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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 처음 왔어요? 처음. 저분은 지난번 뵙고. 세 분이 다 광주에서 오신 거예요? 처음뵙겠습니다. (웃음) 사실은, 초면이라는 말이 맞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볼 때마다 초면이예요. 아시죠? 무슨 말인지. 우리 얼굴이 수없이 바뀌잖아요. 1초 전 얼굴이 이게 아니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뵙는 거지만, 동시에, 마지막으로 뵙는거죠. 그렇죠? 처음이면서 마지막이예요.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전에 알던 지식, 선입견 다 없고, 그 사람에 대해서 누가 얘기해주고, 소개해 준 거 다 없고, 처음 보는 사람으로, 아무 선입견 없이, 그렇게 살아보고, 그리고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보는 거다. 다시는 못 본다. 그런 마음을 일부러 한번 먹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사실 그건데. 그게 사실이에요. 그건 요즘 유행하는 말로 그게 팩트라고요. (웃음) 근데, 그걸 우리가 까먹어. 그래서 항상, 그 사람은 늘, 그런 사람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과거에 가졌던 그 사람의 어떤 경험, 그걸 미루어서 오늘 저 사람 보는 거야. 그러지 않고, 정말 아무 선입견이 없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이다. 다시는 못 본다. 그런 생각을 일부러 하는 거죠. 그게 저절로 그게 되면, 참 좋은데. 우리가 그런 생각이 아닌 생각으로 사는 게 하도 오래돼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산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그러나, 저는 요즘 고맙게도, 내가 일부러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데,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오늘 저녁에 오늘 내 삶이 마지막이지. 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느낌으로 오는 건 아니고, 그냥 일부러 애쓰지 않는데, 그런 생각이 좀 들어요. 그러니까, 별로 심각한 거 없어요. 다 그래도 돼. 괜찮아. 별거 아니야. 그러면서 동시에, 마지막 보는 사람인데, 그 사람하고 소홀히 대할 수가 없지. 진심을 다해서, 그를 대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만 그렇겠습니까? 음식도 마찬가지죠. 그죠? 아 이거 먹고 죽는대. 그러니까, 아주 정성스럽게 먹는거예요. 일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오늘 학교에서 얘기를 하는데, 얘기가 좀 길어졌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한 10분 늦게 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저보다 더 늦게 오셨어요. (웃음)
잘들 계셨죠? (네.) 그동안 잘들 계셨죠? 그건 여기 지금 이렇게 앉아 있다는 게 증명하는 거지요? 그렇죠? (네.) 무슨 일이 있었으면, 여기 못 오는 거야. 그러니 얼마나 고마웠습니까? 그렇죠? 고맙죠? 안 그래요? (아니오.) 제가 여기서 얘기하는데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내 귀에 안 들리거든요. 그래 들리죠? 참, 신통해. 제가 여기서 얘기하는 거를 어떻게 거기서 알아들어요? 내가 뭘 얘기하면, 또 웃어. (웃음) 참 신기하다고요. 여러분 신기하지 않아요? 어떻게 내가 얘기하는 거 알아들으셔? 그리고, 고개도 끄덕거리고. 웃기도 하고. 이거 뭐예요? 이거 뭐가 가능하게 합니까? 이런 현상을. 무엇이 가능케 해요? 그것이 없으면? 내가 얘기하는 거 현장에 보고 이렇게 얘기할 수가 없어. 그게 있기 때문에, 끄덕끄덕 하는 거야. 내 말을 뭐가, 뭐가 가능하게 하는 거예요? 뭐가 내가 하는 말을 저 사람이 듣고, 끄덕끄덕하게 하느냔 말이야. 이게 저 추상적인, 그런 철학적인 생각하지 말고, 아주 물리적으로 생각해 봐요. 구체적으로. (귀.) 귀, 귀만 있으면 돼요? 또 뭐가 있어야 돼요? (공기요.) 맞아요. 공기가 있어서요. 얘가 아마 진공 상태 라면, 못 들을 거예요. 그렇죠? 우리 눈은 안 보이지만 꽉 차 있어요. 그렇죠? 그게 우리를 이렇게 한다고요. 그거를 철학에서는 하늘이라고 그래요. 하늘, 하늘, 하늘 자에다 님자 붙이면 하느님이 되는 거야. 하느님 때문에 이렇게 소통이 되는 거야.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도 일해요.
꼬맹이가 저기 감기에 걸렸었는데 그게 감기 나아 가지,고 저렇게 뺑글뺑글. 얼마나 고마운지. 정말 고마워요. 그런 눈으로 보면 세상에 고맙지 않은 게 없다. 그렇죠? 왜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그러냐? 아니야. 내가 볼 때는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몰라서 그래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미처 몰라. 그래서, 행복하지 못하게 살아가는 거 보면, 참 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 여기 있다는 거. 저기 나무가 있고, 새들이 날아다니고, 그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런 의식하면서 사는 거야. 하늘을 의식하면서 살다 보면, 하늘처럼 돼요. 오늘 아마 읽은 내가 오늘 이 부분을 내가 한 두 번 읽고 왔거든요. 이렇게 연습하게 아는 척하면서 썼는지 모르겠어. (웃음) 하여튼 오늘은 그 재물론에서 그 대화 이야기, 지난번에 사람 소리, 땅 소리, 하늘소리, 그 얘기는 들었죠. 넘어가고 104페이지. 수백 가지의 문답이야기. 거기를 한번 읽어봅시다.
오늘 이야기에서도 결론은 뭐냐 하니까, 참 시비가 많고, 뭐 참 말이 많고, 또 아는 거 안다고 하는 사람도 많고, 참 많은데, 시끄러운 세상인데, 그런데, 그런 거 전부 다 알고 보면, 아니다. 그런 얘기야. 이건 이거야. 라고 얘기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그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사람이 안다는 것이 얼마나 제한된 것인지. 내가 안다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모르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그럼 어떻게 세상을 살면 좋으냐. 하니까, 그런 어떤 시비곡절 뭐 옳다, 그르다, 이런 게 있으니까 서로 충돌하게 되고, 그럼 충돌하게 되면, 또 싸우게 되고, 그러잖아요. 네 편, 내 편이 나눠지게 되고 이게 우리 인간 세상이야. 그게 참 힘들단 말이죠. 여기서 어떻게 해방할 수 있겠느냐 하는 얘기는 하늘을 닮아라. 하늘처럼 살아라 그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단 말이야. 그리고 장자가 이런 얘기한다는 것은, 제가 볼 때, 이 사람이 그냥 상상으로만 그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자기 딴에는 어떤 경험이 있어서. 그래서, 이런 글을 썼을 거라고 봐요. 자기 경험에서 우러나지 않은 말은 오래 못 갑니다. 그건 금방 알아요. 사람들이. 성경이 왜 성경이냐. 그건 그 안에 사람들의 경험이 들어있고, 거기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그 말은 계속해서 살아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하늘을 닮은 사람.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제 그 방법을 이제 일러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안 보이잖아요. 하늘은. 만져지지도 않고. 그런데, 그것이 없으면, 보이고 만져지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단 말이지. 저는 아무 데도 없으면서, 모든 걸 잊게 하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그럼, 한번 이 여기 본문을 읽어볼까요?
