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3일 동안 묵었던 호텔은 도원국제공항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이름도 어려운 도희항공성주점(桃禧航空城酒店)이라는
오챠드호텔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당에를 갔더니 넓은 식당에 한국사람이 꽉 차있고 홀에는 여행을 마치고 떠나기 위해서 트렁크를 늘어놓은
사람들이 그룹별로 군데군데 있는데, 꽃보다 할배 이후로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오챠드 호텔 구관의 야경(인터넷에서)
오챠드 호텔 신관
신관의 8~10층까지는 이런 침대들이 있다고...
아침 식당 대부분이 한국사람들이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버스에서...
사흘을 보고 대만의 관광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여행사에서 4일 동안의 기간을 최선의 조합을 해서 여행계
획서를 짰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짜는 스케줄이 짧은 기간에 볼 수 있는 최선의 코스인 셈이다.
사실 대만여행을 하고 난 뒤에 소감은 웅장하거나 놀랄만한 구경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기가 막힌 경관을 보려는 사
람은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냥 적당히 즐기기에는 좋은 곳이며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숙소가 시내와 떨어져 있어서 시내로 들어가려면 내부순환도로 같은 도로를 타고 40여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데 3일 동안을 그
길로만 다니다가 보니 길 가에 무엇이 있는 것까지 알게 되는데 대만에는 도교와 불교가 짬뽕이 된 도교사원도 아니고 불교사
원도 아닌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4일동안 만나는 사원. 지나는 차량과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다.
오늘은 태로각 대협곡을 보러 가는 날이어서 타이페이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데 두 시간이 걸리는 기차가 있고 세시간 반이
걸리는 기차가 있는데 두 시간이 걸리는 기차를 타고 간다고 한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이상하게도 히잡을 쓴 여자들이 역 안팎으로 바글거려서 깜짝 놀랬는데 아마도 회교도들이 집회를 해서 대
합실에 자리를 깔고 하룻밤을 지새운 것 같다.
타이페이 기차역
역광장
인터넷에 보니 TABLIGH AKABAR 라는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무슨 집회인지는...
플렛폼이 한문으로든 월대라고 되어 있다.
기차를 타고 화련으로 가는 길은 타이완섬의 동쪽으로 왼쪽으로 태평양을 끼고 가는데 날씨가 흐려서 바다가 그리 예쁘지 않
다.
가는 도중에는 가끔 모내기를 한 것처럼 보이는 논들이 보이는데 그런 논들을 보면서 이곳이 아열대지방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의란(宜蘭)이라는 곳의 모내기를 한 논들
채소인지 다른 곡식인지...오랫만에 파란 들을 보니 반갑다.
태로각 국립공원에 있는 신성 역 내합실...의미가 여러가지가 있다고..
역사(驛舍)를 새로 지었다고 ...뒤에 보이는 산이 태로각 골짜기로 들어가는 곳이다.
우리가 점심 먹은 곳인데 한국 손님들이 가득차 있다.
타이루거(太路閣)국립공원이 있는 역인 신성역에서 내려 점심을 먹고 셔틀버스를 타고 협곡으로 가는데 태로각 협곡은 남북으
로 길쭉한 섬을 동서로 관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 협곡으로 들어가는데 흐르는 물이 맑지 않고 검회색인데 이 골짜기의 함석이 석회석과 대리석으로 이루어졌기 때
문에 바위가 약해서 바위부스러기들이 부셔져 흘러내리기 때문이라고 하며 이 골짜기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조금 올라가자 장춘교라는 다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태로각 협곡의 관광이 시작되는 곳이다.이곳에는 장춘사라는 절이 있는데
협곡의 도로공사를 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은 절이라고 한다.
태로각 협곡의 도로는 중국 국민당 장개석이 대만으로 망명 시 동행한 군인들과 죄수들이 곡괭이만 가지고 약4년 동안 대만의
동쪽해안인 화렌(花蓮)시 신성에서 대만의 서쪽해안의 타이중(臺中)시까지 도로를 뚫은 대역사로 오로지 인간의 힘만으로 뚫은
대공사라고 한다.
대만의 지질은 대리석과 석회암 등으로 석질이 단단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경사도 심하고 지진도 심하기 때문에 화약을 사용
할 수가 없었다고 하며 이 공사를 하면서 212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장춘사는 오래된 사찰이 아니고 태로각 협곡에 도로 공사를 하면서 사망한 사람들을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태로
각 도로 공사를 하면서 212명이 사망했고 702명이 다쳤다고 하는데 이들 212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58년에 처음 지어졌고
1979년 태풍으로 부셔져서 1980년 다시 건립, 1987년에 자연 재해로 다시 무너지고 다시 지어져서 현재의 것은 세번째 것이라
고 한다.
창춘사로 들어가는 절벽을 뚫어서 만들어 놓은 통로
장춘사 위에 있는 태로각루
기념사진 한 컷
장춘교 다리에서 3동서가 사진을 찍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