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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학개2장1~9절
제목 :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본문은 학개가 전달한 네 개의 예언 중 두 번째 예언입니다.
과거의 솔로몬 성전과 현재 재건하고 있는 성전의 위용을 비교하는 백성들을 향해 이 성전의 영광이 더욱 클 것임을 설명함으로써 성전 재건 역사를 힘차게 해나가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핵심적인 메시지는 4절의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이며 열방의 보배가 이 성전에 이르게 한다는 7절의 예언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옛 성전의 영광을 기억하던 백성에게 지금 성전은 초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옛 성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런 성전이 세워질 것을 말씀하시며 격려하십니다.
1. 하나님의 격려(1~5절)
1) 시간적 배경(1절)
“[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은 학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날이었습니다. 이것은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성전건축을 시작하기로 한 날부터 거의 한 달이 지난 때였습니다(1:15).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은 추수를 마치고 지키는 절기인 장막절의 마지막 날입니다(출23:16; 레23:33-36).
그날은 추수를 마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인 날이었습니다.
바로 그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2) 상황 설명(2~3절)
(1) 스룹바벨, 여호수아, 그리고 남은 자 공동체인 포로귀환자들에게 예언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2절)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
너는...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 본절은 학개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대상들에 대한 언급입니다.
여기서 '남은 백성'은 1:12,14에 나타난 '남은 바 모든 백성'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닙니다.
(2) 이전 성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 새로 짓고 있는 성전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를 물으십니다(3절)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
백성들 중에는 아주 어렸을 적에 그 웅장하고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을 본 사람들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B.C.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귀환한 유다 백성들 가운데 노인들 중 몇몇은 이전의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을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학개의 독려로 한 달 동안 세운 성전은 솔로몬성전과 비교할 때 너무나 형편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재건한 성전을 보면서 실망하였던 듯합니다.
왜냐하면 학개가 백성들에게 본절에 나타난 세 가지 수사학적 질문,
곧 '이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를 통해서 이전의 솔로몬 성전과 비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의 기록에 따르면 재건된 성전에는 솔로몬 성전과 비교해서 다섯 가지가 없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① 재단의 거룩한 불,
②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세키나,
③ 법궤와 그룹,
④ 우림과 둠밈,
⑤ 예언의 영입니다.
탈무드의 기록처럼 이러한 것들이 빠져 있는 성전을 본 유다 노인들은 저으기 실망하였으며 그 동안 재건을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물거품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3) 함께하심에 대한 예언(4~5절)
(1) 하나님은 먼저 ‘굳세게 할지어다’는 말씀을 세 번 선포하십니다(4절)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먼저 스룹바벨에게, 그후 여호수아에게, 그리고 백성들에게 차례로 ‘굳세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 학개는 재건한 성전이 형편없이 초라함을 보고 실의와 좌절에 빠진 백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그 대상은 여전히 '스룹바벧과 여호수아, 그리고 이 땅 모든 백성, 곧 남은 백성들'입니다.
위로의 말인 '굳세게 할지어다'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끌고 갈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말씀과 동일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보증이 되심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권면을 세 번 반복한 이후에 주어진 명령인 '일할지어다'는 이전에 백성들이 실의와 좌절에 빠져 성전을 재건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열심을 다하지 않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백성들이 굳세어져서 일해야 할 이유입니다(신31:6,8; 수1:5,6,9,17). 한편 '만군의 여호와의 말'은 하나님이 백성들과 함께할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보증입니다.
하나님은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등을 사용하여 반드시 자신이 백성과 함께할 것임을 강력하게 보증하여 주셨습니다.
(2)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십니다(5절)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 '두려워 하지 말지어다'는 앞절에서 세 번이나 언급된 '굳세게 할지어다'와 유사한 명령입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① 출애굽 할 때에 ‘언약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5a절).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 – 이 부분은 70인역과 영역 성경 NEB에서도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맛소라 본문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학개와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조상들이 출애굽 할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던 것을 연상하였을 것입니다.
한편 '언약한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도 앞절에서 언급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와 연결된 듯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시 이스라엘에게 함께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출19:5,6; 34:10,11; 신12;5,11,21; 14:23; 16:6,11; 26:2).
② 하나님의 영이 계속해서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5b절).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 '머물러 있나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메데트'는 분사형으로 과거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함께 있을 것을 뜻합니다.
백성들과 함께할 '나의 영'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즐겁게 할 계시와 능력의 영으로서 백성들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하며 맡겨진 사명을 잘 완수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2. 하나님의 계획(6~9절)
1)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흔드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6절).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
조금 있으면...진동시킬 것이요. - '조금 있으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드 아하트 메아트 히'는 문자적으로 '다시 한번 조금 있으면'입니다.
