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문화를 입히다
-(사)부산광역시문인협회 봄 문학기행
‘능금 꽃 향기로운 내 고향 땅은 / 팔공산 바라보는 해 뜨는 거리 / 그대와 나 여기서 꿈을 꾸었네 / 아름답고 정다운 꿈을 꾸었네’
대구 찬가를 흥얼거리며 광안대교를 달린다.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를 위한 불꽃 쇼의 흔적은 광안대교 어디에도 없다. 그 화려하던 모습의 뒷정리를 밤새 깨끗이 한 누군가의 수고로움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제 오전에 내린 비로 벚꽃은 다 떨어졌지만 상쾌한 봄날이다. 이른 시간인데도 버스 3대와 130여 명의 (사)부산광역시문인협회 문우들로 예술회관 앞마당은 벌써 설렘이 가득하다.
이번 문학기행은 나에게는 특별한 여행이다. 올해는 내가 대구에서 태어나서 보낸 시간과 부산에서 보낸 시간이 똑같은 해이다. 이제부터는 더 부산사람다워지는 시간이다. 이런 시점에 고향 대구로 문학기행을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30여 년의 시간 동안 대구는 얼마나 변모했을까? 문인으로서 대구의 어떤 모습을 담아내야 할까? 생각이 깊어지는 동안 버스는 대구로 달린다.
옛날에는 / ‘사과’라고 하더라. / 사과의 도시, 대구 별명이 / 이제는 / ‘대프리카’가 되었다. //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 무더운 이유가 / ‘분지’라서 그렇다더라. // 쉽게 말하면, /동그란 지구 얼굴에 / 대구는 보조개인 거야. // ‘분지盆地’라는 / 빈 화분처럼 움푹한 땅에 / 뭐라도 심어야 안 되겠나? // 달구벌, 대구 화분에 / 달개비꽃 심어 볼래? / 아니면, 망고나무 어때? // 지금은 대구가 너무 더워 / 대프리카라 하니 / 딱이네! -김춘남의 동시 「‘대구?’ 하면 떠오르는 말」 전문
이번 문학기행 장소는 팔공산과 갓바위로 대표되는 대구의 동쪽이 아니라 서남쪽인 달서구와 달성군이다. ‘대구?’ 하면 떠오르는 말은 ‘무더위’다. “동그란 지구 얼굴”에 “보조개”인 대구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나무를 많이 심었다. 벚나무와 플라타너스가 도열한 길을 따라 등교하던 시절, 가로수의 변화하는 모습에 계절을 느끼곤 했다.
대구수목원은 대구의 더위를 식히는 최고의 장소 중 하나이다. “와, 대구 하면 더운 줄 알았는데 여기는 엄청 상쾌하네” “우리처럼 나무들도 이름표를 다 달았네” “규모가 어마어마하네, 다 못 봐서 아쉬워” “가을에는 어떤 색깔이 되는지 보러와야지”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칭찬에 내 어깨가 으쓱하다. 특히 대구수목원은 대구의 생활 쓰레기 410만 톤을 매립한 장소에 조성된 곳이라 생태 복원에 성공한 사례이다. 부산세계박람회의 부주제인 ‘자연과의 지속 가능한 삶’을 여기서도 본다.
가침박달나무의 흰 꽃 앞에서 박달나무와 무엇이 다른가 토론이 한창이다. 서부해당의 연분홍 꽃이 화사하다. 박태기는 진분홍으로 멀리서도 눈에 확 띈다. 할미꽃, 튤립, 골담초, 제주 수선화 등이 꽃으로 우릴 반기고 소나무, 대나무, 전나무, 무궁화, 목련, 매화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선인장 온실, 분재원, 산림문화전시관, 나무를 주제로 한 시비 등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밥도 못 되는 꽃이, 그런데 하는 일이 있네요. 그 꽃이, 그 찬연함이, 얼룩 한 점 없는 환한 긍정이 마른 마음을 축여옵니다. 쓸쓸한 마음을 덥혀옵니다. 사람을 이렇게도 살릴 수 있는 거네요. 뼈와 살이 아니라 마음이 얼어붙고 갈라져 삶이 부러지기도 하는 거니까요. 그걸 꽃이 달래네요. 꽃이 하듯 글이 하면 되겠습니다. 꽃만큼은 찬란하지 못해도, 꽃보다는 또박또박 읽기 쉬운 문장을 지어 누군가를 위로하면 되겠습니다. 그러고자 노력하면 되겠습니다. 아직은 농사짓는 기술보다는 문해력과 문장력이 조금 더 나은 듯하므로 그 기술을 이용해 내 쓸모를 다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최아란의 수필 「글짓기」 부분
수목원을 돌아 나오면서 최아란의 수필 한 구절이 떠오른다. 쓰레기장에서, 꽃과 나무에서, 그리고 글에까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수목원을 찾은 유치원생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우리는 인흥마을에 도착했다. 문익점의 후손인 남평문씨 세거지인 인흥마을은 문익점을 기리는 동상이 우뚝하니 우리를 반긴다. 동상 뒤로는 목화밭이 조성되어 있다. 목화를 거둘 시기가 지났는데도 관광객을 배려한 마음이 보인다. 전통적인 양반 가옥의 틀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라 하지만 담장이 높아 안을 볼 수 없음이 아쉬웠다. 돌아 나오는 길에 붓과 뚜껑, 목화씨의 조형물도 보인다. 요즈음은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붓 뚜껑에 숨겨왔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당시 원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물건은 화약과 지도 같은 것이어서 목화씨를 굳이 몰래 들여올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백제에서 목화를 이용해서 짠 옷감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붓 뚜껑에 숨겨왔다는 것은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지고 온 지 100년이 지난 뒤, 김굉필이 문익점의 공을 기리는 시를 쓴 것에서부터 비롯되었고 그 후 와전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어린이들에게 ‘목화씨를 문익점이 들여왔다’라고 가르친다는 김 시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찌 되었든, 문익점을 내세워 이런 볼거리를 제공하는 대구는 이야기를 혹은 역사적 사실을 문화로 만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라는 것은 자연 그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 어떤 문화를 입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대구가 문화를 어떻게 입히는가 하는 것은 사문진나루터의 표지판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낙동강과 금호강, 신천, 동화천 등 대구는 강과 하천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물의 도시’이다. 낙동강을 비롯한 대구의 강과 하천은 문화콘텐츠의 ‘보물창고’가 되고 있고, 관광객을 그러모으는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 생태적으로 문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강과 하천을 가진 대구는 축복받은 도시이다”
대구가 ‘물의 도시’라니! 물의 도시는 부산이 아닌가? 분지의 이미지에서 ‘물의 도시’ 이미지를 가지고 온 대구의 문화콘텐츠 활용 방안이 놀랍다.
