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으로듣기☜
「예컨대 아귀(餓鬼)는
항하(恒河)를 불이라고 보며,
사람은 물로 보고
천인(天人)은 감로(甘露)라고 보니,
물은 하나이지만
과보(果報)에 따라서
따로따로이니라.」
『호렌초(法蓮抄) ・ 신편어서 p.819』
※ 문제) 여러분은 강물이 무엇으로 보이나요?
같은 강물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여기서 비유한 ‘보는 방법의 차이’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보는 인간의 ‘경애의 차이’에 따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뇌와 괴로움이 많은 인생의 현실을 단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위로하는 종교는 진실한 힘 있는 종교는 아닙니다. 현실을 번혁할 힘이 있어야 비로소 진실한 종교이고 그것이 바로 대성인 불법입니다.
「지옥도 부처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십자어서, 신편어서 p.1551)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불계도 지옥도 자신의 생명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계의 생명을 여느냐, 지옥의 생명에 떨어지느냐, 그 열쇠는 자신의 ‘경애변혁’에 있습니다. 경애변혁, 간단히 말하면 마음을 바꾸는 일이지만 이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신심을 한다고 해서 고뇌의 진흙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목을 봉창하게 되면 고뇌에 지지 않는 생명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고뇌에 얼마만큼 도전할 수 있는지를 즐길 수 있는 경애가 되어야 합니다.
고뇌에 질 것 같은 자신의 나약한 생명을 끈기 있게 단련하고 인간 변혁의 고갯길을 오르며 당당한 경애를 구축해 갑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