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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어느 제빵사의 죽음
- 은유시인 -
1
1982년 12월 중순경이었던가, 온몸이 금방 돌덩이처럼 얼어붙을만큼 혹독하게 추운 해거름녘이었다. 남루한 거지행색의 소년은 그날따라 무척이나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남포동 거리로 나섰다. 그가 손에 움켜쥔 것은 고작 100원짜리 동전 세 닢. 삼거리 모퉁이의 찐빵 가게를 지나치려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찜솥 위에 놓인 펑퍼짐하게 살이 오른 찐빵들이었다.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솥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의 코는 사냥개 코처럼 벌름거리며 찐빵의 구수한 냄새를 흡입하기에 바빴고, 어느덧 그의 입안엔 침이 잔뜩 고여 벌어진 입술 사이로 주루룩 흘러내렸다. 때마침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땅딸막한 50대 아주머니가 뒤뚱거리며 나타났다. 그녀는 가뜩이나 작은 눈을 허옇게 부릅뜨고 소년을 잠시 노려보더니, 한 손을 번쩍 들어 파리 쫒는 시늉으로 그를 쫒으며 투덜거렸다.
"아이, 싸가지 없는 거지새끼같으니... 암만 개겨봐라, 거지새끼 줄껀 일절 없응게. 어여 몬 가나?"
몸을 움찔하며 뒷걸음질 치던 소년은 다시 찐빵 쪽으로 다가서더니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이 찐빵 하나에 얼마라예?"
검정색 비닐봉지에 찐빵을 주워담던 아주머니가 소년을 흘끗 쳐다보고는 턱으로 가격표가 적힌 팻말을 가리켰다.
"니는 글도 몬 읽나? 여그 시 개에 천원이라꼬 안 적혀 있드나?"
소년은 한참동안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마 머릿속으로 뭔가를 열심히 계산하는 듯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아주머니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럼, 이 빵 하나는 얼마잉교?"
아주머니의 대답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임마야, 시 개에 천원이라 안 카드나. 그라고 하나씩은 안 판다."
소년의 표정에서 일순간 어두움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에 삼백원 한다카면, 하나는 사묵을 수 있을낀데..."
소년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손바닥에 쥔 동전 세 개의 감촉을 재차 확인하였다. 소년은 시선을 떨군채 이미 색색의 조명으로 훤히 밝혀진 북적거리는 거리를 향해 비척이며 나아갔다. 소년의 모습은 곧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를 즐기려고 쏟아져 나온 인파 속에 파묻혔다.
2
소년은 혈혈단신 고아다. 그가 아주 어렸을 때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기에 부모로부터의 사랑을 느껴보기는커녕 그들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소년은 열 살에 이르도록 여러 먼 친척 집을 두루 전전하다가 그들의 모진 괄시와 구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끝내 가출하였는데, 이후 천애고아로서의 그의 삶은 세상으로부터의 온갖 위협을 홀로 감수해야 함은 물론, 굶주림과 헐벗음의 연속이었다.
그는 하동 근처 한적한 시골마을 적량면 친척집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한동안 진주고속버스터미널 인근의 번화가에서 음식물쓰레기통을 뒤져 허기를 면해왔다. 그러다 그 일대에 먼저 자리한 거지들의 눈에 띄기만하면 붙잡혀 괜한 구타를 당했는데, 어느 날은 거지들로부터 '당장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으름장과 함께 으슥한 구석으로 끌려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흠씬 두둘겨 맞았다. 거지들 세계에서도 소위 텃세란게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이곳저곳 쫒기듯 떠돌며 구걸행각을 벌이길 2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마산 어느 재래시장에서 구걸하던 중 종팔이란 양아치 손에 붙들려 부산 자갈치시장 허름한 창고로 끌려왔는데, 그때 그의 나이 열 셋이었다. 나이에 비해 덩치가 왜소하고 게다가 앳된 인상이었기에 실제 나이보다 두어 살 더 어려보여 앵벌이를 시키기엔 제격이었던 때문이다.
"자, 모두들 끄집어 내봐라. 쬐매 번 놈들은 마, 오늘 직이뿔끼다."
종팔이의 으름장에 일곱 아이들이 일제히 그날 번 돈을 쬐죄죄한 두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에게 다가섰다. 판잣대기로 얼키설키 엮어 만든 20여 평 남짓의 허름한 창고는 천정에 매달린 60촉 백열전구 하나로 실내를 어둑하게 밝혔고, 사방 틈새에서 비집고 들어온 겨울철 칼바람으로 아이들의 짙은 그림자가 사방 벽면에 그림자 인형처럼 너울댔다. 이미 낮술부터 들이켜 불콰해진 종팔이의 입에선 숨을 내쉴 때마다 연신 역겨운 냄새가 풍겨나와 아이들의 코를 찔렀다.
"지... 지... 지는 말... 말... 말입니더, 삼... 삼... 삼천육... 육... 육백... 육백이십... 원 벌... 벌... 벌었씸... 니더."
제일 먼저 말더듬이 달구가 들뜬 목소리로 그날의 수입을 보고했다. 그러자 뒤질세라 덩치가 제일 작은 풀빵구리 덕만이가 쪼르르 끼어들었다.
"지는요, 삼천팔백칠십원 벌었다 아입니꺼."
그 말에 나머지 아이들의 표정이 일순간 부러움과 시샘으로 그득찼다. 종팔이는 양 팔을 크게 벌려 두 아이를 부둥껴 안고 그 등을 일일이 두드려주며 '아이고 내 새끼덜...'라며 공치사를 마다 않았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고개를 번쩍 들어 나머지 아이들을 쭉 째진 눈으로 쏘아보며 고함을 질렀다.
"느거들은 와 꿀먹은 벙어리가 됐노?"