설결이 왕예에게 묻기를 선생께서는 모두가 그렇다고 할 만한 무엇이 물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대답하되 내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선생께서는 스스로 모르시는 바를 아시는지요? 대답하되 내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그렇다면 물은 알지 못할 것인지요. 대답하되 내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이렇게 대화가 되네요. 계속 물어요. 모든 물, 여기서 물이라고 할 때, 이 동네에서 물하고 얘기할 때는, 자기를 빼놓고, 모든 상대를 물이라고 얘기하면 돼요. 인자가 나오면 그건 자기를 가르키는 거지. 그래서, 물 하면 하여튼, 자기가 보고 만지고 하는 모든 사물, 사람도 다 포함되죠. 그런 걸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물건에 그 뭐가, 그 누구나 다 시인할 만한 이 물건은 이것이다. 이 물건 이런 것이다. 라고 했는데, 다 동의할 수 있는 그 뭐가 있습니까? 이렇게 묻는 거예요. 저게 나무다. 그럼, 그 나무라고 하는 그거에 대해서 전부 다 다 동의할 수 있는, 그럼 뭐가 있는 겁니까? 하고 물으니까, 대답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그 그럼 당신은 모른다는데, 당신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그래, 그 물이라는 건 아무도 알 수 없는 겁니까?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아냐? 이 대답이, 이게 장자예요. 안다는 말을 안 해요.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장자보다 저 위인지. 아래인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장자는 당신은 모른다는 걸 압니까? 그러니까, 그래 내가 어떻게 아냐? 계속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 읽어보세요.
그러하지만 시험삼아 말해보리라. 내가 안다고 말하는 것이 실은 모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오. 내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실은 아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 한번 그대에게 시험삼아 물어보겠다.
시험 삼아 물어보겠다는 게, 시험 삼아 하는 게, 이게 진짜가 아니고, 생각하기 위해서 그냥 임시로 말하는 거다. 그러니까, 이 말에 붙잡히지 말아라. 그런 얘기예요. 사람이 습기 찬 곳에 누워 자면, 허리를 앓거나 반신불수가 되는데, 미꾸라지는 어떤가? 사람이 나무에 오르면 겁이 나서 떠는데 원숭이는 어떤가? 이 셋 가운데, 누가 제대로 된 것처럼 알고 있는 것인가?
사람하고, 미꾸라지하고, 원숭이하고, 제대로 된 좋은 거처가 어디라고 누가 알겠는가. 사람은 습기찬데 보면 안 좋은 데, 미꾸라지 거기가 최고로 좋은 데, 그렇죠? 그러면, 이것이 좋은 데라고 얘기하는 게 누가 맞느냐? 그런 얘기예요. 그런 얘기죠. 사람은 나무 꼭대기 하면 불안하고 떨어질까 봐 겁나는데, 원숭이는 거기가 집이야. 안전한 곳이라고 하는 데가 누가 안전한 곳, 여기가 안전한 곳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게 누구냐? 그런 얘기예요. 우리가 뭘 얘기하고 이렇다. 저렇다고 얘기한다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냐? 그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은 가축을 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을 즐겨 먹고, 올빼미는 쥐를 좋아하거니와 이 넷 가운데 누가 제 맛을 알고 있는 것일까. 원숭이는 긴팔 원숭이가 짝으로 삼고, 큰 사슴은 사슴과 짝을 짓고,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더불어 노닝거니와 모장과 여희를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지만, 물고기는 그들을 보면 물속 깊이 들어가 버리고, 새는 그들을 보면 높이 날아가 버리고, 사슴은 그들을 보면 함께 달아난다. 이 넷 가운데 누가 세상의 여색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내가 볼 때 인의의 실마리와 12의 갈림길이 마구 뒤섞여 어지럽다. 내 어찌 그것을 가려낼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인이다. 이것이 의다. 라고 얘기하잖아요. 근데, 그게 진짜 인이라고. 정말 의라고 하고. 내가 어떻게, 누가, 그걸 판단하느냐? 그런 거야. 도대체. 다 지 눈에 안경이야. 다 지 생각이지. 이것이 그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게 누구냔말이죠. 그런 질문을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설결이 말하기를 선생께서 이해를 모르신다면 지인도 이해를 도무지 모르는지요. 왕계에 이르되 지인은 신령하다. 큰 못을 태워 버릴지언정 그를 뜨겁게 할 수는 없으며, 황하와 한수를 얼릴지언정 그를 춥게 할 수는 없으며, 사나운 천둥이 산을 쪼개고 바람이 바다를 뒤집어도 그를 놀라게 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은 구름을 타고 해와 달에 올라앉아 이 세상 밖에서 노닐고 삶과 죽음이 그를 바꿔놓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해 따위가 그를 어쩌겠는가.
네. 그래, 예수가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이제 기독교에서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그게 뭡니까? 하늘로 올라갔다는 얘기는 뭔지, 하늘이 됐다는 얘기죠. 그렇죠? 며칠 전에 우리 친구들하고 같이 낙지볶음을 먹었어요. 내가 얘기했잖아요. 지금 방금 이 식탁에서 무슨 사건이 벌어졌어? 하고 내가 물었어요. 이벤트가 일어났어요. 엄청난 이벤트가. 무슨 사건이 벌어졌어? 간단하지. 내가 닉지 먹었어. 낙지를 내가 먹었단 말이에요. 그죠? 그러나, 사람은 낙지 먹었나, 안 먹었나, 그게 별로 달라지지 않아요. 그렇죠? 낙지 같은 거 안 먹어도 끄떡없어. 먹었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런데, 낙지 입장에서 생각해봐요. 기가 막힌 일이여, 이게 먹힌 거야. (웃음) 그렇죠? 자기가 원해서 먹혔습니까? 내가 낙지한테 물어봤어요. 아니야, 재수 나쁘게 걸렸어. 그래 가지고, 내 입으로 들어와서 죽었어요. 그렇죠? 죽었어. 내가 먹어버렸어. 낙지 입장에서 볼 때 먹혔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사람이 됐죠? 낙지가 사람으로 달라진 거야. 내가 먹었잖아. 그럼, 그때부터 낙지는 없고, 사람이 된 거야. 낙지로서는 이게 무상의 영광이죠. (웃음) 안 그래요? 낙지로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감히 사람이 되다니. 그것도 이현주 같은 훌륭한 사람이. (웃음) 낙지가 만약에 생각을 한다면 이런 영광이 없어요. 낙지는 지가 선택할 수가 없어요. 누구한테 먹힐까. 이런 걸 선택할 수 없어요. 그렇죠? 사람은, 사람은 할 수가 있어요. 그게 사람이에요. 낙지는 누구한테 잡힐까? 그런 걸 선택할 방법이 없죠? 그러나, 사람은 누구한테 나를 먹힐까. 내가 누구한테 먹힐까. 이것을 고를 수가 있단 말이죠.