강정고령보, 사문진나루터, 옥연지를 품은 송해공원 모두 대구가 말하는 ‘물의 도시’와 ‘보물창고’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낙동강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강정고령보에는 수력발전소가 있고 그 옆에 있는 디아크 문화관(TheARC- Architecture of River Culture 및 Artistry of River Culture)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콜럼비아의 하니 라시드(Hani Rashid)가 설계한 디아크는 강 표면을 가로지르는 물수제비, 물 밖으로 뛰어오르는 물고기 모양과 같은 자연의 모습과 한국 도자기 모양의 전통적인 우아함을 함께 표현한 건축물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고래 같기도 하고 3층 옥상으로 올라가니 강정보가 훤히 보인다. 세계적인 조각가 유영호의 작품으로 평화와 화해의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리팅맨이 반겨주는 희망나눔존도 특이했고 목공예품을 전시해둔 전시 공간도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았다.
사문진나루터는 화원유원지에 자리하고 있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던 화원유원지는 사문진나루터라는 문화의 옷을 입고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사문진나루터는 두 가지의 최초라는 의미를 지닌 곳이다. 하나는 1900년 3월 26일 미국선교사 사이드 보탐 부부에 의해 그 당시 ‘귀신통’이라 불린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유입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피아노 조형물 여러 개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또 하나는 대구 사과나무 최초 유입지라는 것이다. 1899년 동산의료원 초대 병원장인 미국인 존슨 박사가 미국 미조리주에서 이곳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사과나무를 들여와 동산의료원 언덕에 심었다고 한다. 어미나무에서 씨가 떨어져 자생한 10년생 3세목(손자나무)이 기념식수 되어 많은 꽃을 피우고 있다. 피아노와 잘 어울려 더 화사하다. 주막촌과 그 앞의 500년 된 팽나무도 사문진나루터를 오고 갔을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듯하다. 그 이야기가 또 모이면 어떤 문화가 탄생할지 기대된다.
정에 사무치다 사랑이 그리웠어 / 역마살 도졌는가 가는 곳이 무대였어 / 유랑의 강을 건너서 나 여기에 서 있네
꿈에도 가고 싶은 대동강을 굽어보며 / 가슴을 후벼파듯 어머니-어머니이 / 손잡은 그날의 노래, 남과 북이 울었지
발길 닿는 족족 웃음 속에 꽃을 심어 / 소리쟁이 가는 곳에 벌과 새 날아왔지 / 나는야 못 말릴 딴따라, 눈감아도 딩동댕! -김덕남의 시조 「딴따라, 송해」 전문
옥연지를 품은 송해공원으로 간다. 농업용수를 위한 옥연지를 품은 이곳은 송해의 처가가 있는 곳이다. 넓은 옥연지의 잔잔한 물결에 “전국~ 노래자랑”이라고 외치는 송해의 목소리가 넘실거린다. 커다란 물레방아는 악기인 듯 계속 연주를 하고 있다. 문화를 만들기 위해 티끌만 한 인연이라도 끌어오는 대구의 지혜가 보인다.
김광석거리를 만들고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정호승문학관, 한국수필문학관을 만든 대구, 그들은 자연과 이야기가 있는 곳은 어디든 문화를 입히고 있다.
내 청춘이 거기 있고, 부모님이 묻혀 있고, 자매들이 있어 늘 대구로 목을 길게 빼고 있는 나는 거기에 더해 문화에 대한 갈증으로 대구를 다시 본다. 그러나 그 갈증은 이제 몸 담고 있는 부산에서 풀어야 하리라. 부산의 따듯한 불빛이 우리를 맞는다.
-정희경(월간 『문학도시』 편집장)
-『예술부산 』 2023년 5월호
첫댓글 대구에 같이 갔다온듯 가슴 찡해집니다.
산뜻하게 전해지는 문화의 풍경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