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닥친 직후인 1998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5.5%(이하 성장률은 모두 2010년 가격 기준)로 후퇴했다. 1960년대 이후 최악의 기록이다. 이해 새로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경기 회복에 총력을 기울였다. 다행히 이듬해인 1999년 성장률이 11.3%, 다음 해 8.9%로 대폭 반등해서 불황이 금방 물러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2000년 들어 미국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대미 수출 비중이 큰 우리 경제는 바로 타격을 입었고, 2001년 성장률은 4.5%로 내려앉았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해외 경기에 뒷덜미를 잡힌 꼴이었다.
정부는 단기 내수(內需) 부양으로 대응했다. 우리 경제에서 국내수요(내수)와 해외수요(외수外需)는 성장 기여도가 대체로 반반이다. 새에 비유하면, 내수와 외수라는 두 날개가 몸통(곧 경제)을 띄운다. 당시 정부 판단은, 외수 부진은 일시적 현상이므로 내수를 일으켜 경기 침체를 막다 보면 곧 수출 경기가 되살아나 경제를 계속 성장시킬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내수 부양책은 정부지출을 늘리고 건설, 부동산, 금융 부문 규제를 풀어 건설과 부동산 경기를 띄우고, 민간의 단기 투자와 소비를 늘리는데 집중됐다. 금리는 낮은 수준으로 묶어 자금 대출자가 진 빚 부담을 줄여줬다. 금융회사 영업 감독도 완화해서 신용카드회사와 은행이 가계에 신용카드 발급, 소액대출, 주택 담보대출을 마음껏 늘릴 수 있게 했다.
효과는 이내 나타났다. 시중 자금 공급이 풍부해져 가계 대출과 소비가 늘었고 부동산 투자 붐이 일어 내수 경기가 좋아졌다. 내수가 살아난 덕에 2002년에는 수출이 부진했는데도 성장률이 7.4%로 높아졌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경기 부양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고 부작용만 드러났다. 가계 빚이 한두 해 사이 곱절로 늘었고, 카드 빚에 몰린 신용불량자가 양산됐다. 중산층 이하 가계의 소비 여력은 크게 위축됐다.
2003년 중반부터는 해외 경기가 회복돼지만 수출을 많이 하는 대기업만 벌이가 좋아졌다. 내수에 의지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벌이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2003년 성장률은 외환위기 이래 최저 기록(2.9%)을 냈다. 경제성장과 내수가 가계 빚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2000년대 초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친 미국발 불황은 다분히 경기순환에 따른 현상이었고, 정부 예측대로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경기가 순환 주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참고 경제의 내실을 다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정부가 단기 부양에 나선 탓에 내수 부문은 반짝 경기 후 빚 부담이 커졌고, 그 탓에 오히려 불황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