라떼가 타고 다니는 차, 뒷자리에 보면 화보 있어. 그거 뭐더라? 광주에서 무등산에 얽힌 그런 이제 글과 사진, 그림, 이런 것들을 좀 이렇게 넘어지다 보니까, 광주에 어떤 개인이 소장했다는 백범 김구 선생의 글이 있다. 란 말이죠. 백범 김구 선생이 대련 두 줄짜리 한문으로 된 걸 쫙 써놓으셨어요. 족자를 만들었더라고. 보니까, 광주에 있는 어떤 개인 소장이래. 근데 그 내용에 보니까, 이 양반이 백범 선생이 나중에 노년에 수전증이 걸려가지고, 손이 벌벌벌 떨리면서 글을 쓰니까 글씨가 떨려. 난 그런 것밖에 못 봤는데. 그건 아마 수전증 오기 전에 쓰셨는가 봐. 아주 그저 반듯한 게 아주 단단해. 글씨가 예리하고. 역시 백범 같은. 그런 글씨 같다. 처음 봤어요. 아마 그 수전증이 오기 전에 썼는가 봐. 젊은 시절에 그거 뭐라고 했었으니까. 사오 대의명분 생오 민족 정기 이렇게 썼어요. 여섯 자씩. 뭔 뜻이냐면, 죽기는, 대의 명분에 죽는다. 살기는, 민족 정기로 산다. 이런 아마 젊은 시절에 쓰신 것 같아요. 야 이게 백범이구나. 대의 명분에 나 먹어라. 이거야. 난 내 몸을 너한테 맞추겠다. 그러면 대의 명분이 되는 거야.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다. 하늘에 먹혔어. 그러면 하늘이 되는 거지. 그렇죠? 내가 마시는 차가 마시는 순간 나로 바뀌잖아요. 하늘로 올라가서, 이게 내 몸으로 들어왔잖아요. 그래서 내가 된 거야. 하늘로 올라갔다는 얘기는 하늘 속으로 들어갔다는 얘기예요.
그건 하늘이 된 거야. 하늘 같은 존재가 됐단 말이에요. 하늘은 경계가 없죠. 역사가 없어요. 미국 하늘, 러시아 하늘이 없단 말이야. 경계가 없어. 그러니까, 예수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있겠다 약속한 거야. 허공이 됐으니까. 하늘이 됐으니까. 그래서 여기서 지인도 인이나 그런 걸 모릅니까 하니까 지인은 하늘처럼 된 사람이야. 이렇게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다음에 다시 109페이지네.
고작사가 장호자에게 묻기를 내가 선생한테서 듣자니 성인은 세상 일에 애쓰지 않고 이를 쫓지 않고 해를 피하지 않고 고하여 얻는 것을 즐기지 않고 도에 매이지 않고 말 없이 말하고 말하면서 말이 없고 티끌 세상 밖에 놓인다지만 공부자는 이를 오히려 실없는 소리라고 말하거니와 나는 그야말로 훌륭한 도의 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게 이제 구작자라는 사람이 장호자라는 사람한테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인은 이렇게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말을 하면서 안 하고, 안 하면서 하고, 뭐 이렇게 쭉 얘기하잖아요. 도에도 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하늘 같은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그 말 듣고, 에이 무슨 실없는 소리야. 이렇게 얘기했다는데, 내가 볼 때는 그게 진짜 도를 실천하는 것 같다. 이제 이렇게 얘기한 겁니다.
선생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장호자가 말하되 그것은 황제가 들어도 어리둥절한
여기 황제라고 하는 건 중국의 어떤 황제가 이게 아니라, 소위 옥황상제, 소위 말하는 우리가 얘기하는 하나님, 그런 얘기합니다.
구가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자네 또한 성급하게
여기 구는 공자
자네 또한 성급하게 단정한 것일세. 달걀을 보고 새벽 알리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화살 보고 올빼미 구이를 먹겠다는 것과 같군. 자네를 위하여 허튼 소리 한번 해볼 터인 즉 그런 줄 알고 들어보시게. 해와 달을 어깨동무하고 우주를 겨드랑이에 끼고 그것들과 더불어 하나로 되어 어지러운 모습을 그대로 두고 귀천을 가리지 않나니. 보통 사람들은 애를 쓰지만 성인은 멍하니 세상 모든 것과 뒤섞여 있으면서도 한결같은 순수함을 지키고 만물을 있는 그대로 두되 하나로 되게 한다네. 삶을 기뻐하는 것이 미혹 아닌지 내가 어찌 알며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일찍 고향 떠난 자가 돌아갈 바를 모르는 것 아닌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여희는 국경을 지키던 애라는 자의 딸인데 진나라에 처음 잡혀왔을 때에는 눈물로 옷깃을 적셨으나 왕의 처소에 이르러 왕과 잠자리를 함께 하고 고기 음식을 먹게 되자 전에 울었던 것을 후회했다고 하니 무릇 죽은 자가 전에 살고자 애썼던 것을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내가 어찌 알겠는가. 꿈에 술을 마시던 자가 아침에 슬퍼 울고 꿈에 울던 자가 아침에 사냥을 나간다네. 꿈을 꾸면서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르고, 꿈 속에서 또 꿈을 점치다가 깨어난 뒤에 그것이 꿈인 줄 알지. 크게 깨친 뒤에야 그것이 큰 꿈이었음을 아는 법일세.
