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의 계절이다. 출퇴근하면서 보는 가을 들판이 아름답다. 길가 과일 가게에 수북이 진열된 갖가지 과일들도 빛깔들이 선명하고 풍성해서 보기가 좋다. 마음까지 그득해지는 기분이다.
군에서는 이맘때면 진급으로 인하여 희비가 교차된다.
진급 대상자나 함께 근무하고 있는 동료는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술렁인다.
1969년 여군소위로 임관하여 부산에 있는 여군소대 소대장으로 부임하였다.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산 땅을 밟았고, 바닷물이 짠 것을 처음 맛보았다.
47명 여군소대원들 앞에서 가슴이 뛰었던 일, 그들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여군사병들의 모험심, 인내심, 투지력, 생활력, 영리함 그리고 군생활을 통하여 훈련된 통솔력 등이 훌륭함을 알게 되었다.
그들을 고향의 새마을운동 여성 지도자로 양성하고 싶어서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가나안농군학교’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고 전역여군사병을 위한 새마을운동여성지도자 양성 교육에 진력했던 기억이 새롭다.
여군창설 기념일에는 우리 소대원이 여군미인선발대회에서 1등(眞)으로 선발 되었고, 전군 타자 경영대회에서 영문 1,2등 한글 1등, 장기자랑에서는 “육군춘향전” 토막극이 3위로 선발 되었다.
임시막사(양철로 된 반원처럼 생긴 건물)를 영구 건물로 신축하여 입주하기도 했다. 종횡무진, 좌충우돌하면서 눈 코 뜰새 없이 생활하고 있던 어느날 중위진급의 소식을 들었다. 임관한지 1년 반이 지난 때였다.
소대장의 경험은 나에게 군에서는 안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자신을 버리고 부하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된다는 사실을 체험했고 일에 대한 희열을 맛보게 하였다.
그런후 2년만에 대위되고, 4년만에 소령을 달고, 5년후에 중령이 되었다. 그 당시 여군중령은 2년에 1명 진급되는 귀한 존재였다. 그 중령이 나의 군생활을 통해 마지막 계급이 되었다. 지금도 선배님들께 죄송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급의 쾌감을 맛본 경험이었다.
성경에는 충직한 장수 ‘우리아’의 얘기가 나온다. 다윗왕이 전쟁터에 가 있는 장수의 아내를 취하고 허물을 감추기 위해서 그 장수 우리아를 불러와 그 아내와 동침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아는 전쟁터에서 고생하고 있는 전우들에게 미안하여 집으로 가지 않자 ‘우리아’를 전쟁터에 도착하면 죽게 하라는 밀서를 보내 죽게 만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휘관이 부도덕하거나 무능하면 그것를 위장하기 위하여 능력있고 충정어린 부하를 죽이는 일을 간혹 볼 수 있다. 가끔은 영화 ‘쇼생크탈출’에서와 같이 역전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는 약자가 당하게 마련이다.
진급은 공명정대해야 한다. 그 이유는 젊음을 송두리째 바쳐서 충성했던 조국에 등을 돌리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군인은 군대생활을 하면서 진급에 목숨 걸고 생활하지는 않는다. 주어진 직책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까 진급이라는 보너스가 주어질 뿐이다.
그래서 진급의 결과는 누락된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했던 것에 만족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공개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군을 신뢰하게 된다.
이는 전역후 향군의 신뢰 여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있다. 현역시 군을 불신하던 군인이 전역후 향군을 신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군이 능력있는 인재를 선발하여 등용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다수의 진급누락자들이 변함없이 군을 신뢰하고 충성할 수 있게 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진급자도 누락자도 모두가 쾌히 승복할 수 있는 진급 풍토야말로 존경 받고, 신뢰받는 강한 군대의 참 모습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