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도시 소개(3) - 허창(许昌)(1) 조승상부
운민 2021. 1. 30. 16:13
조조의 첫 본거지이자 한나라의 마지막 수도로서 존재했던 허창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지명이기도 하고 특히 주나라 때부터 허 나라 지역이라 허라 붙여졌습니다.
한나라의 수도 시절에 허도로도 이름이 바뀌었지만 현재까지 이름이 살아있는 역사가 유구한 지역입니다. 허난 성 남부에 위치해있고 낙양에서 동남쪽으로 직선거리 80킬로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허남성 남부 정저우와 낙양과 삼각형태를 띄고 있는 교통의 요충지 허창
조조가 죽고 조비가 제위를 선양받고 221년 위 기창 우허(위나라의 기초는 허에서 번창할 것이다.)라는 말을 지으며 허창으로 개창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허창이란 지명이 아니었지요. 건안 연간에는 장안, 낙양, 업, 초(조조의 고향 초현)와 더불어 위나라의 5대 도시로 불렸으나, 조비가 수도를 낙양으로 욺 긴 이후 허창의 황궁을 헐어버리고 인구도 절반 이상 이주시키면서 점차 쇠락하다가 후에 고평 릉 사변으로 사마의가 정권을 잡게 되고, 태위 왕릉이 조표를 옹립해 수도를 허창으로 욺 기려는 모반이 진압되면서 허창은 더 이상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조조로 인해 허창으로 수도를 욺긴 한나라
하지만 허창은 베이징에서 광저우로 이어지는 중국 남북 루트의 중간지점에 있고 해서 베이징에서 정저우를 거쳐 우한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던 덕분에 철로가 놓이게 되었고 다시 발전을 조금씩 하게 되면서 예전의 위나라 전성기 시절 영화를 되찾으려 노력 중입니다. 약 10여 년 전부터 조조의 무덤이 발견되고 조조를 재평가하는 움직임과 맞물려 관련 유적을 정비하고 다시 복원하고 있는데요. 조조의 초기 본거지였던 만큼 삼국지 관련 유적도 많고, 거의 대부분의 명소가 전부 삼국지와 인연이 있어 삼국지의 도시라 할 만합니다.
조조 재평가와 더불어 역사도시로 새롭게 부흥을 노리고 있는 허창시
낙양에서 정저우 역을 거쳐 고속철도로 간다면 40분 정도 걸리고, 일반 기차로 간다면 2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고속철도역은 시외각에 떨어져 있지만 일반 기차역은 시내 중심부에 있어서 걸어서도 시내 주요 명소에 쉽게 접근 가능하기에 그 점은 고려하셔야 합니다. 삼국지 관련 유적이 제일 풍부한 도시 중 하나이기에 정말 마음을 먹고 돌아본다면 3박 4일도 모자라지 않나 생각합니다.
고속열차가 정차하지만 시내에선 다소 먼 허창동역
일반 열차가 정차하는 허창역 허창시내에 있어 기준점으로 삼고 움직이기 편하다.
우선 시내 중심부에 조조의 승상부를 재현해 놓은 조승상부가 있고, 맞은편에는 관우와 유비 부인들이 살던 춘추루와 동귀비와 사도 왕윤 묘 조조와 관우가 이별을 한 패릉교가 있습니다. 시 외곽에도 상당히 많은데 동부지역엔 서황 묘와 옛날 한나라때 고성터, 헌제가 제사를 지내던 유수대, 장비 사당과 복완 묘와 헌제 릉이 있고 남부 지역에는 헌제가 양위했던 장소인 수선대, 복황후 묘 등이 있습니다. 북부지역엔 하후돈, 하후연, 마 등 그리고 화타의 묘까지 있죠. 다른 삼국지 도시와 비교해서 위나라의 흔적이 잘 남아있고, 새로 정비를 해 삼국지 여행을 가신다면 꼭 가봐야 할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지 관련 유적이 많은 허창
먼저 찾을 곳은 기차역에 내려 5분 정도 걷다 보면 옛 성터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 허창의 시내에 들어가게 됩니다. 옛 해자터는 지금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어 밤에는 야간조명이 은은하게 비쳐 한번 가볼만합니다. 시내 중심가 위무제 광장이 나오고, 바로 앞에 한나라 양식을 본떠서 새로 만든 조승상부가 나옵니다. 이곳 승상부에서 조조는 한나라의 승상으로서 군사전략을 논의하고 국가의 대사를 처리했다고 합니다.