그제서야 아이들이 앞다퉈 각자 그날의 수입을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힐끗힐끗 눈치 보는 것이 버릇이 되어 눈치쟁이란 별명이 붙은 연식이는 이천구백육십원을 벌었다고 보고했고, 배가 터질 정도로 식탐을 여지없이 부려 먹보란 별명이 붙은 구완이는 이천이백칠십원을 벌었다며 보고했다. 그리고 제일 나이가 어린 재룡이도 이천오십원을 보고했다.
"지는... 천이백삼십원을..."
소년의 두 손바닥에 놓인 백원짜리를 비롯한 동전 십여 개를 눈으로 확인한 종팔이는 느닷없이 떡두꺼비같이 두툼하고 큼직한 손바닥으로 큰 원을 그리며 소년의 뒷통수를 후려쳤다. 그 엄청난 완력에 의해 손바닥 위의 돈은 사방에 흩어졌고, 소년은 크게 휘청거리더니 한쪽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종팔이는 분에 못 이긴듯 씩씩 거리며 소년에게 다가가더니 죽은 듯이 엎어져 있는 소년의 옆구리를 발로 몇 번 툭툭 걷어차고는 아직까지 보고를 하지 않은 두성이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니는 와 보고를 않노? 그래 두성이 니는 오늘 얼마를 벌었노 말이다."
동전 한 움큼을 올려놓은 두성이의 두 손바닥은 지폐와 동전을 금방이라도 바닥에 흘릴 정도로 심하게 흔들거렸다. 곧 자기에게 닥칠 혹독한 체벌이 두려웠던지 거의 사색이 되어 혼줄을 놓고 있었다. 종팔이는 두성이의 손바닥 위의 동전을 일일이 헤아렸다. 그리고 예의 날카로운 눈으로 두성이를 다그쳤다.
"칠백이십원? 그래 죙일 나가 번 돈이 이게 다가?"
종팔이의 무지막지한 워커 발이 두성이의 복부와 가슴, 그리고 머리통을 번갈아 걷어찼다. 두성이는 봉제인형처럼 허리가 반으로 접히더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거품 물며 꺽꺽대면서도 두식이의 두 눈은 고통을 호소하는 눈빛이 아니라 의외로 간드러진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 새끼 봐. 뭘 잘했다고 웃고 지랄이야. 이 참에 아예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고 말끼다."
종팔이의 발길질이 계속되고 그때마다 비명도 지르지 않고 그저 쌀자루처럼 맥없이 들썩거리던 두성이는 얼마 못 가 움직이지도 숨을 쉬지도 않았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 본 소년들은 공포에 질려 덜덜 떨기만 할 뿐 아뭇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 겨울 밤 내내 칼바람이 뼛속까지 얼어붙도록 창고 안을 휘젓고 다녔으며, 두성이의 싸늘하게 식어버린 사체는 그날 밤 어디론가 옮겨졌다.
3
소년의 앵벌이 짓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79년 '12·12사태'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이듬해 5월 31일 비상계엄 하에서 국보위를 신설하였고, 국보위는 곧 사회정화를 추진하겠다는 명분을 세워 삼청교육대를 설치했다. 먼저 국보위는 전국적으로 대규모 군경을 동원하여 동네 양아치나 조폭들부터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종팔이가 부평동 모 술집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 삼청교육대에 끌려 간 것은 1980년 12월 이 거의 끝나갈 무렵, 거리가 연말연시 분위기로 한창 들떠 있을 때였다.
종팔이가 거느렸던 일곱 앵벌이 소년들은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종팔이가 나타나지 않자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뿔뿔이 흩어졌고, 소년도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의 번화가를 무대로 구걸행각에 나섰다.
종팔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 어느덧 2년 여의 세월이 흘렀다. 소년의 나이도 열다섯을 헤아리던 1983년1월 중순경, 미화당백화점에서 세명약국으로 가는 중간 길목 4층 건물에 제법 규모가 큰 '비엔씨제과점'이 문을 열었다. 소년에게 있어 이 제과점 앞을 지날 때마다 진열장에 진열된 각양각색의 빵들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것도 중요 일과가 되었다.
지리한 겨울이 물러나자 들녘에 푸른 새싹들이 무성하고 개나리꽃이 만개한 3월이 되었다. 한동안 지속되었던 모진 추위가 한풀 꺾인 뒤라 그 완연한 봄기운을 즐기려 남포동, 광복동 거리엔 더욱 많은 인파들로 북적였다. 늘어지게 낮잠을 잔 소년은 허기를 느껴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때가 오후 2시경이었다. 소년은 광복동 미화당 앞을 거쳐 부평동시장 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부평동시장엔 음식점들이 많이 있어 구걸하기가 한결 쉬웠고, 운 좋게 후덕한 식당 주인이라도 만나게 되면 먹다 남은 밥찌꺼기 대신 온전한 밥상을 대접 받을 수 있었다.
소년이 비엔씨제과점 진열장 앞에 멈춰서서 빵들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머리를 '콩' 쥐어박으며 말을 건넸다.
"너, 우리 가게에 취직하러 왔다니?"
소년이 바라보니 스무 살쯤 되어보이는 아가씨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소년은 '눈이 부실 정도로 그녀가 어여쁘다'는 생각부터 들었고, 덩달아 심장 맥동도 빨라졌다. 괜히 무안해진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런 목소리로 항의부터 했다.
"왜, 때려요?"
그러자 아가씨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어쩔줄 몰라했다.
"아이, 미안해. 아팠어? 넘 귀여워서 장난 삼아 그랬는데..."
"......"
소년의 행색은 때에 절은 남루한 옷에 몇 개월째 감지 않아 덕지덕지 엉겨붙은 머리카락, 얼굴이며 손이며 땟국물이 줄줄 흘러 마치 새까만 까마귀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눈빛은 서늘하게 살아있고, 얼굴 선도 또렷할 뿐 아니라 아가씨의 말처럼 생김새가 꽤나 귀여운 편이었다.
