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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신문과 잡지로 만난,
100년 전 식민지 조선의 모던 분투기!
"‘배달의 민족’ 원조 라이더, 경성 거리를 누비다!”
“밀고로 날개 꺾인 일본 육사 출신 독립운동가, 이종혁!”
“1930년대 조선 문단을 뒤흔든 스캔들, 발가락이 닮았다!”
“1926년, 세계 일주 관광단 조선을 방문하다!”
“조선의 첫 여성 스웨덴 경제학사는 귀국 후 왜 요절했을까”
……
이 책은 식민지 상황에서 ‘근대’라는 시기를 맞닥뜨린 100년 전 조선의 삶, 욕망과 관심, 사회와 문화 등을 당시 신문과 잡지의 기사로 살펴본다. 100년 전 신문과 잡지는 ‘전차가 분주히 거리를 지나고, 도쿄와 경성을 잇는 비행기 노선이 생기고,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카페와 서점을 순례하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의 환호와 한숨이 교차하는’ 조선을 묘사하고, ‘이정표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 문학과 예술을 일으켜 세우고, 스포츠로 식민지 조선의 자존심을 달래며,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상해와 중경, 만주와 미국, 유럽을 돌아다닌’ 조선인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삶과 욕망의 본질이 유사함을 만날 것이며, 갑작스럽게 근대를 맞닥뜨린 조선인의 일상을 만날 것이며,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의 분투를 만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아파트, 문화주택, 주식, 금광, …’
조선의 동경과 욕망, 환호와 한숨
1938년 7월 3일, 한 청년의 음독자살 기사가 실렸다. 검시한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주식에 손을 댄 28세 청년이 2,000여 원의 손해를 본 것을 비관해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1936년 6월 7일, 신문에 실린 채만식의 수필에는 금을 얻고자 집 벽까지 헐은 사람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1930년대 내내 세계를 지배한 대공황의 여파는 조선에까지 미쳤다.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반면 금값은 폭등했고, 이는 전 조선의 황금광 열풍으로 이어졌다.
신문과 잡지가 쏟아낸 사람들의 동경과 욕망은 주식과 황금만이 아니었다. ‘탕남음녀의 마굴’로 손가락질 받은 아파트, 은행 빚 얻어 장만한 그래서 곧 무너질 모래 위의 성과 같은 것으로 비난받은 문화주택이지만 한 편에서는 그곳에 살기를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피아노, 유성기, 라디오, 35전짜리 화신 백화점 런치 세트 등은 모던의 시기에 만난 선망의 대상이었다. 100년 전 ‘모던’을 처음 경험했던 조선인이 가졌을 기호, 동경과 욕망, 환호와 한숨은 요즘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발, 산아제한, 모르핀, 특혜 분양, …’
조선을 들썩인 스캔들과 모던의 그림자
100년 전, 조선이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근대를 이해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1922년, 청년 문사와 사귀다 결별을 한 강향란이 단발을 하자 그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1920년대 신문과 잡지는 앞다투어 ‘단발 찬반 논쟁’을 다루었다. 단발은 “무분별한 서양 문화 수입”이었고 “허영심의 발로”였으며 사회적 스캔들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 ‘어느새 여학교의 교복과 같이 취급’될 정도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식민지 조선의 인구가 약 2천만 명이던 시절, 경성에서는 ‘산아제한’을 둘러싼 토론회가 수시로 열렸고 신문은 이를 소개했다. 1920~30년대 세계적인 이슈였던 맬서스주의와 우생학, 여성 권익 향상에 대한 관심 등은 조선을 비켜가지 않았다. 여성 단발과 산아제한 논쟁은 불과 그때보다 10여 년 전인 191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인의 관념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1927년 봄, 경성 한복판 서소문의 ‘자신귀굴’을 르포한 기사가 실렸다. 아편도 문제였지만 아편을 정제한 ‘모루히네(모르핀)’ 중독자를 일컫는 자신귀가 골칫거리였다. 아편보다 싸고 사용이 용이하며 당국의 규제까지 느슨한 모루히네의 당연한 확산이었다. 1929년, 일본인 시마 도쿠조에게 경성 신당리 토지를 특혜 분양한 사건은 경성부윤이 나서서 사과했을 정도로 이슈가 되었다. 식민지라는 엄혹한 시절이었음에도 권력형 특혜 분양 의혹을 쏟아낸 신문은 경성부를 조롱하는 기사까지 실었다. 조선인 빈민들은 토막에서 굶주리는데, 조선의 공적 자금을 마음대로 쓰는 일본인과 그를 비호한 권력에 대한 반감이 폭발한 것이다. 100년 전 조선이 만난 모던의 그림자들이다.
