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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계란이라고 답하면 그런대로 ‘쿨한’ 개그로 통하는 시대가 있었다. ‘삶은 계란’이란 귀에 익은 언어의 화용술을 살리는 말장난이 철학과 재치를 겸비했던 셈이다. 삶을 영어로 표현하면 ‘라이프(Life)’가 된다. 그렇다면 Life를 다시 우리말로 옮기면 뭐가 될까. 생명, 생존, 삶, 생, 목숨, 생애, 생활, 생물, 인생 등으로 관점 차이 또는 화법의 차이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광고는 설득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설득의 기술, 그 핵심에는 화법이 있다. 같은 얘기도 풀어 나가는 수법에 따라 훨씬 달라진다는 말이다. 생명보험(Life Insurance) 광고를 예로 들어보자. 이야기의 소재는 거기서 거기다. 화두는 대체로 가족이란 공동체가 경험하는 불안, 질병, 사고, 안심, 든든함, 사랑, 행복 등일 것이다. “내 나이 마흔에 화려한 싱글이 되었다”라는 카피를 앞세운 현대해상의 ‘하이라이프’ 광고는 보험에 가족들을 다 맡기고 화려한 싱글로 거듭나려는 가장의 모습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삼성화재의 ‘올라이프’ 광고는 큰 일만 해결해 주는 생명보험이 아니라 가족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들까지 지켜준다는 뜻으로 ‘생활보험’이란 개념을 부각시키고 있다. Life를 ‘생명’이란 무거운 뜻이 아니라 ‘삶’ 또는 ‘생활’로 풀어 보려는 색다른 화법의 시도이긴 했다.
저간에 이땅에서 가장 공감을 얻었던 ‘Life’의 정의는 ‘인생은 길다’라는 광고 슬로건에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의 기업 광고 ‘인생은 길기엷 캠페인은 인생 또는 가족이란 주제를 이야기하는 화법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브라보 유어 라이프(Bravo Your Life)’란 다소 생뚱한 외래어가 귀에 거슬리긴 하지만 생명보험을 다루는 색다른 수법으로 주목받은 작품이었다. 몇년 전 ‘아버지’ ‘어머니’편으로 유명했던 ‘효’ 캠페인이 2005년 버전으로 환생한 것이다. 가족 구성원의 ‘인생’ 절묘하게 부각 광고 캠페인은 가족 구성원별로 각자가 걸어가는 인생의 다른 길을 묘사하는 6편의 인쇄 광고와 8편의 TV 광고로 전개되고 있다. TV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했던 얘기는 인쇄 광고 카피로 잔잔하게 되짚는 매체 연동 방식을 취한 셈이다. 같은 캠페인이지만 이전의 광고와는 달리 ‘아빠의 청춘’이란 흘러간 유행가를 되풀이하는 듯한 진부한 응원가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또한 ‘인생은 짧다’고 느끼면서 허겁지겁 살아가는 졸속과 초조의 시대적 고정관념을 풀어 헤치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온몸과 마음을 바쳐 정신없이 질주하다가 어느 새 만기가 다 된 보험처럼 퇴물이 되어버리고 마는 중년을 연상시키는 광고는 그런 공감의 결정판이다.
‘카메라의 눈’으로 인생 단계 포착 ‘압권’ 온에어 된 지 2주만에 광고 포털 사이트에서 베스트 CF에 등극하는 기염, 딸편에 등장한 모델 박은빈이 네이버 검색 인기 순위에 오른 사실도 나름대로의 기록이다. 상업 광고 최초로 빌보드 차트 9주 연속 1위를 기록한 비틀즈의 ‘I will’을 배경 음악으로 해서 이를 세대별로 다른 느낌으로 편곡, 각 편의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 간 세심한 배려도 주목을 끈다. 하지만 생리대와 경품, 아줌마와 여성을 중첩시키려 했던 ‘아내’편은 여성 폄하의 혐의를 면할 수 없었고, ‘딸’편에서 브래지어를 착용한 어린 딸의 등을 아버지가 토닥거려 주는 장면은 일부 민감한 여성들의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음을 애써 외면해선 안될 것이다.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녀, 가족과 인생에 끼워 넣은 표현의 코드들이 좀더 사려 깊어야 한다는 비평의 시선을 크리에이티브는 면책 특권으로 비켜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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