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로나가 남긴 상처
얼마 전 인근 동네에서 중학생 조카가 고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사가 재생산 되지 않고 쉬쉬하는 분위기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동네 사람들에겐 학교와 나이 등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돌기도 했다. 그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닌 둘째 말에 따르면 키가 매우 크지만 깡마른 몸에 순한 학생이라고 했다. 개별반(발달장애 학생 특수반) 학생이었고 우리 아이는 개별반 학생 또래 도우미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평소의 모습이 어땠는지도 들어볼 수 있었다. 그런 아이가 게임을 제지하는 고모를 살해하였다. 다른 학부모들과 학교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그 아이는 특정 약을 먹고 있는데 투약 후 일정시간 감정을 자극하지 말아야 하는데 고모가 게임을 못하게 해서 우발적으로 사건이 벌어졌다. 부모님은 일찍 이혼을 하고, 아버지도 수년 전 돌아가시고 미혼의 고모가 이 아이의 동생까지 형제를 도맡아 양육하며 할아버지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평소 아이들은 고모를 잘 따르고 고모는 살뜰하게 아이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코로나 시기 발달장애 가정은 그 어떤 가정보다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는 격리된 상태에서 선택지가 게임뿐이었으리라. 누구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남은 가족이라곤 할아버지뿐인데 연로하여 아이를 보살필 수 없어 시설에 보내진다고 했다. 일부 사람들은 위험인물이 이 동네에 살고 있어 소름 끼친다고 했다. 비정해 보이지만 이해가 된다.
2. 코로나 시기 놀이터 빌런들
2021년 아직 코로나에 대한 우려가 컸을 시기 우리 동네 신축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위쪽 동네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무리로 내려와 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면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전에는 놀더라도 우리 동네와 윗동네 중간에 있는 효창공원에서 놀았는데 활동영역이 넓어졌나보다. 언제는 아파트 재활용 구역의 형광등을 깨서 위협을 하고, 다른 아이를 때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도망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로 원정 온 윗동네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켰지만 인근의 여러 초등학교에 학생들이 방과후에 해당 아파트 놀이터에 오지 못하도록 하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철저하게 외부인을 차단한 후 그들이 원하는 평화는 찾아왔다.
3. 구구단 공부하는 중학교 1학년
2022년 초 지역의 교육복지센터에서 우리 도서관에서 교육청 공모사업으로 공부방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을 의뢰했다. 중학교 신입생인데 구구단의 학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명목은 수학학습이지만 입학 직후부터 폭력적인 행동을 하며 수업을 거부하고 욕설을 해서 매우 곤란하다고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승호(가명)다. 의뢰는 수학 학습지도였지만 방과후에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지역에서 안전한 곳에서 보호받는 것이 좀 더 실질적인 목적이었다. 승호를 만나기 전에는 등치도 크고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학생은 아닐까 했는데 실제 만나니 이 몸에서 어떤 폭력이 나왔을까 싶을 만큼 작고 깡말랐다. 헐렁한 교복에 커다란 책가방은 승호를 더 외소하게 보이게 했다. 작은 손의 손톱은 단정했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구구단 보다 받아내림이 있는 뺄셈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나무막대 몇 십 개를 이용하기도 했다. 지역의 노동인권 활동가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노동인권을 가르치는데 세금 3.3%를 이해 못해 계약서라도 제대로 쓸까 걱정이 된다고 한다. 승호도 최소한 삶에 필요한 만큼은 배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도했다.
4. 4남매 중 셋째
승호는 위로 30살이 넘은 형과 누나가 있고 아래로 1살 차이의 동생이 있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아버지는 지방에서 일을 하신다는데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그 외 모른다. 엄마는 경계성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형도 몇 해 전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고 동생도 발달장애가 있다고 했다. 누나는 승호에게 문제가 있을 때 주로 도움을 주지만 결혼을 해서 조카들이 있어 전적으로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어머니가 적절한 케어를 할 수가 없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라면을 먹을 때가 많다고 했다. 복지의 대상이라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도 어머니가 도움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어 학교에서도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소연 한다.
