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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한 사랑
바이오코드 상담은 때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과 같다. 의사는 환자를 진료할 때 시진(視診)부터 한다. 환자의 모습을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 시진이다. 간이 나쁘면 얼굴색이 검고 심한 경우는 황달이 생긴다. 비만인가, 지나치게 야위었는가를 살펴 성인병이나 소화기계통의 병력(病歷)을 유추해 보기도 한다. 내과의사는 환자의 용태를 살핀 것만으로도 위장병의 유무(有無)를 가려낼 수 있다. 다음 단계가 문진(問診)이다. 환자에게 직접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물어보는 것이 문진이다. 진맥은 손으로 만져보는 촉진(觸診)에 속하며, 청진기를 대고 신체기관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는 청진(聽診)까지는 필수코스지만 정밀진단을 생략하고 바로 처방전을 발행한다면 별로 심각하지 않은 증세로 병원을 찾은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정밀진단은 혈액이나 소변을 채취하여 병리를 분석하거나 CT, X-RAY 같은 장비를 활용하여 병의 종류와 상태를 첵크하는 것을 말한다.
무더위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무렵의 어느 날 한 여인으로부터 내담(來談)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약속일과 시간을 정한 다음 생년월일을 비롯한 간단한 인적사항을 물은 후 통화를 끝냈다. 전화로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여자의 바이오코드는 0635였다. 0635는 전형적인 여름여자다. 그런데 이 여름여자께서 약속이 되어 있던 날 하루 전에 전화로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며칠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렇게 일차 연기를 했고, 두 번째 약속되었던 날에는 아침에 일주일만 더 연기했으면 좋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S35는 의심이 많은 코드다. 상담에 대한 신뢰를 의심하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일까.
올해는 여름의 항성코드인 계사년(癸巳年)이고 지금은 한 여름이다. 제철을 만난 여름여자가 스트레스를 받아 상담을 원한다면 건강이나 경제적인 면보다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남편이 바람이라도 피운 것일까. 복잡한 가정사를 털어놓기가 주저되어 상담을 망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세 번째 정한 약속을 어기지 않고 내담하여 밝힌 바로는 남편이 바람이 난 것이 아니었다. 두 차례 연기를 하다보니 상담은 무더위의 기세가 한풀 꺾였을 즈음 이루어졌는데, 의사가 환자를 살피듯 시진한 결과로 수척하게 야위었고, 눈이 충혈 되어 있었다. 짧은 여름밤을 길게 지새웠다는 반증이었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 사랑에 빠진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여자였다.
0635는 태양이 작열하는 유월의 담장 위에 화려하게 핀 장미 같다. 여름여자가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G06코드는 열정적이고 뜨겁고 행동에 거침이 없는 성향을 보인다. 그래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06코드는 길러준 부모의 은혜도 고려하지 않고 집을 뛰쳐나올 수 있으며, 단칸 셋방에서 살림을 시작하는 것도 불사한다. 신분의 격차, 학력이나 인종의 차이도 사랑만 있으면 초월한다. G06의 여름여자는 사랑에 한번 빠지면 올인 한다.
문제는 S코드가 35이라는데 있다. 상대남이 믿을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으면 의심을 발동시켜 단번에 알아낸다. 바이오코드는 인간이라는 별에게 6개의 불이 켜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여, 그 불이 켜진 상태를 보고 셍체시계의 진행 상태를 파악하는 수리과학이다. G0525, 0630, 0735가 모두 여름에 해당하는데, 0525는 6개의 불 중 하나가 덜 켜진 상태고 0630은 모두 켜진 때고, 0735는 모두 켜졌다가 하나가 꺼진 상태를 말한다. 0525, 0735가 똑같이 5개의 불이 켜진 상태이고, 그래서 여름의 기운도 같은데, 0525는 하나가 덜 켜졌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하나를 켜겠다는 의지를 발동하는 항성코드고, 0735는 6개의 불 중에서 하나가 꺼졌을 뿐인데, 왜 불이 꺼졌지 하고 의심하게 되는 위성코드다. 06 행성코드의 여름여자가 사랑을 하는데, 35로 상대를 의심하여 위기에 봉착해 있는 상태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시진 결과 수척하게 몸이 야위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하루 이틀 밤을 새운 것이 아닐 듯 싶었다. 다음으로 문진을 해본다. 남편의 코드는 1155였다. 겨울의 항성코드로만 되어 있는 겨울남편을 대상으로 여름아내가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1155의 남편은 G와 S코드가 모두 한겨울 항성코드로 되어 있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여름아내와는 원진이어서 대립되는 요소가 많고, 여름아내의 뜨거움으로도 녹이기 힘든 차가운 남자다. 궁합적으로 잘 맞지 않는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은 강원도 평창 어디에다 땅을 좀 사놓았다가, 그 땅에다가 펜션을 지은 다음 화사에 사표를 내고, 내려가 있는 상태란다. 자연 속으로 돌아간 남편이 둘 사이에 태어난 이이들을 보기 위해 서울집에 오는 빈도가 한 달에 한 두 번이고, 그 숫자만큼 부부도 만난다니, 이런 부부가 여전히 불같은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는 처음부터 여길 수 없었다. 겨울 항성코드인 남편의 카리스마에 짓눌려 살던 여름아내가 남편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난 것인데, 몰래하는 사랑이 여자로 하여금 밤을 새우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 여겨졌다.
