열 패밀리-을 요구 했지만,
황태자비 전하의 칭호와, 황실의 신분은 박탈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전' 황태자비 다이애나가 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름, 다이애나는 지중해의 사르데냐 섬에서 바캉스를 즐겼다. 거기에는 런던의 해롯 백화점과
파리의 리츠 호텔을 가진 아랍인인 부자 도디 알 파예드였다.
그리고 8월 31일 밤,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다이애나가 탄 메르세데스 벤츠는 집요한 파파라치를 벗어나기
위해 190키로의 속력으로 내달렸고, 터널 안의 기둥을 받았다. 그리고 다이애나와 그 옆자리의 애인과
운전사는 사망했다.
전 세계의 주목과 부러움을 샀던 다이애나의 어이없는 죽음었다. 그녀는 36살의 나이였다.
영광과 비참. 이 진부한 말이 너무나 무서울 정도로 사실감과 진실함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아이들에게, 국가에 헌신적이고 책임감있던 그녀는 나에게 찰스황태자보다 더 매력적으로 비추어진다.
그녀가 살았던 36년의 짧고 굵직한 삶은 너무나 격렬하고 활동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과연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한 나라의 레이디였던 점.에 관해 그녀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 자신만이 알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