‘백신애, 나혜석, 최승희, 최영숙, …’
조선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그들
“100년 전은 ‘닫힌 제국’에서 ‘열린 세계’로 봇물처럼 쏟아져 나간 ‘출국열’의 시대이기도 했다.” 1928년,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학생이 드문 스웨덴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최영숙을 소개한 신문은 “그가 고국에 돌아오는 날은 반드시 한줄기 희망의 불이 비칠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1909년, 여권도 없이 미국으로 건너간 김동성은 “구두닦이에게도 상류층 사람이나 백만장자만큼의 자유가 있다”는 미국 관찰기를 출간했고, 1937년부터 1940년까지 미국과 유럽은 물론 남미까지 공연을 다닌 무용가 최승희의 동정은 수시로 신문과 잡지에 소개되었다.
남편과 함께 1년 반이라는 긴 시간 세계 일주 여행에 나선 나혜석, 중국으로 건너가 비행술을 배워 독립운동에 뛰어든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서른을 목전에 둔 나이로 제국대학의 조선 첫 여성 유학생이 된 신의경 등 기존의 관념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의 모습이 등장한 것도 모두 이맘때였다. 조선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그들의 이야기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여러 미덕 중 하나다.
[저자 소개]
김기철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입사한 조선일보에서 사료연구실장 겸 문화부 학술전문기자로 있다. 100년 전 신문, 잡지를 밑천 삼아 조선닷컴에 〈모던 경성〉을 연재하고 있다. 소파 방정환처럼 빙수를 즐기는 ‘빙수당(黨)’이고, 가산 이효석처럼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차례]
글을 시작하며
1부 모던이 만난 풍경
배달의 민족’ 원조 라이더, 경성 거리를 누비다
‘명가수 선발 대회 대성황’, 1930년대 달군 ‘국민가수’ 오디션 열풍
‘빌리아드 걸’ 미모가 흥행 좌우, 순종 부부까지 빠진 당구 열풍
‘잇’, ‘마뽀, 에꺼’, 경성을 휩쓴 첨단 유행어
‘커피, 홍차, 한 잔에 10전’, 1930년대 예술가들의 아지트 ‘낙랑파라’
‘너는 마스크를 쓰지 말아라’, 길에 가득한 마스크黨
‘세계 일주 관광단 태운 인력거 640대’, 경성을 질주하다
“은색 뽀듸는 눈이 부실만치 빛나며”, 비행기 여행의 등장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전차, ‘교통지옥’ 경성의 맨 얼굴
2부 모던이 찾은 핫템
“탕남음녀의 마굴”, 1930년대 경성은 아파트 전성시대
“일확천금이 가능하냐?”, 주식판 뛰어든 ‘경성 개미’들의 환호와 한숨
반포 ‘아리팍’ 인기 뺨쳤다, 1930년대 경성 문화주택 열풍
이상의 미쓰코시·박태원의 화신, 백화점을 사랑한 모던 보이들
‘사랑하는 이의 보드라운 혀끝 맛 같은 맛’, 소파 방정환의 빙수 예찬
‘너도나도 금광, 금광 하며 광산 투자’, 조선에 분 황금광 열풍
‘피아노는 스위트홈의 필수품’, 모던 부부의 선망과 허영
3부 모던을 향한 뜀박질
‘吾人은 자유의 神을 눈물로 조문한다’, 나폴레옹 100주기 열풍
‘죽자 사자 달라붙어 읽었다’,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의 등장
1930년대 전집 출판 봇물, ‘한국문학전집’의 탄생
