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성숙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기획한 제도나 프로그램으로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신앙이 그런 것으로 성숙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다. 신앙이 무엇인가? 신앙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믿음으로 거듭나는 생명 사건이며, 스스로의 학습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고백하게 되는 은총의 열매다. 신앙의 성숙도 마찬가지다. 교회 제도나 시스템이나 커리큘럼으로가 아니라 전혀 기획되지 않은 영역에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하나님의 지혜가 낳은 은총의 열매가 신앙 성숙이다. 그런 면에서 신앙의 성숙은 아예 교육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교회의 양적 성장 많을 위한 비전은 지양(止揚)하고, 신앙의 성숙을 지향(志向)하는 우리용두동교회가 되기를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신앙의 성숙과 신앙생활의 역설
정병선목사
우리는 보통 교회생활과 신앙성장이 정비례한다고 생각한다. 교회생활에 열심히 참여하고, 예배를 비롯해 단계별로 준비된 양육 프로그램을 잘 따라가면 신앙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들이 교회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적절한 목회 시스템과 성공한 교회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일에 열심인 것도 다른 이유가 없다. 올바른 원리와 적절한 프로그램만 잘 이식하여 가동하면 언제나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사람은 아무래도 자주 보고 듣고 접하는 것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교회를 가까이 하고 이러저런 훈련과 양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그러지 않는 것보다 신앙 성장에 유익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대형교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 교회가 2004년에 조사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생각이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교회는 지나온 32년간의 사역을 검증하기 위해서 교회 사역의 중심이 되는 철학과 그것을 구현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결과 조사 연구를 했다. 교회 생활이 성도들의 신앙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을 위해 윌로우 크릭 연합체에 속해 있는 여섯 교회를 포함해 15,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3년간 조사하고, 120명을 일대일로 깊이 면담하고, 영적 변화와 인간 개발에 관한 책을 100권 넘게 읽어가면서 야심차게 조사 연구를 했다. 그런데 조사 연구 결과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성도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 다양한 성경공부와 소그룹 모임, 자원봉사와 전도 프로그램 등 적절하면서도 수준 높은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성도들을 훈련키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일들이 영적인 성숙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성도들의 영적 성장에 영향을 미친 요인 또한 개인적인 성경읽기, 기도와 묵상, 친구나 멘토와 맺은 의미 있는 관계,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일수록 교회생활에 만족하지 못했으며,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살아간다고 여겨지는 사람일수록 교회 프로그램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적었다는 것이다.
나는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조사 결과가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신앙의 성숙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기획한 제도나 프로그램으로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신앙이 그런 것으로 성숙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다. 신앙이 무엇인가? 신앙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믿음으로 거듭나는 생명 사건이며, 스스로의 학습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고백하게 되는 은총의 열매다. 신앙의 성숙도 마찬가지다. 교회 제도나 시스템이나 커리큘럼으로가 아니라 전혀 기획되지 않은 영역에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하나님의 지혜가 낳은 은총의 열매가 신앙 성숙이다. 그런 면에서 신앙의 성숙은 아예 교육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이해가 신앙의 성숙을 성령께만 맡기고 개인적인 노력을 방기하는 빌미로 작용하면 안 된다. 교회적인 신앙 훈련이나 신앙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전부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극단으로 발전해도 안 된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교회를 가까이 하고, 이러저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그러지 않는 것보다 신앙 성장에 유익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신앙이 비록 하나님의 신비한 은혜에 속한 일이긴 하나 인간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전적으로 배제된 일이 아니며, 성령은 항상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에 인간적인 훈련의 과정을 밟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고, 약간의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교회생활이 선앙 성장의 동력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어느 정도를 정확하게 확정할 수는 없겠지만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 교회에서 확인된 것처럼, 아무리 수준 높은 내용과 강사들로 짜인 프로그램으로 교육을 해도 그것으로는 성숙한 신앙인을 양육하는데 한계가 있다. 교회생활을 충실히 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하는 데에는 성과가 있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신앙은 성숙할수록 기획되고 동원되는 활동보다는 개인적인 묵상과 진실한 만남, 그리고 깊이 있는 대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전념하기보다는 신앙으로 일상을 살아가는데 에너지를 집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또 인위가 적어지고 무위가 많아지며, 나를 증명하는 일에서 점차 관심이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 교회 성도들에게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일수록 교회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나,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살아간다고 여겨지는 사람일수록 교회 프로그램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적었다는 통계가 그걸 증명한다.
사실 개인적인 성경읽기, 기도와 묵상, 친구나 멘토와 맺은 의미 있는 관계,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는 막대한 자금이나 인원 동원이 필요치 않다. 잘 짜인 프로그램이나 미리 기획된 활동과도 거리가 멀다. 이런 일은 교회생활이 복잡하고 분주할수록 오히려 방해를 받는다. 전혀 과업 지향적이지도 않고, 남의 눈에 띄지도 않고, 내놓을 수 있는 결과물도 없다. 그저 일상에서 자연스레 수행하는 작고 소박한 일일 뿐이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일일 뿐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일들이 신앙 성숙의 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 사람을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인도할 수 길이 없다는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정해진 길은 없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교회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큰 방식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는 교회의 신앙교육이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신앙 성숙의 단계에 따라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하는 좋다고 생각한다. 신앙의 초보 단계에서는 교회가 앞장서서 체계적인 신앙 교육을 하는 것이 좋고, 초보 단계를 마치고 나면 신앙 교육의 방식을 교회가 주도하는 방식에서 성도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다시 말하면 피동적인 교육에서 능동적인 학습의 길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동안 한 가지 방식 - 학습의 방식이 아닌 교육의 방식만을 고수해왔다. 신앙생활을 강화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일에만 집중해왔다. 이 방식은 진정한 의미의 신앙 성숙과는 배치되는 것인데도 그 방식만을 고수해왔다. 그 결과 성도들이 일평생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받았어도 영적인 유아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엄청난 낭패를 겪고 있다. 이제는 한 가지 방식을 넘어서야 한다. 교육과 시스템의 방식뿐 아니라 개별적인 학습과 성령의 자유라고 하는 통제 불능의 교육 방식이 공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요구된다. 첫째, 교회 교육의 목표를 좀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눈앞의 결과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긴 여정으로 이해하는 눈이 필요하다. 둘째, 성도들을 교회의 제도와 시스템의 틀 안에 집어넣으려는 통제의 욕망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성령께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다양한 방식으로 훈련하고 깨우치실 것을 믿고, 교회가 성도들의 신앙을 책임져야 한다는 지나친 책임의식과 염려를 내려놓아야 한다. 성도 스스로가 영적인 밥을 먹고 일상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연습을 하도록 교회 울타리와 프로그램의 틀 밖으로 내보내는 결단을 해야 한다. 셋째, 교회생활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나 교회생활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눈을 떠야 한다. 신앙교육의 목표 또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 교회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양육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넷째, 고독과 안식의 중요성에 눈을 떠야 한다. 고독과 안식은 신앙 성숙의 절대 요소다. 바쁘게 쫓기듯 생활해서는 내적인 성숙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조건이 충족될 때 교회의 신앙교육은 달라질 수 있고, 성도들 또한 신앙생활의 외적인 짐이 가벼워지면서 내적으로는 더 깊어지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고 마쳐야겠다. 신앙교육은 신앙을 강화하는 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앙교육은 신앙을 심화하는 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신앙의 본질과 속성에 맞는 길이며,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검증 결과가 말해주는 신앙의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