그래요. 우리 꿈꾸자. 꿈꿀 때. 꿈꾸면서. 내가 여기서 매일 같이 주무시죠. 자죠. 자면서 지금 내가 잠자고 있다는 걸 아시는 분? 나 지금 잠자고 있어. 라고 하는 걸 알면서 주무시는 분 계세요? 잠들면 자기가 잠자고 있는지 모르죠? 대개 그래요. 근데 저는 한 30년 넘게 꿈을 꾸다 보니까, 요즘은 조금만 이제 알아요. 내가 잠자면서, 내가 지금 잠자고 있다는 걸 알아요. 옆구리가 서늘하다. 뭐 효선이 왔다, 갔다 한다. 이 정도 알면서 계속 잠을 자요. 근데, 대개의 경우에는 잠잘 때는 내가 잠자는 걸 몰라요. 꿈도 그래요. 이게 꿈인지 모르고 꾸다가 ,깨어나면 내가 꿈 꿨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죠? 지금 내가 하고 있으면서, 이걸 내가 뭐 하고 있는지를 대개 몰라요. 나중에 그걸 알게 된다. 그런 얘기입니다. 근데, 그래서, 이제 말하자면, 꿈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허망하잖아요. 꿈에 내가 훈장을 받아봤자 소용없는 거잖아요. 인생사가 다 그와 같은 것이다. 그런 얘기예요. 뭐 대단한 거 같지만, 막상 다 지나고 봐라. 다 별거 아니다. 이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여기서 이 장자가 지금 주로 액센트를 두는 거냐. 하면 시비 품절이 너무 첨예하게 대립돼서 서로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치고, 받고, 이런 세상이 그런 세상에서 지금 이런 철학을 얘기하고 있는 거라, 그런 말씀을 머리에, 바닥에 깔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싶어요? 계속해서 이렇게 시비하고, 분별하고, 니가 옳다, 내가 옳다, 니가 틀렸다, 이러면서 살고 싶으냐고요. (안 그러고 싶은데, 자꾸 그렇게 돼요.) 그러니까, 여기 앉아 있지. (웃음) 그렇게 안 되고, 저절로 그렇게 되면, 뭐 하러 이렇게 앉아 있어? 장자 선생님인데. 그래. 그래서, 우리가 재미있는 거예요. 적어도 여기서 시비분별 이런 걸 가르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아마 장자 읽기 힘들 거예요. 이 책 자체가. 이게 무슨, 이게 무슨 쓸데없는 소리야? 이러고 아마 그럴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웃음) 그래요. 재밌죠. 그러나 저 선호 씨가 얘기한 것처럼 아직 우리가 그렇게 안 됐어. 자유롭지 못해. 다만, 자유 얻고 싶다는 마음. 그렇게 되면. 그래서, 사실 장자를 읽는 거예요. 이게 재밌게 읽힌다는 얘기는, 이미 우리가 그쯤 왔다는 얘기입니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라고. (웃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돈 벌기 위해서 무슨 이런 그런 게 아니잖아. 그리고, 여기서 이게 좋은 거야. 라고 얘기했지만, 진짜 좋은 건지 니가 어떻게 아냐? 이거 나쁜 거야. 하고 얘기하지만, 진짜 나쁜 건지 어떻게 아냐? 하는 얘기야.
제가 재미있는 꿈 얘기할게요. 며칠 전에 꿨어요. 친구들이 내 시체를 메고 와. 보니까, 내 시체야. 근데, 친구들이 나를 이렇게 시체를 끌고 와요. 그게 내가 50대 때 일어난 일이래요. 그럼 30년 전 30대 때 일어난 일이래. 한 반세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난 처음 보는 거야. 그래서, 내 꿈속에서도, 아이고 내가 저렇게 죽었었나? 30대 때. 그러니까, 군대 있을 때 혼수에 들어간 건 20몇 살 때니까, 그건 아니야. 이건 내가 30대 때 내가 죽었었대. 그런데, 이렇게 시체를 밀고 와. 그걸 내가 보면서 내가 죽었었나. 그런데, 그 중요한 걸 내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네. 그래,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아이고, 우리 이정희 장로한테 물어봐야겠다. 그 친구가 나에 대해서 잘 아니까, 야 내가 정말 죽었었냐? 하고 물어봐야겠다. 꿈속에서. 그 생각을 하면서 보는데. 이 시체가 말입니다. 시체야. 그런데, 눈을 꼭 탁구공만하게 떴어. 탁구공만하게 떠가지고 이 눈이 막 돌아가는 거예요. 돌아가는데, 그 눈을 보니까, 공포에 질린 눈이야.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그런 눈이야. 이게 글쎄, 뭐가 그렇게 무서워하나 봤더니, 뭐가 무서웠냐 하니까. 아이고, 내가 그동안 그렇게 천신만고 고생해서 이제 겨우 죽나보다 했더니, 또 살아? (웃음) 거기에 대한 공포야. 이제 좀 마음 편하게 쉬는 줄 알았더니, 안 죽었네? 또 살아야 된다고? 그래서, 그렇게 공포에 질린 눈으로 돌리더란 말이죠. 깨어나서 이게 진짜일 수가 있겠다. 임사 체험한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자기 가다가 돌아오는데, 그렇게 싫더라잖아. 돌아오는 게 싫은 거야. 거기가 너무 좋아서. 그랬대요. (웃음) 그러니, 내가 죽는 날이, 그게 슬픈 날인지, 진짜 신난 날인지, 어떻게 아냔 말이야. 그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뭘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 하는 걸 자꾸만 얘기한 겁니다. 뭔 얘기야? 네 생각 거기에 사로잡히지 마라. 그런 얘기에요. 사람이 대개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잖아요. 그래서, 내 생각 때문에 내가 힘들잖아요.
바이런 케이트라고 하는 여자, 제가 자주 얘기하지만, 그 사람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생각하다가, 나를 힘들게 한 게 저 남편이 아니고, 저 남편에 대한 내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구나. 하는 걸 알았다는 거야. 그래, 자기 생각을 검토해 보니까, 터무니없는 생각이야. 근거 없는 생각이야. 글쎄, 이 생각을 내가 계속하면, 나한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하니 괴롭단 말이죠. 이 생각을 놔버리면, 이 생각이 없으면, 난 어떻게 될까? 편안하다. 그래서, 내 생각을 비워버린 거야. 바꾸는 거야. 자기 생각을 바꾸고. 이거요. 우리가 요 비결을 알면, 참 재미있는 세상이 될 것 같아요. 내 생각을 바꾸는 거야. 내 마음대로. 그래서, 나에게 이익이 되고, 나를 행복하게 할 생각은 붙잡고, 나를 불행하게 할 생각이라고 판단되는 건 보내고, 안녕하고 하고 그래. 이 생각이 나를 잠 못 자게 한단 말이야. 어떤 생각이. 집안 일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앞으로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든가. 이런 생각이야.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해. 그럼 힘들게 하는 생각에만, 가시오. 당신 안 붙잡아. 생각만 해도 힘이 나는.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좀 가지고, 즐기고, 내 생각에 휘둘리는 인생이 아니라, 내 생각을 내가 휘두르는 사람. 그런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은 내 생각에 얼마나 근거 없고 터무니없는 것인가 하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하는 얘기를 지금 길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를 자들은 도적질하듯 스스로 깨쳤노라 떠들면서 제법 무엇을 아는 척하고 있으니 임금이나 고관이나 죄다 옹졸한 것들이지. 구도 자네도 모두 꿈이오. 이렇게 내가 자네에게 꿈 이야기를 하는 것 또한 꿈이라네. 이런 말을 일컬어 매우 괴이하다. 괴이한 말이라고 하거니와 만대의 뒤에라도 한 번 우연히 큰 성인을 만나 그가 이 말 뜻을 알아준다면 이는 아침에 헤어져 저녁에 만난 것과 같다고 하겠노라.
이렇게 해서 문답이 계속됐습니다. 제가 뭐라고 해설하는 건 각자 읽어보시면 될 것 같고요.
