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대 찬양의 변천사에 대하여
요즘 성가대의 찬양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우리는 무엇이 정답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입장입니다.
창조주신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 것에 대해서,
찬양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 것에 대해서 등.
나는 성가대 지휘 경력 30년 즈음에 느끼는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장르를 불러야 해!"
그렇게 단정 짓고 싶지 않습니다.
나도 과거에는 '복음성가'가 어떻게 성가대 찬양이야!
라는 생각에 성가대에서 복음성가를 부를 생각도 안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성가에도 본인의 은혜를 위한 곡도 있지만
찬양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만한 곡도 있습니다.
본인의 은혜를 위한 곡이라 해도 가사만 바꾸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알지도 못하는 현대식 성가보다 오히려 은혜스럽기도 합니다.
정말 '정통'으로 성가를 불러야 한다면 '시편가'를 불렀던 다윗 왕 시대나
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법입니다. 그 외의 다른 나라에서 신을 향해 불렀던
곡들은 아주 다양합니다. 들어보지도 못했던 장르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두루마리로 돌아다니던 창조주에 관한 글들이
성경책으로 묶여졌습니다. 그것도 이스라엘법에 의해서입니다.
정말 정통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면 그 두루마리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 것도 그 때 당시 언어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때 당시 속담 생활습관 관습 문화나 시대상으로 읽어야 합니다.
한국어로 여러번 번역되면서 많이 바뀐 것도 있습니다.
빠진 것도 있습니다.
뜻도 잘 모르게 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주신에 관련해서는 정말 정통 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누구든 잘 모릅니다.
그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렇게 바뀌고 저렇게 바뀌고 하는 것을
선배들을 따라하고 바꾸어 가고 있을 뿐입니다.
찬송도 처음에 기독교가 시작될 때는 다른 나라 애국가나 민요나
그런 알지도 못하는 곡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지금은 그래도 "성가는 이런 것이야!" 하고
정립을 해가고 있는 중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성가대가 부르는 스타일이 꼭 찬양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찬양 장르가 바뀐 것이니까요.
지금 성가대가 부르는 스타일에서 트로트 식은 안 되고,
뽕짝 식도 안 되고, 재즈 식도 안 되고, 가요 식도 안 되고,
팝송 식도 안 되고, 천주교 식도 안 되고, 국악 식도 안 되고
CCM은 더 안 되고 라는
우리 마음대로 '안 되고'를 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정하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교회에서 천주교에서 부르는 미사곡을 부를 수가 있어!"
"어떻게 팝송을 편곡해서 개사해서 부를 수가 있어?"
그렇게 본인들이 정하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를
정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본인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식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 찬양이나 현대 찬양 이라고 알고 있는 교회식도,
지금 처럼 바뀐 것도, 원래는 '안 되고' 이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성경에서 말하는 '정통' 이라는 것을 따지려면
꼭 이스라엘 시대로 가야 합니다.
제사의 형태든, 찬양의 형태든, 지형이든 풍속이든 문화든
가옥의 형태든 옷의 형태든 습관이든 속담이든 격언이든
전부 이스라엘 시대로 가야 합니다.
바꾼 것을 적용한다면 다 해당됩니다.
그것도 그 나라법대로 다 다르게 적용됩니다.
제사장이 입었던 스타일도 잘 모릅니다.
성전에서 돕는 자들은 어떤 옷을 입었어야 했는지도 잘 모릅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낳고 젖을 땐 후에 성전에 동자로 보냅니다.
*참고로 동자라는 것은 기독교에는 없고 불교에는 있다.
사무엘은 출가한 것이다.
'출가' 라는 것은 기독교에는 없고 불교에 있다.
이 사무엘 동자가 엘리제사장 밑에서 돕는자로 있었는데 무슨
옷을 입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사무엘이 커가면서 옷이 작아지면
새로 해서 성전에 갖다주곤 했습니다. 무슨 옷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불교는 전체적으로 회색으로 된 단체복을 입고 있다.
찬양대는 어떤 옷을 입었는지 잘 모릅니다.
