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의 본 53 선지식 17차, 4, 악의 꽃의 비극
악의 꽃의 비극
4월에 피는 꽃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가
시들어 버리는 인연의 몸이 된다면
언제까지 슬픔을 가슴에 안고 노래하려나
나의 노래는 눈물을 쏟는 비극이다,
꽃이 아니라면 슬퍼할 일도 아니지만
꽃이란 이름으로 이 국토에 태어났음이
너무도 가슴이 아파 소리를 지르는 날
피를 토하는 계절의 북을 울려야 한다.
북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북소리는 하늘에서 울리는 북소리인데도 불구하고
슬퍼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을 보면 알아
꽃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려고 하는데도
죽은 자의 무덤에 올려놓고 있는 꽃은
꽃이라는 이름으로 꽃을 원망한다,
세상을 원망해도 원망하는 자들의 피리 소리
언제나 멈추지 않고 들려오고 있는 북소리는
하늘을 원망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불쌍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날을 기억하게 한다.
어둠이 오는 길목에서 길을 불었더니
반말하지 말고 질문을 하세요
무심결에 말이 거칠어졌다기보다
듣는 이에게 있어서 반발로 들렸다면
정말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용서는 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여대생들이라고 말하면서
차림은 속물 서럽게 옷을 입고
다리는 무다리가 되어
지하철 계단을 오른 모
차마 말로는 다할 수 없다,
눈을 감아야 한다는 말도 소용없이
패퇴문화가 판을 치고 있는 나라
그러한 나라에서 무엇을 위해 봉사하려고
충을 들고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
꽃이란 이름으로 장례식장에 줄을 서 있어
누구의; 이름으로 찬양하려고 하나
나는 꽃을 살 돈이 없어서 장례, 식장에 꽃을
보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 꽃을 다시 꽃집으로 돌아가
다시 사자의 빈집에 향기를 풍기고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자연을 모독하고 있음이다
자연의 범죄를 치유하려고 하지만
치유할 수 없는 것이 꽃을 장송곡으로
노래하고 있는 무덤 앞에 조화다
장미꽃을 가슴에 안고 춤이라도 추려나
들판에 장미꽃이란 시를 창작했다고 하여
독일 시인 괴테는 시라고 말할 수 없는 시
그러한 시가 인간의 존재를 성찰하는 노래
노래를 부르는 이들에게 있어서도 슬프다
들장미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곳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
종이에 이름을 붙이는 꽃도 꽃이라고 말하지만
인간의 잔인성에 잘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사막에 피는 꽃에는 무엇을 노래하랴?
리비아에 가서 보았던 산인 장은
사막에서는 자신의 몸을 지키고
꽃이란 이름으로 자태를 보였다.
거기에는 나비도 날고 벌도 날아와
향기에 입맞춤하고 있었다,
소가 새끼를 낳고서 송아지가
젓을 먹으려고 할 때 소가 무엇 때문에
발로 새끼를 차는지 알 수 없지만
새끼도 어미 소의 젖을 먹으려면
점잔이 젖꼭지를 물고 있으면
젓을 먹으라고 있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어미의 젖을
주둥이로 치는가 말이다,
소가 눈을 크게 뜨고 있을 때도
들판에 피어있는 꽃에 달려가서는
아무런 의미의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
인도에서 아침에 소를 보았을 때
그 소는 나를 향해서 달려왔다,
나는 물러나지 않고 소를 향해
소라를 지르고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소를 죽이는 법이 있나!
소가 눈을 크게 뜨고 죽어갈 때 우는 울음소리
무덤에 던져진 거짓 선전에 꽃이란 이름으로
아직도 거짓 선전에 죽음을 기억하게 한다,
그러나 신비하게도 불타가 꽃을 들었을 때
가십이 빙그레 웃었다는 전설은 어쩌면
아름다움을 노래라는 꽃의 이름이다
꽃이란 이름에 잠을 청하는 날
가서는 지금도 미소만 짓고 있어
인도의 모래알처럼 많은 시를 창작한다,
시인을 찬양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꽃은
비극이 아니라 찬양하는 꽃이라고
비가 오는 날에 무지개도 하늘에서 피는
꽃이라고 말하고 싶다
꽃이 너무 슬퍼하지 말게나
내가 너를 안고 입술에 입맞춤하는 순간
그 순간을 위하여 이불을 깔고 춤을 추지구나!
어쩌면 꽃이란 이름으로 장례식장에 서 있는 꽃이 아니기를
꽃들도 인연이 속삭임에 잠을 청하리라
아 그날에 피는 꽃이 무덤을 파고
그 속에 꽃을 뿌리는 것을 보고 슬퍼했다
꽃이란 이름으로 너무도 슬퍼했다.
저기 우크라이나에서 사람을 죽이고
남에 탔으로 뒷집이 씌우는 언론
그들에게는 꽃의 비극이다,
2022년 9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