"너, 견습공 구한다는 안내판 보고 왔지?"
진열장 한쪽 면에는 '견습공 구함'이란 푯말이 붙어있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 만 그로서는 간단한 한글만 겨우 읽는 정도였기에 '견습공'이란 낱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뭘 구한다꼬예?"
"견습공"
"......"
"견습공이 뭔지 몰라?"
"......"
"그건 그렇고... 얘, 너 이름이 뭐니?"
"......"
소년은 의외로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남들로부터 괜한 관심이나 호의 따위를 받아 본 적도 없었는데다, 특히 눈부실 정도로 예쁜 아가씨가 그것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상냥한 목소리로 물어오니 당황하여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너, 부끄러움을 엄청 타는구나?"
"......"
"누나한테 이름만 살짝 알려줄래?"
그녀는 소년의 얼굴에 자신의 귀를 바짝 갖다댔다. 그러자 그녀의 목덜미에서 더욱 짙은 분냄새가 풍겨왔고, 순간 소년의 정신은 혼미해졌다. 정신을 차린 소년은 안절부절하여 얼굴이 더욱 붉게 물들었다. 그러면서 딴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름을 그녀에게 일러주었다.
"지는... 지는 말입니더. 이... 이... 이재만이라캅니더."
그렇게 더듬거리며 이름을 밝힌 소년은 뒤로 돌자마자 그녀로부터 도망치듯 휑 달아났다.
4
소년 이재만은 비엔씨제과점의 그 아가씨가 너무 보고 싶어서 거의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무진 애를 쓰며 생각하지 않으려 했어도 앉으나 서나 오로지 그녀 생각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얼굴을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렴풋이, 마치 꿈결에서 얼핏 본 듯 얼굴 형상이 흐릿하게 떠오를 뿐, 그녀의 눈코입 어느 것 하나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참 이쁜 얼굴이던데... 와 이리 생각이 안 나노?"
이재만은 스스로를 '멍청한 놈'이라 여기고 자신의 뺨을 몇 차례 얼얼해지도록 후려쳤다. 비록 그녀의 얼굴만큼은 제대로 떠올릴 수 없더라도 그녀가 풍기던 분 냄새와 그녀의 가냘프면서도 다정다감하던 목소리만큼은 제법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제과점으로 달려가 이번엔 제대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생뚱맞게 그 자존심이란게 뭔지 선뜻 그녀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스스로도 자신이 걸친 걸레같은 옷차림은 물론, 제멋대로 뻗혀 엉겨붙은 머리하며 생전 씻지 않아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이며 손등 따위가 일부러 거울에 비춰보지 않아도 틀림없이 거지 중에 상거지 꼴이려니 여겨졌기 때문이다.
"와, 디게 쪽팔리네."
이재만은 그 자신에게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여지껏 거지행색으로 온갖 사람들 상대로 구걸을 하며 살아왔어도 남 부끄럽다는 생각은 하질 않았었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고 난 후론 갑자기 자신의 꼬질꼬질한 행색이 그리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상거지꼴로는 그녀를 만날 용기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이재만이 다시 그녀를 대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거의 열흘이 지난 후였다. 그날도 그는 제과점 진열대에 전시된 여러 빵 종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그 빵들이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그의 생각은 오로지 그녀 생각뿐이었기에 눈은 빵을 바라보고 있지만 실제론 빵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혹시... 재만이? 재만이 왔어?"
그의 머리 위에서 예의 그 분 냄새가 훅 풍겨오며, 그녀의 목소리도 상큼하게 들려왔다. 그렇지만 그는 그녀를 올려다 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어? 근데.... 재만이, 너 무지 깨끗해졌구나? 영 못 알아보겠는 걸?"
머리도 빗질하고 무스칠하여 반질반질하게 뒤로 넘겼고, 얼굴이며 목덜미며 손등도 새까맣게 묵은 때가 벗겨지고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걸친 옷은 낡은 누더기가 아니라 두툼한 곤색 돕바와 짙은 회색빛 골덴 바지였고, 신발도 짙은 청색 바탕에 흰줄이 그어진 운동화로 새것이었다. 그렇듯 몰라보게 바뀐 자신의 모습만으로도 스스로 어색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하물며 그녀의 칭찬은 그를 더욱 머쓱하게 했다. 그러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마주 바라 볼 엄두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처음엔 재만이의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멀끔하게 생긴 애가 얼마 전엔 어째서 거지꼴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그녀는 신기한듯 그의 얼굴이며 옷매무새 등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마치 자신의 친동생이기라도 한듯 그의 깔끔해진 모습에 기분이 꽤나 좋았던지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재만은 그녀를 다시 만나려면 거지꼴만큼은 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날 고민을 해왔다.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 지, 어떤 옷을 입어야 할 지, 옷을 사기 위해선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 지... 이런저런 생각에 늘 밤잠까지 설쳤다. 또 제과점에 써붙였다는 '견습공 모집'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견습공이 뭔지 그 정확한 뜻이야 알 수 없지만 제과점에서 일하는 사람을 구하는 중일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또 제과점에서 일하기 위해서라도 씻기 싫어도 씻어야 하고, 거지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어야 했다. 먼저 그는 그 엄동설한에 제대로 덥히지도 못한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아야 했고, 또 케케묵은 때도 벗겨내야 했다.
국제시장 옷가게들을 여러 차례 들락거리며 입고 싶은 옷들을 눈여겨 보았지만, 당장은 그 옷들을 살 돈이 없었다. 잠깐이지만 주인이 딴청 부릴 때 잽싸게 훔칠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생각만으로도 괜히 오금이 저려왔고, 심장도 벌렁벌렁거려 견딜 재간이 없었다.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이 역시 만만한 것은 구걸뿐이었다. 그래서 4일동안 죽자사자 '한 푼 보태달라'며 구걸하여 얻은 수입이 육천오백원.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돕바도 사고 바지도 사고 운동화도 사고 털스웨터와 속옷, 양말도 샀다. 그 많은 것을 사기엔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었으나 다행히 인심 좋은 옷가게 주인 아주머니를 만나 돕바와 바지와 털스웨터를 거의 절반 값에 살 수 있었다.