이것은 종말론적 어구로서 짧은 시간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것이 역사적으로 곧 임박할 어떤 사건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 역사적으로 그것과 연결될 만한 명확한 사건의 부재로 인해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도리어 그리스도의 도래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견해를 반대하는 자들은 '조금 있으면'이 짧은 기간을 가리키기 때문에 수백 년 후에 있을 그리스도의 도래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천 년'도 하루처럼 짧은 기간일 수 있으며
'하루'도 천 년처럼 길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반대 근거는 그리 문제되지 않습니다(시 2:12). 한편 그때에 온 우주가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
'진동시킬 것이요'는 지속적인 진동을 나타냅니다.
우주적 대진동은 하나님의 역사와 개입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여호와의 날에 우주적인 대변동이 일어날 것이며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온 세계가 영향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것은 히12:26에서도 역시 나타나는 바, 그리스도의 도래와 깊은 연관성을 갖습니다.
2)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예루살렘 성전에 이르게 됨으로 그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됩니다(7절).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
'보배'(헴다트)는 문자적으로 '열망' 또는 '사모하는 것' 혹은 '귀중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두가지입니다.
(1) 혹자는 이것이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전에 임하실 때 온전한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2) 혹자는 이것이 은과 금과 같은 귀중한 것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70인역). 즉, 만국이 가져오는 재물로 지은 하나님의 성전의 영광이 이전의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울 것임을 시사합니다(9절).
전자의 견해를 반대하는 후자의 학자들은 '모든 나라의 보배'가 단수인 반면 '이르리니'가 복수라는 점을 그 증거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모든 나라의 보배'를 집합 명사로 이해할 때 이것은 아무런 문제점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자의 견해가 옳고 후자의 견해가 그르다는 것은 아닙니다.
후자는 문맥상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절에서 '은과 금'이 언급되고 있으며 사 60:5에서 열방이 재물을 가지고 오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서로 병행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나 한 가지 흐름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취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도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본 구절의 '보배'를 그리스도로 해석하든 재물로 해석하든 간에 그것은 기독론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열방들은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바라보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 재물을 가지고 오게 될 것입니다.
3) 은도 금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8절)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 이것은 궁핍함과 곤고함에 빠진 유다 백성들에 대한 위로이면서. 동시에 종말에 하나님께서 모든 주권을 행사하실 것임을 시사합니다.
4) 학개의 두 번째 예언의 결론 말씀을 주십니다(9절)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 '이곳에'는 성전을 의미합니다.
성전에 임할 '평강'은 궁극적으로 내적, 외적인 안녕과 번영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약속하신 평강은 종말에 있을 평강의 왕이신(사 9:6) 메시야의 시대, 메시야의 왕국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중 영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 성전의 기능을 완성하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로귀환 공동체의 마음을 이러한 미래에 대한 약속의 말씀들을 통해 위로하셨고 권면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이러한 말씀에 힘입어 눈에 보이는 연약한 현실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계속해서 수행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실 때 비로소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격려하며 확신을 주십니다(1~5절).
찬란한 옛 성전을 기억하는 백성에게 지금의 성전은 초라했고, 더구나 주변 세계는 성전 재건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귀환했고 열정적으로 재건을 시작했지만, 안팎의 어려움이 그들의 의지를 꺾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언약의 말씀이 살아 있고, 성령이 역사하시기에 비록 수고의 결실이 보이지 않고, 일이 형통하지 않아도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장벽에 부딪혀 답보 상태에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은 끝까지 함께해주실 것입니다.
2) 성전의 영광은 겉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에 있습니다(6~9절).
하나님이 부재한 성전은 화려할수록 부패하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은 초라해도 부유합니다.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때가 차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성전으로 모든 나라가 보배로운 예물을 들고 나오며, 거기에 하나님의 평화가 영구히 깃들 것입니다(참조. 요한계시록 21장 24절).
하나님을 신뢰하면,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영적 경험이 강할수록 그 경험에 갇혀 있기 쉽습니다(3절).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새 일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종종 공동체가 새롭게 재건되는 일에 걸림돌이 됩니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삶을 발목 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 일의 동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2)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3~5절,참조 에스라 3장 12, 13절).
과거의 영광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업적과 비교하면서, 자기 일을 하찮은 일로 여기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경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내게 맡기신 일이 내게는 가장 중하고 귀한 일임을 잊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주어진 일을 계속합시다.
기도
공동체-암담한 현실에 낙심하지 않고, 장차 올 영광을 바라보며 힘을 내게 하소서.
열방-경제 위기와 태풍으로 많은 학교가 폐쇄되거나 파괴되어 푸에르토리코의 학교 교육이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선교 단체의 교육 선교 사역을 통해 교육이 재개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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