그때 당시 입었던 옷을 조금 다르게 해서 단체로 입었지 않았을까요?
'에봇'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세마포' 라는 것은 식물성 섬유로
아주 기본적인 옷감 이었다고 합니다. 특별한 옷이 아닙니다.
그들은 어떤 찬양을 어떻게 불렀는지 잘 모릅니다.
자기는 성경에 있는 것 겨우 한 개 지켜놓고,
그 것도 맞는지 확실하게 모르는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이 성경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아는 척하고
틀렸다고 책망하면 안 됩니다.
그가 틀렸으면 당신도 틀린 것이고
당신이 맞았으면 그도 맞을 뿐입니다.
지금 성경속의 '제사장' 격이라고 주장하는 교회 담임 목사들이나
*성경속 제사장은 지금 교회의 목사와 다르다.
지금의 재판장격도 있었고 그야말로 신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직무도 있었다. 죄인이 동물을 갖고 오면 이 제사장이 죽이고
신께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지내면 죄가 사해졌다. 지금의 벌금형격.
장로들이 입는 가운이 정통이 아닙니다.
*성경속 장로는 지금 교회의 장로와 다르다.
이때의 장로는 검찰, 증인, 사형집행자 같은 권세가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수사권이 있었다. 정치가들이지 교회 장로가 아니다.
구별된 곳에서 구별된 옷을 입고 있는 성가대 가운이 정통이 아닙니다.
각자 다른 옷을 입고 있으면 산만해서 보기 싫기 때문에
단체로 입기 위해 만들어진 가운이라고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성가대'의 정통 옷을 따진다면 이스라엘 시대로 가야 합니다.
*성경속 찬양대도 지금 교회의 성가대와 다르다.
그들은 왕의 명령에 의해 골방에서 음악 작업을 하던 자들이다.
그리고 나라의 분깃을 받는다. 지금의 국립합창단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나라 성가 가운을 맞추는 사람들이
디자인한 것을 입을 뿐입니다.
"우리의 죄를 가리고" 라고 주장한다면
목사나 부교역자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성도나
누구나 에봇을 입거나 세마포를 입고 있어야 합니다.
성가대원만 죄인이라 단체옷으로 가리고는 아닙니다.
그래서 '성스러운 성가가운'을 입고 화장실을 가도 되나요
안 되나요? 죄인가요? 라는 율법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입고 가세요! 할 수만 있으면"
그런데 치렁치렁한 가운을 입고 들어갔다가 흘러내려서
오물이 묻고 한다면 흉하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가운을 많이 입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덜 입는 것 같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설교할 때 가운을 입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운이 정갈하게 입혀졌는지, 균형이 맞게 입혀졌는지,
후드가 뒤집히거나 한쪽이 휘어지거나 하지 않았는지
그런 것을 신경쓰느라고 설교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지휘가운을 입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펄럭이고 허우적 거리는 것이 보기 좋지 않습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는 개인 사복을 입고 지휘를 합니다.
그대신 흰색이나 검정색 등 단색으로 고릅니다.
중창단이나 합창단에서도 가운을 입고 하는 것보다
동일 맞춤식 단체복을 입고 하는 것이 훨씬 잘하는 것 같습니다.
지휘자나 반주자까지는 사복을 정갈하게 입고
성가대는 단체복을 입는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흰 브라우스나 단체 상의나 하나로 통일되게 입으면 깔끔하고
산만하지 않아서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입는다고 '안 되고'는 아닙니다.
꼭 어느 성의사에 디자인한 가운을 입어야 성가대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창조주신도 그 찬양만 들으신다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사용하는 것들을 잘 사용하면 되는 것이지
이건 이래야 성경적이야! 저건 저래야 성경적이야!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살 수도 없으며 성경을 알 수도 없습니다.
지금 현재 알고 있는 것들은 수박 겉핥기 식입니다.
어떤 성가를 작곡했든 편곡했든 개사했든
즐거운 마음으로, 흐르는 은혜대로
부르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사고입니다.
- 권혁미 지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