"이리 들어온나. 사장님께 인사 드려야지."
그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어쭙잖게 제과점 안으로 들어섰다. 제과점 안은 밖에서 본 것과는 달리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5
이재만은 40대 중반의 단단한 체격을 지닌 사내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제과점 사장님'이란 소개에 가슴이 잔뜩 쫄아든 기분이었으나 사내는 넉넉한 웃음을 웃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한결 긴장이 풀렸다.
"이름이... 이재만이라고?"
"예."
"나이는 몇 살이지?"
"예... 열... 다섯... 입니더."
"음... 이제 곧 새해를 맞게 되면, 열 여섯이 되겠구먼..."
"......"
"부모님은 뭐하는 분들이신고?"
"아, 예..."
이재만은 잠시 부모를 떠올리려 눈쌀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한 기억이 단 한 가지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사장은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고, 그는 그에 대해 만족할만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저 우물쭈물 댔을 뿐이었는데, 사장은 그의 그런 태도가 너무 어리고 수줍움이 많은 까닭으로 단정지었다. 면접이 끝나고 사장이 그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 보라기에 그가 매장 손님들이 빵을 소쿠리에 담는 것을 보며 대뜸 한 마디 한다는 것이,
"지도... 빵... 먹으면 안되겠심니까?"
그 말에 사장은 물론, 그 면접을 처음부터 초조하게 지켜보던 그녀 또한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먹을 것을 앞에 놓고 주인의 눈치를 보며 먹지 못하여 안달하는 강아지의 순진한 표정을 그대로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먹고 싶으면... 이 누나한테 얘기해서 얼마든지 먹어."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들려준 말이었다. 그날은 그녀가 커다란 접시에 푸짐하게 담아준 빵을 실컷 먹을 수 있었고, 그녀의 이름은 '오자경', 나이는 스물두 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제과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아뿔싸! 첫날부터 무려 세 시간씩이나 지각하여 오자경한테 야단 맞은 것이다. 원래 늦잠 자는 버릇이 있지만, 그보다 지난 밤에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설치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던 것이고, 그로인해 늦잠을 잤던 것이다.
"재만아, 니도 이젠 어엿한 견습공이 됐단 말이지. 힘들더라도 7시 전엔 꼭 출근해야 돼. 안 그럼 내가 대신 혼 나."
여지껏 제대로 된 교육도 받아보질 못했고, 또 규칙적인 생활은커녕 제멋대로 게으르게 살아 온 그가 제과점의 그 엄격한 근무환경에 적응하기란 참으로 어렵고도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새벽에 일어나 차가운 물로 씻어야 하고, 오전7시까지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 그에겐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지천에 놓인 빵을 보고 식탐을 떨쳐내야 한다는 것도 참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처음 한달을 힘겹게 버텨나갔고, 또 두 달과 세 달을 버텨나가면서 그는 거지근성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그녀가 엄청난 인내심으로 그의 허물을 감싸주었고, 또 그를 부단히 가르쳤으며, 또 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는 사이에 반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다. 그동안 이재만은 온갖 허드레일과 심부름 따위의 일만 해왔다. 빵에 대한 식탐도 줄어들면서 한결 의젓해졌다. 비록 배우지는 못했어도 워낙 영리한 터라 말귀를 잘 알아듣고 한번 배운 것은 잊지를 않았다.
그동안 제과점에서 하루 두 끼의 식사와 한 끼의 간식을 제공해 주었기에 끼니를 걱정해야 할 필요가 없었고, 또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매달 급료를 받았기에 용돈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따라서 그로서는 난생 처음으로 호강에 겨워했으며, 세상 부러울게 없었다.
"이제부턴 재만이 너도 빵 만드는 기술을 배워야 안 되것냐. 해서... 오늘부터 당장 3층 작업장에서 일해라."
사장이 3층 작업장 책임자 허문식 차장을 불러 그를 3층 작업장에 배치하라 일렀다. 그동안 빵 만드는 누나들이나 형들의 모습을 힐끗힐끗 보면서 꽤나 부러워했던 그였는데, 마침내 그 역시 애초의 바램대로 빵 만드는 작업에 끼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6개월 여, 온갖 허드레 일만 해오다가 정식으로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게 되었으니, 그것도 승진이라면 승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승진턱이라며 오자경은 그에게 국제시장 산수갑산으로 데려가 돼지갈비를 여한없이 먹였다.
6
이재만은 사장의 지시로 특별히 3층 작업장에 배속되어 빵 만드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작업 현장에서 나이도 가장 어린데다 덩치 또한 또래보다 작은 터라 어른들 가운데 끼어 있는 그를 보면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그런 그가 일을 배운답시고 어른들 틈에 끼어 고사리같은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조물락거리는 것을 보노라면 그 가엾어 보이면서도 일견 대견한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나올 법했다.
그가 제일 처음 배운 것은 일정 크기로 분할된 밀가루 반죽을 두 손바닥을 이용하여 둥글게 둥글리는 작업이었다. 같은 작업조에서 함께 일하는 누나나 형들은 양 손에 각각 하나씩 반죽을 쥐고 수월하게 잘만 둥굴리는데, 그는 몇날 며칠이 지나도록 반죽 하나조차 제대로 둥굴리기를 하지 못해 쩔쩔매기 일쑤였다. 그리고 반죽을 둥굴리는 것도 어렵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둥굴린 반죽을 나무 방망이로 둥굴면서도 넙쩍하고 평편하게 미는 것이었다. 그리고 반죽 안에 앙금이나 야채속을 넣고 반죽을 오무려 봉하는 작업도 의도대로 잘 되질 않았다.
