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시간으로 지난 10월 24일 오후 2시 45분에
미국 뉴욕의 널싱홈에 계셨던 어머니께서 소천하셨습니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지 23년이 넘게 투병생활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그 모든 긴 여정을 끝내고 하나님 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그 소식을 제가 들은 시간이 오후 3시가 조금 때였습니다.
그때부터 비상이 걸려
뉴욕까지 가는 비행기 티켓팅을 하니 4시였습니다.
오후 7시 반 비행기인데 4시입니다.
급하게 여행 준비를 하고 택시를 타고 도착하니 6시입니다.
1시간 반을 남겨두고 발권을 하여
출국 심사를 마치고 탑승구 쪽을 향하여 걸어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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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사는 조카 집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아버지랑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오후 7시에 뉴욕의 중앙장의사에서 입관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은 입관예배가 메인 장례예배라더군요.
그리고 우리처럼 병원 장례식장이 아니라
장의사에서 모든 것을 주관했습니다.
돌아가시는 순간 장의사측에서 시신을 옮겨 처리하고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화장까지 하여
입관예배(장례예배)를 준비했습니다.
우리처럼 유가족이 빈소를 마련하고 계속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장례예배 한 시간 전에 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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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보니 앞에 관이 있었고, 앞쪽 절반이 뚜겅이 열려 있었으며,
예쁘게 화장한 어머니의 모습이 열린 뚜겅으로 보였습니다.
뇌경색을 23년 넘게 앓으신 모습이 아닙니다.
만 92세의 나이임에도 주름살 하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놀라웠고,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말씀하실 것만 같은 평안한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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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장례식장에 들어오실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양 팔을 붙잡고 들어와야 할 만큼 힘들어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아버지까지 어찌 될까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은혜롭게 진행된 장례 예배를 드리는 동안
아버지의 얼굴에 드리워진 어둠의 그림자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시고 "아 좋다, 좋다"를 연발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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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롱 아일랜드에 있는 워싱톤 메모리얼 파크에서 하관예배를 드렸습니다.
본래 3일 전까지만 해도 그날 비바람이 몰아칠 것이라 예보 되어 있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주일예배를 드리러 아버지께서 다시셨던 하크네시아 교회로 가는데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비가 쏟아지며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습니다.
이 날씨가 본래 어제로 예보되어 있었던 바로 그 날씨였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모든 일을 아름답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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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널싱홈에서 병원으로 떠나시던 날 아버지께서는 우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장례의 모든 절차를 마친 때에는
모든 일을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널싱홈에 다시 들어가시니
그 안에 있는 친구분들과 웃으시며 하이파이브까지 하십니다.
형제들은 널싱홈을 나오며 "아버지는 이제 됐다"했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밤 0시 50분 비행기로 한국에 왔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화요일 새벽 4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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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평생에 가장 정신없이 다녀온 여행입니다.
그런데 마치 무슨 큰 기쁜 일을 갖고 오는 것처럼
마음이 흡족하고 좋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한껏 그 영광의 자유를 누리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슬픔보다는 마음에 기쁨이 가득합니다.
슬픔을 도리어 기쁨으로 바꿔주신 주께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