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연재 소년소설 - 응달의 나무들 4회

[여산]

권정생 연재 소년소설  

<응달의 나무들>  4회  - 《굴렁쇠 어린이》 1990년 4월호

《굴렁쇠 어린이》 1990년 4월호

4

버드렁니에다 새카만 얼굴의 영분이는 머슴애처럼 장난꾸러기였다. 작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직업훈련소에 가 있는 영만이 오빠 밑으로 십년 만에 태어난 딸이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나치게 귀여워한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갓난아기 때부터 영만이 오빠 등에 업혀 자라면서 머슴애 흉내만 내어서 그래졌는지도 모른다.

“영분아, 넌 어쩌자고 선 머슴애 같이 뛰어다니냐?”

어머니 오금골댁이 혀를 차면서 꾸짖어도 영분이는 들은 척만 했다.

“아직 쪼꼬만하니까 그렇지, 크면 얌전해질 게야.”

영분이네 아버지는 그게 오히려 예쁘고 사랑스러워 아내의 걱정을 웃음거리로 여겼다.

“아무리 커서 얌전해진들 애가 웬만큼 번잡스러워야지.”

오금골댁은 영분이의 옷매무새를 거듭 거듭 고쳐주고는 학교로 보냈다.

그러나 영분이는 사립문만 나서면 제멋대로였다.

배꼽들 건너 학교길은 5마장이 넘었다. 아랫들 아이들도 웃들 아이들도 책가방 메고 무럭무럭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순재야, 순재야!”

영분이는 냇물 돌다리를 건너는 순재를 보고 큰 소리로 거듭 불렀다.

“영분아 빨리 오너라, 지각한다.”

“이것 좀 들고 있어. 나 똥마렵다.”

영분이는 달려가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 순재한테 건네준다.

“집에서 누고 오잖고 애 또 중간에서 똥 누려 하니?”

“집에서 안 마려운 걸 어째 누니?”

영분이는 냇가 자갈밭에 책가방을 던져 놓고 저만치 갈대밭으로 달려갔다.

똥을 한무더기 누고 일어서는데 갈대밭 저쪽에서 누가 모래 한줌을 뿌리고는 달아났다.

“누구얏!”

“헤헤헤, 영분이 궁뎅이 봤다!”

“헤헤헤”

“헤헤헤…….”

아랫들에 사는 머슴애들이었다.

영분이는 얼굴이 온통 빨갛게 되어 냇가에 널린 모래며 돌멩이를 잡히는 대로 던지고 던졌다.

“아이쿠!”

그 중에 애 하나가 머리 뒤꼭지를 손으로 문지르며 뒤돌아섰다.

“요 계집애야!”

아랫들에 사는 3학년인 장식이였다. 장식이는 한 손을 뒷꼭지에 대고 쫓아왔다.

“돌을 왜 던지는 거야?”

“놀리니까 던졌지.”

“머리가 깨지면 치료해 주겠니?”

“너도 모래 뿌렸잖니?”

“요게 자꾸 말대꾸하네!”

장식이는 영분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영분이도 지지 않고 장식이 옷자락을 움켜잡고 늘어졌다.

“이것 놔!”

“안 놓는다!”

“놔!”

“안 놓는다!”

그래서 그만 둘은 서로 치고 박고 싸움이 벌어졌다. 장식이 주먹이 영분이 얼굴과 어깨로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결국 영분이는 큰 소리로 울음보를 터뜨렸다.

“와앙!”

순재가 달려갔다.

“왜 작은 애를 때리니? 말로 해도 되잖니?”

“흥 문둥이네 집에 같이 놀러 다닌다고 편드니?”

“뭐얏!”

순재는 주먹을 을러메다가 그만 두었다. 학교도 늦을 테고 작은 일 가지고 싸우는 건 못난 짓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분이는 울면서도 지지 않고 지껄여 대었다.

“은실이 언니는 문둥이가 아니야!”

“왜 또 까부는 거야. 더 맞고 싶니?”

“은실이 언니는 문둥이가 아니라니까!”

영분이는 거듭 되풀이 말하며 억울하고 분해서 큰 소리로 자꾸 울었다.

순재가 책가방을 메어주고 신발주머니도 들려주었다.

영분이는 학교 가까이 가서야 겨우 울음을 그치고 눈물 콧물을 닦았다.

이날, 하루 종일 영분이는 서러워서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까불이며 개구쟁이 영분이가 딴사람 같았다.

영분이는 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오면서도 혼자 따로 걸었다. 하늘을 쳐다보고 구름을 쳐다보고 날아가는 새를 쳐다보았다.

영분이는 소록도인지 애락원인지 하는 먼 곳에 있다는 삼촌 생각을 했다. 영분이가 꼭 두 번 보았지만 한 번은 아주 오래 전에 봤기 때문에 생각이 나지 않았고, 지난겨울 밤늦게 왔다가 다음 날 하루 종일 방안에 숨어있듯이 지낸 뒤 밤늦게 남몰래 돌아갔다. 그 삼촌이 바로 문둥병 환자라고 했다.

삼촌 얼굴은 눈썹이 없고 얼굴이 약간 부은 듯했지만 그렇게 흉하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삼촌은 영만이 오빠 운동화와 영분이 공책과 연필을 사왔다.

어머니는 삼촌이 불쌍하다고 자꾸 울었다. 아버지는 되도록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어, 고기도 사오고 떡도 만들게 했다. 그러나 삼촌은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다.