망설이기는 했지만 여름여자답게 뜸을 많이 드리지 않고 털어놓은 것에 따르면, 예상대로 여자에게는 다른 남자가 있었고, 상대남의 코드는 0540이었다. 05는 여름의 항성코드다. 강력한 열정으로 사랑을 속삭이니 여름남자 여름여자의 사랑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겨울코드인 남편에게는 없는 열정으로 여자를 녹인 것인데, 문제는 남자의 S코드가 40이라는데 있다. 가을의 결실을 염두에 두는 40코드는 결실을 위해서는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쳐낸다. 사랑에 빠졌다가도 자신이 가는 길에, 혹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방해가 된다는 판단이 들면 사랑도 희생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또는 40은 이재 추구에 민감한 코드여서 여자의 돈을 이용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접근했다가 그럴 수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추수할 결실이 없는 사랑을 정리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05는 돈이 있으면 폼나게 쓰는 코드다. 그래서 돈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사랑을 이재추구에 활용한다는 것은 사랑만을 위해 한없이 타오를 수 있는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이다.
무엇보다 05는 바람둥이 성향이 짙은 코드다. 항성코드의 소유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사랑 없이도 여자를 품는다. 05인 오나시스는 마리아 칼라스를 안기 위해 거금을 들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했었다. 거기다가 오나시스는 결혼할 수도 있다는 부도수표를 눈도 깜짝하지 않고 남발했다.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하고 자신과 잠을 잔 것이라고 믿은 마리아 칼라스는, 오나시스가 청혼해 줄 때를 대비하여 남편과 이혼을 했다. 그런데 오나시스는 마리아 칼라스는 금세 다 잊어버리고, 더 많은 돈을 들여 재클린을 품에 안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따지는 마리아 칼라스에게 오나시스는 태연하게 이죽거렸다.
“결혼 할 수도 있다고 했지 언제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었단 말이오.”
05는 이렇다. 부자일 경우 여자를 안기 위해 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쓰지만, 사랑이 아니라 소유했었다는 충족감을 위해서 그러는 것뿐이다. 05는 뜨겁지만 믿을 수 없는 여름남자다. 그런데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속은 줄 안 여자들이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후회 없이 불타오를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하며 쿨하게 돌아서면 되는데, 여전히 그런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믿을 수없게 만드는 행동만 고치면 다 용서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35로 의심하여 알아낸 것들을 들이댄다. 같이 있을 때 여자로부터 전화가 오는데, 35가 대수롭지 않게 넘길 리 없다. 누구냐고 꼬치꼬치 캐묻고, 그렇게 충돌하면서 빚는 갈등 때문에, 여자의 가슴은 터질 수밖에 없다. 자리에 누었다고 잠이 오겠는가. 숟깔을 든다고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 가겠는가. 눈은 충혈 되고 몸이 수척하게 야윌 수밖에 없다.
여자는 모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물었다.
“남자가 헤어지자고 해서 헤어졌는데, 잊을 수가 없어요. 나에게 다시 돌아올까요? 돌아온다면 언제쯤이 될까요?”