또 계속해서 읽을까요? 113페이지.
만약에 내가 자네와 더불어 말씨름을 하였는데,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를 이기지 못했다면 과연 자네가 옳고 내가 그른 것인가.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과연 내가 옳고 자네가 그른 것인가. 어느 한쪽이 옳고 어느 한쪽이 그른 것일까. 양쪽 다 옳고 양쪽 다 그른 것일까. 자네나 나나 서로 알 수 없는 것이니, 다른 사람도 옳게 판정 내릴 수 없는 것일세. 우리가 누구로 하여금 바른 판정을 내리게 할 것인가. 자네와 생각이 같은 사람에게 바른 판정을 내리라고 한다면, 그가 자네와 생각이 같은데 어찌 바른 판정을 내릴 수 있겠으며,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에게 바른 판정을 내리라고 한다면 그가 나와 생각이 같은데 어찌 바른 판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나나 자네와 생각이 바른 사람에게 바른 판정을 내리라고 한다면, 그가 나나 자네와 생각이 다른데 어찌 바른 판정을 내릴 수 있겠으며, 나나 자네와 생각이 같은 사람에게 바른 판정을 내리라고 한다면 그가 나나 자네와 생각이 같은데 어찌 바른 판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따라서 나와 자네와 다른 사람이 모두 바르게 알 수 없거늘 누구를 기대할 것인가 무엇을 가리켜 하늘 저울에 따라 조화를 이룬다고 말할 것인가.
그건 이제 새로운 질문인데, 그전까지 이제 다시 이 사람이 질문하는 거고요. 그래요. 지금 금방 얘기한 거 되풀이한 거죠? 옳다, 그르다, 우리 그 수없이 얘기하잖아요. 근데 그래서 논쟁을 해 어떤 사람이 이겼대. 그게 그 사람이 옳은 거냐? 이제 그런 얘기예요. 그래서 이 세상은 끊임없이 시비를 가리죠. 시비. 시는 그렇다. 비는 아니다. 옳다, 그르다, 하는 걸 끊임없이 가리는 세상이에요. 그래서 아주 복잡한데, 그 자체가 무엇이 옳고, 누가 판정을 내리느냐. 그런 얘기입니다. 없다. 사람으로서는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런 얘기. 우리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살죠? 어떤 사람이 그랬어요. 인류 최초의 비극은 비교해서 왔다. 내 기억에는 어떤 철학자예요. 인류 최초의 비극은 비교에서 왔다. 하는 얘기. 그 첫째 비극이라고 얘기하는 게 이 사람이, 카인이 자기 동생을 죽인 거야. 기록된 최초의 비극. 자기 동생을 죽였잖아. 그게 어디서 온 거냐? 자기 동생과 자기를 비교했다는 거예요. 왜 너는 받아들여지고 나는 거부됐냐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결국은 비극을 일으켰다. 그런 얘기를 해요. 비교 자체를. 비교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어요. 저도 일부러, 그렇게 일부러 해봐요. 나를 누구하고 비교하지 말자. 우선 그다음에 저 사람하고, 저 사람은 비교하지 말자. 이런 얘기를 저 자신한테 해요. 근거 없는 거다. 두 개가 있다고 합시다. 두 개. 이 하나를 어떻게 비교해요? 하나는 비교를 못해요. 그죠? 뭐가 있어야 비교가 되죠. 이거 두 개가 있어요. 이것과 이것 그러니까, 비교가 돼요. 그렇죠? 나란히 놓고 본다는 얘기예요. 이거 하나만 있으면, 이건 비교를 못하죠. 여기 있으니까 비교가 돼요.
이 둘은 어떤 관계입니까? 둘 중에 하나예요. 똑같든지, 다르든지, 그렇죠? 둘이 있어. 그러면 둘 중에 하나야. 똑같은지, 다르든지, 똑같은 걸 어떻게 비교해요? 다른 걸 어떻게 비교합니까? 비교 자체가 사실은 터무니없는 거예요. 나하고 이 사람하고 비교한다. 사람이라고 하는 관점을 보면, 똑같아요. 당신도 사람, 나도 사람이야. 사람과 사람을 어떻게 비교하냐? 똑같은 거를. 근데, 다 다르잖아. 생김새가 다 달라. 다른 걸 어떻게 비교해? 원래 다른데?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그래, 비교하지 말자. 넌 그렇게 생겼구나. 참 좋다. 왜? 그렇게 생겨서. 왜 그렇게 생겼냐? 이런 질문 하지 말자. 어쩔 거야? 자기가 그렇게 생겼는데. (웃음) 넌 왜 그 모양이냐? 그런 말은 이제 내 입에서 나오지 말자. 내가 약속했어. 내 입에서 너는 왜 그 모양이야? 누구를 상대로 해도, 내가 깨어있는 한, 내가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나오는 건 내가 할 수 없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깨어있는 한, 절대로 내 입에서 그런 말 나오지 않게 하자. 누가 뭔 일을 했어. 왜 했어? 왜 그랬어? 이런 질문을 하지 말자. 했는데. 그런 얘기. 이 정도만 해도, 해보니까요. 편안해져요. 왜냐하면, 내가 누굴 보고 우쭐거릴 이유가 없어요. 또 누굴 보고, 주눅들 이유도 없어요.
제가 20대 때, 동화쓰고 얼마 안 됐을 때예요. 그때, 사상계라는 잡지에 김지하씨가 오적이라는 시를 썼어요. 내가 어쩌다 읽어보고, 난 아주 쇼크를 먹었어요. 사람이 어떻게 시를 이렇게 쓰는가? 보니까, 나보다 나이도 뭐 몇 살 안 먹었는데. 어떻게 이런 시를 쓰나? 이게 문학이지, 이게 시지, 그런 생각에서 내가 절필를 했다는 거 아닙니까? (웃음) 나는 안 쓰겠다. 정말 몇 달 동안 안 썼어요. 그 앞에서는, 김지하의 오적 앞에서는 내가 쓴다는 거, 이건 쪽팔려서 못 쓰겠다. 그래서, 절필 한 적이 있었어요. 몇 달 동안. 그러다가 뭘 내가 깨달았어요. 뭐냐 하면, 그래? 그래도 김지하가 내가 쓰는 것 같은 동화는 못 써. (웃음) 그 사람은 시인이고, 나는 동화작가야. 이게 어떻게 다른데? 왜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주눅 들어? 말도 안돼. 그런 생각이 나한테 찾아왔어요. 그래서 내가 다시 썼어요. 그 뒤로, 그게 나한테 많은 가르쳐줬어요. 비교하지 말자. 비교하면, 값은 우쭐거리든지, 기가 죽든지, 아니면 비싸니까, 경쟁심이 나오든지, 셋 다 날 위해서 좋지 않아요. 우쭐거리는 것도 나한테 좋지 않고, 누구를 없신 여기는 것도 나한테 안 좋고, 그와 겨루겠다는 건 더 안 좋고, 그래서 이제 비교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그게 오랜 습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비교할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얼른 정신 차려서, 취소. 아니야. 저 사람은, 저 사람이야. 저 사람은 저럴 수밖에 없어. 생긴 게 그렇고, 배운 게 그렇고, 생각이 그래.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걸 내가 뭐라고 할 이유가 없어. 뭐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니가 옳다고 생각하는 거 그걸 주장하지 마라. 옳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러나, 그거를 너한테나 나에게나 강요하지 마라. 이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정도만 돼도 나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그렇죠?