‘두루마기 입고 전차 타면 푸대접’, ‘천대되는 조선’ 논쟁
‘건전한 조선 가요의 민중화’, 유행가 작사에 뛰어든 문인들
“살가 죽을가 하는 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 연극의 소개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다
“최멍텅과 윤바람의 허튼 수작”, 최초의 신문 네 컷 연재만화
“끔찍하고 지독한 냄새!”, 연례행사인 목욕
‘감옥에서 신음하는 형제 생각에 눈물’, 100년 전의 성탄절
4부 모던이 만든 그림자 그리고 스캔들
딸까지 팔아먹는 ‘자신귀’, ‘모루히네 조선’의 비극
단발랑은 저항의 상징?, 치열한 단발 논쟁
‘어찌어찌하다 일이 커지고 말았다’, 교수, 시인, 가수왕의 삼각스캔들
‘발가락이 닮았다’, 김동인과 염상섭의 자존심 건 지상 논쟁
‘피라미드 관광, 여왕과 만찬’, 영친왕의 호화판 유럽 여행
“가면을 쓴 남성들에게 보냅니다”, 쏟아지는 여성의 목소리
‘물 한 모금이 황금처럼 귀해’, 일본인 거주 남촌에 수도관 집중
‘먹을 게 없는데 자식만 자꾸 낳으면’, 조선을 달군 ‘산아제한’ 논쟁
음울한 탑골공원, 무산계급의 ‘호텔’, 1925년 경성의 밤거리를 가다
권력층 개입한 신당리 특혜 분양, 경성을 뒤흔든 토지불하 사건
5부 모던과 식민의 경계에 선 그들
‘일본 육사 출신 독립운동가’, 조선인 밀고에 날개 꺾인 이종혁
‘변장, 밀항, 체포’, 열아홉 살 백신애의 시베리아 방랑
‘나라는 존재가 너무 보잘것없다’, 세계 일주 나선 나혜석
‘과연 유럽에서 통할까 의심했지만’, 피카소도 반한 최승희
‘日 폭격하려고 배운 비행술’, 조선 첫 여성 비행사 권기옥
‘구두닦이도 백만장자만큼 자유 누린다’, 미국을 본 개성 청년 김동성
‘5개 국어를 한 조선의 첫 여성 경제학사’, 귀국 직후 요절한 최영숙
백석이 사모한 ‘란’의 연인, 경성제대 반제反帝동맹 주동자 신현중
‘군복을 벗고 조국광복을 위해 궐기하다’, 어린이운동 나선 조철호
‘여성도 고등교육을 받아야’, 제국대학 첫 여성 유학생 신의경
[책 속으로]
남녀노소, 계층 구분 없이 한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일은 그 전까지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중 설렁탕은 가장 인기 있는 메뉴였다. 하지만 일부 양반 계층이나 모던 보이, 모던 걸은 설렁탕을 먹고 싶어도 직접 음식점에 가서 먹는 걸 꺼렸다. 설렁탕집에서는 이런 고객을 위해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_ 15쪽, 〈‘배달의 민족’ 원조 라이더, 경성 거리를 누비다〉 중에서
빌리아드 걸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옥돌장의 인기는 계산대에 있는 여자가 예쁘고 미운 데 있는 것이라 한다. 그 목소리가 이뻐야 하고 좋은 인상을 주어야 된다. 그리하야 가끔 옥돌장이 계산대에 있는 여자와 손님 사이엔 일생을 같이 하는 인연이 맺어지는 수도 있다 한다.” _ 32쪽, 〈‘빌리아드 걸’ 미모가 흥행 좌우, 순종 부부까지 빠진 당구 열풍〉 중에서
1926년 3월 9일 아침 경성역 앞에 인력거 640대가 몰려들었다. 미국을 비롯한 38개 나라에서 온 세계 일주 관광단 637명을 맞기 위해서였다. 이 대규모 관광단은 하루 전인 8일 오후 2만 톤 기선 라코니아(Laconia)호를 타고 인천항에 입항해 임시열차로 경성까지 이동했다. _ 57쪽, 〈‘세계 일주 관광단 태운 인력거 640대’, 경성을 질주하다〉 중에서