"그게 뭐여? 잔뜩 쥐고만 있응게 반죽이 질퍽하게 안 녹나?"
"......"
"칠칠한 놈 같으니... 몇 번씩 갈쳐줘도 제대로 할 줄도 모르니?"
계속 들려오는 것은 심술궂은 경력자들의 잔소리와 욕설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질타가 계속될수록 해보겠다는 의욕도 자신감도 점점 줄어들었다. 빵 만드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하여 좋아라 길길이 날뛰었던 그로서는 막상 작업장에 배치되어 빵 만드는 일에 끼어들면서 좋기는커녕 오히려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고, 자유마저 박탈 당한 기분이 들었다.
누나들이나 형들은 그가 나이가 어리고 덩치가 작다하여 결코 봐주는 법이 없었다. 아침 7시 출근하면서부터 저녁 7시 퇴근할 때까지 거의 12시간 내내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혹독하게 그를 부려먹었다. 무엇보다 철판을 닦는 일이 그에게 주어졌는데, 헌철판, 새철판, 냉판, 타공판 등등 철판의 종류도 많지만 그가 매일 어김없이 닦아야 할 철판이 오후 2시쯤 되면 그의 키를 훌쩍 넘을만큼 엄청나게 쌓였다. 그 무거운 철판들을 한장 한장 스크레퍼로 오물을 긁어내고 물걸레로 닦고나면, 땀은 등판을 흥건하게 적시고 온몸의 기운이 쇠잔하여 녹초가 되기 마련이었다.
때론 일이 너무 힘들어서, 때론 경력자들의 잔소리 때문에 너무 속상하고 서러워서, 때론 일하다 오븐에 데이고 철판에 베이면서, 그때마다 그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렇다고 소리내어 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속으로만 울었고, 울음을 참느라 눈이 벌겋게 충혈되기 일쑤였다. 그러다 오자경의 눈에 띄이기라도 하면,
"재만이 오늘도 울었나봐? 눈이 토끼눈처럼 벌겋네. 누가 우리 재만이를 그토록 못 살게 구는 거지?"
"......"
"이렇게 이쁘기만 한 우리 재만이를 울리다니... 참 나쁜 누나들이고, 나쁜 형들이다. 이 누나가 혼내줄까부다."
"......"
그녀와 함께 있으면, 그녀는 말이 많아지는 반면에 그는 오히려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녀에게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원래 말 수가 없는 편인데다 웬지 그녀와 함께 있을 땐 더욱 말 문이 굳게 닫혀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언짢은 일이 있었어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었어도 그는 그녀 앞에서만큼은 절대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가 내색을 하지 않더라도 귀신같이 그의 기분이나 의중을 알아챘다. 그러니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그의 편이 되어주고, 잔뜩 심란한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 때문이라도 그는 악착같이 힘든 것을 참고 견뎌 반드시 돈 많이 버는 훌륭한 제빵사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다.
7
이재만은 3층 작업장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매장에서 근무하는 오자경을 만날 기회가 뜸해졌다. 3층 작업장에서 완성된 빵들을 1층 매장까지 운반용 랙크로 배달할 기회가 오면 자연스레 그녀를 만날 수 있었지만, 그럴 기회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더우기 그녀는 근래들어 퇴근시간만 되면 칼 퇴근하기 예사였다. 처음엔 집에 급한 일이 있어 그러려니 생각했었는데, 칼 퇴근이 거듭되면서 자신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 여겨졌다. 더하여 그녀의 행동이 수상쩍게 여겨졌고, 그녀의 행적에 궁금증이 커져가는 것이었다.
"누나, 오늘도 칼 퇴근해? 꽤 바쁜가 부네?"
"미안해. 요즘 이 누나가 개인적인 일로 엄청 바쁘거든. 그래서 당분간 니랑 놀아주지도 못 할 것 같애."
"무슨 일인데?"
"그냥 개인적인 일이야. 나중에 얘기해 줄께."
"지금 얘기해 주면 안돼?"
"지금은... 곤란해."
"......"
그녀는 그가 칭얼대듯 보채자 전혀 그녀답지 않은 단호한 어투로 잘라 말했다.
그녀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그의 그녀에 대한 감정은 쉽게 그녀에게 드러낼 수 없는 분홍빛이었다. 왜 그녀만 생각하면 얼굴이 자꾸 붉어지고 가슴마저 새 가슴처럼 콩닥거리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러한 감정은 쉽게 억누룰 수가 없었다. 그러한 감정이 그녀에 대한 절박한 사랑의 감정일 줄이야 연애의 경험이 전혀 없는 어린 그로서는 알 까닭이 없었다.
하긴 그녀는 그보다 자그마치 일곱살이나 연상이다. 키도 그보다 머리 하나만큼은 더 크다. 무엇보다 그녀는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초등학교를 다니다 만 그에 비해 아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렇듯 모든 것을 비교해도 그녀와는 잽도 안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녀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사그러들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점점 부풀어 갔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한여름 무더위의 기승도 한꺼풀 사그라들고, 새벽녘엔 이불 속의 따끈한 유혹을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쌀쌀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잠을 자면서 그녀에 대한 꿈을 자주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대개 꿈의 내용이 쉬 잊혀지곤 했는데, 근래들어 꿈의 내용 대부분이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 때문에 더욱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볼 엄두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그녀와 달콤한 정사를 하는 꿈을 꾸면서 난생 처음으로 몽정을 했다. 그로서는 처음 맞는 사정으로 사타구니 사이에 배설한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기분 나쁜 이물질에 몸을 움츠리기 보다는 오히려 어른이라도 된 듯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종팔이 밑에서 앵벌이생활을 할 때엔 조숙한 애들이 자위행위하다 벽에 사정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고, 짖궂은 애들은 그가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그의 성기를 주물러서 잔뜩 발기 시켜 놓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그 당시엔 성에 대한 관심도 별반 없었는 데다, 나이에 비해 신체적 성숙이 덜한만큼 성적으로도 덜 성숙했던 것이다. 따라서 애들 하는 행태를 따라 몇 번인가 자위행위란 것을 해봤어도 좀처럼 사정에 이르지는 못했었다.
