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5-8절에 “만일 물과 영(Spirit)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의 왕국(kingdom) 안으로 들어갈 수 없노라. 육체에서 태어난 것은 육체이며 그 영(the Spirit)에서는 영(spirit)이라. ‘반드시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하노라’고 말한 것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그 바람(The wind)이 원하는 곳에 그것이 불고, 너는 그 소리를 들으나, 그것이 어디서 오고 그것이 어디로 떠나가는지를 너는 알지 못하였노라, 이와 같은 방식에 그 영(the Spirit)에서 태어난 모든 자가 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다”는 말은 “다시 태어나다”는 뜻인데 성령님에서 태어납니다. 다시 태어난 것을 시험할 수 있는 시금석들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몇 가지 살폈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그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였느냐가 그 시금석들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오늘도 계속하여 다시 태어난 것의 시금석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 바람(wind)과 그 영(Spirit)에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5-8절에 “만일 물과 영(Spirit)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의 왕국(kingdom) 안으로 들어갈 수 없노라. 육체에서 태어난 것은 육체이며 그 영(the Spirit)에서는 영(spirit)이라. ‘반드시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하노라’고 말한 것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그 바람(The wind)이 원하는 곳에 그것이 불고, 너는 그 소리를 들으나, 그것이 어디서 오고 그것이 어디로 떠나가는지를 너는 알지 못하였노라, 이와 같은 방식에 그 영(the Spirit)에서 태어난 모든 자가 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멀지 않은 가까운 곳으로부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1)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왕좌에 앉아 계시는 동시에 아주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는 귀로 듣는 것을 소홀히 하고 눈으로 보는 것에 더 의존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작은 세균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질병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미세한 고요의 소리를 마음속으로 들어야 합니다(왕상 19:12). 이 소리는 아주 작아서 우리의 눈이 휴대폰을 볼 때는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쁘게 살아갈 때에는 성령님의 음성을 놓치기 쉬운 것입니다. 기도하는 때에 눈을 뜨고 기도하여도 되지만 눈을 감고 기도하는 이유도 세상의 정보를 차단하고 성령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무의 수액이 어떻게 겨울에 내려가고 봄에 올라가는지 알지 못하듯, 성령님의 활동이 어떻게 신비스러움으로 진행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바람에 흩날린 씨앗이 어디로 떠나가는지를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처럼 진리의 성령님의 바람이 어디로 떠나가시지를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씨앗을 흩날릴지라도 안착될 장소는 성령님께서 정하십니다. 말씀과 성령님께서 어디로 떠나가시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2) 우리가 말씀을 전하면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말씀이 심길 것입니다.
사람이 성령님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당연하게 성령님을 닮습니다.3) 이것은 부모님에서 태어난 자식이 부모님을 닮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이 성령님에서 태어난 것은 성령님을 닮는 것으로 증명되게 됩니다.
다시 태어난 자는 자기 내부에 새로운 본성이 생겼음을 인식합니다.4) 이 새로운 본성은 그가 다시 태어나기 전에 그 사람 안에 없던 것입니다.
양심이 소극적으로 작용하는 반면에 새로운 본성은 적극적입니다. 다시 태어난 자는 자기 내면의 새로운 본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5)
다시 태어난 자는 무엇보다 먼저 영적인 흥미와 관심이 생기게 되는데 교회 밖에 있는 다시 태어나지 못한 세상은 영적인 관심이 없습니다.6)
전에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만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돈을 벌까? 어떻게 높은 자리에 올라갈까’에만 관심을 가졌으며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어디 있어, 죽으면 끝이지, 천국이 어디 있고 지옥이 어디 있어? 돈 벌고 편하게 살고 좋은 집 살고 보이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때에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기를 사람들이 육체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반면에 다시 태어난 자는 영적인 일에 흥미와 관심이 있습니다.7) 하나님의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흥미와 관심이 생겨났습니다.