“한수봉(28) 군은 19일 오후 3시쯤 하숙으로 돌아와 방에 들어간 채 소식이 없음으로 저녁 때 주인이 문을 열어본즉 벌써 절명되어 있었다. 종로서에서 검시한 결과 만소 국경에 급박한 풍운을 반영하야 궤도를 잃은 주식에 손을 댔다가 약 2000여 원의 손해를 본 것을 비관한 나머지 무서운 독약 청산가리를 마시고 각오의 자살을 한 것인 듯하다고 한다.” _ 98쪽, 〈“일확천금이 가능하냐”, 주식판 뛰어든 ‘경성 개미’들의 환호와 한숨〉 중에서
기사는 나폴레옹이 1804년 국민투표로 제위(帝位)에 올랐다는 점을 주목하고 이를 “씨저식(式) 데모크래시”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유와 공화의 씨를 세계에 뿌린 “나옹은 자유의 모(母)요 공화의 신”이라고 썼다. 일제의 3·1운동 탄압으로 수많은 운동가들이 투옥돼 있던 시절, 나폴레옹이 상징하는 자유와 공화, 혁명은 남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_ 138쪽, 〈‘吾人은 자유의 神을 눈물로 조문한다’, 나폴레옹 100주기 열풍〉 중에서
성탄절은 1920년대 조선에서 대중적 기념일로 떠올랐다. (중략) 1920년 신문에 조선 호텔 대식당에 설치한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등에 화재가 났다는 기사가 난 걸 보면, 성탄 트리도 유행했던 것 같다. _ 204쪽, 〈‘감옥에서 신음하는 형제 생각에 눈물’, 100년 전의 성탄절〉 중에서
자신귀는 자기 몸을 찌르는 귀신, ‘모르핀’ 중독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1920~30년대 신문을 들춰보면 ‘자신귀’란 단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익숙한 용어였다. 100년 전 이 땅에는 모르핀 중독자가 넘쳐났다. 모르핀 주사에 중독된 이들은 주사약을 구하기 위해 딸도, 아내도 팔아넘겼다. _ 213쪽, 〈딸까지 팔아먹는 ‘자신귀’, ‘모루히네’ 조선의 비극〉 중에서
〈발가락이 닮았다〉는 총각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며 성병까지 걸렸다가 서른 넘어 결혼한 M이 주인공이다. 생식 기능을 잃은 줄 알았던 M은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번민한다. M처럼 서른 넘어 늦장가 가서 아이를 낳은 염상섭은 김동인이 자신을 욕보였다며 펄펄 뛰었다. 당장 〈모델보복전〉이란 반론을 써서 《동광》에 투고했다. _ 235쪽, 〈‘발가락이 닮았다?’, 김동인과 염상섭의 자존심 건 지상 논쟁〉 중에서
일본 제국의 첨병인 육군사관학교 출신 독립운동가 이종혁의 재판은 신문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다. 《조선일보》만 해도 〈참의부 군사장 이종혁 공판〉(1929년 2월 7일), 〈참의부 군사장 원심대로 5년 언도〉(1929년 5월 23일), 〈일본군으로 시베리아에 출전, 중국군으로 북벌에 가담〉(1929년 10월 8일), 〈통의군사장 이중위 탈위(奪位)〉(1929년 12월 22일) 등의 속보를 쏟아냈다. _ 288쪽, 〈‘일본 육사 출신 독립운동가’, 조선인 밀고에 날개 꺾인 이종혁〉 중에서
1931년 11월 4일 경성 시내에 호외가 뿌려졌다. 〈초유의 반제(反帝) 비밀결사와 학생중심의 조선공산당〉이란 큼직한 제목이 긴박감을 더했다. 경성제대를 중심으로 일제의 만주침략을 반대하는 반제동맹이 적발됐다는 내용이었다. (중략) 최고 수재들이 모인 경성제대에 전투적 반일(反日) 비밀조직이 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_ 344쪽, 〈백석이 사모한 ‘란’의 연인, 경성제대 반제(反帝)동맹 주동자 신현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