무엇을 가리켜 하늘 저울에 따라 조화를 이룬다고 말하는지요. 이르되 옳네, 옳지 않네. 가 있고 그러하네, 그러하지 않네. 가 있는데, 옳네가 참으로 옳네라면 옳네가 옳지 않네와 다른 것이야. 더 말할 게 없고, 그러한 애가 참으로 그러한 애라면 그러한 애가 그러하지 않네와 다른 것도 더 말할 게 없지.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사람의 소리에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아무 기대도 하지 않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요. 하늘 저울로서 조화시키고 끝없는 전개에 내어 맡기는 것이 천수를 누리는 방법이라네. 나이를 잊고 의를 잊어 경계 없는 지경에 들어가게 되니 이런 까닭에 경계 없는 지경에 맡기고 사는 것일세.
경계라고 하는 게 뭡니까? 이것과 저것 사이에 금을 긋는 거죠. 그래서 a와 b 사이의 경계가 있으면, a는 a고, b는 b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경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경계가 있습니까? 살면서. 그렇죠? 우리 경계 속에서 살다 있어요. 정말 있는 겁니까? 경계가? 이 손하고 어깨하고 경계가 어디예요? 이 눈하고 이 눈의 경계가 어딥니까? 경계라고 하는 건 우리 사람 머릿속에만 있습니다. 실제로 없어요. 38선? 인간에만 있어요. 사람에게만 있어요. 새들한테는 없어요. 설날? 그 사람만 있어요. 경계는 사람들이 편의상 만든 건데, 그러자면 경계는 없는 것이다. 경계 없는 곳이 어디냐? 하늘이다. 하는 말이에요. 땅은 금을 그을 수 있지만, 하늘은 금을 그을 수 없잖아요. 인간들이 여기는 우리나라 영공이다. 뭐 여긴 중국 영공이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하늘 자체에는 없어요. 없어요. 그래서 하늘에 맡기고, 하늘의 저울에 맡긴다는 얘기, 저울이라고 눈금이 있어야, 저울이잖아요. 눈금이라는 게 뭡니까? 기준이예요. 스탠다드. 그죠? 0이라고 하는 게 있어 가지고, 플러스, 마이너스 나오잖아요. 근데, 하늘은 스탠다드 자체가 없어. 눈금이 없어요. 저울인데. 그러니까, 말을 하려니까, 이렇게 억지로 하는 건데요.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나하고 같이 이렇게 살아가는데, 옆에서 살아가는데 이 사람한테는 눈금이 있어요. 나한테 눈금이 없다. 라고 얘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사람한테도 눈금이 있고, 나한테도 눈금이 있어. 그러면, 이게 서로 안 맞을 때가 있죠? 그렇죠? 티격티한단 말이에요. 근데 나한텐 눈금이 없어.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이 사람 눈금에 그냥 따라가는 거야. 그렇죠?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하라 말이죠. 경계라고 하는 데, 속지 말아라. 그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경계가 우리 마음속에, 머릿속에 그려놓은 거지. 실제로는 없다. 제가 여기가 가려워요. 이렇게 긁어요. 가려우면 긁죠. 왜 긁을까요? 가려워서 긁지. 가려운데, 왜 손이 긁어요? 왜 손이 와서 긁냐고. 경계가 없어요. 그렇죠? 지가 저를 긁는 거죠.지가 저를 긁는 거예요. 나도 사람이잖아요. 당신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야. 그지? 그래서 만약 우리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걸로 하자. 사람이 사람 만나는 거야. 지가 저 만나는 거지. 사람이 사람 만나는 거. 자기가 자기를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저 사람을 사람이 돼서 사람으로. 본다면, 저 사람이 바로 나란 말이지. 그 얘기를 선생들은 천지여아동군이요. 만물여일체라 그러니까 묘한 말로 하는 거예요. 천지가 나와 한뿌리고, 만물이 나와 한몸이다. 하는 얘기가 너, 나 이 생각으로 구분되지만, 사실은 내가 나고, 내가 너다. 그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 아무리 긁어도, 가려워도, 다른 사람 손이 와서 긁는 법은 없어요. 내 손이 나를 긁죠. 나니까 긁는 거예요. 지경이 더 넓어져서, 내가 정말 너고 나, 일체화된다면 이 세상이 싸우고 싶어도 못 싸우겠죠. 하늘 같은 사람이 되면, 어떤 사람하고도 하나가 되는 거예요. 누구하고도. 강도하고도. 하나가 되는 거야. 예쁜 사람하고만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아주 험상 궂은 사람하고도 하나가 돼. 그게 하늘 같은 사람이다. 그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어요. 아무나 되는 거 아니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빨리 하늘처럼 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그러면 더 안 됩니다. (웃음) 그러니까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최소한도 내 생각에 내가 놀아나지 않게, 내 생각에 내가 말하자면 노예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저 사람을 생각해도 내가 노예가 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어. 그 정도면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아요. 그렇죠? 여기 보세요. 잠깐 얘기하지만, 117페이지. 거기에 보면,
예수는 누구와도 시비를 다툰 바 없다.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시비를 걸어왔으나 한 번도 그들의 시비에 말려든 적이 없다. 시비라고 하는 건 옳다, 그르다, 그러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에게 시비를 걸어왔지만, 그는 시비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질문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시인가, 비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예수가 여기서 그건 시다, 비다, 이런 얘기 안 해요. 옳다, 틀렸다 이런 얘기 안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 그러니까 소위 말해서, 세상의 시비, 논리, 복잡한 거기에 말을 섞지 않는다. 그런 얘기. 저 사람의 논리에 들어가서 그와 맞서지 않는다는 것이예요. 물으니까, 자기 답을 하는 거에요. 자기 말을 하는 거에요. 간음한 여자에게 돌을 던질까, 말까 여기에 간음하지 않는 자 누구냐.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니가 그리스도냐, 그것은 니 말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말하지 않아요. 진리는 말할 수 없는 거예요. 누구도 참 진리에 대해서 이렇다. 라고 얘기할 수 없는 거예요. 말했다 하면 거짓말이야. 아는 사람은 그래서 말을 안 해요. 못해. 예수님이 나이 30살쯤 돼가지고, 이제 세상에 나가서 내가 뭔 일을 해야 되겠다. 싶으셔야 되니까, 사막에 가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했다는 거 아닙니까? 이제 중요한 사건을 앞두고 마음을 정비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탄이 나타나서 욕을 한단 말이야. 말을 걸어요. 세 번이나 말을 걸었는데, 한 번도 그 상대방의 말에 섞여 들어가지 않아요. 말. 우리나라 말이 참 재밌어. 말 섞지 않는다고. 비비지 않아요. 그러니까, 네가 하나님 아들이냐? 그러면 돌로 떡 만들어봐라. 그러니까 만든다, 안 만든다, 그런 얘기 안 해. 그 논리에서 떨어져. 사람이 떡만 먹고 사는 거 아니야. (웃음) 엉뚱한 말을 하는 거예요. 안 말려 들어가요. 시비에. 그거를 우리가 좀 배웠으면 좋겠다. 그건 니 생각이지. 그러니까 높은 데서 떨어져 와라. 그럼 천사가 너를 받쳐줄 것이다. 그러니까.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자빠졌나. 안 그래요. (웃음)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 나한테 절 한번 해라. 그럼 내가 세상을 다 줄게. 왜? 이 세상이 내 거니까. 내가 줄게. 이렇게 하니까 뭐라고 그래요? 사람이 절할 때는 한 군데밖에 없어.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그 질문에 대답은 해요. 대답은 하지만, 그 질문에 섞여 들어가지 않는단 말이야. 그 지혜와 그 면을 우리가 좀 배웠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입니다.