이런 상황이라 승호는 지난 코로나시기 적절한 돌봄을 받기 어려웠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누구도 적극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승호가 놀이터 빌런 무리 중 형광등 사건의 주역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코로나는 되돌리기 어려운 흔적을 승호에게 남겼다. 도서관에서 진행한 공부방에서는 승호에게 저녁도 먹여 귀가시켰다. 어느 날은 샌드위치를 보고는 동생에게 주겠다며 챙겨가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5. 첫 시험 그리고 여린 싹
승호의 학교생활은 점점 안정되어 친구관계나 수업태도가 좋아져 교육복지센터에서 상위 기관에 우수사례로 보고하기도 했다. 태권도도 하며 꿈을 키워나갔다. 받아내림 뺄셈은 물론 구구단도 잘 익혀나갔다. 승호는 가르치면 할 수 있는 아이였는데 코로나 시기 되돌릴 수 없었던 시간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올해부터는 학교에서도 방과후에 개별적으로 수학 지도를 시작해 이제는 도서관에서도 학교 방과후의 진도에 맞추어 지도를 한다. 승호는 형태를 보고 기억을 잘 한다. 칠교퍼즐과 소마큐브, 러시아워 등의 보드게임에도 소질을 보인다. 이젠 단위가 높은 곱셈과 나눗셈도 곧잘 한다. 그것도 식을 가지런하게 정렬하며 글자를 또박또박 잘 쓰면서. 그래도 수학보다는 국어가 제일 재미있다고 한다. 국어에는 자신이 있단다.
얼마 전에는 중학교 진학 후 첫 시험을 보았다. 승호네 학교에서는 국 영, 수, 사, 과에 한문도 시험을 봤는데 승호는 자기의 점수를 자랑스럽게 펼쳐 놓으며 자기는 외우는 것은 자신 있다고 말한다. 한문이 그래도 반 정도 맞았다고 매우 기뻐했다. 교육복지센터 선생님들도 여러 과목에 생각보다 좋은 점수를 받아 대견하다고 했다. 물론 한 두 문제 틀렸다고 비탄해 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다. 수학은 이번에는 문제를 풀지는 못했지만 욕심이 생겼는지 곱셈도 하지만 이젠 중학교 과정을 배우고 싶다고 한다.
6. 배움은 무엇인가?
얼마 전 오은영 박사가 TV프로그램에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도 공부를 해야 하냐는 질문에 ”성취해 내는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매우 동감하는 바다. 승호는 비록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성공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자신이 이루어낸 결과에 기뻐하고 있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
학이시습지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7. 님들아 여린 싹을 꺾지 마오
정말 어렵게 틔워낸 싹이다. 주변에서 도움을 주었지만 승호가 자발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못할 일들이다. 하지만 조심스럽다. 아이의 노력은 알지도 못한 채 결과만으로 어리고 여린 싹을 꺾을까 두렵다. 승호의 배움을 위해서라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반드시 와야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경쟁만이 문제가 아니다. 모든 아이들의 배움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의 생존을 위해 다른 자의 것을 빼앗고 짓밟는 행위는 인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승자들은 자신이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머리를 쓰고 우리는 그 흐름 안에 있다. 이런 커다란 흐름 속에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가능할까?
그 가능성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섬처럼 그 물살을 버티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수학 대안 교과서
단체의 대안 수학교과서의 수업에서는 오답의 풀이 과정도 의미 있게 만들었다. 답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풀이 과정에 어떤 논리를 펼쳐나갔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수학이고 살아있는 배움이다.
헌법소원
2022년 11월 10일에는 상대평가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74.8%가 각하되는 데 반해 단체에서 낸 헌법소원은 12월 6일에 회부한다고 결정했다. 교육의 본질은 '배움을 통한 성장'이지만 상대평가는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는 것으로 배움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회부가 당연한 결과임에도 사회의 관성에 의해 각하될까 가슴을 졸였다.
누군가 섬처럼 버텨주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런 피 말리는 교육경쟁을 승호가 알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자기만의 속도로 성취하며 기쁘게 공부했으면 좋겠다. 이미 틀렸다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댓글 https://blog.naver.com/noworry21/223110778648
블로그에는 내용을 조금 줄여서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