허창 성벽의 야경, 최근에 정비가 잘되었다.
조승상부에 벌어지는 각종 행사들
위나라 패업의 기초가 된 둔전령과 구현령이 이곳에서 탄생했다고 하죠. 이곳을 기념관으로 해서 복원하는데 2억 위안(333억)이 투자되었다고 합니다. 입구에는 거대한 조조의 석상이 맞아 줍니다. 날카로운 눈매와 꾹 다문 입술에서 조조의 위엄을 한눈에 보여주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옆에는 커다란 동판에 그림으로 새겨져 있는데 조조가 북방 정벌을 마치고 바닷가를 굽이치는 걸 바라보면서 지은 시인 <관창해>를 기린 작품입니다.
조조의 명시 <관창해>를 욺는 장면이 새겨진 부조
갈석산 바닷가는 진시황과 한무제가 방문했던 장소이기도 하죠. 조조는 갈석산에 올라 창해를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내뿜으며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관창해》 : 넓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동쪽 갈석산에 올라
푸른 바다를 바라보니
물결이 어찌나 잠잠한지
산과 섬 우뚝 마주 섰네
수목이 빽빽이 자라
온갖 풀은 무성한데
쓸쓸한 가을바람에
큰 파도 용솟음치네
해와 달의 운행
그곳에서 나오는 듯
빛나는 은하수도
그곳에서 솟는 듯
아 지극한 행복이여
마음껏 뜻한 바를 노래해보세
东临碣石,以观沧海。
水何澹澹,山岛竦峙。
树木丛生,百草丰茂。
秋风萧瑟,洪波涌起。
日月之行,若出其中;
星汉灿烂,若出其里。
幸甚至哉,歌以咏志。
갈석산 앞에 펼쳐진 바닷가를 바라보며 시를 욺는 조조
승상부 안으로 더 들어가면 구현당이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조조의 폭넓은 인재 등용 정책을 기리기 위해 조성해 놓은 곳입니다. 조조는 오직 능력에 따라 사람을 썼으며, 일단 기용하면 과거의 죄를 묻지 않았죠. 이 같은 인재 등용 정책에 힘입어 조조에게 천하의 인재들이 구름 떼같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 신하들과의 인연이 건물 내부에 그림으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제일 중요하고 볼거리가 많은 건물은 의사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밀랍 인형으로 만든 인물상들이 조조를 중심으로 열띤 토론을 하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조조와 신하들의 토론 장면을 정밀하게 재현해 놓은 의사청
특히 하후돈의 애꾸눈이 사실적이라 정말 인상적 있었습니다. 뛰어난 병법가였던 조조는 운주유악 결승 천리 (장막에서의 논의가 천 리 밖 승패를 결정짓는다)라는 말로 전략을 중요시 여겼다고 합니다. 후원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의 경극 탈이 커다란 크기로 일렬로 놓인 모습을 볼 수 있고 옆에는 조조가 지은 시들을 적어 놓은 대형 죽간 형상의 구조물이 눈에 띕니다. 대표적인 시들을 시원시원한 활자체로 조각해 놓았으며 측면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면 중국 고전음악과 함께 부드러운 음성의 시 낭송이 흘러나옵니다.
시 낭송을 들을 수 있는 거대 죽간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거장인 루쉰이 “조조는 당시 문장을 개혁한 시조다”라고 평할 정도로 문학 방면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자랑하는데요. 그는 당시 소박한 민요였던 악부를 공식 문학의 한 장르로 정착시켰다고 평합니다. 그밖에도 조조의 유명한 시는 참 많은데요 단가행을 우선 들 수 있겠고, 도관산, 구수수, 대주, 맥상상 등이 있습니다.
후원 뒤에 있는 3층 건물을 오르면 당시 건 안문학을 설명하고 당시 활동했던 문인들을 일목 요원하게 전시했습니다. 삼조 칠자라고 하는데요 삼조는 조조, 조비와 조식을 칭하고, 칠자는 공융, 완우, 서간, 진림, 응창, 왕찬, 유정 등이 있습니다. 또한 삼국지 8대 미녀에 대한 그림과 설명도 곁들여져 있는데 초선, 대교, 소교, 문소 왕후 견 씨, 손부인, 축 용부인, 헌목 왕후 조절(조조의 딸), 채요(채문희)
후원의 3층 누각에 올라가면 전망을 볼 수 있다. 경극에서 쓰인 가면으로 색깔에 따라 인물의 성격이나 캐릭터가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