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은 80세에 입멸했다고 전해진다. 일개 범부라 해도 80의 나이를 살았다고 하면 그
인생 이야기가 결코 짧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대성인의 경우는 어떻겠는가?
부처님의 일생과 부처님이 남긴 가르침을 빠짐없이 전하기 위해서 바로 저 엄청난 양의 팔만대장경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부처님의 일생을 남김없이 대하소설 형식으로 구성해본다면 그 양이
얼마나 될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주마간산의 아쉬움이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전통적인
팔상성도(八相成道)에 근거해서 부처님의 일생을 크게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간단이 살펴보고자 한다.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한 사람의 일생을 논하면서 전생을 언급하는 일은 고대 인도인 특유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와
같은 사상적 전통이 없는 민족, 특히 물질과학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을 적잖이 당황하게 만드는
신화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 위해서는 어제가 있게 마련이듯, 현생 이전의 전생을 상정하는 일은 그저
불합리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고, 도리어 인과론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그럴 듯한 논리적 추론에
근거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을 생각해볼 때, 부처님이 단 한 번의 삶으로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더 불합리한 것일지도 모른다. 경전에 나타난 이야기에 근거할 때, 부처님은 이 세상에
오기 전에 무수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모습을 취하면서 끊임없는 구도의 길을 걸어왔다. 때로는 토끼
같은 연약한 동물의 삶도 살았고, 장사꾼, 왕, 수행자 등 거의 모든 중생의 입장을 경험해보았다.
그 수많은 전생 이야기의 마지막은 부처님이 도솔천에 호명(護明)이라는 이름을 가진 보살로
존재하면서, 우리들이 사는 세상으로 오기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는 과정으로 장식되고 있다.
호명보살은 도솔천에서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한다.
사람과 하늘 가운데 이런 허물이 있음을 보았으므로, 나는 이제 여기서 내려가 인간으로 태어나
일체중생을 위하여 모든 괴로움을 다 없애리라.(「불본행집경」)
신을 절대적인 완전자로 보지 않고, 인간보다 더 수승한 존재이기는 하나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의 한
부류로 파악하는 것은 불법만의 특유의 입장이다. 대부분의 유신론적 종교가 절대적인 신을 상정하고,
그 신과 합일하는 것, 즉 천상에 태어나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데 반해, 제행무상
(諸行無常)을 종지로 하는 불법은 그러한 경계도 결국은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불법제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코 생천(生天)이라고 할 수 없다.
도리어 불법제자의 그것은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어 윤회의 사슬을 부수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부처님의 최후 전신인 호명보살이 하늘나라의 즐거움에 빠져 영구히 그곳에 머무는 방도를 강구
했더라면, 인간은 인간 세계의 실상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억겁에
걸친 선행을 통해 도솔천이라는 하늘나라에 태어난 호명보살은 그곳 역시 인연이 다하면 쇠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경험하고선, 숙원이었던 일체중생의 제도를 위해 바야흐로 위와 같은 출사표를 내고
사바세계로 향한다.
보살은 생각을 바로 하고 도솔천에서 내려와 정반왕의 첫째 왕비인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
머물렀다. 그때 왕비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에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를 보았다. 그
코끼리는 머리가 붉은 빛이었고 여섯 개의 다리와 코로 선채, 금으로 상아를 단장하고 허공을 날아
내려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불본행집경」).
불법에서는 성모(聖母)신앙이 없다. 마야부인은 위대한 성인을 낳았기는 하지만,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여느 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의 어머니'일 뿐이다. 자식이 생기는 일을 기뻐하지
않을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