딱한 노릇이다. 쿨하게 정리해야 될 부실애정인데, 쪽박이 깨지던 말든 몰아 부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다시 기다리고 있으니, 사랑은 이런 식으로 체면을 돌보지 않게 만든다. 처음부터 남자는 즐기는 것이 목적이었을 뿐인데, 오나시스가 즐기기 위해서 마리아 칼라스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주었듯, 똑같은 이유로 이것저것 신경써준 것뿐인데, 그걸 사랑해서 그런 것으로 알고, 그 사랑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헤어지자는 선언을 했지만 그래도 잘해 줄 때가 있었다고, 그 잘해주었던 기억을 잡고 늘어져, 혹시 돌아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언제 돌아온다. 오지 않는다. 그런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알아맞힐 수 있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용한 점쟁이가 아니라 거짓말쟁이입니다. 다만 바이오코드는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 준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습니다. 남자가 돌아오기를 간히 원하면 돌아오게 해주고, 정리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정리를 도와줍니다. 어떻게 할지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십시오. 마음먹는 대로 됩니다. 남자가 돌아오기를 원하면 절대로 의심하지 말고, 헤어져 있을 때 다른 여자를 만나던 말든 상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그 순간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애원하듯 매달리면 그 남자는 항성코드이기 때문에, 사랑해서가 아니라 돌보아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한번쯤은 즐기기 위해 버린 여자라도 챙기는 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건 사랑이 아니잖아요.”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문제의 발단은 1155 겨울남자와 0635 여름여자가 부부로 맺어졌다는데 있다. 겨울과 여름은 상극이다. 화합하기 힘든 요소가 많다. 그러나 겨울남자에게 여름을, 여름여자에게 겨울을 나누어주면 서로에게 없는 것을 보완하는 것이기에 좋을 수도 있다. 겨울남자는 여름여자의 뜨거움을 받아 조금은 덜 차갑고, 여름여자는 겨울남자의 차가움을 받아들여 맹렬하게 타오르는 열기를 조금 죽이면 건강에 좋고, 그런 만큼 장수할 수 있다. 병은 화기(火氣)나 냉기(冷氣)가 중화되지 않고 기승을 부리기 때문에 생긴다. 각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조금씩 더 양보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위해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것이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일 텐데, 열대(熱帶)와 한대(寒帶)가 공존하기 힘드니 그것이 문제다.
믿을 수 없는 남자를 정리하고 남편에게 돌아가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잘하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는 싫단다. 겨울남편이 어지간히 차가웠던 모양이다. 아이들 때문에 헤어지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여전히 가정 따로 사랑 따로 살고 싶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방법은 부실애정은 정리하고 새로운 남자를 구하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이외에 만남과 헤어짐을 자유롭게 운용하는 별은 없다. 애욕의 갈증은 참혹한 것이다. 온 몸을 재로 만든다. 사랑의 불길에 한번 휩싸이면 숯검정이 되고 만다. 탐진치가 똘똘 뭉쳐진 것이 애욕이다. 그 업연(業緣)을 녹이기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을 녹이지 못하면 죽어서 지옥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서 석탄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 불구덩이에 다시 빠져드는 것을 방치해야 한단 말인가. 열병을 치료할 처방전을 내린다.
열반경에는 애욕은 꽃밭에 숨은 독사와 같다. 사람들은 꽃을 탐해 꽃을 꺾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을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애욕은 마치 횃불을 잡고 바람을 마주하고 달리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손을 태울 염려가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탐욕으로 얽어매어 피안으로 건너가지 못하게 한다. 탐욕은 남도 해치고 자기 자신도 해친다. 이는 법구경 말씀이다.
처방전을 신뢰할 것 같지 않아서 곤혹스럽다. 욕망의 불구덩이에서 나오면 살고, 들어가면 타 죽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려 주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는다. 여름여자의 사랑은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무작정 타오르기 때문에 자신까지 태워버린다는 것이 문제고, 겨울여자는 지나치게 주춤거리며 주저앉기 때문에 사랑이 오려다가도 얼어붙어 비리는 것이 문제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첫댓글 참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내용과는 상관은 없지만..... 이치를 깨닫고 생활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오늘 벌초 다녀왔는데 온 몸이 으스러지듯 내려 앉는 것 같습니다..... 피로가 한결 가벼워 지네요... 감사합니다 ^^^^^
역시 상담이란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상담자의 내공(?)또한 큰 영향을 미치는군요...
탐진치로 부터 자유로워 지는 날까지 수행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