'이젠 나도 어른이란 말이다. 애가 아니란 말이지.'
정액을 사정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성숙한 남자로써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나이가 어리거나 키가 작은 것은 하등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간 높다랗게만 보였던 세상이 이젠 발 아래로 보였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여자들도 그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정액을 뿌려줄 수 있는 대상으로 보였다. 세상이 그만큼 만만해진 것이다.
그동안 비록 그녀 앞에선 눈도 제대로 맞출 용기마저 없어 꽤나 소극적으로 그녀를 대해 왔었지만, 이제부턴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좋아한다.'란 말을 들려줘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좋아한다.'란 말보다는 '사랑한다.'란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 같았다.
"누나, 사랑해!"
"누나, 아니... 자경 씨... 사랑해!"
"자경 씨. 나, 진짜 자경 씨 사랑한다니까!"
"아, 아...! 자경 씨, 사랑해요!"
혼자서 아무리 큰 소리로 연습을 하고 또 해도 어쩐지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웬지 그녀로부터 관심이 멀어진 듯하여 괜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고, 또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할 기회가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에 초조하기만 했다. 어쨌든 단 둘이 함께 자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그녀의 퇴근에 맞춰 준비하고 있다가 급히 서둘러 제과점을 나서는 그녀의 뒤를 조심스레 밟았다. 근래들어 퇴근 시간에 맞춰 왜 서둘러 퇴근을 해왔는지, 그 까닭이라도 알아내야 그녀를 향한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그녀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갔기에 쉬 따라붙을 수 있었다. 그녀는 세명약국을 지나 왕자극장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좁은 골목 안으로 향하더니 고만고만한 음식점들을 지나 유리문에 '소곱창구이전문'이란 광고글을 써붙인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간 음식점 안은 소곱창이나 빈대떡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곱창굽는 지글지글거리는 냄새와 담배 연기로 혼탁해진 실내 공기, 그리고 도떼기시장처럼 어수선한 사람들 움직임 속에서 상대편의 소줏잔에 술을 따라 붓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8
이재만은 그녀에게 들킬까 싶어 차마 음식점 안으로 들어서질 못하고, 그저 유리문을 통해 그녀의 동태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 전혀 예상밖의 인물이 있었다.
"아니, 저 사람은?"
그녀 앞의 식탁 맞은편에서 그녀가 방금 따라 준 소줏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남자가 있었으니, 뜻밖에도 그는 3층 작업장 책임자이자 공장장 바로 다음 서열인 허문식 차장이었다.
"누나가 왜 허 차장님과 함께 술을 마시는 거지?"
그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며, 시시덕거리는 품새가 예삿 사이가 아닌 듯보였다. 그가 보기에도 그 두 사람은 분명 연인 사이로 비쳐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밖에서 따로 만나 함께 술까지 마실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에 몸이 휘청거렸다.
마치 허 차장이 그에게서 그녀를 가로채 간 것처럼 괘씸한 생각이 들었고, 그녀 또한 그와 상의 한 마디 없이 허 차장과 연애질을 하다니, 그녀에게서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그동안 혼자 일방적으로 그녀를 짝사랑해온 것이라 여겨지니 기분이 여간 씁쓸한게 아니었다.
허 차장은 엄연한 유부남이다. 나이는 서른여덟이고, 슬하에 연령생 딸만 둘 있다고 들었다. D대학 제빵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엄궁 샤니케익에 입사하여 빵 만드는 일에 종사해왔고, 비엔씨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지는 반년이 채 되지 않았다. 훤출한 키와 날렵한 체격,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국적인 외모도 지녔다. 그 때문에 여자관계가 복잡했으며, 걸핏하면 마누라와도 여자 문제로 인한 다툼이 잦았다.
제과점까지 쫒아와 허 차장과 다투던 그의 마누라를 그 또한 여러 차례 목격한 적이 있었다. 가랑잎처럼 비쩍 마른데다 인상이 꽤나 신경질적인 고양이상으로 남편에게 달려드는 폼이 여간 앙칼진 여자가 아니었다. '부부싸움을 집에서 하질 않고, 와 제과점까지 쫒아와서 하는 거야' 그가 그 마누라에게 품을 수밖에 없었던 의문 중의 하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허 차장이 그런 독한 여자에게 시달리는 꼴이 퍽이나 불쌍하다 여겼었다. 그러나 오자경을 빼앗겼다 생각하니 허 차장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마누라가 있는 놈이 뭐가 부족해서, 와 남의 여자를 가로채냔 말이다."
그뒤로도 오자경은 허 차장과 데이트를 하려는지 퇴근하기 무섭게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안 봐도 불을 보듯 뻔한 것이라 속으로만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그리 엉뚱한 데 가 있으니 일이라고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늘 엎지르거나 깨뜨리는 등 부주의한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그때마다 고참들로부터 귀에 따갑도록 심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노무새키, 정신을 어디에 두고 일하노?"
"......"
"니, 자꾸 그럴래? 혼 좀 나봐야 쓰것나?"
"......"
그토록 그의 애간장을 조리게 했던 오자경의 연애질은 막상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허 차장 마누라가 어떻게 그들의 관계를 알아챘던지, 그녀가 일하는 제과점 영업장을 찾아와 예의 고양이 발톱을 곧추세워 그녀에게 앙칼지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야, 이년아! 쌍판대기는 반지르르 해 갖꼬, 기껏 한다는 짓거리가 남의 서방 홀리는 거냐?"
