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1)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1)마음이니
1) 헬, 영
1) 헬, 영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후 1:6–7.
앞선 5절까지의 내용이 서론(인사말)이었다면 본 6절부터 4:8까지가 딤후의 본론부에 해당한다. 전반부는 1:6-2:26로 복음 사역자의 자세에 대한 교훈과 격려라면 후반부인 3:1-4:8은 복음 사역자로서 직무에 충성하라는 명령이다.
앞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받은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언급한 후에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금 불 붙게 하기위해 충고한다.
6절) 바울은 디모데의 은사가 다시 불타오르게 하기 위해서 과거 자신이 디모데에게 안수했을때 하나님께서 디모데에게 주셨던 은사를 상기시키고 있다. 딤전 4:14에서는 디모데에 대한 안수가 장로회를 통해 이루어졌다라고 표현하는데 반하여 본절은 바울 자신의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이는 디모데에 대한 사역자로서의 안수가 장로회를 통해 주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바울 개인이 행한 것으로 언급함으로 디모데가 바울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요 계승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사’는 ‘카리스마 투 데우’이다. ‘카리스마’는 ‘은혜-카리스’, ‘기쁨-카라’, ‘즐거워하다, 기뻐하다’카이로’에서 파생된 명사로 ‘자애로운 호의의 표시로 주는 선물, 특히 성령의 임재나 능력주시는 것이 특징인 은사나 선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사는 은혜이며 감사, 기쁨이다. 이것이 은혜인 이유는 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사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가 안수를 통해서 받은 하나님의 은사가 외적이거나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은혜임을 ‘네 속에 있는’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분명히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사가 매우 가시적이고 능력적인 것으로 이를 바란다. 물론 은사에 이런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은사는 우리 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은사는 언제든지 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디모데 안에 있던 하나님의 은사가 완전히 소멸되었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여기 사용된 동사 ‘아나조퓌레인’은 ‘계속해서 새롭게 불타오르도록 하다, 계속해서 극렬하게 타오르도록 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나조퓌레오’의 현재 부정사로 디모데 안에 있는 은사가 새롭게 불타오르도록이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다시’를 의미하는 ‘아나’와 ‘살다, 살아나다’를 의미하는 ‘자오’, ‘불, 불꽃’을 의미하는 ‘퓌르’의 합성어이다. 말그래도 '다시 불이 살아나다’는 의미이다. 이를 ESV와 NIV는 ’to fan into flame’, NASB ’to kindle a fresh’로 번역했다. 아마도 당시 연소했던 디모데는 사역을 하던 도중 교회 내에서 활동하던 거짓 교사들과 외적으로 가중되는 로마 제국의 핍박으로 인하여 크게 위축되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여 바울이 보기에 디모데는 다시금 하나님의 사역자로 안수받던 당시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사들을 다시금 기억하며 약해졌던 불을 다시금 뜨겁게 불타오르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디모데후서 1:6–7(새번역)
6이런 이유로 나는 그대를 일깨워서, 그대가, 나의 안수로 말미암아, 그대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이게 하려고 합니다.
7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거스리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은 그들 자신들이 맡은 임미구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만한 특별한 은사를 주시지 않은 채로 그 임무를 맡가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확신해야 한다.’
7절) 한글 번역에서는 7절에서 ‘가르’라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를 번역하지 않았다. 이는 바울이 앞서 디모데의 안수식을 생각나게 함으로 그가 받은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고자 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바울은 ’not A but B’ 구문을 사용한다. 이는 헬라어로 ‘우 A 알라 B’의 형식이다. 바울이 먼저 부정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마음’으로 번역된 ‘프뉴마’는 ‘영, 정신’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본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영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ESV나 NIV는 모두 이 ‘프뉴마’를 ’spirit’로 번역했다. 여기서 두려워하는 으로 번역된 ‘데일리아스’는 본래 ‘의기소침함, 비겁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의 좀더 적확한 번역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의기소침한 마음 혹은 비겁한 마음’이다. 아마도 당시 여러가지 이유로 디모데가 의기소침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은 당시 의기소침해 있는 디모데에게 네가 안수를 받을 때 어떤 영을 받았는지를 기억함으로 다시금 열정에 불타오를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디모데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 마음은 다름아닌 능력과 사랑과 절제였다. 여기서 능력으로 번역된 ‘뒤나메오스’는 다이나마이트의 어원으로 ‘두나미스’의 속격이다. 바울은 이 능력을 롬 1:16에서도 사용했다. 사랑으로 번역된 ‘아가페스’는 갈 5:22에서 표명된대로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로 두려움을 물리치는 힘이다(요일 4:18)
요한1서 4:18
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절제하는 마음으로 번역된 ‘소프로니스무’의 원형 ‘소프로니스모스’는 ‘보존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소조’와 ‘생각’이라 의미의 명사 ‘프렌’의 합성어로 ‘지혜롭게 만들기, 누군가를 현명하게 만드는 원인, 자제, 절제, 수양’을 의미한다. 이 절제하는 마음은 근신, 자기 통제(self-control)로 신약성경에서 여기에 단 한번 등장한다.
이처럼 바울은 교회 내부와 외부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하여 위축되고 의기소침해 있는 디모데를 향해서 안수함을 통해서 너, 디모데를 사역자로 세우면서 하나님께서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를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두려워함이나 위축됨, 의기소침함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영으로 이를 통해서 열정을 가지고 더욱 사역에 매진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출처: https://peterjoy.tistory.com/1083 [하나님나라를 꿈꾸며(Kingdom of God):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