마지막 이제 이제 다 됐지? 하나 더 있다.
옅은 그림자가 짙은 그림자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걷는가 하면 멈추고 앉아 있는가 하면 일어나니 어찌하여 그렇게 움직임에 지조가 없는가. 짙은 그림자 대답하되 내가 무엇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그런 걸까. 내가 의존하고 있는 그것 또한 무엇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그런 걸까. 나는 뱀 비늘이나 매미 날개를 의존하고 있는 걸까. 왜 그런지 그 까닭을 어찌 알 것이며 왜 그렇지 않은지 그 까닭을 어찌 알 것인가.
그래 여기 망령이라고 하는 거, 망령이라고 하는 거는 그림자가 있으면 아주 중간에 짙은 그림자가 있고, 그 주변에 옅은 그림자가 있대요. 그 옅은 그림자 그 관에는 짙은 그림자 그걸 영이라고 한다. 영. 그래서 이게 망령이 영한테 묻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 말해, 이 영은 자기가 그림자라는 걸 알아. 근데 옅은 그림자는 자기가 그림자인지도 몰라. 그래서 자기가 그림자인 줄 모르는 놈이 자기가 그림자인 줄 아는 그림자한테 묻는 거예요. 넌 왜 그렇게 줏대 없이 그냥 앉아 있는 것 같으면 금방 일어나고, 일어나 있는 것 같으면 앉고, 왜 그러냐? 왜 지조가 그렇게 없냐? 하고 물었다잖아요. 그러니까 이 자기가 무엇의 그림자라는 걸 안단 말이에요. 무엇의 그림자인지 내가 알아요. 그게 있잖아. 영이야. 내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무엇에 의존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가 봐. 얘기하는 거야. 근데 왜 그렇게 움직여? 내가 움직이는 거 아니야. 누가 움직여. 그래서 나도 움직이는 거야. 그게 그 실물이. 그러니까 그림자가 왜 시커멓게 거기 있어? 그러니까 아 저 나무 때문에 그래.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나무가 있으니까 내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난 내 마음대로 못해. 새가 있으니까 내가 있는 거야. 그 새가 날아가는데 어떻게 그림자가 가만히 있냐? 이제 이런 식으로 자기가 무엇인가에 의존돼 있다는 걸 아는 거야. 독립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아는 거예요. 여러분도 알고 계시죠?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하나님이란 얘기를 하는데, 그게 제가 볼 땐,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내가 부정할 수는 없어요. 그렇죠? 거기 효종이 있다는 사실을 효종은 부정할 수 없어. 남은 몰라도 내가 여기 있다는 거. 그렇죠? 근데 내가 여기 있다는 건 내 혼자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나를 여기 있게 하기 위해, 있게 했기 때문에 있는 거야. 우리 엄마가 있어서 내가 있다. 그런 얘기예요. 우리 엄마는 우리 할머니 때문에 있는 거고, 자꾸 올라가면 마지막에 알 수 없는 근원, 도대체 머리로는 파악이 안 되는, 그 근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걸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걸 하늘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알 수 없는 그 근원에서, 의해서, 내가 와서 움직이는 건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놈이 움직이는 거야. 내가 밥 먹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서 밥을 드신다. 이렇게 내가 저 사람 보는 게 아니라, 저 사람 안에는 하나님을 내가 본다. 이런 관점으로 만물을 보고, 사람을 보는. 그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그래서 꿈과 같은 거라면, 이걸 꿈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려면, 깨어나야 한다. 깨어나면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얘기죠. 저는 빨리 죽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런데 요즘 와서는 그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 감은 와요. 나만 그런가? 여러분 다 그래요. (웃음) 그 날은 점점 멀어지는 날이 아니라 ,가까이 오고 이러는 날이에요. 가까이 오고 있어요. 그날이 나한테 닥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요. 한 가지 아주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건, 여기보다 훨씬 좋은 데일 것이다. 그건 분명해요. 나비꿈까지 읽읍시다. 오늘 그러면 이제 재물론은 다 있는 거예요. 나비꿈, 유명한 나비꿈, 장자의 나비꿈
옛날 장주가 꿈에 나비로 된.
주라는 건 자기를 얘기하는 거예요.
꿈에 나비로 되었더니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 되어 마음껏 즐기면서도 쟤가 주인 줄 몰랐다.
문득 깨어남에 누워 있는 모습이 바로 주였다. 모르겠구나. 주가 꿈의 나비로 된 것일까 나비가 꿈에 주로 된 것일까? 주와 나비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는데 이것을 일컬어 물화라고 한다.