영적인 일이 그 중대사가 된 것을 발견할 때에 본인이 먼저 놀랍니다. 새로운 생명이 있는 자는 자신의 바뀐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8)
때로 우리는 박해를 통하여 자신이 다시 태어난 것을 알게 됩니다.9) 이 세상은 종교를 박해하지 않고, 예수님을 닮은 자만 박해합니다. 사람들이 다시 태어날 때에, 악마는 그의 왕국에 위협을 느낍니다.10)
다시 태어난 자에게 영적인 일에 대한 지각 및 이해력이 생깁니다. 반면에 다시 태어나지 못한 자들에게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습니다. 다시 태어나서 영적인 지각을 가진 자만 영적인 일을 알게 됩니다. 다시 태어나지 못한 자는 영적인 일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시 태어난 자는 자신이 눈멀었으며 볼 수 없었다는 것을 압니다.11) 그의 생명이 없는 영혼이 하나님께 오기 위하여 움직이지 못하였습니다. (William T. Matson의 ‘Lord, I was blind; I could not see’ 중에서)
크리스천은 성경을 믿도록 자신을 설득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이미 성경을 믿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믿도록 자신과 논쟁하여서 설득하지 않습니다.12) 크리스천들에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믿어집니다.
다시 태어난 자는 그 안에 영적인 원리가 있기 때문에 성경을 믿으며, 성령님의 내적 증거로 성경이 하나님의 참 말씀인 것을 알게 됩니다.13)
여러분은 성령님의 일을 알아보는 새로운 분별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전과 달리 영적인 일을 즐겁게 듣게 된 것에 놀라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영적인 일들을 즐거워한다면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14)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성경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이 즐거운 자가 됩니다. 이것이 다시 태어난 것의 또 하나의 시금석이 됩니다.
자신을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치명적 오류입니다.15) 나는 크리스트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엄마 손잡고 교회 다녔어.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이 확실해, 이러한 착각보다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다시 태어나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며 살다가 죽으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가 다시 태어났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다시 태어난 자는 자기 안에 새로운 본성이 생긴 것을 인식하게 되며, 그런 자기 모습에 놀라게 되어 있습니다.16)
다시 태어난 자의 한 가지 징표는 더욱 자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라는 속도는 달라도 더욱 자라기를 바라는 요소는 반드시 나타나며, 이것은 마치 갓난아이가 젖을 찾고 젖을 먹고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17)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자도 영적인 음식인 말씀을 먹음으로써 자랍니다.
다시 태어난 자는 전에 인식하지 못한 악마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악마를 믿는지 안 믿는지는 신자인지 아닌지를 아는 시금석입니다.18)
다시 태어난 자는 말씀의 젖을 많이 먹고 싶다는 소망을 느낍니다. 다시 태어난 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19)
교부들은 말씀과 씨름하였고 엄청난 양의 주석과 씨름하였습니다.20) 그 반면에 많은 목사들은 그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목사는 목자입니다. 좋은 목자가 양들을 푸른 초장에 누이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것처럼 목사는 교인들에게 영(靈)의 음식을 공을 들여 요리해서 먹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교인들이 말씀을 듣고서 영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은 다시 태어나서 예수님께 속함으로 빛이 되었습니다. 다시 태어난 자는 암흑 안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합니다.21)
새로운 생명이 있는 자는 새로운 생명이 없는 자를 염려스러워 하는데 이것은 다시 태어나 새로운 생명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금석입니다.22) 믿지 않는 나의 엄마, 언니의 영혼을 염려스러워 하여 복음을 전합니까?
1) C. H. Spurgeon, 『스펄전설교전집 요한복음Ⅰ』, 이광식 옮김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20), 189.
2) Spurgeon, 『스펄전설교전집 요한복음Ⅰ』, 192-194.
3) Spurgeon, 『스펄전설교전집 요한복음Ⅰ』, 195.
4)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78.
5)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79-80.
6)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82.
7)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83.
8)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84.
9)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85.
10)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89-90.
11)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91-95.
12)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96.
13)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97.
14)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98.
15)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101.
16)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102.
17)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103-104.
18)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106-107.
19)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110-111.
20)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113.
21)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115-116.
22) Lloyd-Jones, 『요한복음 3장 강해』,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