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하나님의 종 메시아’라는 제목을 갖고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1절에서 말하는 주어 “나”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본문에서 하나님의 종이 이스라엘 온 백성이 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집단 인격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한 개인입니다.1) 하나님의 종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라는 말의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직분에 3가지 직분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제사장을 임명할 때에 기름을 부어서 임명했습니다. 그다음에 예언자, 예언자를 임명할 때도 기름을 부어서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왕, 왕을 임명할 때도 기름을 부어서 임명했습니다.
1. 하나님께서 그의 종 메시아에 대하여 진술하셨습니다.
1) 메시아께서는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이사야 42장 1절에 “나의 종 나의 영혼이 받아들인 나의 선택된 자를, 내가 나의 영(靈)을 그의 위에 주었으며(have put) 그가 그 민족들에게 정의를 나가게 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을 “나의 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종을 영어 성경들은 관계대명사(whom)로 부연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을 쓰러지지 않도록 밑에서 위로 바쳐 버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들인다”(라차)는 “기뻐하다”, “받아들인다”라는 의미입니다. 영어 성경들에 “매우 기뻐하다”(delight)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된 자며 하나님의 영혼이 매우 기뻐하는 자입니다. “영혼”이라는 단어(네페쉬)가 한국어로 “마음”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이 매우 기뻐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Spirit)을 그의 종 위에 주셨고, 그가 정의를 그 민족들에게 나가게 할(bring forth)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성령을 받고서 민족들에게 정의를 나가게 만듭니다.2) 종의 역할은 이 예언이 미래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임을 암시합니다.3)
2) 메시아께서는 연약한 자를 내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사야 42장 2~4절에 “소리치지 않고 음성을 밖에 들리게 하지 않고. 그는 상처 입은 갈대를 부수지 아니하고 어둑해진 심지를 끄지 아니하며 그는 진리에 정의(justice)를 나가게 할 것이며. 그는 어둑하지 아니하며 상하지 아니하리니 그 땅에 정의를 놓기까지고, 그의 율법 안에(for) 섬들이 기다릴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종이 행하지 않을 것이 7번의 “아니하다”라는 부정어로 제시됩니다.4)
① 그는 소리치지(외치지, cry out) 아니할 것입니다(사 42:2).
② 그는 들어 올리지(raise His voice) 아니할 것입니다.
③ 그는 자기 소리를 거리(street)에 들리게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상하게 하다(bruise)”(라차츠)는 “부수다”, “압제하다”를 뜻하니, “상하게 된 갈대”는 “압제함을 받는 자”를 가리킵니다(사 42:3).
④ 그는 상하게 된(bruised) 갈대를 부수지(break) 아니할 것입니다.
⑤ 그는 어둑해진 심지(wick)를 끄지(extinguish) 아니할 것입니다.
옛날에는 등불로 집안을 밝혔습니다. 등잔에다가 기름을 넣고 거기에 심지를 꽂아 놓으면 기름이 그 심지를 타고 올라와 타며 불을 밝히는데, 그 심지가 어둑해져도 메시아께서는 그것을 끄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어둑하거나 상하지 아니할 것이니 그 땅 안에 정의를 놓기까지고 섬(coastland)들이 그의 율법 안에(for) 기다릴 것입니다(사 42:4).
“어둑하다”라는 단어(카하)가 한글 성경들에 “쇠한다”로 번역되었고 영어 성경들에는 “낙심하다”(be disheartened), “비틀거린다”(falter)로 번역되었습니다.
⑥ 그는 어둑하지(be disheartened) 아니할 것입니다.
앞에 3절에 “상하게 하다(bruise)”로 사용된 같은 단어(라차츠)가 4절에서는 “낙담하다”(be discouraged)로 번역되었습니다.
3절의 “상하게 하다”와 “어둑해지다”가 4절에 순서가 바뀌어 나오는데 순서가 바뀌어서 언급되는 교차 대구는 성경에 흔히 나오는 방식입니다.
⑦ 그는 상하게 되어 낙담하지(be discouraged) 아니할 것입니다.
그 백성은 상하게 되고 어둑해지나 그는 어둑하거나 상하지 않습니다. 그들과 같은 고난의 상황에 놓여도 그는 낙심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에 정의를 확립할 때까지 낙심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5)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다 순조로울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6)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항상 상황이 순조롭게 뻥뻥 뚫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순조롭지 못하고 꼬불꼬불한 길을 걷게 되고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는 상황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상황이 닥쳐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다른 점입니까? 상황과 환경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안 좋을지라도 낙심하거나 낙담하지 아니하고 그런 안 좋은 상황을 능히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입니다.
그는 낙심하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이니 그 땅 안에 정의를 놓기까지니 그에 의해 정의가 땅 안에 놓이고 굳게 설(establish)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올바름 안에 부르셨습니다.