물화라는 말이 여기 나와요. 물화라 그러니까 화가 바뀐다는 얘기야. 바뀐다. 사물은 끊임없이 바뀌는 거야. 그렇죠? 고정된 실체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꿈을 꿨는데, 나비가 됐대요. 신나게 날아다니는데, 나비에서는 자기가 장자인 줄 몰랐다는 거죠. 꿈속에서는. 그런데 깨고 보니까, 자기가 장자가 돼서 꿈을 꾸고 있더라. 그런 얘기입니다. 야 이게 꿈속에 나비가 나인지 나비를 꿈꾸고 있는지 나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윤이상 선생이 이거 가지고 아주 아주 유명한 곡을 만들었다고 그러잖아요. 장자의 꿈, 그건 많이 알려진 얘기입니다. 이 얘기는 뭡니까? 전 그래 봐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그 꿈이야.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꿈, 꿈이라고 하는 건 뭐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더라, 그런 얘기하죠. 그래서 이걸 이제 불교 철학에서는 이 세상을 환이다. 환, 일루션, 그렇게 보고 있죠. 실제로 이렇게 몰라. 양자 물리학, 같은 그런 게 들어가면 존재하는 건 없다. 는 거지. 없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은 없다는 거예요. 있으면서 없다. 없으면서 있다. 이렇게 밖에는 얘기할 수 없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얘기하다 보면, 이거 이게 그렇다는 걸 아는 건 제 생각엔 내가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있었잖아요. 기억나요? 난 기억하는데. (웃음) 엄마 뱃속에서 내가 10달 동안 있었다고. 그런데 어느 날, 아 너무 답답해. 나와야 되겠어. 그래서 내가 문을 두드렸더니, 열리더라고. (웃음) 여기를 이렇게, 밀고 나왔어요. 아 좀 약간 힘들긴 하대. (웃음) 우리 엄마가 나보다 훨씬 힘들었지. 쑥 나왔어요. 나 이런 세상이 날 기다리고 있는 줄 몰랐어. (웃음) 그 엄마 앞에 속에 있었던 어둠이 전부야. 편안하긴 하더라. 걱정도 없고. 근데 이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새가 날아다니고, 이런 세상이 펼쳐질 줄은 내가 꿈에도 몰랐지. 근데 그 태아가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태아가 죽는 걸 얘기하는 거야. 그렇죠? 탯줄 끊어줘야 나오잖아요? 탯줄이 뭐야? 생명줄이야. 태아가 죽어야 신생아가 산다 말이야. 우리가 태어난 날 사실은 죽은 날이에요. 그러므로 내가 죽는 날, 그날은 내가 태어난 날이야.
그리고 내가 태어나서 맛볼 그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야 이런 세상이 있으면 진작 좋을걸.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까 얘기했잖아. 눈이 막 돌아가서 깜짝 놀라서, 아이고, 어쩌다가 내가 죽게 됐는데, 또 살란 말이냐. 그러고 놀랐다는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요. 쓸데없는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면서 이제 그만 시비 가리는데 너무 그렇게 거기에 매달리지 말자. 내 생각이 좋지만, 내 생각에 노예가 되지 말자. 적어도 그 정도는 우리가 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너무 말이 많았던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생각이에요.)
혹시 질문하실 거 있으시면 질문도 꼭 하는 사람이에요. 하세요. 질문도 꼭 하는 사람이 해. (웃음)
학생 : 근데 저는 사실은 진화를 믿고 있거든요. 그래서 인간이 어떻게 이런 과정을 겪게 됐는가, 이렇게 이제 자꾸 생각해 보게 되는데, 왜 인간은 인간한테 가장 비극인 비교라는 것이 인간 사회에 오게 됐으며, 그리고 왜 시비를 이렇게 계속 우리는 거에 집착을 하게 될까, 이런 거를 이제 어쩌면 그냥 있는 지금 하고 있구나를 그냥 인정을 하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그게 어쩌면 정답일 수도 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왜 그렇게 됐을까를 이렇게 자꾸 이렇게 약간 의문을 던지게 되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선생님 : 제 생각은 다 필요하니까. 하는 것 같아요. 필요하니까. 내가 겪는 경험은 다 내가 할 만하니까 하는 거예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지 않은 경험은 나한테 안 와요. 아픈 상처도, 아픈 경험도, 정말 필요하니까 온 거라고요. 속는 거, 이런 것도. 나는 어떨 땐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왜 이 세상에 왜 왔나 한번 물어봐요. 그러면 난 이렇게 대답해요. 있을 수, 전제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가짜를 경험하기 위해서 왔다. 가짜 사랑, 가짜 재물 같은 모든 가짜를 골고루 경험하기 위해서 왔다. 왜? 그래야 진짜를 안다. 그런 얘기죠. 가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진짜가 와도 그게 진짜인지 몰라요. 우리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에덴 동산을 그리워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안 좋은 거 악, 이런 것도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걸 내가 겪어야, 그래야 진정한 선이 무엇인지, 아름다운 게 뭔지를 그때서야 알게 된다. 아무리 좋은 거 있어도, 그게 좋은 건지 몰라. 그러면 없는 거야. 며칠 전에 얘기하는데 누가 뭘 잃어버렸어. 뭘 잃어버렸어. 그런데 뭘 잃어버렸는지 몰라. 그거 잃어버린 거야? (웃음) 며칠 동안은 내가 이 책을 잃어버린 걸 몰라. 안다면, 안 잃어버린 거죠. 잃어버렸다는 걸 모르니까, 안 잃어버린 거예요. 어디다 뒀는지 근데 이게 필요 없어. 그러면 난 이거 안 잃어버린 거야. 그러니까 잃어버린 거 없어요. 그렇죠? 모르니까. 그런데 이거 보고 필요하다 보니까 없어. 잃어버렸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낙원을 그리워합니까? 파라다이스라고 하는 건 뭔데, 그걸 왜 우리가 생각해요? 다 경험해 봤다는 얘기 아닐까요? 내가 모를 뿐이지. 모르는 거는 기억할 수 없어요. 그렇죠? 모르는 걸 어떻게 기억합니까? 잃어버리지 않은 걸 어떻게 찾아요? 그래서 내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곳인지를 모른다면, 그건 내가 아름다운 세상에 안 사는 거예요. 여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알려면, 그 반대되는 걸 겪어봐야 안단 말이지. 물건을 잃어버려야, 내가 뭔 물건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잖아요. 사람들 죽어봐야,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비로소 안단 말이지. 안 그렇습니까? 건강을 잃어봐야.
이번에 지난달에, 이제 감기가 좀 심해서 지금은 이 목소리가 제대로 좀 잘 나옵니다마는, 이게 안 나왔었어요. 이게 발성이 안 돼서 말을 못 했었어요. 이 소리가 나야 말을 하지. 그런 적이 있었어요. 한 사흘? 거의 말을 못하고, 이렇게 지나는데, 그때 내가 절실하게 알았어요. 말을 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잖아요.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그건 며칠 동안 말을 못 해보니까, 말을 한다는 게 이렇게 좋구나. 고마운 거죠. 그게 진짜 사는 거 아닙니까? 은혜를 입고 은혜에 너무 고마워,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 그게 사람답게 사는 거지. 은혜를 아무리 먹으면 뭐해? 내가 그런 줄 모르는데. 하나도 고맙지 않지. 그래서 난 그런 반대되는 것들을 겪어야 한다 생각해요.
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요. 예. 또 질문 꼭 하셔야 되겠다 하시는 분 계신가요?
그렇지 않다면 여기서 이렇게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공부한 내용으로 2주 동안 잘 사시다가 또 다음에 뵙겠습니다.
관옥의 노래로 마치겠습니다.