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두 가지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지식은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세상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만든 것에 더 치중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인간이 가져야 할 지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 두 지식은 하나로 엮이기 때문에, 어느 지식이 앞서는지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두 지식에 있어서 우열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질은 하나님의 본체 안에서 가장 잘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분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고, 또 그 분에 대해 알게 되면 우리 자신에 대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분에 대한 지식을 갖추려면 그 분을 ‘경외’해야 합니다. ‘경외’란 경건한 두려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경건’이란 말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경건한 만큼 그 분에 대해 알 수 있고, 그 분에 대해 아는 것만큼 자신에 대해 참된 지식을 갖게 됩니다.
1.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기독교강요1권1장1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혜, 곧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거의 대부분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입니다. 그러나 이 두 지식은 많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쪽이 먼저이며, 어느 쪽의 지식이 다른 쪽의 지식을 만들어 내는가를 구별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먼저 자기 생각을 돌려, 자기를 살게 하시고, 움직이게 하시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을 살펴볼 수 없습니다.
[행 17:28]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은사들 중 그 어느 하나도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없으며, 심지어는 우리의 존재 자체도 ‘오직 한 분 하나님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려주시는 이러한 축복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시내를 따라 샘 근원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축복의 근원에까지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실로 우리 자신의 가난함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을 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내 줍니다. 특별히 최초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빠지게 된 그 비참한 파멸은, 우리들로 하여금 위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굶주림과 배고픔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찾을 뿐만 아니라, 두려움에 눈을 뜨게 되어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참으로 비참한 세계가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의복을 빼앗긴 후부터, 우리의 벌거벗음의 수치는 수 없이 많은 추행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의식하도록 자극을 받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다소나마 얻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자신의 무지, 공허, 빈곤, 허약, 이보다 더한 타락과 부패를 느끼게 됨으로써, 우리는 참된 지혜와 차고 넘치는 선 그리고 의의 순결함이, 오직 주 안에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악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자신을 미워하기 전에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곧 자신의 재능에 만족하거나,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알지 못하거나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만족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은 우리를 일깨워서 하나님을 찾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직접 손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게 합니다.
2.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자아에 대한 지식이 없다.
[기독교강요1권1장2항]
한편 인간은 분명히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나서, 다음으로 자신을 자세히 검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불의, 더러움, 어리석음, 불결함을 스스로 확신하기 전에는, 우리는 항상 자신을 의롭고, 바르고, 현명하며, 거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만은 모든 사람에게 본성적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이러한 판단의 유일한 표준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와 같은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면서부터 모두가 위선으로 치우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의를 대신하는 일종의 공허한 것일지라도 우리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안이나 주위에 있는 것들은 너무나 타락하여, 오염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부패한 상태에서 보게 되면, 적게 오염된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이 마치 가장 깨끗한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검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눈이, 거무스레한 회색의 물체를 볼 때 완전히 횐 것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대낮에 땅을 내려다보거나, 주위에 있는 어떤 사물들을 본다면, 우리는 자신이 가장 강하고 가장 예리한 시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눈을 들어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게 될 때, 우리의 시력은 당장 그 큰 광채로 말미암아, 눈이 부시고 혼란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상의 사물을 볼 때에는 그렇게 예리하던 시력도, 태양을 쳐다볼 때에는 아주 흐려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우리의 영적 은사를 평가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지상 너머를 바라보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의와 지혜와 덕으로 완전히 만족하고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가장 훌륭한 존재인 양 우쭐대며 자신을 거의 신적인 존재로, 그렇지 않더라도 반신적인 존재로 착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 앞으로 향하면, 하나님의 의와 지혜와 권능이 절대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에 ‘의’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를 즐겁게 하던 것은, 가장 사악하고 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신기하게 감동시켰던 것은 가장 어리석은 것으로써 여겨질 것입니다. 또한 전에 능력의 가면을 쓰고 있던 것은 가장 비참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가장 완전하게 보이는 것들도 하나님의 완전한 의에 비하면 그 자체가 사악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의 인간
[기독교강요1권1장3항]
이런 의미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때마다,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충격을 받으며 압도 당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안 계시다고 생각할 때에는, 보통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확고하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시면, 죽음의 공포로 쓰러질 만큼 마음이 흔들리며 비참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자신을 하나님의 위엄과 비교해 보기 전에는, 결코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거나 충분히 인식할 수 없습니다.
[삿 13:22] 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사 6:5]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겔 1:28] 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삿 6:22-23]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매우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 이와 같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아야 다음에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있습니다.
나가면서
처음부터 인간이 가져야 할 지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먼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우선적으로 알 때, 다음에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참되게 가지려면, 먼저 그 분에 대한 지식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추려면 그 분을 경외해야 합니다. ‘경외’란 ‘경건한 두려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경건’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기 위해서는 ‘경건’해야 하고, ‘경건’해야 ‘겸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겸손한 만큼 경건하고, 경건한 만큼 그 분에 대해 알고, 그 분에 대해 아는 것만큼 자신에 대해 참된 지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을 살피기 보다 남의 허물을 보려는 본성적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참된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자신을 알기 위해 먼저 그 분을 알고자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접하게 되면 공포에 질릴 정도로 압도를 당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면 경건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동시에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