이사야 42장 6절에 “내가 너를 올바름 안에 불렀고”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Thus) 그 신(God) 야훼께서 말씀하시는데, 그 하늘들을 창조하셨고 그것들을 늘이신(stretch out) 분이시며, 그 땅과 그것의 소산(offspring)을 펴신(spread out) 분이시며, 그것 위에 그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고(give breath) 그것 안에 걷는 자들에게 영(spirit)을 그러시는 분이십니다(사 42:5).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이 약속의 말씀과 같이 이룰 힘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그러할 능력이 있으신데, 하나님은 누구시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은 창조자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창조하셨고 땅을 만드시고 그 소산을 펴신 자고, 땅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고 그들에게 영(spirit)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말씀하신 것을 모두 이루실 수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께는 이 일들을 이루실 능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창조주께서는 그의 종 메시아를 올바름으로 부르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올바름”은 고정된 규범 혹은 표준에의 일치를 암시합니다.7)
하나님께서는 이 종을 올바름 안에(in righteousness)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종을 자신의 본질적 올바름에 부합되게 부르셨습니다.8)
4) 하나님께서 메시아의 손을 붙잡으실 것입니다.
이사야 42장 6절을 계속 보면 “내가 너의 손안에 붙잡을 것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의 손을 강하게 하시는 것으로 붙들어 주십니다.9)
메시아께서는 자기 힘으로 자기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의 손을 굳게 붙잡으시고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10) 메시아께서는 하나님께서 붙잡고 도와주시는 힘으로 자기 사명을 수행하실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42장 6절을 계속 보면 “내가 너를 보호할 것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 메시아께서는 백성의 언약과 민족들의 빛에 세워지십니다.
이사야 42장 6절 끝에 “백성의 언약과 민족들의 빛에 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준다는 것은 세우는 것을 뜻하고, “임명하다”를 뜻합니다. 그 임명의 목적은 ‘백성에게 속하며 백성을 위하여 주는 언약’입니다.11)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백성의 언약과 민족들의 빛으로 임명하십니다.
7) 메시아께서는 갇힌 자들을 나오게 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42장 7절에 “눈먼 사람들의 눈을 열기에(To open), 죄수를 감옥에서 암흑의 거주자들을 감금의 집에서 나오게 하기에”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죄로 인하여 눈먼 눈을 여시려고 민족들의 빛에 주어지셨습니다. 그 암흑 안에 걷는(who walk) 그 백성이 큰 빛을 보았으며 죽음의 그늘의 땅 안에 거주하는 자들 위에 빛이 비치었습니다(사 9:2).
그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그 사람들의 그 빛이었습니다(요 1:4). 그 빛이 어두움에 빛나고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였습니다(요 1:5).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그 세상의 그 빛이시며 그에게 따르는 자는 결코 어두움 안에 돌아다니지(walk) 아니하였으나 그는 그 생명의 그 빛을 가질 것입니다(요 8:12).
세상은 구원의 무대(stage)이며 구원의 대상들이 거하는 장소입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 세상의 빛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가 그 세상 안에 계신 때 그는 그 세상의 빛이셨습니다(요 8:12, 9:2).
빛이 그 세상 안으로 왔고 사람들이 암흑을 사랑하였습니다(요 3:19). 악(惡)을 성취하는 자는 행위들이 드러나지 않게 빛으로 오지 않음이나.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그 세상 안으로 빛으로 나타나셨습니다(요 12:46).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세상 안으로 나타나신 진짜의 빛이십니다(요 1:9).
그는 그 안으로 믿는 모든 자가 그 어두움 안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고 그 세상 안으로 빛으로 오셨습니다(요 12:46).
야훼의 종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종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눈먼 자들의 눈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야훼의 종 예수님께서는 갇힌 자를 감옥에서 나오게 하시는 분이시며, 그는 또한 암흑의 거주자들을 감금의 집에서 나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감금”(켈레)은 “제한하다(restrain)”(칼라)에서 나왔습니다. “감금의 집”이 영어 성경들에 “감옥 안에(in prison)”로 번역되었습니다.
“감옥”이라는 말(마스게르)은 “닫는다”(사가르)에서 나왔고, 영어 성경들에 “토굴 감옥”(dungeon)이나 “옥”(prison)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죄수(captive)”(앗시르)는 “감금하다”(아사르)에서 나왔고, 영어 성경들에 “죄수”(prisoner)나 “포로”(captive)로 번역되었습니다.
인류는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감옥에 감금되어 자유롭지 못합니다.12) 영적으로 죄수들이기 때문에 선을 선택할 자유가 없고 언제나 선악 중에 악을 선택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 같지만 늘 선택하는 쪽은 선이 아니라 악이라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실상은 선을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죄수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인들로 감금의 집에 갇혀서 암흑 속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빛을 회복하게 하려고 그의 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메시아께서 마치 원자폭탄 같은 힘으로 광복을 주셨습니다.
감옥은 햇살이 들어오지 아니하는 “암흑”으로 표현되었으며(사 42:7), “죽음(사망)의 그늘”로도 표현되었습니다(시 107:10).