그녀는 허 차장 마누라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할 뿐, 감히 대거리조차 하질 못했다. 결국 그녀는 얼굴에 숱한 할퀸 자국과 함께 허 차창과 결별은 물론 비엔씨를 그만두겠다는 다짐을 하고서야 허 차장 마누라의 집요한 손아귀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것이 또한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녀 역시 허 차장이 카사노바처럼 여자관계가 복잡하고, 또 그로인해 그의 마누라가 제과점까지 찾아와 그 난리를 피우길 어디 한두 번 목격했던가. 그럼에도 허 차장과 연애질을 할 엄두가 났다는 것이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허 차장 마누라가 찾아와 거의 두 시간동안 그녀를 상대로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갔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었다. 당시 3층 작업장에서 일하던 그로서는 1층에서의 난리를 알 까닭도 없었지만, 그 난리를 피운 허 차장 마누라가 3층 작업장에서 일하던 남편 허 차장한테까지는 찾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이후론 제과점을 그만 두었던지 오자경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9
이재만은 그녀의 소식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의 집이 어디인지, 하다못해 그녀의 집 전화번호가 몇 번인지 미리 알아놓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공장장이나 허 차장 등 그들은 알 법한데, 그렇다고 차마 그들을 통해 알아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그녀를 그리워하는 가운데 세월은 걷잡을 새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한 해가 지나고 또 두 해가 지났을 무렵, 느닷없이 그녀로부터 그를 찾는 전화가 제과점으로 걸려왔다.
"재만이니? 나, 자경인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얼마나 보고 싶었고, 또 얼마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던가. 그런데 무슨 말부터 해야 할 지 입 안에서 맴돌기만 할 뿐 말이 되어 나오질 않았다.
"누나..."
"응, 그동안 많이 컸겠구나. 그리고... 기술도 많이 늘었겠지?"
"응..."
"얼굴 한 번 보자."
"응..."
"퇴근, 몇 시에 하지?"
"응, 여섯 시지 뭐."
"응, 맞어. 내가 오늘 맛있는 저녁 사 줄께, 너 돼지갈비 좋아하지? 퇴근하고 바로 산수갑산으로 나올래?"
"응..."
"산수갑산, 어딘지 알지?"
"응."
"그럼, 이따 보자. 시간 맞춰 오고?"
"응."
그는 퇴근하자마자 산수갑산으로 달려갔고, 10여 분 기다린 끝에 꿈에 그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예전과 비교하여 전혀 달라진게 없는 듯 보였다. 아니, 오히려 더 앳되어 보였고, 차림새가 훨씬 더 세련되어 있어 마치 그녀의 온몸에서 밝은 광채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 보였다.
"우와! 재만이, 니 무지 컸구나. 요만했던게 이젠 나보다 훨씬 더 크겠네? 어쩜... 턱에 꺼뭇한 수염 난 것 좀 봐. 어른 다 됐네?"
"뭘..."
"야! 길에서 보면 못 알아보것네."
"......"
만나면 할 말이 많을 것 같았었다. 그렇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녀의 앞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할 말을 잊게 되는 것이다.
"이제, 기술 배운지 삼년 됐니?"
"어, 아니, 이년하고... 반 됐지."
"이년 반?"
"응."
그녀를 처음 만나고부터 지난 2년 반이란 세월이 휘리릭 빠른 회전을 하는 주마등처럼 그의 머릿속을 얼핏 스쳐갔다. 이제 그의 나이도 열여덟 살. 사춘기도 그녀를 그리워하는 열병을 앓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흘려보냈고, 키도 갑자기 훌쩍 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그녀를 올려다 보는 대신에 내려다 보게 되었다.
"모두들 잘 지내고 있겠지?"
"응. 모두 그대로지 뭐."
"허 차장님은 여전하시고?"
허 차장 안부를 묻는 그녀의 질문에 그도 허 차장을 떠올렸다. 그녀가 떠나고 몇 달 되지 않아 허 차장도 갑자기 그만 두었다. 그는 그녀와 허 차장이 혹시 다른 곳에서 계속 만나고 있지나 않을까 하여 그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오히려 허 차장의 근황에 대해 궁금증을 표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나 그만 둔 뒤로 얼마 되지 않아 허 차장님도 그만 뒀어. 그래서 난 또... 누나가 허 차장님이랑 딴 데서 살림이라도 차린 줄 알고..."
"얘는... 못하는 소리가 없네? 나, 그동안 서울 삼촌 댁에 머물면서 양재학원에 다녔었어."
"양재학원? 양재, 그게 뭔데?"
"여자 옷 만드는 기술..."
"응. 그렇구나."
비로소 그간 품어왔던 그녀에 관련된 궁금증들이 풀린 것 같아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이제 그녀는 허 차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아닌 것이다.
10
이재만은 수시로 그녀를 만났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서울에서 내려 온 뒤 수시로 그를 불러냈다. 그는 이제 예전의 작고 깡마른, 그야말로 보잘것 없는 거지 소년이 아니었다. 생김새나 차림새는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고, 무엇보다 훤출한 키의 의젓한 청년으로 자란 것이다.
그녀도 여자로서는 제법 큰 키에 속하는데 그와 나란히 서면 그의 어깨에도 못 미첬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그 보다 일곱 살이나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둘이 함께 걸어가면 그 누구도 그들의 나이 차이를 의식하지 못할 뿐더러 그 둘을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연인으로 보았다.
"재만아, 오늘은 뭐 먹을까?"
"음... 오늘은 뭘 먹지?"
"날씨도 무지 덥고 한데, 우리 원산냉면에 가서 냉면이나 먹을래?"
"냉면? 냉면 말고 밀면 먹자."