“삼촌 많이 들어요.”

어머니가 고기 쟁반을 삼촌 밥그릇 앞으로 밀어주었다.

“형수님, 그만 배가 부릅니다.”

“그것 가지고 벌써 배불러요? 그러지 말고 밥도 좀 더 잡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되도록 삼촌이 많이 먹도록 권했다. 삼촌은 마지못해 조금 더 먹고는 숟가락을 놓았다.

“그래, 그곳에서 살기 힘들지 않니?”

아버지가 물으니까 삼촌은 오히려

“힘들지 않습니다. 먹을 것도 많고 잠자리도 편합니다.”

하고 태연했다.

삼촌이 갈 때, 어머니는 떡을 싸고 내복도 사서 싸주었다.

“형수님, 고맙습니다.”

“삼촌 안녕히 가세요.”

영분이가 인사하고, 아버지는 기차정거장까지 바래다주었다.

삼촌을 떠나보내고 나서 영분이가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삼촌 우리 집에 같이 살면 안 돼?”

“삼촌은 그쪽에서 사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단다.”

“삼촌 병은 낫지 않어?”

“아니야, 삼촌은 이제 병 다 나았어.”

“그런데, 왜 집에 안 와?”

“삼촌이 그쪽에 사는 게 좋다고 해서지.”

그러나 영분이는 삼촌이 집에 오지 않는 까닭은 마을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원산 아저씨네 은실이를 모두 싫어하듯이 삼촌도 사람들에게 미움 받고 있는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도 삼촌은 세상에서 큰 죄인이 되어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영분이는 아침에 장식이와 싸움하던 냇가까지 와서야 겨우 삼촌 생각에서 깨어났다. 얼른 머릿속을 깨끗이 씻어내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토끼한테 줄 풀을 뜯었다. 질경이와 아카시아와 큰씀바귀풀을 토끼는 제일 잘 먹는다.

신주머니에 풀을 가득 뜯어가지고 집으로 가니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토끼야, 자 밥 먹어라.”

토끼는 영분이가 뜯어온 풀을 맛있게 받아 오물오물 먹었다.

“많이 먹고 어서 아가야 낳아라. 내가 순재한테 한 마리 준다고 약속했단다.”

토끼는 눈을 말똥말똥거리며 쳐다봤다.

그때였다.

사립문 쪽이 수선스러워지면서 원산 아저씨가 영분이네 아버지를 업고 들어왔다. 영분이네 어머니 오금골댁이 울먹거리며 뒤를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영분아, 저기 가서 물 좀 떠 오너라. 어서 어서…….”

영분이가 부엌으로 뛰어가지 오금골댁은 다시 영분이를 불러세웠다.

“아니다. 영분아, 내가 가서 떠 올게.”

오금골댁은 양동이를 들고 샘으로 뛰어갔다. 그 동안 원산 아저씨는 아버지를 방 안에 눕혀놓고 이장님 댁으로 전화를 걸러 갔다. 보건소 의사를 부르기 위해서다.

10분이 조금 넘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젊은 의사가 왔다.

오금골댁이 의사 선생님께 농약을 치다가 쓰러진 일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벼 논바닥에 그냥 주저 앉아버렸어요. 처음엔 이 양반이 왜 저러나 했는데, 주저앉은 채 옆으로 쓰러지지 않겠어요. 뛰어 들어가 보니 얼굴이 금방 시커멓게 핏기가 없어졌어요. 끌고 나오는데 마침 원산 어른이 지나다가 들쳐 업고 집으로 온 거예요. 의사 선생님, 어떨까요? 괜찮을까요?”

의사는 가슴에 청진기를 대보고 혈압을 재어보았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해독을 하는 주사를 놓고 약을 몇 봉지 주었다.

“한 시간쯤 있다가 먹여 주십시오.”

그 동안 앞뒷집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걱정스레 들여다봤다. 물수건으로 아버지 얼굴과 손발을 닦았다.

“목욕을 시켜야 하는데 아직 정신이 안 드니 어떻게 해요.”

“녹두를 갈아 물을 먹여요. 해독하는 데는 그게 제일 좋답니다.”

오금골댁은 어쩔 줄 몰라 앉았다 섰다 하면서 애를 썼다.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좀 더 기다려요.”

“아랫들 오서방도 농약에 쓰러졌는데 주사 맞고 괜찮았대요.”

사람들은 모두 한 마디씩 위로하면서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영분이네 아버지는 한 시간 뒤에 눈을 뜨고 물을 찾았다.

“영분아, 목마르다. 물 좀 다오.”

오금골댁이 물과 약을 가지고 가서 내밀었다.

“이 약 먹고 물 마셔요.”

영분이네 아버지는 겨우 일어나 버티고 앉아서 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그러나 영분이네 아버지는 이튿날도 일어나지 못했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했다. 영분이네 어머니가 미음을 쑤어주면 겨우 마시고는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여보, 읍내 큰 병원에 한 번 가봅시다.”

“며칠 있으면 괜찮겠지 뭐. 병원에 가면 돈이 많이 들 텐데…….”

영분이네 아버지는 그냥 누워만 있었다.

순재네 할머니는 영분이네 아버지를 위해 그날 밤, 소반에다 정화수를 떠놓고 칠성님께 정성껏 빌었다. 

(5월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