하나님께서는 죄수의 신음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시 102:20). 그가 암흑의 거주하는 자들을 감금의 집에서 나오게 하십니다(사 42:7).
8) 메시아께서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실 것입니다.
이사야 42장 8절에 “나는 야훼라(I am) 그것은 나의 이름이고, 내가 나의 영광을 다른 자(another)에게 주지 않을 것이고, 내가 나의 찬양을 조각상들에 그러지 않을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42장 8절에 하나님께서 “나는 ~이다(I am)”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에도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에 7번 “나는 ~이다(I am)”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표현인 “나는 ~이다(I am)”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다른 자(another)에게 주지 않으실 것인데 “다른 자”는 “조각상”, “조각된 우상”(graven image)이라고 밝혀집니다. “조각상”은 사람이 조각한 것이고, 창조주가 아닌 창조물임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찬양을 조각된 우상들에게 절대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에 “너를 위하여 다른 신(神)들이 나의 앞에 대하여 절대 있지 않을 것이라(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20:3).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神)들”에게 그의 영광을 주시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눈먼 자들의 눈을 여시고 죄수들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실 때 다른 자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영광이 그 다른 우상에게 돌아가겠죠!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상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상은 죄인의 눈을 밝힐 수 없고 감옥에서 나오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우상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면 우상이 그 영광을 차지하겠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때에 죄인들을 위해서도 구원하시나 그보다 하나님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셨다면 우리가 연약하고 상한 갈대와도 같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구원은 상한 갈대 같은 우리에게 달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달렸기에, 우리의 힘으로 구원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힘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위해 죄를 범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공유될 수 없습니다.13)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가져다줄 것입니다.14)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실 때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한 분이시니 그의 이름이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15)
하나님께서는 그의 찬양을 조각상(彫刻像)들에 주지 아니하실 것인데 이것도 앞의 문구와 비슷한 뜻입니다.
다른 신(神)들이 눈먼 자들을 보게 하고 갇힌 죄수들을 자유롭게 하고 조각상들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들이 찬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보게 된 자들이, 자유롭게 된 자들이 자기를 구원한 자를 찬양하겠죠! 그러나 조각상들에는 죄인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고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의 찬양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9) 메시아께서는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이사야 42장 9절에 “새로운 일들이 싹이 트기 전에 그것들을 알리며, 내가 너희를 듣게 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당시에 이전 예언자들이 예언한 일이 많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하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런데 과거 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들을 알리시는데 그것들이 싹트기 전에 그것들이 생겨나기 전에 미리 알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800년 전에 미리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들이 싹이 트기 전에 그것들을 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고하지 않으셨다면 우연히 생긴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미리 알려진 까닭에 그 일이 생기면 예언 성취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기 위해 일을 행하시기 전에 미리 알리십니다. 그는 그렇게 하셔서 그 일이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닌 것을 알게 하십니다.
‘옛날의 일들’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이집트부터 구원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약속의 땅에 데려오신다고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그의 종”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이집트에서부터 끌어내셨는데 그것이 바로 ‘옛날의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새로운 일들”, 새로운 구원이 싹이 트게 하시는데 그것을 바로 “나의 종” 메시아를 통해서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생각 없이, 아무 계획 없이 일을 행하지 않으시고, 미리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인류의 타락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들을 미리 선택하셨고, 그의 종 메시아를 보내셔서 구원하실 것을 계획하시고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을 통하여 선택된 자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행하시기 이전에 그것을 미리 알리시는 것입니다. 그 일들이 싹이 틀 때 그 일들이 우연히 되지 아니하였음을 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계획하신 후 그 계획하신 바를 반드시 행하십니다. 그는 장래 일들을 아시며 장래 일들을 모르는 우상들과는 구별되십니다. 그는 장래 일들을 아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계획하시고 성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조각상들과 같지 아니하시고 눈먼 자들의 눈을 여시고 갇힌 자들을 구원하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영원히 영광을 올려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복된 구원영생교회 성도들이 됩시다!
1) Gary V,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권대영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 187.
2) Edward J.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장도선․정일오 공역 (서울: CLC, 2008), 126.
3) Smith, 『NAC 이사야 2』, 195.
4) Smith, 『NAC 이사야 2』, 196.
5)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 (서울: 도서출판 복 있는 사람, 2020), 136.
6)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이사야 Ⅱ』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2), 177.
7)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134.
8) John Oswalt, 『NICOT 이사야 Ⅱ』, 이용중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6), 137.
9) Smith, 『NAC 이사야 2』, 202.
10) Oswalt, 『NICOT 이사야 Ⅱ』, 137.
11)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135.
12)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137.
13) Alec Motyer, 『이사야 주석』, 박문재 역 (서울: 솔로몬, 2018), 711.
14) Smith, 『NAC 이사야 2』, 205.
15) Smith, 『NAC 이사야 2』, 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