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역사, 부조리한 사회, 부조리한 인간을 노래하다.
작가의 말
본 작품을 처음 대하면 내용이 무겁고 딱딱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조리를 향해 쏴라>라는 철학적 제목이 그런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필자는 이 소설이 책장을 넘기기 쉽고, 잘 읽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즉 모더니틱한 리얼리즘 소설에 경험적 요소를 가미한,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비슷한 소설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남자이기 때문에 <부조리한 남자의 일생>이라고 보면 맞다. 주인공의 삶은 한국사와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을 반추하면서 전개된다. 즉 8.15 광복, 6.25 한국전쟁, 1.21 무장공비침투, 10.26 박대통령 시해사건, 12.12 쿠데타, 신군부의 비상계엄, 5.18 광주 민주화운동, 1992 미국 LA폭동, 5.3 시민항쟁, 1997 IMF 경제난, 2008 모건스탠리 파산, 코로나19 전염병, 12.3 대통령 친위 쿠데타 등이 그것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치열하게 삶을 살고, 부조리한 사회에 열심히 적응해 간다. 철모르는 어린 시절, 대학시절의 대정부투쟁, 비상계엄으로 탄생한 유신정권에 항거하다가 수배자가 되고, 이념의 차이로 사랑하는 여자와 헤이지며, 힘겨운 군복무 시절을 거쳐, 불명예 제대를 한 뒤,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 되고, 사법고시에 도전하다가 경찰에 투신한다. 그후 경찰을 나와 대학 후배와 사업을 벌이고,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탕진한다.
이와 같은 삶의 역정을 보면 자전적 소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필자 역시 위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경찰이 되고,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한 뒤 퇴직했으니까. 그러나 이 소설은 자전적이기보다 픽션적 요소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사회적 이슈가 된 각종 사건, 등장인물들 간의 인간적, 사회적 갈등, 부조리에 대한 저항, 주인공이 태어나기 이전의 상황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소설이 정방향이 아니라, 역방향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즉 보통 소설이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행된다면, 이 소설은 그 반대로 전개된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종국적으로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는 서사의 형식을 취한다. 그러므로 챕터도 12에서 시작해 11, 10, 9로 가다가 1에서 끝이 난다. 소설을 순리대로 쓰지 않은 것과 <부조리>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경 력
본명은 최인호(崔仁鎬)다.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탄강구리에서 태어났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비어 있는 방』 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등단 4년 후인 2002년 1억원고료 국제문학상에 장편소설 『문명 그 화려한 역설/ 원제, 에덴동산엔 사과나무가 없다』 가 당선되어 단편 및 장편소설의 역량을 모두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2003년간 부산 국제신문에 『에덴동산엔 사과나무가 없다』를 연재했으며, 2006년∼2007년간 인천일보에 『누가 블루버드를 죽였나』를 연재해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살에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연인들』,『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 『백치』,『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 본격적인 문학수업에 들어갔다. 이때 카뮈, 카프카, 사르트르, 니체, 키에르케고르 등 실존주의 작가들에 깊이 심취했다. 이후 20대 후반까지 신춘문예에 매년 응모해 낙방을 거듭했으며, 삶의 체험과 경험 없이는 제대로 된 소설을 쓰기가 어렵다고 판단, 경찰에 투신했다.
1982∼1996년간 인천지방경찰청에서 근무했으며,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했다. 경찰 재직 중 6편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중, 단편소설 10여 편을 써서 지역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후 전문적으로 소설을 쓰기 위해 14년간 근무한 경찰에 사표를 냈고, 총 10편의 장편소설과 30여 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장편소설 중 대표작은 『문명 그 화려한 역설』, 『도피와 회귀』,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늑대의 사과』,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부조리를 향해 쏴라』 등이고, 단편집으로는 『돌고래의 신화』가 있다.
단편소설 중 「비어 있는 방」, 「안개 속에서 춤을 추다」, 「뒤로 가는 버스」, 「킬리만자로 카페」, 「장미와 칼날」, 「변증법적함수성」, 「그들 그리고」, 「캐멀비치로 가자」, 「화이트 크리스마스」, 「돌고래의 신화」 등을 문예지에 발표했다.
2020년 도서출판 글여울(대표 최효언, 딸)을 설립했으며, 그 직전인 2008∼2019년간 종로에서 <최인 소설교실> 개강 및 운영해 후학을 배출하는 한편, 미흡하던 소설적 역량을 키웠다. 2021년 이후 1년에 1편 이상의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총 7편의 소설을 출간했다. 현재 미발표 장편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간의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 및 죽음에 대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장편 『죽음의 색깔』을 집필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