처음엔 함께 저녁을 먹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만남이었다. 그러나 불과 얼마 후부턴 둘 사이가 연인 사이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녀는 하늘이 내려준 선녀라 여길만큼 경외의 대상이었고, 난생 처음으로 가슴을 설레이게 만든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녀야말로 그를 시궁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 진정한 은인이다. 그런 이유들로 그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마다 않을 작정이고, 심지어 그녀가 원한다면 칼로 가슴을 가르고 심장이라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는 그녀를 끔찍히 사랑하고 끊임없이 가지길 원하면서도 전혀 그런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의외로 성격이 내성적이라 소심하고 겁이 많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가 그렇게 나오면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그게 겁이 났기에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길 꺼렸던 것이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와 다시 재회하기 전까지는 그를 한낱 덩치 작은 꼬맹이로 나이어린 철부지로만 여겨왔었다. 거지행색의 그를 처음 보았을 땐 그녀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농삿군의 딸로 태어나 이미 궁핍한 생활에 이골이 났었기에 그를 더럽다거나 하찮게 여기질 않았다. 오히려 그의 귀염성 있는 얼굴과 똘망한 눈망울이 꽤나 영특할 것이라 여겼고, 웬지 그가 남동생처럼 정이 느껴져 감싸고 보호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의 눈에 비친 그는 오히려 오빠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여간 의젓하고 믿음직스러운게 아니다. 더구나 남자로서의 성적 매력까지 폴폴 발산하는 그를 더 이상 나이 어린 꼬맹이로 여길 수 없었다.
'재만이랑 연애를 해봐?'
이재만과 단 둘이 있을 때마다 문득문득 그를 만져보고 싶다는 엉큼한 생각이, 그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 싶다는 욕정이 자신의 의지만으론 억제하기 힘들 정도로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안돼, 안돼! 재만이는 덩치는 커도 내겐 여전히 철없는 어린애야! 나보다 나이가 무려 일곱 살이나 더 어린 걸!'
그런 생각 때문에 한동안 스스로를 뻔뻔하다 여겨 마음 고생도 적잖이 했었다. 그런데 그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그 역시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그녀를 끔찍히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보다 오히려 그가 그녀를 더 원하면 원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란 확신마저 들었다.
"재만아, 너... 나 많이 좋아하지?"
"......"
저녁을 먹은 뒤 그들이 용두산공원에 올랐을 때, 해는 이미 뉘엿뉘엿 붉은 기운을 남기고 서녘으로 꼬리를 감추려할 때였다. 둘은 빈 벤치를 찾아 나란히 걸터앉았다. 주위엔 노인 여럿이 희미한 수은등 밑에서 그 불빛에 의지하여 장기를 두고 있었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아베크 족도 몇몇 눈에 띄었다. 그녀는 불현듯 용기를 내어 그에게 기습적으로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에 얼굴부터 빨갛게 붉혔다.
"얼른 대답해봐. 나 좋아하냐구?"
"응... 나, 누나 디게 많이 좋아하는데..."
"얼만큼?"
"......"
"그래, 얼만큼 좋아하냐구?"
"하늘만큼 땅만큼..."
"하늘만큼, 땅만큼?"
갑자기 그녀는 그의 볼에 입을 맞추고 저만치 내뺐다. 그도 유난히 쿵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를 쫒았다.
그들은 그날밤 남포동 피닉스호텔에서 마침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야 말았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고서 말이다.
11
이재만과 오자경은 대청동 대성교회 뒷골목에 위치한 어느 허름한 단독주택 단칸 셋방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그 둘은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채, 오로지 서로가 죽기살기로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동거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둘의 입장에서는 그와같은 상황을 그 누구에게도 자랑스레 떠벌릴 만한 입장도 아니었고, 더하여 축하를 해줄 사람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의 나이는 아직 미성년자라 할 수 있는 만 17세. 무엇보다 그에겐 그같은 사실을 알릴만한 마땅한 일가친척이나 친지들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시간이 더 흐른 다음 언젠가는 알려지게 되겠지만, 지레 부모나 친지들에게 나이 어린 코흘리개를 꼬드겨 결혼을 하게 되었노라 자랑스레 밝힐 처지가 아니었다. 이러저러한 사정 등으로 비록 여러 지인들로부터 축복 받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을 지라도, 그들은 한동안 여늬 신혼부부 못잖게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가 어렸을 적 친척집에 얹혀 살았을 때, '저 웬수같은 놈'이란 지칭을 그의 이름을 대신하여 들어야했고, 저들 식구들끼리 단란하게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에도 그는 그 자리에 끼일 수가 없어 멀찌기 떨어져 군침만 흘려야 했었다. 그렇듯 가정이란 것은 그에게 있어 감히 탐할 수 없는 한낱 신기루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역시 그가 그처럼 원했던 가정이란 것을 갖게 된 것이다.
비록 초등학교 중퇴로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어도 험하게 살아온만큼 또래에 비해 세상 인심을 훤히 꿰뚫고 있으며, 특히 성에 대해서는 조숙하여 오히려 다섯 살이나 연상이면서도 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를 꽤나 당황하게 할 지경이었다.
이제 그는 퇴근하면 당연히 그녀가 저녁상을 차리고 그를 눈 빠지게 기다릴 집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하는데 익숙해졌다. 하루종일 그녀를 생각하면서 일을 했고, 퇴근시각에 맞춰 칼퇴근을 하기에 동료들의 조롱을 받기가 예사였다.
"저 자식은 지가 뭔 시계불알추라고 노상 칼퇴근하고 있어. 새끼, 요즘들어 멀끔해진 걸 보면 혹... 여자친구라도 생긴거 아냐?"
"맞어. 재만이 저 자식 요즘 멋부리고 다니는 꼴 보면 꽤나 수상해졌어."
그가 오자경과 동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 없던 동료들은 '어린 놈이 머리에 쇠똥도 벗겨지기 전에 연애질부터 한다'며 키득거렸다.
그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원해서 배웠던 양장일을 당분간 접을 수밖에 없었다.
- 아직 완성이 안 되었고요, 계속 써 내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
첫댓글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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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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